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장님, 5조에 조원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2조 조장인 설비연 또한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단목장룡은 한 달 동안 외성을 꾸준히 돌았다. 참견하고 간섭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아무리 그래도 흑룡단이 어떤 곳인데···.
‘외성 순찰대에서 한 명, 보급대에서 한 명. 한 명은 단목세가의 방계에다가 또 하나는···.’
무공조차 배우지 않은 여인.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단목장룡에게 따지고 싶었다. 흑룡단은 전쟁을 준비하는 단체였다. 그런 이들이 흑룡단에서 어울리는가? 평소의 흑룡단이었다면, 그들은 흑룡전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됐다. 괜한 것에 신경 쓰지 마라. 우리는 우리대로 묵묵히 나아가면 돼.”
설비연의 말엔 냉기가 뚝뚝 묻어났다.
조원들은 그녀의 말에 더는 말할 수가 없었다. 흑룡단에선 신입이 들어오면 거하게 환영식을 한다. 그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수련을 맛보게 하고, 버틴 이들만 진정한 흑룡단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 그것을 겪었기에, 그 환영식이 있어야지만 끈끈한 동료의 정이 생겨난다고 믿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예··· 알겠습니다.”
단목장룡.
그가 들어오고 흑룡단의 정통성이 깨지고 있었다.
모두 곱지 않은 눈으로 5조의 전각을 바라보았다.
* * *
“저 무공은 처음 배워봐요! 무림맹에 있으니 정말 이런 기회가 오네요!”
조연연이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그런데 그 높이가 상상을 초월한다.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았지만, 오랜 노동의 대가라고 할까? 그녀의 몸은 상당히 잘 단련되어 있었다.
“너무 좋아하지 마시오. 무공은 정말 어려운 것이오.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소.”
그녀가 긴장할 수 있게 조언해주는 단목위.
그 또한 흑룡단에 들어왔다. 사실 자신이 이곳에 적응할 수 있느냐는 문제로 고민했지만, 직속 상관인 황충이 바로 해임되는 것을 보고, 흑룡단에 입단하기로 했다. 그가 입단을 권유한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알아요. 하지만 너무 좋아서 어쩔 수가 없어요.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단목위도 조연연과 같은 생각을 했다.
대체 뭘 보고 자신과 조연연을 흑룡단원으로 받아주었단 말인가? 이곳에 들어갔다는 것 하나만으로 무림맹을 나서면 무관의 교관으로 평생을 빌어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무림맹 내에서 흑룡단의 위세가 줄어들었다곤 하나, 그것은 높으신 분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때 단목장룡과 이새붕이 나타난다.
이새붕은 애써 조연연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조연연이 후다닥 달려가 두 사람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조장님! 부조장님!
“으힛!”
조연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처음 봤을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얼굴을 마주하며 식은땀을 줄줄 흘린다. 혹시 몸이 안 좋은 걸까? 조연연은 보급대 출신이다 보니 이곳저곳 인맥이 많았다.
“몸이 안 좋으시면 제가 용한 의원님을 알고 있는데요···!”
“난 괘, 괜찮아!”
“정말요? 안색이 너무 하얗게 질려 있는데···.”
두근두근!
조연연의 얼굴이 다가오자 이새붕의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사실 조연연은 그리 예쁘장한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이새붕의 눈에는 그녀가···.
“조연연, 자리로 돌아가.”
이새붕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단목장룡이 명령을 내린다.
조연연이 후다닥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내 조원이 되었으니 말을 놓도록 하겠다.”
“예, 조장님!”
“예, 조장님.”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에게 알려줄 무공은 이미 정했다.
아니, 만들었다.
“너희들에게 알려줄 무공은 흑룡공(黑龍功)이다.”
흑룡공은 보법과 신법, 권법, 검법 그리고 내공심법까지 총망라한 무공이다.
본래라면 신공(神功)이라 불려야 할 수준이지만, 단목장룡은 흑룡공이라는 단출한 이름을 지었다.
이 무공은 정파의 정종심법보다는 사파의 내공심법의 묘리를 더 담은 무공. 장점은 빠르게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높은 경지에 이르러선 사파의 무공이 정파의 무공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단목장룡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흑룡공은 내공과 동시에 외공을 수련한다. 익히면 익힐수록 마치 흑룡의 비늘처럼 피부가 단단해지고, 질겨질 것이다.”
단목장룡은 느긋하게 그들에게 흑룡공이 어떤 무공인지 설명했다.
전쟁에 특화된 무공. 그들이 살벌한 전장 가운데서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조연연과 단목위는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운다는 생각에 그의 설명을 토씨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다. 단목장룡은 활동적인 조연연이 이런 이론에는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단목위는 당연히 걱정하지 않았고.
정확히 어떤 의도로, 왜 이런 무공을 배우는지 설명한다.
지향점을 알고 수련해야 효과는 극대화된다. 다짜고짜 검을 천 번 휘둘러라. 만 번 휘둘러라. 그리고 스스로 깨달아라. 이런 수련? 극적인 효과가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많이 늦었다.
그렇게 해서는 평생 수련만 해야 고수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단목장룡은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고자 무공을 알려주는 게 아니었다.
“가부좌를 틀어라. 기를 느낄 수 있는 단목위가 먼저 내공심법을 익힌다. 내가 인도해주는 길을 잘 기억해라.”
떠먹여준다고 한다.
천마신교에선 사공천의 이런 재능을 지독히도 탐냈다. 그는 그 재능을 꼭꼭 숨겨 드러내지 않았었지만.
십만대산에서 6천 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 단목장룡의 재능이 만개하고 있었다.
단목장룡은 단목위에게 길을 알려준 뒤, 조연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연연은 진지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대기하고 있었다.
‘언제쯤 기를 느낄 수 있으려나.’
조연연의 육체의 재능은 확실히 좋았다. 하지만 기를 느낄 수 있느냐는 확연히 다른 문제였다.
단목장룡이 조연연에게 기가 뭔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준다.
조연연은 그 설명에 고개를 갸웃한다.
“혹시 숨 쉬는 법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숨 쉬는 법?”
조연연이 어릴 적 배웠던 것을 단목장룡에게 설명해준다.
‘으음, 조연연이 어찌 저렇게 육체가 날렵한지 알겠구나.’
다른 방식으로 단전에 내력을 쌓는 방식도 있었지만, 보통 내공심법은 운기토납을 기초로 한다. 그런데 조연연은···.
‘내공심법이라 불리기 전에 인간이 기를 활용하던 방식이야. 남만 출신이라 했던가.’
과거의 산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자연에 녹아드는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단전에 내력을 쌓을 순 없었겠지만···.
‘조연연은 당장 흑룡공을 익힐 수 있겠어.’
단목장룡이 그녀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댄다.
“무언가 느껴지는가?”
“어, 어엇··· 간지러워요···.”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인다.
조연연은 지금 당장이라도 흑룡공을 익힐 수 있었다.
“입을 열지 말고, 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억해라. 이 기운은 단전에 차곡차곡 쌓을 것이다.”
조연연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단목위에게 알려줬던 것처럼, 단목장룡은 조연연에게도 흑룡공의 길을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 시진 뒤.
단목위와 조연연이 가부좌를 튼 채로 흑룡공에 집중하고 있었다.
“새붕아.”
“예, 도련님.”
단목장룡의 눈빛에 이새붕이 긴장한다.
“너도 수련해야지?”
“예!”
두 사람이 집중하는 모습에 이새붕은 위기감을 느꼈다. 부조장이 조원보다 약하면 되겠는가? 저들에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저도 수련하겠습니다!”
이새붕 또한 그들의 옆에 앉아 가부좌를 튼다.
금세 집중하여 평온한 얼굴을 한다.
그것을 지켜보던 단목장룡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 기반은 갖춰졌다.’
처음부터 마구잡이로 사람을 모아 세력을 늘려갈 수도 있다.
처음엔 당연히 성과도 있는 것처럼 보여서 기분이 좋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는?
모르긴 몰라도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으리라. 아마 무공 수련할 시간에 정치나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할 것이 분명하다. 확실한 소수 정예가 훨씬 관리하기도 편했다. 그렇기에 단목장룡은 단 두 명만을 영입했다.
흑룡단 5조는 그 인원은 적었지만.
단목장룡의 의도 아래 착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나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한 곳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선택과 집중을 더욱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
무림맹엔 정보 조직은 크게 세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순찰당.
순찰당은 강호의 움직임을 살피는, 말 그대로 순찰(巡察)하는 집단이다. 그들은 정파 무림의 권역엔 어디든 뻗어 있기에 그들이 보내오는 정보는 활용하기에 따라서 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두 번째로는 비선당.
순찰당이 강호의 움직임을 살피며 여러 정보를 모아온다고 하면, 비선당은 정보만을 위한 집단이다. 정보만을 본다면 순찰당보다 상위의 조직이라 할 수 있었다. 순찰당에서 모아온 정보를 비선당에서 가공하여, 관련이 있는 단체에 통보한다.
단순히 강호의 안위를 살피며 얻은 정보를 상부에 보고하는 순찰당과는 다르게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은영전.
은영전은 무림맹주의 직속 부대다. 듣기로는 맹주의 명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무림맹주가 부맹주직에 있을 때부터 맹의 인재들을 모아 조직한다고 한다. 당연히 비선당의 모든 정보는 은영전에 흘러 들어간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흑룡단의 조장으로 있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정보 단체는 순찰당과 비선당이라는 말이었다.
‘무림맹에 왔으니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지.’
처음엔 단목세가에서 나와서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볼까도 생각했다.
내가 가진 무공 재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니까. 하지만 그건 소수일 때에나 먹히는 방법이다. 아무리 강한 이들이라도 새로운 세력을 만드는 것은 힘들다.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이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이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군자가 아니지만, 신교에 복수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시간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서 신교에 버금가는 세력을 만든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단목세가.
그들은 노력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의창현을 넘어 중원 전역으로 세를 넓히려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사천성에 성도지부를 만든 것도 다 그러한 이유다. 하지만 단목세가는 오대세가에 들지 못했다. 단목세가 가주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정파라도 좁게 보면 남이니까.’
경쟁.
견제.
파벌.
지금 무림맹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적룡단과 청룡단 그리고 황룡단의 세력 싸움이 더 거세지고 있었다. 부맹주가 된다면 차기 맹주가 되는 것이 거의 확실해진다. 무림맹은 명문 정파가 연합하여 만든 세력일 뿐. 같은 목표를 가진 게 아니다.
뭐 정파의 마음이 한데 묶일 수 있는 계기.
가령 정사대전 같은 게 일어나면 또 몰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두각을 나타내서 홀로 세력을 일구려고 해도, 아마 수많은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내가 싸우려고 한 것은 정파 무림이 아닌데, 신교와 싸우기 위해서 정파와 싸우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난 흑룡단을 택했다.
조장이 되었고, 믿을 만한 조원들도 뽑았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난 비선당과 순찰당에 찾아가서 천마신교에 관련된 정보나 청해성 부근의 특이 사항을 모두 5조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비선당은 한 번에 많은 양의 정보를 요구하니 난색을 표했지만, 순찰당은 처음 무림맹에 올 적에 연을 맺었던 금창대 대주 편무강이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정보 제공을 약속받았다.
흑룡단에서도 정보가 있긴 했지만, 난 무림맹에 있는 그 누구보다 천마신교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이다. 아마 현 무림맹주보다 훨씬 더.
‘무림맹에 소속되니 정보를 돈을 주고 구매하지 않아도 좋군.’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었지만, 천마신교의 정보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게 편했다. 또 흑룡단의 조장쯤 되면 유사시에 각지에 흩어진 무림맹 지부에서 인원을 차출할 수도 있었다. 당분간은 무림맹에 머물 생각이지만 때가 되면 그것을 활용할 때도 오리라.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최신의 정보부터 전달되었다.
난 속독으로 그것을 빠르게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무림맹은 천마신교를 경계하고 있긴 하지만··· 사마련을 더 신경 쓰는 듯하군.’
흑룡단도 천마신교보단 사마련 쪽에 초점을 맞춘 조직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재 자리를 비운 4조. 그들은 혈세귀막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운남성에 가 있는 상태라 했다. 각 조장들의 사연을 살짝 들었는데, 대부분 사파의 대마두들과 악연이 있었다.
‘신교와 악연이 있는 건 설비연과 나뿐이군.’
지금 난 설비연과 사이가 그리 좋다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그녀와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다고 해도, 신교와 싸울 상황이 되면 그녀는 자연스레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