소설리스트

103화 (103/236)

* * *

“후우우우···.”

숨을 내쉴 때마다 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난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이용해서 의도적인 환골탈태를 계획했다. 화산파의 자령단을 취하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내 육신은 천마신공으로 마(魔)를 받아들이며, 점점 강인해지고 있었기에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반절의 성공이었다.

분명히 육신은 변화했지만, 완전무결한 천마의 육신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몸의 감각이 과거보다 더 예민해졌다. 근육의 밀도 또한 달라진 것이 확실해. 다만 문제가 있다면···.’

몸이 너무 예민해진 것이 문제였다.

천향옥로단을 취하기 전엔 여인들이 주는 자극에 크게 흥분하지 않았다. 명확한 목표가 있기에 일부러 그런 부분을 의식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무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은 가득 찼었다.

그런데 천향옥로단의 기운.

이 묘한 향을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여인과 손만 잡아도 흥분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군.’

처음 영령과 손을 잡았을 때.

부끄럽게도 신체의 변화가 느껴졌었다. 그게 일반적인 사내의 반응이리라. 뭐 손을 잡는 자극에 익숙해진 뒤로는 딱히 그럴 일은 없었지만, 지금 문제는 그 흥분이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폐관실을 나온 순간 갈유화를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의 몸을 더듬어버렸다. 욕구를 가진 사내라면 당연한 반응일지 모르겠으나 평소의 나와는 확실히 달랐다.

‘너무 급하게 힘을 탐했던 것일까···.’

이번 일로 많은 것을 얻었다.

2갑자에 미치지 못하던 내공은 폭발적으로 늘어 3갑자에 가까워졌으며, 육신은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다. 하지만 욕구에 정신이 지배되어 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이랴? 폐관실에서 나온 뒤로 해우심법을 운용하며 욕구를 가라앉히려 했지만,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연무장에 갈유화가 찾아왔다.

그녀는 의도한 것인지 나를 찾아올 때만 노출이 과한 의상을 입었다. 지금도 조금만 옆을 돌면 은밀한 부위가 보일 듯하다. 난 억지로 그것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었다. 폐관실에서 그녀의 알몸을 보았을 때, 딱히 욕구가 생겨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도 큰 변화였다.

“단목 공자님?”

“그만. 더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갈유화의 접근을 차단한다.

그녀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말을 따라 더 다가오진 않았다.

“연무장엔 당분간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죄송해요.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제가 직접 찾아왔답니다. 어머나···?”

갈유화가 특정 부위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다.

난 그녀의 반응을 무시한 채로 물었다.

“좋은 소식이라면? 설비연의 일인가?”

“네, 맞아요. 그 괴상망측하게 박아놓은 빙정을 새로운 눈으로 옮겼답니다. 이제 그녀는 안대를 쓰지 않아도 될 거예요. 경과가 좋으니 곧 움직일 수도 있다고 해요.”

“다행이군.”

“네, 정말 다행이에요.”

야릇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갈유화.

치밀어오르는 욕구를 가라앉히며 말한다.

“소식을 전해줬으면 이제 나가줬으면 좋겠군.”

“공자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

“지금 공자님의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랍니다. 폐관실을 처음 나오신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그때 공자님께선 욕구를 참지 않으셨죠. 제 몸을 무섭게 훑으시곤, 그 우악스러운 손으로 절 탐하셨죠.”

“···.”

“전 그게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해요. 오히려 욕구를 참는 것보다 때때로 풀어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전 공자님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준비가 되었고요.”

갈유화의 말을 생각한다.

그녀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욕구를 참기만 해서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처음 여인의 손을 잡고 흥분했던 감정은, 더한 경험을 통해 더 이상 큰 자극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 만큼 욕구를 풀어내고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게 자연스러운 것일까?

“만약 당옥정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입이 무겁답니다. 그녀에겐 말이 들리지 않도록 할게요. 또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듯 무림에서 영웅이 여러 여인을 취하는 것은 죄가 아니랍니다. 단목세가의 가주님만 하더라도 여러 부인과 첩을 두셨잖아요?”

“후우, 갈유화.”

“네, 공자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폐관실에서 했던 것처럼 그녀와 접촉해본다. 본질적인 해결법은 아니지만, 혹시 욕정에 빠져 버릴까 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시도는 해보아야 한다.

“가까이 와라.”

“네에에···!”

갈유화는 빠르게 내게 다가왔다.

* * *

이제는 안대를 차지 않은 설비연.

그녀가 깊이 고개를 숙여 단목장룡에게 인사한다.

“주공 덕분에 두 눈으로 다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덕은 무슨. 암천회주님 덕분이지.”

“아닙니다. 주공이 없었다면 이런 기연도 없었을 겁니다.”

설비연은 새로운 눈을 얻었다.

사실 사파의 도움으로 새로운 눈을 찾는다고 했을 때, 단목장룡은 그녀가 거부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해남도에서 여러 경험으로 그녀는 변화했다. 뼛속까지 정파인이었던 그녀는 이득이 된다면 사파의 힘도 이용할 줄 알게 되었다. 처음 하오문에 들렸을 때, 거부감을 보였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참, 이제는 주공이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

“···.”

설비연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무림맹에 돌아갈 때까지는 주공으로 모시겠습니다.”

“뭐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 그건 그렇고 빙정의 기운은 활용할 수 있게 된 건가?”

“예, 예전엔 빙정의 기운을 사용하려 할 땐 고통이 있었는데 이제는 꽤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완벽히 적응된 것은 아니지만요.”

“나와 비슷하군.”

설비연은 지금 단목장룡과 같은 처지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제어하려 노력하고 있었고, 그녀는 빙정의 기운을 제어하려 하고 있었다.

“주공께서는 괜찮으신 겁니까···?”

설비연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그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건 처음부터 느꼈다. 과거엔 설비연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면, 가끔 그의 시선이 몸을 훑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시선을 경멸하던 설비연이었지만, 왜인지 단목장룡의 시선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된다.

분명히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욕구를 이기지 못해 무(武)를 저버린 무림인들을 많이 보았다.

단목장룡이 그것에 매몰되리라 생각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것이 사실.

“난 괜찮다.”

갈유화를 통해 욕구를 풀어낸다.

물론, 정을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욕구를 풀어내는 방법은 많았다. 그 과정에서 갈천능에게 조언을 받기도 했다.

‘나 또한 극마에 오르기 전에는 음주를 즐겼으며, 여색을 탐했다. 하지만 극마에 들어서니 그런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더군.’

갈천능의 조언이었다.

그러니까 천향옥로단의 부정적인 기운에서 벗어나려면 화경의 경지에 올라야 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단목장룡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조만간 화경에 경지에 오르고, 완전한 환골탈태를 통해 새로운 몸으로 거듭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무림맹에서 많은 일이 있다고 하더군.”

“예, 저도 들었습니다.”

현재 무림맹은 새로운 맹주의 탄생을 앞두고 있었다.

전대 맹주인 제갈강량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재 무림맹은 구파일방을 주축으로 한 세력 개편이 한창이었다.

그 과정에서 흑룡단이 없어질 수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주공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직접 보고 판단해야겠지. 그대로 있던지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지. 일단 마교에 대한 건을 보고하는 게 먼저다.”

설비연 또한 지금 생각이 많았다.

그녀의 목표는 마교에 복수하는 것. 무림맹에서 흑룡단이 해체된다면, 그녀의 목표와는 멀어진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녀의 목표를 이루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분명히 그녀보다 어린 사내에 불과했지만, 암천제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단목장룡이 설비연을 보며 말한다.

“내일 배를 탄다.”

“예, 주공. 떠날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

* * *

“흐으윽··· 공자님···.”

광동성으로 향하는 배.

갈유화는 떠나는 단목장룡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그 옆에서 갈청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뿐이다. 누님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배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갈유화가 눈물을 멈춘다.

“누님, 단목장룡과 정말 혼인이라도 할···.”

찌릿.

갈유화의 눈빛에 갈청이 움찔한다.

“단목 대협과 혼인할 생각이오?”

“그분께서 날 온전히 받아주신다면···.”

“듣자 하니 단목 대협께선 암천회로 올 생각이 없다던데? 그렇게 되면 소회주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소?”

갈유화는 사랑도 모르는 어린 동생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과거엔 그녀도 암천회의 회주의 되는 것만이 인생의 종착지라 여겼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나서는 그녀는 달라졌다.

“만약 그때가 되면 네가 회주 해.”

“···진심이오?”

“그래.”

갈유화는 떠나버린 정인이 그리웠지만···.

그래도 혼자 버틸만한 추억(?)을 꽤 많이 만들었다.

‘언젠간···.’

그 추억으로 버틸 수가 없을 때가 되면, 그녀는 해남도를 나서기로 했다.

암천회주에겐 당연히 비밀이었지만 말이다.

강호의 쓴맛

서평(西平).

우리는 광동성, 호남성, 호북성을 넘어 이제는 하남성 서평에 도착했다. 여기서 쭉 올라가다 보면 하남성의 성도이자 무림맹의 본성이 있는 정주현에 도착한다. 사실 해남도를 막 빠져 나왔을 땐, 조금 긴장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게 적의를 가진 나찰마궁이 날 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천향옥로단의 기운을 취한 기간이 길어서 그런진 몰라도 매복 따위가 있진 않았다.

그렇지만 혹시 몰랐다.

우리는 암천제에서 우승하여 수라마검을 가지고 있다. 나찰마궁이나 혈세귀막··· 그 외에도 사파에는 수많은 대형 문파가 존재했다. 그들이 작정하고 습격하려 들면 설비연이나 나라도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습격은 없었군.’

내가 더 이상 축골공을 사용하지 않고, 설비연이 안대를 차지 않았기 때문일까?

가끔 묘한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것은 금방 시들해져 다른 곳을 향했다. 본격적으로 사파의 권역을 빠져나간 이후부터는 그런 시선마저 완전히 사라진 상태.

커다란 봇짐을 메고 다녔기 때문인지 평범한 도적들이 나타나서 돈을 내놓으라고 하긴 했지만, 그런 이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놈들의 본거지까지 찾아가서 그들의 자산을 싹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한가한 것은 아니었기에 대충 쥐어박고 돌려보냈다.

그렇게 무림에서 가장 치안이 좋다는 하남성에 들어서자 이제는 그런 산적이나 도적 따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공, 마을이 보입니다.”

“그래.”

성 단위로 이동하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노숙은 일상이었으며, 끼니를 때워봤자 육포 따위를 삶거나 향신료를 뿌려 굽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 설비연이 사냥 실력을 발휘하여 사슴이나 멧돼지를 잡아 올 때는 그나마 낫긴 했지만···.

전문 숙수가 요리한 것만큼 맛있진 않지.

맛있는 요리를 떠올리자 배에서 아우성을 친다. 천향옥로단을 취한 뒤로는 여러 감각이 증폭되었다. 특히 무언가를 취하는 것에선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것이 미래를 따져보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알 순 없었지만···.

‘너무 참고 숨기기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지.’

난 단목장룡의 몸에서 깨어난 이후로 무공의 성장만 생각했다.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무공을 수련할 때도 무공을 생각했다. 어찌 보면 강박이라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무공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즐거웠으니 회의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으나 최근 감각이 증폭된 이후엔 그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참지 않으니 바깥을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지고, 오히려 무공 실력도 더 빠르게 성장했다. 천향옥로단을 취한 효과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것을 취한 이후엔 여러 욕구가 늘어나 무공 생각만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해남도에서 갈유화를 통해 욕구를 꽤 충족시켰기에 이젠 여인이 가까이 오더라도 흥분할 수준은 아니었다. 만약 계속 그 감정을 참고 속여왔다면 난 몹쓸 행동을 했을 수도 있었다. 정주에 도착할 때가 되자 조금씩 그 감정이 고개를 쳐들긴 했지만··· 아직까진 별문제가 없었다.

“주공, 객잔에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놓겠습니다.”

“그래.”

타다닷!

설비연이 마을의 중심부를 향해 달려간다. 그녀는 마을이 보일 때마다 먼저 달려가 객잔의 방과 요리를 주문한다. 우리가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기에 한 번 마을에 들릴 때마다 가장 좋은 객잔을 찾아가곤 했는데, 어떤 경우엔 자리가 부족할 때도 있었다.

그 이후로 설비연은 먼저 저렇게 몸을 움직였다.

진정으로 충심이 느껴진다고 할까?

‘어쩌면 설비연은 무림맹에 돌아가서 내 밑에 올 수도 있겠군.’

이새붕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설비연과 비교는 불가능하다. 무공 실력과 더불어 실전 경험부터가 차이가 극심하다. 설비연은 본래 흑룡단의 조장이었으니 아랫것들을 다루는 데 익숙하다. 설비연이 내 직속 수하가 된다면 상당히 편해질 것이다.

‘뭐 알 수 없는 일이지.’

달려나가는 설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음의 속도를 올려 뒤따른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