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236)

* * *

화음현을 떠나 하남성에 진입했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당옥정을 사천성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내가 품에 안고 모이를 줘야 하는 새끼 새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죽립을 푹 눌러쓰고 뇌왕의 장보도를 도둑맞았던 철부지가 아니었다. 용봉지회의 결승을 보고 확실히 느꼈다.

‘언젠간 다시 볼 수 있겠지.’

그렇게 그녀를 떠올리고 있을 때.

“도련님! 저기 건물들이 보여요!”

“그래.”

이새붕의 말에 생각을 멈춘다. 저기 보이는 것은 공의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무림맹이 있는 정주에 도착한다. 성도지부 부지부장으로 시작하여 용봉지회에 무림맹까지.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듯하다. 그리고 시간은 나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다. 내 적들도 시간을 발판 삼아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림맹은 정파의 핵심. 그곳에 간다면 최소한 신교의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겠지.’

본래 계획은 용봉지회에 우승하여 그 영향력으로 강호행을 하며 중원의 강자들에게 비무첩을 보내려 했었다. 내 목표는 고작해야 후기지수 중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후기지수는 후기지수일 뿐. 현재 정파 무림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여섯 무인, 육왕. 적어도 그 수준까지는···.

‘아니, 그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무림맹은 내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최적의 발판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룡단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평이 좋지 않았지.’

비밀스러운 조직, 만월.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유가상단을 털어먹어 얻은 거금으로 돈을 걸어 그걸 스무 배 가까이 불렸다. 이젠 웬만한 상단의 주인도 내게 돈으로는 덤비지 못할 수준이다.

아무튼, 난 그 돈으로 흑룡단에 대한 정보를 개방을 통해 죄다 사들였다. 그리고 현 무림에서 흑룡단의 위상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알았단 것보다 훨씬 정확하다 할 수 있다.

‘새로 들어오는 인원도 거의 없고. 신입이 들어와도 버티지 못하고 금방 다른 조직으로 떠나간다. 그 이유는···.’

모든 무림맹 산하 조직들이 그러하겠지만, 상명하복이 중요하다.

하지만 흑룡단은 그게 과하다고 한다.

신입이 들어오면 체력을 확인하겠답시고 모래주머니를 달고 연무장을 종일 돌린다던가. 전쟁이 벌어지면 식량이 부족한 건 당연하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며칠 동안 버티게 한다던가··· 부조리가 퍽 많은 집단이라 들었다.

사파나 신교와의 대규모 전쟁이 30년도 지난 시점에서 그들에 대한 적의는 거의 흐릿해졌다. 물론, 그들에 대한 거부감은 분명히 남아 있겠지만, 평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는 조직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그래도 거기에 적응하면 진정한 단원으로 대우해준다곤 하지만··· 그럴수록 무림맹 내에서 입지는 좁아지는 게 당연하다.’

가장 큰 위험 부담은.

흑룡단의 해체였다.

적룡단, 청룡단, 황룡단 이렇게 삼 단 체제로 변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무림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자. 서류로는 모든 걸 판단할 수 없어.’

공의현에 진입한다.

적당한 객잔에 자리를 잡고, 1층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

“도련님, 얼른 드세요!”

“그래, 너도 많이 먹어라.”

중원이라는 곳은 너무도 넓다.

관도를 통해 최대한 빠르게 이동한다고 해도,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대부분 노숙하며 육포로 끼니를 때웠으니 이럴 때 많이 먹어둬야 했다.

이새붕과 함께 한가득 상을 채운 요리를 먹어치우고 있을 때.

‘음···?’

바깥의 소란이 느껴진다.

그 소란은 점점 내가 있는 객잔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물론, 그 소란을 알아차린 이들은 객잔 내에 없었다. 범인의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소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련님?”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다.”

“예?”

“잠시 기다려라.”

객잔 바깥으로 나간다.

저 멀리서 머리를 빡빡 민 사내가 넝마와 같은 옷을 걸친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혼자가 아니야.’

그의 뒤로 무림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추격하고 있었지만, 함부로 그에게 공격을 날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면 죽는다! 이 쌍둥이들의 머리통을 부숴버릴 거다!”

그의 양팔에는 이제 갓 3살 정도로 추정되는 두 아이가 안겨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추격전은 내가 있는 우천 객잔 앞의 공터에서 멈춰섰다. 미리 대머리 사내를 앞지른 무인들이 포위망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이놈! 아이를 내려놓지 못할까!”

“미친 새끼! 너라면 놓아주겠냐? 길을 터라! 날 보내주지 않으면 이 불쌍한 아이들의 목숨은 없다!”

“이 악독한 놈···!”

보는 눈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대머리 사내를 공격하면 문제가 있으리라.

‘내가 나서야겠군.’

손을 내려다보니 젓가락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들고 나왔다. 지금 대머리 사내는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난 독봉 당용아의 암기를 직접 겪은 몸. 암기술에도 자신이 있었다.

판단은 신속했다.

더 지체하다간 두 아이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내공을 운기하여 손가락에 힘을 담는다.

동시에 손목을 움직여 젓가락을 출수한다.

슈우우웃-!

동시에.

- 멈춰-!

이제 막 포위된 무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한 인물.

그 사람의 전음이 내 귀에 꽂힌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젓가락은 이미 내 손에서 벗어나 날아가는 중이었다.

푸욱···!

눈을 깜빡하기도 전에.

젓가락이 대머리 사내의 마혈에 정확히 꽂혔다.

신교의 피해자

“놈이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뭐야! 웬 젓가락이···? 설마 설 조장님께서?”

“일단 아이부터 구출하라!”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대머리 사내놈을 제압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를 제압한 것이지만, 대부분 내가 젓가락을 마혈에 꽂아 넣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에게 납치당했던 어린 두 아이를 무사히 구출해내고, 때마침 아이들의 어미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도착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작게 어깨를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진 않았다.

그런 내게 다가오는 한 사람.

내가 젓가락을 출수하던 순간, 멈추라며 강한 어조로 전음을 보냈었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그녀도 분명히 무인들과 같은 일행이었다. 대머리 사내와 한패는 아니란 말이다.

무림인이라 보기엔 심각하게 하얀 얼굴.

뒤로 묶은 흑색의 머릿결이 도드라진다. 검은 의복을 입었기에 피부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특이한 점은 왼쪽 눈에 안대를 착용했다는 점인데, 허름한 안대를 보아하니 당연히 멋으로 착용한 것은 아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여인이 뚜벅뚜벅, 내게 걸어온다.

날 바라보는 눈동자가 몹시도 싸늘했다.

절제된 기세만 봐도 그녀가 고수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한기가 뚝뚝 묻어있는 목소리. 그녀의 말에 포위하던 사내들의 시선 또한 내게로 모인다.

“뭐야? 마혈에 젓가락을 찔러 넣은 게 설 조장님이 아니었단 말이야?”

“이 멍청아, 설 조장님은 이 색마 놈의 앞에 있었는데 젓가락은 등에 꽂혔잖아.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건 그렇군. 참 대단한 암기술이야. 대체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들이 말하는 설 조장님이라는 사람이 바로 내 눈앞에 서서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여인인 듯하다. 이토록 젊은 여인이 조장이라···. 이들이 무림맹 소속이라는 건 대충 감을 잡고 있었다. 이곳은 공의현. 조금만 더 나아가면 무림맹이 있는 정주였다.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을 생각인가?”

“마혈을 짚었습니다.”

여인의 오른쪽 눈썹이 위로 꿈틀했다.

“마혈을 짚었다? 그 거리에서? 무게 중심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은 젓가락으로 말이지.”

“예.”

그녀가 흘끔 뒤를 돌아본다.

이미 완벽하게 포박되어 무릎을 꿇은 대머리 사내가 보인다.

“저놈은 이 근방에서 수많은 백성의 생명을 해친 마두다. 살인뿐 아니라 방화, 강간, 약탈까지 당장 목을 베어도 시원치 않을 놈이지.”

“그랬군요.”

“그렇군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 웃기지도 않은 젓가락이 놈의 몸에 정확히 명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

“저 마두에게 잡힌 아이 중 하나는 무조건 죽었을 거야. 인질은 둘이나 하나나 똑같거든. 오히려 한 명의 생명줄을 끊어놓는 게 저 마두 놈에게 좋았을 수도 있지. 도주하기도 편해지고, 그를 쫓는 순찰당원들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

순찰당.

무림맹의 조직 중 하나였다. 무림맹의 순찰당은 통일된 복장을 하지 않고, 강호를 살피는 역할을 한다. 대머리 사내를 쫓는 이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무림맹 소속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도운 것이다.

만약 이곳이 하남성이 아니라 사파의 권역과 가까웠다면.

조금 더 두고 봤을 수도 있었다.

“만약 네가 조금이라도 실수했다면 그 결과는 참혹했을 거야.”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된다.

내 나름대로는 정확히 마혈에 젓가락을 명중시킬 자신이 있었기에 행한 일이다. 하지만 일찍부터 마두를 쫓던 이들이 보기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 인정한다.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무공의 이해가 뛰어나니 자랑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사과하기로 했다.

난 저들에게 아직 외부인에 불과했으니까.

“제가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수한 것은 알고 있나 보군.”

내 사과에도 그녀의 싸늘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잠시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어떤 성격인지 대충 감이 온다. 그렇게 대치하고 있을 때, 한 중년 사내가 달려와 여인에게 인사한다.

“표적 1번도 설 조장님께서 나서 주신 덕분에 별다른 피해 없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은 여인.

나를 한 차례 쏘아보곤 바로 몸을 돌려 떠나간다. 중년 사내는 여인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깊은 한숨을 내쉰다.

“대원들에게 들었습니다. 표적 2번을 제압하는 데 도움을 주셨다지요?”

“제가 괜히 나서서···.”

중년 사내는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괜히 나서다니요. 소협 덕분에 무사히 인질을 구출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젓가락으로 마혈을 정확하게 짚다니요. 정말 대단한 실력이십니다.”

보통은 이런 반응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여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설 조장이라는 여인이 대머리 사내가 인질을 잡고 있더라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면 말이다. 내가 나선 덕분에 위험성이 늘어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운이 좋았지요.”

“아니요. 제가 마혈에 박힌 젓가락을 보았는데, 조금만 더 얕게 들어갔다면 제대로 점혈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조금 더 깊게 들어갔다면 놈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수도 있습니다. 운이 아닌 실력이죠. 철저히 계산하신 것 아닙니까?”

“뭐 그건···.”

“하하, 저분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워낙 예민하신 분이라 저도 가끔 쓴소리를 듣곤 합니다. 그건 그렇고 통성명도 하지 못했군요. 저는 무램맹 순찰당 예하 금창대의 대주 편무강이라 합니다. 소협께선 맹에 속하신 분이 아니신 듯한데···.”

“전 단목세가의 단목장룡이라고 합니다.”

금창대의 대주라면 결코 낮은 직위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대답에 깜짝 놀라고 만다.

“예? 단목장룡 소협이라면, 설마?”

수군수군!

내 대화를 듣던 순찰당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설마 이번 화산에서 개최되었던 용봉지회의 우승자···.”

“예, 맞습니다.”

“허허허···! 어쩐지! 젓가락을 던져 마혈을 짚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남궁세가의 차남을 꺾은 단목 소협이셨다니···!”

“하하···.”

정파 무림에선 보통 배분이 중요하다. 금창대의 대주라면 까마득한 선배라 할 수 있었다.

저리 치켜세워주니 조금 어색하다.

“아닙니다. 선배님.”

선배님이라는 말에 편무강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무림맹으로 온다는 소문은 이미 들었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될지는 몰랐군요. 이것도 인연인데 저희와 동행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희 금창대가 맹까지 안내해드리도록 하지요. 저희도 저 마두 놈들을 맹까지 호송해야 하니까요.”

동행이라···.

내가 들어가려 했던 흑룡단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첫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작은 연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훗날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걸리는 것도 있었다.

“근데 혹시 설 조장이라는 분은···.”

“아! 그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두 놈을 잡는 데 도움을 주셨을 뿐, 본래 순찰당 소속이 아니십니다.”

“순찰당 소속이 아니라고요?”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흑룡단 소속이지요. 그곳 소속에 소속된 분들은 융통성이 참···. 아무튼,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주변 정리를 마친 뒤에 같이 정주로 가지요.”

“예, 알겠습니다.”

여인이 떠나간 곳을 바라본다.

조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혹시나 했지만, 그녀는 흑룡단 소속이었다. 조장이라면 나를 흑룡단에 들어오라던 광풍개와 같은 직위.

‘으음.’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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