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배신자 새끼. 자기만 깨끗하면 다냐? 조금 지각할 수도 있는 걸 가지고 그걸 상부에 보고해?”
“···.”
“야야, 됐다. 저런 개잡종한테 뭘 바라냐?”
단목위의 무심한 시선이 그들을 향한다.
그러자 외성 경비대의 동료들이 피식 웃는다.
“너보고 한 말 아닌데? 왜 찔려? 찔리니까 우릴 본 건가?”
“그래, 난 너 말고 다른 조원을 말했던 건데.”
단목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외성의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
저런 유치한 장난에 놀아날 순 없었다.
‘개잡종이라···.’
그는 방계의 자식이 낳은 또 다른 방계였다.
사실 중원 무림에선 같은 성씨를 쓰는 사람은 많다. 혈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중원에서 사실 단목씨를 사용한다는 건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 단목세가에서도 직계나 방계냐로 취급이 극명하게 갈린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가 선택한 것은 기회의 집단이라는 무림맹.
단목세가에선 그가 얻을 게 없었다. 그렇기에 무림맹을 선택했다.
하지만 무림맹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단목위는 외성 경비대의 일개 조원이 되었을 뿐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간 찬란한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같은 조원들처럼 가끔 외부인이 찔러주는 푼돈을 받고, 작은 잘못을 눈감아주며 그 자체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동료들에게 미움을 샀다.
모두가 하는데 왜 너는 하지 않나?
대체 뭘 믿고 그러는 것이냐?
믿고 있는 건 없었다.
단지 그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생겨 먹은 탓이다.
그렇게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오늘의 저녁 경계 임무도 끝이 난다. 단목위를 비롯한 다른 조원들이 정해진 길을 따라 숙소로 복귀한다. 단목위의 뒤에선 아직도 헛소리를 지껄이는 동료 조원들의 말이 들렸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전 경비군. 바로 자야겠어. 두 시진은 잘 수 있으려나.’
보통 이렇게 경계 임무 시간을 짜진 않았지만, 경비대 내부에서도 미운털이 박힌 단목위는 이런 불공정함이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서 알아서 나가줄 생각은 없었다.
“어이, 단목위.”
“···?”
그때, 뒤에서 조원 동료인 기사청이 단목위를 부른다.
“비무나 한 번 하자.”
뜬금없이 비무?
“내일 오전 경계가 있다.”
“닥치고 그냥 하자면 해. 이미 조장님께도 허락을 받았다.”
“허락을 받았다고?”
“그래, 네놈이 워낙 깐깐하니까 정신 교육을 하라고 말씀하시더군.”
단목위의 표정이 굳는다.
“맹의 내부 규정에선 같은 동료끼리 무공의 증진 목적이 아닌 비무는 금지되어···.”
타악!
기사청이 검집 채로 휘둘러 그를 공격한다. 단목위의 표정이 굳는다. 아무리 막무가내로 하던 이들이라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며칠 전, 그 보고서 때문인가···.’
최근 조장의 비리를 순찰대 상부에 보고한 것이 이유이리라.
보복은 예상했지만, 이런 식의 막무가내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여기는 무림맹이 아닌가? 이제까지 사소한 보복은 있었으나, 이런 직접적인 보복은 없었다.
“네 무공 실력이 있으니 우리는 두 명이다?”
단목위의 뒤에서 염수규가 공격을 해온다. 그들은 친선 비무가 아닌 실전처럼 단목위를 압박해왔다. 단목위의 무공 실력은 같은 조원들과 비교해서 그리 높지 않았다. 그는 제대로 된 단목세가의 무공을 배운 것이 아니다.
“흡!”
단목위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도달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잘도 피하네.”
“이제 좀 맞자, 응? 얼굴은 안 때릴 테니까···.”
“···.”
단목위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순찰대가 아니라면··· 더 높은 상부 조직에 보고하면···.
‘그래도 해결이 될까···?’
내부를 잠식해가는 환멸.
단목위는 더 이상 피하는 걸 멈추었다. 기를 쓰고 대항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맞아주고 일을 끝내는 편이 나으리라.
내일 오전 경비 임무에 나서려면···.
“뭐냐? 완전히 포기한 거야?”
“쯧쯧, 이것도 상부에 보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두 사내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고 있을 때.
“아무리 외성이라지만···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누구냐!”
한 사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눈동자엔 푸르스름한 무언가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단목위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단목장룡.
단목세가 직계이자 용봉지회의 우승자. 그가 외성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대화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가 이곳에 있는가?
뿌려진 씨앗
“헉! 다, 당신은!”
“이렇게 단목 조장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기사청이라 합니··· 으힉?”
기사청은 순발력 있게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지만.
몸을 옥죄어오는 싸늘한 기운. 기사청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달빛을 머금어 희미한 빛을 발하는 그의 눈빛과 마주했을 뿐인데, 대체 이게 무슨?
“무림맹 내부에서 이딴 식으로 비무를 하나?”
“그, 그게 아니오라··· 저희 조장님께서···.”
“조장의 이름이?”
단목장룡의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니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내성의 흑룡단. 그곳의 조장이 된 인물이다. 나이는 기사청보다 어릴지 모르겠으나 외성과 내성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고작해야 외성의 순찰조원인 그가 반항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8조 조장인 화, 황충입니다···.”
“황충. 알겠다. 그럼 이 자리에서 떠나라.”
거역할 수 없는 명령.
두 조원이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한다. 뭐라도 변명을 해야 했다. 추후에 문책을 받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하지만 왜인지 이곳에 있으면···.
‘목이 잘릴 것만 같아···!’
두 사내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살기 위해 도망쳤다.
그들도 자신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단목장룡의 시선이 단목위를 향한다.
단목위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도와야 했을 상황이지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단목장룡의 시선이 이곳저곳을 훑는다. 단목위는 그런 그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비록 방계이긴 하나 그는 단목 씨를 사용했다. 단목세가의 직계를 이리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서 있는 자세, 눈빛, 자신감··· 모든 것이 단목위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예, 은혜를 베풀어주신 덕분에 다행히 다친 곳은 없습니다.”
질투심?
그런 것이 아니다.
애초에 무림맹 내부엔 단목위보다 뛰어난 이들은 넘쳐 났다. 내성 내에는 괴물 같은 이들이 즐비하다. 검으로 바위나 심지어는 강철까지도 쪼갤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단목장룡에게만 질투를 느낀다면, 단목위는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낄 것이다.
단지···.
“제가 단목 조장님께 답례할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단목장룡에게 줄 것이 없었다.
고작해야 순찰대의 조원이 아닌가?
“그리고 죄송하지만, 먼저 가봐도 되겠습니까? 오전 경계 임무가 있어서 지금 가서 취침을 취해야 합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단목장룡과 말이라도 더 섞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할 말을 했다. 단목장룡의 은혜를 받은 건 맞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은 해야했기 때문이다.
단목장룡은 그의 모습을 보며 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순찰대의 임무를 맡고 싶으십니까?”
“전 외성 순찰대 소속이니까요.”
단목장룡은 이 순간 확신했다.
이 사내는 단목장룡이 원하는 수하의 이상향에 가까웠다.
“소속을 옮겨보는 것 어떻습니까?”
“제 무공 수위가 그리 높지 않아··· 아마 받아주는 곳이 없을 겁니다.”
단목위는 단목장룡이 의례적인 말을 건네는 줄 알았다. 순찰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보라고. 하지만 당연히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받아주는 곳이 있다면요?”
“외성에선 순찰대가 그나마 저를···.”
말을 하던 중 단목위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단목장룡의 말은 혹시?
“제가 흑룡단의 조장이 되어서 말입니다. 제 조원으로 오지 않겠습니까?”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꿈에 그리던 기회. 단목위는 당연히 출세를 위해 무림맹에 들어왔다. 그런데 외성도 아닌 내성? 그곳에 들어가려면 무공 실력이나 출신 배경 또한 뛰어나야 했다.
그런데 자신이 그곳에 맞는가?
“저는 무공 실력이 미진하여···.”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목장룡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말한다.
“제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