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236)

* * *

흑룡전을 나선다.

광풍개는 단목장룡에게 무림맹을 안내해주고, 숙지해야 할 점들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무림맹에 관한 정보를 요약해서 담은 서책도 건네주었다.

“무림맹의 조직도일세. 흑룡단의 조장은 다른 전투대의 대주와 동급이지. 만약 자네보다 급수가 낮은 것들이 헛소리를 지껄이면 쌍욕을 박아주면 되네.”

“하하···.”

광풍개의 조언에 웃음이 나온다.

그는 단목장룡의 어깨를 탁탁 두드려준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처음부터 모든 걸 잘 해내는 사람은 없다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뭐든 내게 묻고, 만약 설비연 그년··· 큼큼! 3조장이 시비를 건다면 언제든 내게 말하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고맙지. 자네라면 다른 단에 들어가서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는데, 흑룡단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광풍개가 진한 미소를 짓는다.

분명히 좋은 의도로 웃는 것이겠지만··· 얼굴 자체에 살기가 감도는 듯했다.

“그럼 오늘은 푹 쉬게. 오늘 고생했네. 5조장.”

“예, 2조장님.”

광풍개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곤 떠나간다.

말은 저렇게 해도 단목장룡이 제대로 처신하지 못한다면 흑룡단 내에서 그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다.

‘절 믿어주신 보답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전갑의 입구에 서 있는 게 느껴졌다.

“3조장님?”

“···.”

설비연이 냉기가 풀풀 날리는 얼굴로 단목장룡에게 다가왔다.

“난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어. 어떻게 흑룡단에 오자마자 조장이 될 수가 있지?”

안대로 한쪽 눈을 가렸기에 더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단목장룡은 그녀가 왜 저리 말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설 조장님, 이제 말을 가려서 해주십시오.”

“뭐···?”

“저 또한 흑룡단의 조장입니다.”

“하! 조장이 되었으니 존대를 원하는 건가?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거야?”

“예.”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어나간다.

“조장은 조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해. 알고 있어? 그때 마두에게 웃기지도 않은 젓가락을 날렸던 것처럼, 무공 실력을 과신하기 위한 짓을 한다면··· 네 근처에 있는 이들이 다칠 거야.”

“내가 하는 말이 쓴소리로 느껴질 거야. 당연해. 나도 그러했으니까. 어릴 적엔 내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아니야. 큰 착각이야. 용봉지회의 우승? 네가 밟고 있는 정주 땅에 용봉지회 우승자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단주님께 말했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목표라고. 하지만 네 목숨이 경각에 달해도 흔들리지 않을까? 그걸 자신할 수 있어? 흑룡단에서 정신교육부터 하는 이유는 최대한 극한의 상황을 만들려는 거야. 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이제까지 그 정도의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으니 잘 모를 거야. 그러니까···.”

흠칫.

설비연이 뒤로 물러선다.

단목장룡의 눈빛.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 시선에···.

‘내가 왜···?’

단목장룡은 조금 짜증이 났다.

대체 그녀에게 왜 이런 잔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가? 이미 흑룡단의 단주가 결정을 내렸고, 두 사람은 같은 흑룡단의 동료가 되었다. 천마신교가 북해빙궁을 멸문시켰던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과정에서 설비연은 많은 것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겪은 것이 비극의 전부는 아니다.

“설비연,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난 어리지 않아.”

“뭐? 당신? 지금 반말을···.”

“나이가 많다고 모두 어른은 아니지.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당신이 아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조언이랍시고 강요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이게 강요로 들렸다면···.”

“그만. 난 알아서 내 조를 꾸려갈 테니, 너는 3조나 신경 썼으면 좋겠군.”

설비연 그녀는 당장이라도 그에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젓가락을 던졌을 때처럼. 그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지고, 조원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왜일까? 단목장룡의 저 눈빛을 보고 있으니···.

‘왜··· 그때의 일이···.’

손끝이 떨려온다.

인간이 아닌 마귀들. 손속에 자비가 없던 그들이 북해빙궁의 사람들을 도륙하던 당시가 떠오른다.

대체 왜?

고작해야 이제 갓 약관을 넘은 후기지수일 뿐인데?

사선을 넘은 자신이 기세에서 밀린단 말인가?

“너···!”

“내게 존대를 듣고 싶으면, 너도 존대해야 할 거야. 이젠 같은 조장이니까.”

설비연은 그를 붙잡지 못했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설비연이 단목장룡의 뒷모습을 보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설비연을 두고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그녀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 떨쳐낸 후였다. 내 머릿속은 어찌해야 무림맹 내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

‘외성을 돌자.’

무림맹 내성엔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흑룡단에 들어오게 하려면 많은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 단목장룡에게 그들에게 줄 것은 없다.

‘돈은 넘치도록 많긴 하지만.’

돈으로는 믿을 만한 사람을 회유할 수 없다.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조원들을 모아야 한다.

이새붕이 아직 과거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바닥을 걸레로 닦고 있었다. 내가 머무는 곳이라면 그가 직접 손을 써야 마음이 놓인다나?

“새붕아.”

“예, 도련님. 이제 거의 끝났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가 이제부터 흑룡단 5조의 부조장이다.”

우뚝.

이새붕의 움직임이 멈춘다.

“예?”

“내일부터 바로 조원들을 모집할 거야. 이제 네게도 수하가 생기는 거다.”

“예에에에?”

이새붕의 입이 크게 벌려진다.

미약한 시작

“제가 일반 조원도 아니고··· 부, 부조장이요? 그게 가능할까요···?”

이새붕은 모르는 게 있었다.

그가 무공을 익힌 기간은 약 2년. 더군다나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나이도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평범한 수준의 무공을 익혔다면,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의 재능이 형편없었다면 이새붕 또한 평범함은커녕 평균보다 훨씬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익힌 무공은 이새붕의 육체에 맞게 고안하여 개선한 무공이었으며.

그를 직접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이새붕은 용봉지회의 예선에서 패배한 후, 무공 수련에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매일 권법과 내공심법을 단련해왔다.

물론, 객관적으로 따지면 무림맹 흑룡단 부조장 직에는 확실히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조장으로 있는 곳에서 이새붕처럼 부조장직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그는 무림맹 내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가능해. 부담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널 믿고 있다.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만 한다면 넌 충분히 해나갈 수 있을 거다.”

그의 무공 재능만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새붕은 노력파였다.

또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았다.

평범한 시종이었다면 하지 못했을 생각.

나와 사천성으로 떠나갈 때, 길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도지부의 총관에게 지도를 보는 법과 길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고 공부했다. 내게 무공을 배우며 수련하는 와중에도 말이다. 이새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나였다.

단목장룡의 몸에 빙의되어 처음 만난 인물이라서 그를 배려해주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살아보며 느낀 이새붕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 알겠어요! 도련님 말씀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요! 열심히 해볼게요. 도련님께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새붕이 각오를 다진다.

이런 모습이 좋았다.

“좋아. 그럼 내일부터 나와 같이 무림맹 외성을 돈다. 거기서 5조의 조원으로 영입할 무인을 찾을 거야.”

“예!”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다. 무공의 재능도 분명히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지만 같은 조에서 활동하려면··· 서로에게 등을 내어줄 수 있어야겠지?”

“과연···!”

“그럼 이 서책을 모두 읽어라. 무림맹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나 맹의 조직도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광풍개에게 받은 서책을 이새붕에게 전해주었다.

난 이미 그것을 다 읽은 후였다.

“예! 열심히 준비하도록 할게요!”

의욕 넘치는 이새붕.

그는 부담감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