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236)

* * *

은소 객잔의 앞에 사람이 몰려들고 있었다.

사실 혈발악존과 흉면수라가 연합을 결정하고 바로 달려왔다면 이렇게 인파가 모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혈발악존은 관심을 원했다. 무릇 사파의 마두라면··· 아니, 그 전에 무인이라면 명예욕이 있기 마련이다.

암천제에 참가한 근본적인 이유는 암천회에서 내건 상품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컸지만, 분명히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사파인들에게 다시금 자신들의 악명을 떨치는 것. 그것 또한 이유가 되었다.

장천이라는 사내는 처음부터 화제가 되었다.

나찰마궁의 소궁주와 마찰을 빚었고, 예선에 참가하자마자 사파인들의 합공을 받아냈다.

또 본선에 진출해서는 혈해마검객을 암습하여 단번에 승리했다.

실제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혈발악존의 악명을 떨칠 수 있는 수준은 되리라. 연합을 하는 것이 조금 그렇긴 하지만, 다행히도 장천이라는 인물의 밑에는 수하가 한 명 있었다. 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 재대로 얼굴을 본 사람들은 드물지만,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모두 미녀라고 칭송한다.

혈발악존이 피 냄새를 풀풀 풍기며 은소 객잔의 앞에 섰다.

그의 옆에는 기괴한 표정의 흉면수라가 있었다. 평소 군자와 같은 얼굴을 흉면수라. 그의 무공 때문인지 무공을 펼칠 때마다 인상을 쓴다. 그 얼굴 하나만으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전해준다. 흉면수라의 무공은, 그 얼굴보다 더 매서웠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쳤다는 건, 승리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왔군.’

은소 객잔 가장 높은 층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단목장룡.

그는 장천의 얼굴로 변한 후 설비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당연히 긴장하지 않았다. 독기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악한 마두들을 처리하는 것이 흑룡단의 사명이다.

“흉면수라는 네가 맡아라. 하지만 위험하면··· 지체하지 말고 물러서라.”

“예.”

그래도 싸우겠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흑룡단은 나려타곤이라도 펼쳐서 살 수 있다면 펼치라 가르친다. 적에게 적의를 품는 것은 괜찮았지만, 괜한 자존심을 부려 목숨을 던질 필요는 없었으니까. 흑룡단은 생존을 최우선으로 한다. 살아나야지만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만약 여기가 중요 전장 중 하나고, 승리해야만 후방의 동료들이 이득을 선점할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여기는 고작해야 암천회가 개최한 대회일 뿐이었다.

“가자.”

“예.”

밑으로 내려가니 거진 수백에 달하는 인파가 저 멀리까지 퍼져 있었다. 원형으로 자리를 잡은 군중들. 자연스레 간이 비무장이 만들어졌다. 정면에는 혈발악존과 흉면수라가 서있었다.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피 냄새가 고약하군. 사람의 피를 자신의 머리카라에 묻히는 건가? 저게 무공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인간의 피를 이용한 무공은 많았다.

하지만 혈발악존은 단순한 이유로 저런 별호가 만들어진 듯하다. 자신이 죽인 사람의 피를 머리에 뒤집어쓴다. 그 기괴한 행동이 혈발악존이라는 별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흉면수라···.’

그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괜찮은 상대군.’

단목장룡이 혈해마검객을 암습한 이유는 따로 없었다. 실전 경험을 쌓고자 했으면 그와 정면 대결을 펼쳤으리라. 하지만 이번에 단목장룡이 연습한 것은 은신법과 잠행술이었다. 조만간 이것을 활용할 때가 오리라 생각하고 혈해마검객이 식사하고 있을 때 암습했다.

마지막 순간 혈해마검객이 알아차리긴 했지만, 이미 급소에 내력을 박아넣어 변변한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그는 죽음을 맞이했었다.

그 별호에 비하면 참으로 아까운 결말이긴 했지만.

단목장룡의 잠행술의 수준을 한 단계 늘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노괴라 불리는 것들이니···.’

실전 경험은 나를 압도한다.

난 그들의 경험을 모조리 흡수할 생각이었다. 그들이 실전에서 펼친 것을 상상 속에 담아두고, 그것을 또 발전시킨다. 난 끊임없이 강해진다.

뇌왕검이 아닌, 무림맹에서 가져온 별 특징없는 철검.

하지만 좋은 철로 만들어졌기에 내공을 잘 받아들이고 튼튼했다.

검을 뽑으니 혈발악존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네놈들은 어르신을 만났는데 인사조차 없느냐? 그리고 버릇없이 죽립을 써?”

혈발악존의 말에 군중의 웅성거림이 커진다.

“맞아! 얼굴 좀 보자!”

“비라는 여자! 얼굴을 보여라!”

다수의 기세는 소수가 무시하기 힘들다. 사실 단목장룡과 설비연은 그 기세에도 딱히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천천치 죽립을 벗었다.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면 암천제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먼저 죽립을 벗은 것은 단목장룡.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허허허!”

“뭐야? 저 못생긴 게 장천이라고?”

“쉿! 들리겠어.”

“들어보라지! 어차피 혈발악존에게 죽을 텐데! 반로환동? 그게 말이나 되나? 보통 환골탈태한 사람들이 저리 못난 뼈대를 가지고 있나?”

사실 그들도 환골탈태한 수준의 고수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어디서 알음알음 주워들은 것으로, 자신의 지식이 대단한 것인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군중들의 의견은 무섭도록 통일된다.

저 멀리서 그걸 지켜보는 갈유화는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녀 또한 외모를 중시한다.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이 눈을 가지고 있는 이상 외모라는 것은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왠지 장천을 보고 있자니···.

‘뭔가 짜증나네.’

장천이 짜증 난다는 게 아니었다.

그의 외모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무지한 군중 놈들이 거슬렸다.

‘근데 내가 왜?’

갈유화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설비연이 죽립을 벗었다.

그녀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자 군중들이 더욱 크게 술렁인다.

“저 여자는 꽤···?”

“꽤는 무슨? 엄청 예쁘잖아!”

새하얀 피부에 오뚝한 콧날.

도도한 눈매까지.

쉬이 볼 수 없는 미녀였다. 검정색의 천으로 한쪽 눈을 가린 모습은 묘한 매력을 더했다. 설비연의 외모는 축골공으로 외모를 추하게 만든 단목장룡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갈유화는···.

‘어머, 저 계집애 좀 봐? 일부러 멋을 내려고 천을 두른 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그녀를 노려본다.

왜인지 짜증이 더해진다.

“클클클, 장천 네놈은 소문보다 못하지만··· 네 수하는 봐줄 만하구나.”

혈발악존이 즐겁다는 듯이 웃는다. 이제 육십이 다 되어가는 노괴였지만, 사내의 본능은 가지고 있었다.

“둘 다 이 자리에서 죽이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혈발악존의 말에 군중들이 환호한다.

그의 말뜻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해남도는 그러한 자극에 열광하는 편이다.

하지만 단목장룡과 설비연은 그러한 도발에도 어떠한 흔들림이 없었다. 단지 상대를 빤히 바라볼 뿐이다.

- 주공, 조심하십시오.

설비연의 전음에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 걱정하지 마. 저 더러운 혓바닥은 내가 뽑아줄 테니까.

과격한 단목장룡의 말. 처음 설비연이 하남성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땐, 자존심도 없는 무인이라 생각했다. 소신이 있는 무림인이었다면, 젓가락을 왜 던졌냐고 따졌을 때 반항해야 한다. 그랬다면 설비연이 단목장룡의 첫 인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분고분 사과했을 뿐이다.

신분이 높아 보이는 설비연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설비연은 단목장룡을 더 쉽게 보았었다.

‘이제는 그를 믿을 수 있어.’

흑룡단을 나서고.

그와 비무하여 격의 차이를 느꼈다. 이젠 그가 마냥 어리기만 한, 이제 막 약관을 넘은 후기지수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설비연은 자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검을 쥐고 흉면수라를 노려본다.

자신의 할 일만 하면 된다.

그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단목장룡 또한 검을 쥔다.

그의 검에 노르스름한 기운이 맺힌다. 뇌기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무림맹까지 오면 다른 속성의 기운을 검에 담는 걸 연습했다. 유성환상검은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무공. 하지만 있는 모든 것을 여기서 펼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사용하기 위해 새로운 무공을 만들었다.

뇌전검법.

괜히 다른 무공에 심력을 낭비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단목장룡은 뇌전검법을 익히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유성환상검. 그것과 조화될 수 있는 무공은 많았다.

한순간 폭발력을 발휘하는 유성일락.

그것에 뇌전의 기운을 불어넣는다면?

거기에 빙공의 기운을 추가한다면?

‘아직 그것까진 힘들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가능하다.

그가 첫 번째로 목표했던 경지에.

단목장룡이 발을 뗀다.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간다. 서로 포권지례를 하며 예를 표하는 것은 암천제에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단목장룡이 돌진하자 군중들이 환호한다. 쾌락과 열락의 기운이 단목장룡의 피부에 와닿는다. 용봉지회에서 관중들의 환호 또한 기분이 좋았지만, 이 진득한 시선도···.

‘나쁘지 않군.’

타다닷!

쿠우웅!

혈발악존은 권법과 장법 그리고 각법을 사용한다.

쉽게 말해서 신체 어떤 곳이든 무기가 된다는 말이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그의 주먹에 맺혀 뇌전이 깃든 단목장룡의 검을 막아낸다.

쿠으으···!

혈발악존은 조금 당황했다. 장천이라는 놈의 검은 언뜻 보기엔 빈틈이 너무 많아보였다. 막아내기도 수월하리라 생각했다. 고작해야 내력을 담은 일검은··· 쉬운 수였으니까. 그렇기에 그것을 막아내고 바로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짜르르르릇-!

뇌전의 기운이 사정없이 그의 피부에 파고든다. 파고든 뇌전의 기운이 주먹의 내부를 녹여버리는 듯하다.

‘으아아악-!’

단 한 수에 불과했지만, 혈발악존의 심장이 덜컥였다.

뇌전이 마치 그물처럼 그의 손을 묶어버렸다. 엄청난 흡입력. 주먹만 떼면 저 뇌전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촘촘하게 얽힌 그것은 쉽사리 혈발악존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노오옴-!”

혈발악존이 각법을 이용해 땅을 쿵, 찍는다.

땅이 흔들렸다기보단···.

촤아앗···!

모래가 단목장룡의 몸을 덮는다. 순간 뇌전의 흡입력이 줄어들었다. 혈발악존이 재빨리 팔을 빼고 뒤로 물러선다.

‘저 뇌전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자살행위다.’

그의 오른쪽 팔에서 살 익는 냄새가 가득하다. 혈발악존의 이마가 꿈틀한다. 비라는 여인과 싸우는 흉면수라는 당연히 압도하고 있었다. 그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감히··· 같잖은 수를···.’

혈발악존의 단전에서 거대한 내력이 꿈틀하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어느 틈에!’

뇌전이 담긴 단목장룡의 검이 쇄도했다.

마두의 최후

혈발악존.

그는 오래전부터 사파에서 이름을 떨쳐온 대마두 중 하나였다. 잔혹한 성정에 뛰어난 무공 실력. 혈발악존의 곤천혈장(困天血掌)에 당하면 내부의 장기가 터져 칠공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온다고 한다. 그는 그 피를 뒤집어쓰고 항시 붉은 머리카락을 유지한다.

혈발악존은 수많은 사선을 뚫어온 노괴.

삼류 무인의 눈먼 공격에도 운이 나쁘다면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장천은 혈해마검객을 암습하여 죽이는 데 성공했으니까. 방심하다가 상처라도 입으면 암천제에서 활약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혈발악존은 전투가 시작되고 최선을 다했다.

‘크읍-!’

그는 보법을 펼쳐 압박에서 벗어나려 한다. 장천의 검에 맺힌 저 뇌전은 위험하다. 어떻게 내력을 다루는 것인지 닿으면 몸이 굳어진다. 내공의 양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언가 내공심법의 약점을 아는 듯한 움직임.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장천은 집요했다.

너무도 끈질겼다.

틈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혈발악존의 뒤를 쫓는다.

“노옴!”

혈발악존이 그의 집요한 추적에 분노를 토해낸다.

내력이 담긴 외침에 잠시 멈칫하는가 싶다가도 뇌전이 담긴 검이 급소를 향해 날아든다. 혈발악존은 어쩔 수 없이 그것과 마주한다.

‘한번은 뚫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틈을 만들 수 있었다.

혈발악존의 손바닥에 거대한 기운이 맺힌다.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기운. 저 뇌전의 기운과 상성으로 밀리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내력을 쏟아부으면 된다. 오랜 세월 무공을 익혀온 혈발악존은 내공이라면 자신이 있었기에.

“곤천혈장이다!”

혈발악존의 절기.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장법의 힘은 상대의 내부를 망가뜨린다.

혈발악존의 단전에서 내력이 폭발한다. 상성이 밀린다면··· 양으로 밀어붙인다.

파아앗!

펼쳐진 손바닥과 단목장룡의 검이 부딪친다.

쿠우우···!

그의 검에 맺혀있던 뇌전의 기운이 밀려났다. 상성이 밀려 정면으로 맞서기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내력을 쏟아부으니 효과가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손바닥을 펼쳐 앞으로 내지른다.

파앗!

두 번째 곤천혈장.

단목장룡은 뇌전이 담긴 검을 휘둘렀지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자 군중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당연히 이번 비무를 지켜보던 군중들은 혈발악존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너무 재미없는 승부는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처음엔 장천을 응원하는 이가 다수였다. 일방적으로 밀린다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처음부터 장천이 밀어붙이고, 혈발악존이 다급하게 내빼는 모습을 본 군중들은 어느순간 혈발악존을 응원하고 말았다.

혈발악존은 사파에서 유명한 마두 중 하나.

그가 밀리면 마치 자신들이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군중들은 전율했다. 몇 합을 나누지도 않았지만, 역전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노옴! 네놈의 피를 바치거라!”

외치는 말과 달리 혈발악존의 눈빛은 잔잔했다.

흥분하지 않았다. 장천이라는 놈이 이대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차근차근 그를 밀어붙인다. 검이 아닌 그의 피부에 곤천혈장을 닿게 한다. 그래야만 승리를 확정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선을 넘어온 노괴의 판단력은 정확하다 할 수 있었다.

혈발악존은 곤천혈장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장법을 사용하자마자 바로 각법을 펼쳐 다리를 노린다. 바닥에 넘어뜨리기만 하면 그는 끝장이다.

그는 바닥을 쓸 듯 각법을 펼쳤다.

짧고 빠른 그 움직임에 바닥에서 먼지가 일어난다.

‘이런 전투는 해본 적이 없을 거다.’

먼지가 일어나는 순간에 혈발악존이 보법을 펼쳐 장천의 옆으로 향했다. 그는 작은 것 하나라도 이용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다시 거대한 기운이 흐른다. 연속으로 펼쳐내는 곤천혈장이었지만, 장천에게 그것이 통한다고 생각한 혈발악존은 적당한 공격 따윈 하지 않았다.

쿠우웅!

하지만 혈발악존의 예상대로 그는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이번 한 번의 공격으로 그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고수의 싸움은 하나씩 쌓아가는 돌탑과 같았다. 흥분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을 위하여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혈발악존이 다시금 보법을 펼쳐 이동한다.

장천이 막아낼 수 없을 때까지 그는 두드릴 생각이었다.

갑자기 승부가 혈발악존 축으로 기울자 장천을 응원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뭐 하는 거냐!”

“처음의 기세는 어디 갔어!”

조금은 성난 군중들 사이에 섞인 갈유화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참으로 미묘한 감정이었다. 장천이라는 사내가 차가운 얼굴로 혈발악존을 압박할 때, 그녀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왠지 모르게 ‘그’가 떠오르는 눈빛.

분명히 얼굴은 달랐지만, 왠지 모르게 그 눈빛이 너무 익숙했다.

전투가 이어지며 갈유화는 역시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계속 그에게 시선이 간다. 장천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을까?

잠시 고민해본 갈유화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저런 늙다리 혈발악존보다는 장천이 이기는 게 낫지.’

그렇게 생각하며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본다.

사실 그 옆에 흉면수라와 비라는 여인의 전투도 매우 흥미진진했지만, 갈유화의 시선은 장천에게만 향했다.

‘힘을 숨기고 있다면 그만하고···.’

갈유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단목장룡 또한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실 단목장룡은 지금 힘을 숨겼다기보다는 혈발악존의 힘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실전에서 가다듬은 것이기에 날카롭고 매서웠다. 공격 하나하나가 단순히 뻗는 것이 아니라 뒤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또한, 바닥의 흙을 이용하는 것 따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비무장에서 규칙에 따라 비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장법의 위력도 상당하지만···.’

혈발악존.

그를 만난다고 했을 때, 기대했다.

정파 후기지수 중 최고의 천재라며 추앙받던 남궁일몽. 그와의 비무에서 단목장룡이 상처도 입지 않고 이겼다고 하지만, 그 비무에서 그는 많은 것을 얻었다. 또 유성일락을 펼치며 내력의 대부분을 소진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혈발악존의 움직임은, 단목장룡의 눈에 훤히 읽혔으며.

곤천혈장이라고 하는 것은 잠시 움직임을 멈출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타격을 주지 못했다.

분명히 초절정에 오른 마두라면, 조금은 고전할 줄 알았다.

숨겨진 것이 있을까 하여 조금 조심했다.

그런데 뭘까?

‘역시 그 후에 더 강해진 건가.’

설비연과 비무할 때도 느꼈다. 용봉지회에서 우승하고 자령단을 취한 후, 환골탈태에 더 가까워졌다. 그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 순간. 신체는 새롭게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도 그의 육신은 지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혈발악존은 전투에 경험이 많을진 몰라도···.’

내력을 다루는 깊이가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정파인과 사파인의 차이는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크게 드러난다. 초절정은 기초를 어떻게 쌓아올렸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만약 정상적인 수행으로 초절정에 오른 정파의 고수였다면, 단목장룡이 처음 펼친 뇌전에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남궁일몽이라면 그것을 더 쉽게 막아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단목장룡은.

‘설비연이 빙백신검을 쓴다면 흉면수라를 이길 수 있겠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고 이기는 것은 무리겠지. 슬슬 끝내야겠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혈발악존이 손을 연신 뻗어댄다. 뇌전이 깃든 검에 자신감있게 손바닥을 내지르는 모습. 지금 그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그래도 이걸 시험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

단목장룡의 단전 속에서 거대한 천둥소리가 한 번 터져 나온다.

물론,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건 단목장룡뿐이다.

“또 곤천혈장이야!”

“혈발악존, 저 미친 내력은 알아줘야겠군!”

군중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이번에도 장천이 혈발악존의 장법에 밀려 나가리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찌리릿-!

분명히 장천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뇌기가 담긴 검을 내질러 혈발악존의 주먹을 막아냈다. 그런데 상황이 전혀 달랐다. 보통 내력이 깃든 장법을 내지르곤 장천의 반격을 피하고자 보법을 펼쳤던 혈발악존이었다.

그런데 그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의 얼굴은 공포로 깃들어 있었다.

“이노오옴··· 내 몸에··· 무슨··· 짓을···?”

막대한 뇌전의 기운이 혈발악존의 온몸을 강타했다. 단목장룡은 뇌전검법을 만들며 과거 육왕 중 하나였던 뇌왕의 뇌공검법을 참고했다. 뇌공검법 중엔, 차곡차곡 상대에게 쌓은 뇌전의 힘을 한 번에 끌어내는 기술이 있었다.

뇌전의 표식.

내력이 충만치 않은 자들에겐 그 일격으로 죽음을 선사할 수도 있었고, 혈발악존처럼 단전에 내력이 많은 이들은 목숨까진 위협받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었다.

단목장룡에게 승부 한번 한번은 기술을 시험해볼 최고의 기회라 할 수 있었다. 상상 속에서 수십, 수백 번을 사용했었지만, 현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상상 속의 기술을 현실로 끌어내면 그 기술은 완전히 단목장룡의 기술이 된다.

“뭐야? 왜 혈발악존이 움직이지 않지?”

“봤어! 내가 봤다고! 혈발악존의 몸에서 뇌전이 튀었어! 분명히 장천의 검에서 나온 뇌전과 같은···!”

아래턱을 덜덜 떨고 있는 혈발악존.

단목장룡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단전의 내력의 소모도 그리 크지 않아. 사실 그리 효율성이 있는 기술은 아니지만··· 이것도 활용하기 나름이지.’

뇌전의 표식은 더 상위의 기술로 발전시킬 여력이 있었다.

“내가 졌··· 다··· 그러니···.”

혈발악존의 포기는 빨랐다.

그의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아마 곧 뇌전의 표식이 끝나리라. 단목장룡은 그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래, 내 승리군.”

“그러니··· 커억···?”

단목장룡의 검이 혈발악존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런 놈은 살려두면 안 되지.’

정면으로 승부하면 절대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놈이 작정하고 뒤를 노린다면? 이런 마두들과 질긴 악연은 이곳에서 싹을 틔우기 전에 쳐내야 한다. 또 사람의 피를 머리에 쏟아부은 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혈발악존이 졌어? 그가 죽었다고?”

“갑자기 무슨 일이야? 분명히 혈발악존이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전투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드물었다. 있다면 혈세귀막의 총대주정도일까? 그는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장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자. 정면으로 맞붙기보단 암습으로 처리해야 한다.’

총대주가 그리 생각할 때.

단목장룡이 혈발악존의 심장에 박힌 검을 뽑는다. 당연히 설비연과 승부를 이어가던 흉면수라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기껏 암천제에 참가하고, 그 혈발악존과 동맹을 맺었는데···.

“도망친다!”

하지만 설비연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흑룡단 3조 조장. 빙백검법을 사용하진 못하지만, 그 실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체 네놈들의 정체가 무엇···!”

흉면수라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

하지만 그 순간 단목장룡의 검이 그의 등을 찔렀다. 자비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몇몇 이들은 정확한 배경을 알 수 없는 장천과 비라는 여인이 정파 출신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목장룡의 눈빛은 무언가 섬뜩했다.

당연히···.

“우와아아아아아-!”

“최고다! 그 혈발악존과 흉면수라가 저리 허무하게 죽다니!”

“꼴 좋다. 퉷!”

“장천! 장천! 새로운 마두의 탄생이다!”

그들은 두 마두의 죽음에 환호하고 열광했다.

용봉지회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개중엔 혈발악존을 응원했던 이들도 있겠지만, 군중들의 거대한 흥분에 휩쓸릴 뿐이었다.

장천의 표정이 더욱 낮아진다.

‘이런 곳에서 환호나 받고 있다니.’

용봉지회 때의 그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때는 뿌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암천제의 사람들은 공감이 가질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응원해준다 하더라도···.

단목장룡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흉면수라와 혈발악존의 시체를 한데 모은다.

그들의 품을 뒤졌지만, 딱히 대단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이들의 숙소로 가봐야겠군.’

암천제에서 승리하면 상대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혈해마검객을 죽이곤 금자 열 냥 정도를 얻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무엇을 가고 있을까? 돈을 원한다기보단, 그들이 가진 정보를 기대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됐다. 다쳤잖아.”

설비연은 흉면수라의 손톱에 어깨를 베였다. 그의 의복에는 피가 흥건하다. 다쳤는데도 무리한 일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전 괜찬···.”

설비연이 수하의 책무를 다하려 할 때.

한 여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장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여자는 또 왜?’

설마 싸우려는 건가?

단목장룡이 주위에 깔린 암천회의 무사들의 수를 파악하는 순간.

- 당신, 설마···.

갈유화가 전음을 보내왔다.

방문

무언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여인 특유의 감각이랄까? 갈유화는 장천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했다. 분명히 장천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으며 실제로 마주한 그의 얼굴은 낯설었다.

처음 그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공의 실력이었다. 암천제의 흥을 돋아줄 수 있다면,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분명히 화제가 될 수 있으리라. 혈발악존을 비롯한 다른 마두들과 흥미로운 대결을 벌일 수 있었기에.

조금 묘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네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히 장천은 처음 보는 얼굴이 맞았다.

어디서 본 적이 있더라도 단지 지나치는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담져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비무를 지켜보면 볼수록 갈유화의 심장은 점차 빠르게 뛰었다.

멋진 역전극을 보는 즐거움?

처음엔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혈발악존은 유명한 마두였으며, 장천은 이제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사파의 후기지수라 할 수 있었으니까. 새로운 강자의 등장은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그런 설렘이 아니다.

장천의 뇌전을 활용하는 무공? 그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집중하는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얼굴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가 혈발악존과 흉면수라의 심장을 찔렀을 때 보였던 눈빛은 분명히···.

‘절대자의 눈빛이었어.’

눈빛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작은 마을에서 뒷골목을 장악한 하류 무인들을 보면 무림 실력은 형편없는 데 비해서 그 표정과 눈빛만은 절정 고수 뺨을 친다. 그들은 성인이 두세 명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지만, 그것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다.

그런 자신감이야말로 뒷골목의 하류들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어떤 상황에도 부리부리한 눈을 뜨며, 나약한 백성들을 핍박하는 그들은··· 기세만으로 그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공을 제대로 익힌 ‘진짜’들이 보기엔 그런 삼류 무인들은 하찮기 그지없다.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면 꼬리를 말고 도망간다. 백성들에겐 뭔가 있어 보였지만, 실상은 쥐뿔도 없는 놈들일 뿐이다.

인간의 눈빛이 살벌하다고, 얼굴이 험악하게 생겼다고 갈유화가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의 옆에 있는 곡위만 하더라도 무공의 고수였지만 일반 백성들 사이에 끼이면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장천은 달랐다.

마치 사천에서 만났던 그와 같이···.

움찔···!

전투가 끝나고, 장천의 시선을 정면에서 본 갈유화의 몸이 벌벌 떨린다.

그녀를 수행하는 곡위가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몸에서 음의 기운이 흘러나온다. 그녀의 기운이 흐트러질 때는 오직 하나 뿐이다.

‘또 그 정파놈을 생각하시는 건가.’

곡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뭐 그녀의 사랑놀음을 응원하지는 않지만, 반대하지도 않았다. 갈유화는 암천회의 소회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하면 된다. 물론, 암천회주가 반대하면 곡위의 태도도 달라지겠지만.

곡위가 이제 갈유화를 모시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의외로 그녀는 장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의 그녀라면 혈발악존을 죽인 무인이라 하더라도 겁을 먹지 않고 접근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로 걸음을 멈추었다.

- 당신, 설마···.

장천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단목장룡.

그가 주위를 살핀다. 혈발악존을 비교적 쉽게 끝낸 것 같았지만, 몸의 상태는 최선이 아니다. 그래도 빠져나갈 자신은 충분했다. 그런 자신이 없었다면 해남도로 오지 않았으리라.

- 설마 당신···.

‘내 정체를 알아챈 건가?’

단목장룡은 고민했다.

갈유화는 과거 천마신공의 기운을 활용한 눈빛으로 겁을 준 적이 있었다. 그 사용한 것은 뇌전검법이라고 하지만, 전투 중에 그 기세가 나왔을 수도 있었다.

- 사마련주님의 아들인가요···?

사마련주의 아들?

정파에 무림맹에 있다면, 사파엔 사마련이 있었다. 갈유화는 그의 정체를 알아챈 것이 아니라, 다르게 착각하고 있었다. 하기야 얼굴이 크게 바뀌었는데 알아볼 리가 없었다.

‘갈유화가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어. 사천성에서도 잠시 마주했던 것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불여우였다.

사내는 물론 여인까지 가지고 노는 그런 여자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도 뭔가 속셈이 있지 않을까 고민된다.

단목장룡은 잠시 침묵하다 그녀에게 답했다.

- 전 장천입니다.

그의 말에 갈유화의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극음의 기운이 퍼져 나간다. 사내를 유혹하는 기운 탕백환희소가 갈유화의 감정을 양분삼아 커져가고 있었다. 단목장룡 또한 그 기운을 느낄 정도였다.

‘뭔가 나찰마궁의 무공과 잘 맞을 듯한 느낌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단목장룡은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마교와 정파 그리고 사파의 문화까지 어느 정도 섭렵했다. 그리고 그런 출신에 상관없이 무림인이라면···.

‘일단 잡아놓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특히 해남도는 암천회의 권역이다.

갈유화는 그곳의 소회주였다.

그건 단목장룡의 긴장과는 달리.

갈유화는 암천회의 무인들에게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단지 분홍빛이 감도는 두 볼을 손등으로 매만지더니 홱 몸을 돌린다.

- 오늘 밤 찾아가겠어요.

“···.”

갈유화의 방문이라···.

‘어찌해야 할까?’

오늘 밤 찾아가겠다는 전음을 남기고 떠나가는 갈유화. 그녀에게로 군중들의 시선이 꽂힌다. 단목장룡은 그녀를 보며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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