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의 눈동자가 마치 야밤에 만난 짐승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또···.
‘머리가 빠져있군.’
빡빡머리. 그를 보는 순간 공의현에서 젓가락으로 잡았던 마두가 떠올랐다. 후에 순찰당에 물어보니 놈들은 뇌옥에 갇혀 있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누군가 그들을 죽인게 아닌가 싶었으나, 조사 결과에 따르며 자연사한 것이라 했었다.
추측되는 사인은···.
‘마치 아사한 것과 비슷하다고 했던가.’
내공심법이란 자연에 떠도는 기운을 체내에 쌓는 무공.
그리고 ‘인간’ 또한 자연에 속해있었다. 천륜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내력을 쌓으려는 놈들은 많았다. 그리고··· 흡성대법과 같은 무공이 그중 하나였다.
‘이런 무공이 이렇게 퍼져있다고? 부작용이 많을 뿐 아니라··· 이런 무공은 익힐 수 있는 체질이 한정되어 있다. 이런 잡스러운 인신매매단이 익힐 무공이 아니야. 더군다나 머리가 빠진다면···.’
누가 의도적으로 저들이 익힌 방중술을 퍼트린 것인가?
무림에 혼란을 퍼트리기 위해서?
아니면 설마···.
‘실험하기 위해서?’
뿌드득.
이가 갈린다. 가장 무서운 건 인간이다. 신교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한다. 어떤 누구도 그것을 뭐라 하지 않았으니까.
바닥에 쓰러진 놈을 점혈하고.
바깥으로 나온다.
설비연이 빠르게 움직이며 산 위에 있던 괴한들을 모두 제압한 상태였다. 일 처리 하나는 확실히 깔끔하다. 납치된 여인들은 구석에 몰려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이놈들···.”
설비연은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의현에서 봤던 그놈들과 비슷한 무공을 익히고 있다.”
“비슷합니까···? 같은 무공이 아니라요?”
그들이 품은 기운.
당시에도 나는 놈들의 맥을 짚어보았다. 그리고 방금 사지 근맥을 절단해버린 대머리 사내의 맥도 짚어보았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같은 점은 그들의 머리가 빠져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난 이것으로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신교에서도 그들과 싸운 적이 있었으며, 무공서를 약탈해온 적이 있다. 하위급에 무공에 불과했지만 난 그들의 무공을 분석해보았었다.
신교에서 분석했던 무공과는 분명히 달랐지만···.
“나찰마궁과 관련이 있는 듯하군.”
설비연의 두 눈이 커진다.
진원진기를 탐하는 무공
나찰마궁.
사파에서 가장 강한 문파를 꼽으라면, 혈세귀막과 암천회 그리고 나찰마궁이다. 난 나찰마궁의 궁도와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신교가 중원 무림에 발을 디딘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기록은 남아 있었기에 난 천마신교가 나찰마궁을 어떻게 평했는지 알고 있었다.
색(色)에 미친 족속들.
그들과 싸움에서 신교의 여인들이 당했을 때가 있었다. 그들의 무공은 방중술 계열이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운기토납이 아닌 다른 인간의 기(氣)를 흡수하는 방식이다. 인간도 따지고 보면 결국 자연에 속해있으니까.
평범한 인간들.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다른 이들의 생명을 빼앗기보다 자연에 널리 퍼져있는 무한한 기운을 활용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다. 특이한 사고방식으로,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기를 충당하려 했다.
물론, 그 악독한 방식은 사파 내에서도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했기에 최근 나찰마궁에선 이런 짓거리를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나찰마궁의 무공 구결을 알지 못했다면, 공의현에서 대머리 색마 놈과 조우하지 못했다면 이 결과까지 도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다른 이의 생기를 흡수하는 모습을 목격하니 신경이 쓰인다.
설비연은 구출된 여인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갔다.
난 사지 근맥을 자른 한 사내와 마주 앉았다. 약에 취한 듯한 눈빛을 했던 사내는 이제는 퍽 정상적인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공포가 깃든 얼굴. 그런 놈을 보고 있자니 더욱 짜증이 치민다.
여인들을 납치할 때, 자신들도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아마 내 목을 잘랐던 혈우검마도.
그 명령을 내렸던 교주도.
똑같겠지.
“내력은 많이 모았나?”
“···.”
“대답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던 걸까.
그는 헐레벌떡 대답한다.
“마, 많이 모으지 못했습니다···!”
“소속이 있나?”
“어떤 소속을 말씀하시는 건지···?”
“나찰마궁 소속이 아닌가?”
사내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설마···! 나찰마궁에서 나오셨습니까?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겐 어린 아들과 노모가 있습니다··· 제가 없으면···.”
스걱.
“끄아아아악!”
한쪽 귀를 잘라버린다.
저 사내의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거짓인지 모른다. 하지만 둘 중 어떤 것이든 너무도 역겨웠다.
“궁의 소속이 아닌데, 어찌 나찰마궁의 무공을 익히고 있지?”
“크흐흑···! 저, 저는 몰랐습니다. 이게 나찰마궁의 무공인지 정말로··· 요, 용서해주십시오···!”
“무공서는 어딨지?”
“제, 제 방에···.”
내가 있는지도 모르고 정기를 취하고 있던 집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곳을 뒤지니 겉면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서책이 나온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방중술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묘하군. 이런 방식의 방중술을 처음 본다.’
내가 많은 무공서를 섭렵했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무공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방중술과 관련된 무공서는 신교에서도 꽤 많이 보았지만 이 무공서와 비교하면···.
‘창의적이군.’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인간의 정기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기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가정하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은 혼(魂)을 담고 있기에 더욱 특별하다나?
‘진원진기(眞元眞氣).’
고민해볼 만한 문제였다.
사공천의 이름을 사용할 당시의 나였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혼대법을 성공시킨 지금의 나는···.
‘상당히 위험한 무공이다.’
이 무공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정파든, 사파든, 마교든.
모두 무공으로 인간을 초월하려 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른 생명을 먹어치우는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무공은 다른 이들을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그 벽을 깰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보기에도 그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는 게 문제다.
‘부작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지만··· 위험해.’
이딴 무공이 계속 퍼져나가면 어찌 될까?
무림은 당연히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홀로 이 무공을 익힌 거냐?”
“그게···.”
그는 내 눈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을 이어나간다.
“10년 전, 어떤 노파가 제게 내공심법을 알려줬습니다. 그 심법을 열심히 익히면 무공의 고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전 그 말을 믿고 내공심법을 익혔는데, 정말 몸이 개운해지고 가벼워졌습니다··· 심법을 익히고 3년이 지난 뒤에 제 방 안에 그 서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전 홀린 듯이 그걸 익혔고···.”
“노파의 얼굴은?”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분명히 머리카락이 없었습니다.”
“너처럼?”
“예···.”
사내만 이 무공을 익히란 법은 없다.
여인도 사내의 정기를 빼앗아올 수 있다.
‘역겨운 무공이군.’
난 사내에게 궁금한 것을 계속 물어보았다.
그 노파를 다시 본 적이 있는지, 보지 못했다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지. 그리고 여인들을 납치해온 사내들도 같은 것을 익힌 것인지.
노파는 다시 본 적이 없었으며, 감시의 시선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른 사내들은···.
“결국 네가 끌어들였단 말이군.”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이들에겐 나찰마궁의 무공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전 그게 나찰마궁의 무공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나찰마궁의 무공을 익힌 것만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만약 해야 할 일이 없었다면 이곳에서 잠복해서 이놈의 상태를 확인하러 오는 놈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시간까지는 없었다.
‘해당 내용은 흑룡단에 보고해야겠군.’
흑룡단의 존재 의의는 바로 전쟁을 대비하는 것.
나찰마궁과의 연결되었다는 확증은 없었지만··· 의심 정황이라도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잘못에 대해 반성하거나 속죄하라고 하진 않겠다. 하지만 네 남은 인생이 그나마 값질 수 있게 해주지.”
“무슨 말씀이신지···? 자, 잠시만! 부탁드립니다! 제발···!”
신교에서 봤던 나찰마궁의 무공과 방금 본 무공서에 적힌 구결.
상상 속에서 그것을 풀이하고 재조합한다. 이 무공을 활용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파훼법을 만들려면 그 무공을 직접 사용하기도 해봐야 하지.’
놈의 아랫배 위에 손을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