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렇게 삼 일이 지났다.
난 놈의 단전에서 내공이 역류하지 않게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고문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세맥 고문을 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내력의 폭주였다. 아무리 점혈하여 상대의 내력을 봉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자극을 받게 되면 단전의 내력이 반발한다.
그것에 대응하고자 나는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오로지 상대에게 극한의 고통만을 선사하려 노력했다. 첫날에는 세맥 고문이 끝난 후에도 도전적인 눈빛으로 날 노려보던 칠교공자였지만, 둘째 날이 되자 내 얼굴을 보고 오줌을 지렸으며, 오늘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난 그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단지 계속 고문하고 있을 뿐이었다. 놈의 판단력을 완전히 흩어놓기 위해서.
그렇게 삼 일째 밤.
난 처음으로 놈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당연하게도 놈의 목소리는···.
“대체··· 대체··· 대체···.”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또 제대로 말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난 천천히 그를 기다려주었다.
“누구···? 왜···? 이런···?”
“난 장천이다.”
“왜? 대체···?”
“네가 천마신교의 교도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난 마교도가 아니···.”
다시 놈의 아혈을 봉한다.
아직 정신력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누군갈 고문하는 취향은 없었지만··· 확실한 정보를 얻으려면 놈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했다.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놈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물론, 새맥에 고통을 가하는 것과 동시에 진기를 불어넣는 행위도 했기에 세맥이 크게 상하진 않았다. 또 물과 음식도 계속 제공해주었다. 그런데도 칠교공자의 안색은 눈에 띄게 상해있었다.
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서 심문했다.
정확히 말하면, 놈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아는 정보를 모르는 척 질문했다. 가령 교주의 이름이 무엇인지, 신녀의 존재, 현 소교주의 이름, 유력 가문 가주들의 정보 등등.
그 중에는 중원 무림엔 전혀 알려지지 않는 정보도 많았다.
세맥 고문으로 정신력 자체가 흩어진 칠교공자는 처음엔 거짓을 고하려고 했지만, 거짓말하는 낌새가 보이면 바로 다시 아혈을 봉하여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문을 시작했다. 그 행위의 반복이 칠교공자를 훈련시켰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내가 놈에게 심어주려는 생각이었다.
다시금 아혈을 풀자 칠교공자가 바로 소리친다.
“제발! 제바아아알! 아혈을 봉하지 마! 제바아알! 부탁이야! 모두 말할 테니까··· 절대 거짓말하지 않을게!”
이제 슬슬 진짜 정보에 접근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네놈은 귀문(鬼門)의 사람인가?”
“그걸 어··· 마, 마, 마! 맞다! 맞다!”
확실한 반응이다.
놈은 미친 듯이 발작하며 내 말에 수긍했다. 처음엔 그걸 어찌 아느냐고 물어보려 했던 것 같았다. 뭐 확실히 교육된 것 같아 흡족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고문을 하는 것도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누군가의 고통을 지켜보는 걸 즐기는 건 변태밖에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놈에게 차근차근 정보를 뜯어낸다.
놈은 신교의 주요 가문 중 하나인 귀문 출신이 맞았다.
놈들은 여러 실험을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칠교공자는 귀문의 방계 출신으로서 사파에서 성장하면 어떨까? 라는 의문에 벌모세수만 받고 중원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재능이 없던 것은 아니었는지 마두의 제자로 들어가서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고, 빠르게 무공의 경지를 올려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렇게 그가 약관에 접어들 무렵.
칠교공자가 완전히 잊었던 마교에서 찾아왔단다. 정확히 말하면 귀문의 문주가 직접 찾아왔다고 한다. 칠교공자는 문주를 따라 십만대산으로 향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칠교공자의 무공 수위가 급상승한 것은 귀문주와의 만남 때문인 듯했다.
‘내 생각보다 신교가 중원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군.’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내가 서녕지부에 박혀 있을 시절에도 신교는 무언갈 시도하고 있었다. 그것이 씁쓸했다. 내가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알 수 있었던 내용이다.
“수라마검은 진본인가?”
신교의 대가문 중 하나인 수라문.
수라마검은 그곳의 비급이다. 대체 그 무공이 암천제의 상품으로 내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 진본이 맞을까?
“맞다. 진본이 맞다!”
놈은 허겁지겁 자신이 아는 바를 대답했다.
이제까지의 고문이 효용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진본을 내놓은 이유는?”
“암천회! 그곳과 동맹을 맺기 위해서다!”
“···.”
역시 그랬나.
씁쓸한 마음이 든다. 내 아버지였던 사군협. 그는 중원 정벌의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매번 내 재능이 만개한다면 중원을 정벌할 수 있을 거라며, 내게 무공 수련을 강요했다. 하지만 난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타고난 신분에 맞게 살아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암천회에선 그 무공을 받아서 수라마검을 상품으로 내걸었다고?’
그것에 대하여 질문하자 칠교공자는 그것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단지, 천마신교와 암천회의 대화가 나쁘게 끝난 것은 아니었단다. 수라마검은 암천회에서 필요없는 무공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네가 암천제에 참가한 이유는?”
“귀문에선 내 실력을 증명하라 했다··· 귀문으로 들어와 높은 직위를 얻으려면 최소한 준우승까진 하라고··· 하지만 싫었다! 난 그곳으로 돌아가기 싫어! 어릴 때 날 버린 그곳으로 돌아가면··· 어차피··· 이용만 당하다 죽을 것이 분명하다!”
놈의 말에는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미 피폐해진 그의 정신. 입은 자연스레 본심을 내뱉고 있었다.
이제는 놈이 거짓을 고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정보의 오류는 분명히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칠교공자는 신교에서 직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위에서는 아랫것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물어볼 것은 많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면···.
“신녀는 최근 모습을 드러내고 있나?”
칠교공자는 허겁지겁 내 말에 대답했다.
“신녀는···!”
* * *
단목장룡은 은소 객잔으로 돌아왔다.
칠교공자에게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 정보를 모두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대충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해남도로 온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기분이 더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신교가 중원에 모습을 드러내면 중원의 평화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사공천이었던 사내는 단목장룡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이름으로 많은 연을 맺었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것은 당옥정.
사공천의 지인들이 죽었던 것처럼, 그녀 또한 죽는다면···?
단목장룡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진다.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객잔으로 들어가려 할 때.
“공자님···? 히익···!”
갈유화와 단목장룡의 눈이 마주친다.
단목장룡은 저도 모르게 살기를 흘려버렸다. 갈유화는 유독 단목장룡의 눈빛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금도 다리가 떨리는 걸 꾹 참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시는지···?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정말 죄송해요. 그러니 그런 눈빛으로 절···.”
갈유화가 지레 겁먹고 그에게 사과했다.
그 사과에 맞춰 단목장룡이 입을 연다.
“내게 거짓말을 했더군.”
“네? 제가 무슨 거짓말을···?”
“칠교공자가 마교 출신인 것을 알고 있었지?”
단목장룡의 물음에.
갈유화가 몸을 움찔 떨었다.
등장
갈유화는 당황했다.
그것을 어찌 단목장룡이 알고 있을까? 더군다나 저 눈빛.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 눈빛은 뢰극찰을 비롯한 바보들에게나 향하던 눈빛이었다. 싸늘한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당혹스럽다.
“그건···.”
“변명할 필요는 없다. 넌 날 도와준 것도 있으니 탓할 생각도 없고. 굳이 내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단목장룡의 그 말에 갈유화가 더 당황한다.
이건 마치···.
‘이별 통보 같잖아···?’
애초에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냐고 정의한다면, 적당히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조력자 수준이었다. 갈유화는 단목장룡을 도와줬고, 단목장룡은 갈유화가 원하는 대로 포상(?)을 해주었다. 단목장룡은 칠교공자에게 했던 것처럼 그 끔찍한 고문을 할 생각까진 없었다.
지금도 사실 정신이 너무 피로한 상태였다. 고통에 상대의 정신을 뒤흔드는 것은 절대 좋은 기분은 아니다. 단지 지금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그녀의 진심을 알 수 있겠지. 철저한 연기로 날 이용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단목장룡은 갈유화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돌아가라. 피곤하군.”
“제 이야기를···.”
갈유화는 평소답지 않게 당황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우처럼 넘어갈 수도 있었다. 변명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단목장룡의 앞에선 그게 안 된다. 뢰극찰과 싸울 때의 귀기 어린 눈빛을 보여줬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목장룡이 칠교공자를 심문했던 그 냉철함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갈유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뚜벅뚜벅.
은소 객잔으로 들어가는 단목장룡을 뒤에서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 * *
갈유화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대로 단목장룡에게 달려가서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악수였다.
‘그는 얼마나···, 왜 화가 났던 걸까?’
자신이 거짓말을 해서?
그렇다면 얼마나 화가 난 것일까? 갈유화는 그의 눈빛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린다. 차가우면서도 무거운··· 심지어는 자신을 죽일 가능성도 있는 그 눈빛. 그것을 보면 단목장룡이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알 수 있었다.
툭툭.
기다란 손가락으로 탁상을 치며 생각하는 갈유화. 그녀의 머릿속이 온통 단목장룡으로 가득하다. 사실 그녀가 오늘 찾아간 이유는 나찰마궁과의 싸움에서 도움을 줬기에 그에게 조그마한 포상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갔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꼬였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단목 공자님이 없으면 안 돼.’
처음 갈유화가 단목장룡에게 접근했던 이유는, 정파의 유력한 후기지수를 유혹하고 나중에 사파라는 정체를 밝히면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얼마나 봤다고 사랑?
암천회의 소회주가 고작 단목세가의 차남에게 이런 감정을 품는 걸 알게 된다면, 뢰극찰을 비롯하여 그녀를 마음에 품었던 많은 사파인들이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때로는 자비로우며, 때로는 잔인하다.
그녀는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왔다. 그것이 방탕이나 반항 따위는 아니었다. 단지,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무공 수련에 적당히 힘을 주던 그녀가 해남도로 돌아와서 방에 박혀 탕백환희소를 수련하는 것은 단목장룡의 존재 때문이다.
그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갈유화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단목장룡의 내면엔 어둠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라면 그것을 모두 품어줄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지금 상황을 놓고 보면 그녀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단목장룡을 실망하게 했다.
‘그럴 수는 없어.’
갈유화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늦은 밤이었지만, 그와의 신뢰를 회복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