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236)

‘흥, 고작 석 달 무공을 익힌 이들이 초심자가 아니면 뭐야?’

석 달.

단목위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무공을 배워왔으니 총 무공을 익힌 기간은 훨씬 길었지만, 조연연은 무공에 입문한 지 석 달이었다. 흑룡단의 전통적인 실전과도 같은 수련을 했다면 모를까, 설비연이 보기에 현재 5조는 오합지졸일 뿐이다.

그런데 초심자가 아니다?

초심자를 나누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적어도 한 사람분의 역할을 해야 한다. 흑룡단주가 정확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연히 이 내기에서 자신이 승리하리라 생각했다.

‘차라리 단목장룡과 내가 비무를 해서 격의 차이를 알려줬다면··· 아니야. 그에겐 이런 식으로 강호가 넓은 것을 보여줘야 해.’

설비연은 느긋하게 연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초심자를 판단하느냐. 그것은 설비연이 조에 가장 최근에 들어온 이들과 비무를 하는 것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당연히 그녀는 자신의 승리를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 생각대로 됐네. 같은 조장이긴 하지만 해남도로 갈 때는 내가 상급자가 되는 거니까.’

단목장룡을 어떻게 교육할까.

그녀는 단목장룡의 재능이 낮다고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단목장룡이 실력이 없다면, 용봉지회는 어떻게 우승했을까? 그 남궁일몽을 꺾고 말이다. 단지 단목장룡이 어리기에, 자만할 시기라고 판단했기에 바로 잡아 주려는 것뿐이었다.

악감정이라기보단··· 어떤 의미로 보자면 순수한 의도라 할 수 있었다. 표현은 거칠었지만 그래도 속은 순수한 의도랄까.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할지라도, 설비연은 실수를 확실히 깨닫게 하려면 그 방법이 특효약이라 여겼다.

“조장님, 적당히 할까요?”

가장 최근에 3조에 들어온 최관월.

그는 흑룡단에 들어온 지 1년이 되었다. 저잣거리에 있는 무관에서 무공을 접했으며, 악바리 같은 성정으로 수련하여 결국 설비연의 눈에 들어 흑룡단까지 오게 되었다. 무공의 재능? 당연히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설비연이 짜놓은 지옥 수련 과정을 모두 마친 정예였다.

그의 얼굴에는 이곳저곳 흉터가 새겨져 있다. 그것이 그 증거다.

“아니. 확실히 격의 차이를 보여줘.”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최관월이 우렁차게 대답한다.

여유로운 분위기의 3조. 하지만 반대편의 5조에선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번에 지면 단목장룡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단목장룡이 얼마나 뛰어난 무인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막 무공에 입문한 조연연 또한 자신이 이렇게 빨리 성장하리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흑룡단원과 견줄 수 있을까?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해. 조장님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 없어.’

단목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할 일을 한다.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하면 된다. 최선을 다할 뿐.’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단목장룡이 입을 연다.

“가볍게 너희들의 실력을 점검한다고 생각해라. 다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상대가 다칠 것을 걱정하지 마라.”

“예, 조장님!”

“그리고 흑룡공을 믿어라.”

흑룡공.

그 무공은 단목장룡이 직접 조원들을 위해 빚어낸 무공이다. 단목위와 조연연의 성향에 맞게 조금씩 개선하기도 했다.

조금씩.

조연연과 단목위의 자신감이 붙는다. 자신들에겐 흑룡공이 있다.

“단목위가 먼저 나간다.”

“예, 조장님.”

단목장룡의 말에 단목위가 꼿꼿한 자세로 연무장의 중앙으로 걸어 나간다.

그의 앞에는 흉악한 근육을 자랑하는 최관월이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 잘 부탁해.”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귀여운 후배를 위해 한 수 양보해주고 싶지만, 우리 조장님께선 확실히 격의 차이를 보여주라고 하셔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금방 끝내줄게.”

단목위가 묵묵히 목검을 쥐었다.

뒤에선 조장이 보고 있었다. 무림맹의 어떤 누구도 주지 않았던, 기회를 준 단목장룡이 말이다.

- 네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라.

단목장룡의 전음이 들려온다.

단목위는 석 달 동안 강조했던 것을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 흑룡은··· 느리지만 정확하다고 하셨다. 먼저 들어와 준다면 내겐 좋다···.’

단목위는 현란한 기교를 부리며 검을 다루는 성향이 아니다.

묵묵히 기다리며 해야 할 일을 한다.

그의 흑룡(黑龍)은.

절검(絶劍)이다.

절검이란 다가오는 적의 허점을 노리는 검법이라 할 수 있다. 단목위의 시야는 그리 넓지 못하다. 하지만 집중력이 뛰어나다. 하나에 집중하면 오로지 그것만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그의 눈동자가 최관월의 발목과 어깨에 집중됐다.

“가만히 서서 뭘 하는 거냐!”

타다닷!

실전에 특화된 흑룡단. 순식간에 돌진한 최관월이 후방을 점한다. 하지만 이미 단목위는 그가 그리 움직일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제법 빠르게 반응하잖아?’

단목위의 보법은 부드러웠다.

최관월의 입장에선 뒤에서 목에 검을 겨누고 끝내려 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단목세가 출신이라 하지만··· 어차피 지옥 수련도 겪어보지 못한 애송이다.’

흑룡단의 지옥 수련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그 혹독한 수련을 겪은 최관월의 머릿속엔 패배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압!”

최관월이 기합성을 내며 단목위의 가슴을 찔러왔다. 단련되고 또 단련된 근육이 팽창하며 속도를 낸다. 그리고 속도는 곧 힘이었다.

타악···!

‘뭐지···?’

그런데 이상하다. 단목위는 최관월의 강력한 일검을 비스듬히 검을 세우는 것으로 흘려냈다. 그렇지만 최관월의 정신은 그리 나약하지 않았다. 한 번 공격이 막힌 것으로 좌절하지 않는다. 깨지지 않는다면, 부서질 때까지 공략한다.

“이놈-!”

타아악! 타악! 타아악!

검과 검이 부딪친다. 미친 듯이 상대를 압박해나가는 최관월. 조장인 설비연이 말한 대로 격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처음부터 최선을 다했다.

한데 왜일까?

단목위는 처음 그대로 진중한 눈빛 그대로 최관월의 검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조금씩 최관월의 마음이 급해진다. 뒤에선 화가 나면 지옥 수련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설비연이 지켜보고 있다. 격의 차이를 보여주라 했는데,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단목위는 자신의 검격을 막아내고 있단 말인가?

‘대체 왜 부서지지 않는다는 말이냐!’

최관월이 악을 쓰며 검을 휘두른다. 투박하지만 확실한 힘을 담은 검격. 언제까지고 흘려낼 수 없으리라!

그 순간.

단목위의 눈이 빛났다.

이제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

힘과 속도로는 최관월을 따라갈 수 없다. 그렇기에 가만히 서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줄곧 그의 검격을 흘려냈지만, 워낙 힘이 강해 근육이 경련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단목위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흑룡공. 단전에 똬리를 튼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한다.

스으으···.

의도적으로 신체의 특정 부분에 내력을 집중시킬 순 없다. 하지만 단전의 내력이 세맥에 순환되는 것만으로도··· 신체의 능력은 한 차원 더 높아진다.

단목위의 내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기회 한번이 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해도 무방하다. 단목위는 자신을, 그리고 자신에게 흑룡공을 전수해준 단목장룡을 믿고 검을 찔러넣었다.

“아악!”

정확히 심장을 노린 검격.

목검이라 하지만 끝부분에 찔린 것이라 고통이 상당하다. 단목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겨우 잡은 기회였다.

흑룡공의 초식 흑룡유천(黑龍遊天)을 펼쳐낸다.

한 자리에서 계속 방어만 하는 것과 다르게, 주도적으로 공격을 해나간다.

타악!

‘대, 대체···!’

최관월은 지옥 수련을 견뎌냈다. 그렇기에 겨우 검을 놓치지 않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심장이 욱신거려 제대로 방비할 수 없었다. 악과 깡으로 단목위의 공격을 겨우 막아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껏 힘을 아껴왔던 단목위의 공격은 망설임이 없었다.

타아악! 타아악!

연무장 구석으로 몰리기 시작하는 최관월.

“크읏!”

그는 결국 나려타곤까지 펼쳐가며 그의 공격을 피했다. 물론, 실전파인 흑룡단에선 나려타곤을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존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사용하라 가르친다.

문제는···.

‘내가··· 졌다···?’

나려타곤까지 펼쳐냈지만 단목위에게 패배했다는 점이었다.

단목위의 목검이 최관월의 목 뒷부분을 찌르고 있었다. 진검이었다면, 사실 심장을 찔렀을 때부터 끝이 난 승부였다.

‘지옥 수련을 받지도 않은··· 놈한테··· 대체 뭐가 문제였지···?’

멀리서 비무를 지켜보던 단목장룡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 수련? 당연히 효과는 크다. 아마 실전에서 두 사람이 맞붙었다면, 최관월은 단목위를 손쉽게 요리했을 수도 있었다. 지형지물을 활용하고, 온갖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 방법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장 무인에게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무공이다.

흑룡공은 그 단목장룡이 고심하여 만들었다. 먼저 들어와 지옥 수련을 겪은 흑룡단원이라 할지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기반. 익힌 무공의 격이 다르다는 말이었다.

“허어억···! 허어억···!”

단목위는 이제야 거친 숨을 내쉬며 심판을 바라보았다.

이번 비무에 심판을 보는 것은 2조의 부조장. 그는 당연히 단목위의 승리를 선언했다.

“단목위의 승!”

최관월은 감히 설비연의 눈빛을 마주하기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이곤 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금 설비연은···.

‘말도 안 돼···! 대체 무슨 무공을 익힌 거지? 단목세가의 무공인가? 단목세가의 무공이 저리 뛰어났다고? 단목세가는 오대세가도 아닐 진데···!’

흑룡단의 조장인 설비연.

그녀 또한 경지가 절대 낮지 않았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도 있었으며, 북해빙궁의 절기를 모두 이어받았다. 그렇기에 이 한 번의 비무로 단목위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실력이 아니라··· 무공 자체에 놀라고 있었다.

“최관월이 다음 비무를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 이 내기는 최관월이 연속으로 두 사람을 이겨야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단목위는 무공을 익힌 기간이 꽤 있었지만, 조연연은 고작해야 석 달이었으니 설비연이 딴에 배려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배려로 인해.

“단목 조장이 이겼군.”

광풍개의 말에 설비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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