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236)

* * *

갈유화.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목장룡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리라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그의 입으로 들으니 사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이 따갑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아이처럼 울진 않았다.

단지 가만히 앉아 생각을 되풀이할 뿐.

‘내 얼굴이 별로인가?’

동경을 들어 바라본다.

분명히 예쁘다고 생각한 얼굴이다. 누구도 자신의 외모와 비교하면 미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몸매 또한 최상위였다. 보통의 사내들은 그녀의 외모만 보고도 침을 질질 흘리곤 했다. 그런데 왜 그에겐 통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쉽지 않으니 더 끌리는 것도 있으리라.

‘아니면··· 사천성에서 봤던 그 어린 계집 때문인가? 그런 귀여운 얼굴이 취향이신가?’

갈유화는 당옥정을 떠올렸다.

단목장룡과 당옥정이 식사하는 걸 보았다. 그때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다. 단목장룡과 헤어진 후에 그를 상기할 땐 그때의 기억만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때 고년에게 닭 다리를 주셨지.’

그런 것을 볼 때, 단목장룡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후우우··· 낭군님이 밉지만···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구나.’

질투심이 생겨난다.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단목장룡이 미웠다. 하지만 그런 마은 지속할 수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분노가 희석되고,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갈유화가 살아오며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갈유화가 그리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누님, 나요. 청이.”

“들어와.”

갈청.

갈유화 바로 밑의 동생이었다. 사실 대부분은 여인인 갈유화가 암천회의 소회주가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 갈청이 소회주가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예상을 꺾고 갈유화가 소회주가 되었고, 갈청은 그냥 직계로 남아 있을 뿐이다.

보통 그런 상황이라면 남매끼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님, 뭐 그리 꽁해있소?”

“뭐 그런 일이 있단다. 너는 알 필요가 없어.”

“딱 보니 아버지께 혼이 난 것이겠지.”

따악!

“커억···!”

지법(指法)으로 꿀밤을 먹인 갈유화.

갈청은 더 이상 누님에게 까불지 못한다.

뭐 당연했다. 어릴 때부터 갈유화는 동생들이 기어오르는 걸 참지 않았다. 개중엔 그녀보다 무공이 강한 이들이 있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무릎을 꿇렸다.

갈유화가 소회주가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런 모습이 가장 컸다. 아랫것들이 감히 반항하지도 못하게 하는 그 기세. 갈유화에겐 그런 것이 있었다. 물론, 단목장룡의 앞에만 서면 작아지곤 하지만.

“그 장천이라는 놈과 결승···.”

이마를 쓰다듬고, 눈치를 보던 갈청.

천천히 그녀의 앞에 앉으며 입을 여는데···.

따아악!

어째선지 조금 전보다 더 강한 일격이 그의 이마에 전해졌다. 갈청의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성격 나쁜 누님이 대체 뭐가 기분이 나쁘길래?

“장 대협이라 불러라.”

“장 대협? 그놈··· 커억! 아, 알겠소! 그만 때리시오!”

갈청도 결코 약한 게 아니었다.

가는 암천회주의 둘째로 사실 아주 어릴 적에는 그가 소회주로 내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정파처럼 규율이 엄격하지 않은 사파라곤 하나, 이 거대한 단체를 여인에게 맡긴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암천회주 갈천능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고, 사내나 여인이나 암천회를 더 잘 이끌 만한 사람에게 소회주직을 내려주겠다 선언했다. 마지막에 결정된 것은 갈유화였고 말이다.

갈청은 그녀만큼 강하다. 최근 들어서는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지, 그녀의 무공 수위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지만, 갈청 또한 갈천능의 피를 이어받은 사내였기에 무공 수위가 낮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갈유화의 앞에 서면 매 맞는 동생이 되곤 한다.

지금처럼 말이다.

“크으음! 장천이라는··· 아니, 장 대협과 정말 연인 관계라도 되는 것이오?”

“···.”

갈유화가 침묵한다.

그런 관계는 아닌가? 갈청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장천과 갈유화 사이에 묘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갈유화가 침묵한다? 뭐 모든 것을 세세히 말해주는 착한 누이는 아니었긴 했지만 저런 모습은 보기 드물긴 했다.

뭔가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누님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군. 장천과 관계가 있는 건가?’

갈청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에 대해 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장천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렸다. 그런데 대협이라 부르라니?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꿀밤을 더 맞을 것이 분명했기에 차라리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나았다.

“누님, 최근 들어서 말이오. 무림맹의 분위기가 묘한 것 같소.”

“무림맹?”

갈유화가 무림맹이라는 말에 반응을 보인다.

“어떤 분위기?”

“적룡단의 단주가 부맹주직으로 결정됐지 않소? 하남분타에서 정보를 보내왔는데, 바로 맹주직을 승계할 것 같다고 하더군. 이상하지 않소? 보통 부맹주직에서 몇 년은 있어야 맹주직을 차지할 수 있는데 말이오.”

“더 많은 정보는 없느냐?”

갈청이 자신이 아는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소회주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암천회에 애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갈유화를 대신하여 정파에 관한 정보들을 모아 그녀에게 보고하곤 한다.

갈유화가 이 정보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 모두 말해준다.

그리고 점차 갈유화의 눈빛의 생기가 돌고 있다.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누님의 기분이 다시 좋아지는 것 같군.’

그 모습을 보며 갈청이 속으로 흐뭇함을 느꼈다.

자신의 누이는 사악한 미소를 지을 때가 가장 보기 좋았다.

* * *

갈청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보고했을 때.

바깥에서 분타원 한 명이 찾아왔다.

“소회주님, 장 공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갈유화가 벌떡 일어선다.

“오, 그래? 뢰극찰을 이겼다고 들었는데 한번 보고 싶군.”

그러자 갈유화가 차가운 눈으로 그를 흘겨본다.

“넌 가라.”

“왜 그러시오? 나도 그를···.”

“가.”

“···.”

“지금 장 공자님께선 어디 계신가?”

“지금 문 앞에···.”

갈유화가 조신한 걸음으로 다가가 문을 연다. 그 앞에는 상당히 못생긴 장천의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갈청이 입을 떡 벌린다. 소문으로 들었지만, 소문은 대개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지만···.

‘정말 못생겼군.’

갈유화는 외모를 꽤 중시하는 편이다.

못생긴 사내는 전혀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누님이 저런 놈에게 연정을 품을 리가 없다. 갈청은 그렇게 생각했다.

갈청은 장천에게 다가가 인사한다.

“장 소협, 소문은 많이 들었소. 난 갈청이라 하오.”

“제 동생이랍니다. 버릇이 많이 없으니 장 공자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주셔요.”

얼른 꺼지라는 갈유화의 눈짓. 갈청은 당연히 누님의 말을 잘 듣는 사내였다.

“크음, 나중에 다시 봤으면 좋겠소. 그럼···.”

갈청이 떠나고, 단목장룡과 갈유화가 마주보고 앉았다.

사실 갈유화는 단목장룡에게 조금 삐친 상태였었다. 아버지 앞에서 매몰차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보니 그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분명히 얼굴은 축골공으로 변화하여 평균보다 못했지만, 그녀는 단목장룡의 눈동자를 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땐 제가 그냥 가버려서 죄송해요. 워낙 피곤했던 터라···.”

“아니다. 잘 쉬었나?”

단목장룡의 사소한 말에 갈유화의 심장박동이 더욱 커진다.

“네···!”

사실 단목장룡도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 있었다.

그가 무뚝뚝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본래 여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는 평범한 사내의 성격이었으니까. 새로운 삶을 받고 조금 칙칙해지긴 했지만.

“참, 공자님. 요즘 무림맹의 정보는 받아 보지 못하셨죠?”

아마 이것은 하오문도 모르는 정보이리라.

그가 하오문에서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은 갈유화도 잘 알고 있었다. 단목장룡은 해남도에 일에 집중하느라 현재 무림맹이 어찌 돌아간다는 건 알지 못했다. 애초에 그것은 그에게 딱히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무슨 정보라도 있나?”

“네,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단목장룡이 갈유화의 말을 듣는다.

그가 떠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림맹은 참으로 많이 썩었다고 생각되는 집단이었다. 애초에 단일 세력이 아니라··· 수많은 가문과 문파들이 모여 연합한 게 무림맹이다. 중원 무림은 크게 정과 사로 나누어져 있지만, 정파에서도 그들의 이해득실의 관계는 나뉜다.

단목장룡은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에게도 중요한 정보였으니까.

그리고···.

문밖에서 기척을 죽이고, 바짝 붙어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갈청. 사실 단목장룡은 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초에 이곳은 암천회의 분타였고, 갈청은 갈유화의 동생이었으니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갈청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대체 누님은··· 저 사내에게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건가···? 어찌 저 정보를 다 알려주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님이 뭔가 이상하다.

‘설마 약점이라도 잡힌 건가···?’

갈청은 암천회의 발전을 바랐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그가 나서야 할 때가 왔다.

‘직접 장천이라는 놈과 이야기를 나눠야겠군.’

하지만 그의 무공 실력이 상당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갈청이 장천은 이기지는 못하리라. 그렇기에···.

‘안 된다면 아버지께···.’

암천회주 갈천능.

극마에 이른 절대 고수.

그라면 이 일을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오해(2)

갈유화에게 하오문에서는 접할 수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곳은 사파의 권역이니만큼 정파의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사실 무림맹에 관한 정보를 찾지 않았다는 게 정확하다. 우리가 이곳으로 온 목적은 마교에 관해 알아보기 위함이었으니까.

적룡단주가 부맹주가 되었다는 것은 해남도로 오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지만, 부맹주에게 바로 맹주가 된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 듣는 정보였다. 오랜 무림맹의 역사에서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무림맹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현 무림맹주는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원제였다.

적어도 몇 년은 더 맹주직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빠르게 세대교체가 되는 것이다. 아직 부맹주가 맹주직으로 올라선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내가 무림맹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무림맹의 새로운 맹주가 탄생했으리라.

‘새로운 은영전이 만들어지고 있고, 무림맹 내에서 적룡단의 위상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흑룡단은 사방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오랜 평화에 정파인들은 전쟁을 꺼린다. 전쟁으로 얻는 이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사대전을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십만대산에 똬리를 튼 용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정파인들은 대부분 평화를 원한다.

힘의 균형으로 만들어진 평화. 하지만 난 그 기형적인 평화가 언제든 깨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정파 무림은 외부와 싸우기보다 내부의 권력 싸움이 더 심화되고 있었다. 언젠간 그 틈을 타 신교든, 사마련이든 치고 들어올 것이다.

‘어쩌면 흑룡단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군.’

효율적인 대비를 위해 무림맹 그리고 흑룡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만약 정치적인 것으로 내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면 깔끔히 포기한다.

흑룡단에서의 생활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흑룡단주는 단번에 날 조장으로 승격시켜주었다. 그 과정에서 설비연이나 다른 흑룡단원들과 약간의 마찰이 있긴 했지만, 이젠 옛일일 뿐이다.

하지만 무림맹의 세력 다툼은 다른 이야기다.

처음 내가 무림맹에 들어갔을 때, 적룡단, 청룡단 그리고 황룡단에서 날 영입하려 했었다. 어쩌면 새로운 무림맹주의 탄생과 함께 그 영입 전쟁이 더 심화될 수도 있었다. 난 정치판의 말로 놀아날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내 조원이 된 단목위와 조연연을 버릴 생각은 아니다.

내가 알려준 흑룡공이라면 그들은 다른 집단에서 가서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일단은 날 따르라고 권유해볼 생각이다. 믿음직한 수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정말 개판이라면 그래야겠지.’

단지 지금은 미래를 대비할 뿐이다. 방향을 정확히 정해놓지 않으면, 내 목표와는 다르게 무림맹에서 정치 싸움만 하다가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그럴 시간은 없었다. 지금도 신교는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공자님···?”

“아, 생각이 길어졌군. 미안하다.”

“아니에요. 호호.”

갈유화가 싱긋 눈웃음을 짓는다.

그녀의 아버지, 암천회주를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사실 암천회주의 제안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단목세가의 힘을 이용하는 것보다 암천회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신교와 싸우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막상 암천회와 그런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그녀가 실권자는 아니었다.

암천회주가 살아있는 한, 그의 명령이 절대적이다. 내가 신교와 싸우고 싶다고 암천회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갈유화와는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을 듯하군.’

그렇게 생각하며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한다.

“참, 암천제의 결승 말인데.”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암천제는 암천회가 주최한 대회랍니다. 저흰 우승 상품을 가로챌 수 없어요. 듣자 하니 다른 참가자들 모두 공자님의 위엄에 도망쳤다고 하더군요. 미리 우승을 축하드려요.”

“···고맙군.”

“후후, 아니에요. 공자님께서 직접 성취하신 일인걸요.”

“아니. 네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네가 없었다면 나찰마궁의 대존자를 비롯하여 그들의 정예와 싸웠어야 했겠지.”

“그렇다고 해도 결국은 공자님께서 결국 승리를 쟁취하시지 않았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갈유화는 처음부터 날 과평가했다. 생각해보면 사천성에서 날 만났을 당시엔 지금보다 훨씬 경지가 낮았다. 그녀는 뭘 보고 날 저리 고평가하는 것일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다.

“넌 날 상당히 높게 보는군.”

“당연하죠. 전 알고 있답니다. 공자님께서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언젠간 제가 닿을 수도 없을 만큼 높이 날아오르실 분이라는 걸요.”

그녀의 눈빛을 마주한다.

살짝 흠칫한 갈유화가 시선을 피한다. 그녀의 눈빛에는 거짓이 없었다. 신교에서 내 앞에서 아부를 떨어대는 이들과는 확실히 그 느낌이 다르다. 뭐 느낌만으로 그녀를 완전히 믿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행동으로도 보여주었다.

“그 이유가 뭐지?”

“이유요···?”

“그래.”

“흐으응···. 제 솔직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콧소리를 내는 갈유화.

뭔가 상당히 즐거운 듯했다.

“느낌이랄까요···? 첫눈에 딱 느꼈어요. 제 손목을 잡고, 절 노려보시던 그 눈빛. 당장에 사지를 찢어버릴 듯한 그 눈동자를 보고 느꼈답니다.”

귀안(鬼眼).

천마신공의 효과 중 하나였다. 신교의 원본과는 조금 다르긴 했다. 다른 무공들과 결합하고, 개조했으니까.

‘내 귀안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라···.’

그녀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더 말을 잇는다.

“절대자의 눈. 사마련주님도 아버지도 그러한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무림에는 강한 이들이 많죠. 공자님께서 싸울뻔한 나찰마궁의 대공자도 살기로 저를 압박한다면, 정말 무서울 거예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 마음을 제압할 사내는 당신뿐이랍니다.”

그녀와 자연스럽게 거리가 좁혀졌다.

“전 알고 있어요. 어떤 얼굴로 변하시든···.”

“···.”

하기야 그녀는 축골공을 펼친 나를 알아보았다.

눈동자로 말이다. 확실히 그녀에겐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혼의 냄새를 맡는다는 제갈교아랑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무공 실력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흐응···.”

갈유화의 몸이 거의 닿을 듯 말 듯 하다. 그녀의 숨결이 적나라하게 느껴지고, 그녀의 살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그녀의 몸이 후끈 달아오른 것이 느껴졌다.

“공자님···.”

“그만.”

움찔.

갈유화의 움직임이 멈췄다. 코와 코가 닿아있다. 조금만 더 접근했다면, 입술이 닿았으리라.

“죄송해요···.”

갈유화가 거리를 벌린다.

솔직히 조금 뜨끔했다. 해우심법으로 인한 부동심이 찰나였지만 흔들렸다. 그녀의 몸에선 묘한 내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탕백환희소라 했던가? 아마 그 무공의 효용이 틀림없었다. 사내의 정욕을 자극하는 무공.

“저도 모르게 그만··· 기분이 나쁘셨다면···.”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무리 혼이 바뀌었다지만, 난 이제 약관을 넘은 팔팔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었다.

“이번 정보는 고맙군. 다음에 또 보지.”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흐읏···.”

난 그녀를 더 이용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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