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남궁일몽의 신경을 건드린다.
“이젠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남궁일몽과 단목장룡이 이젠 주먹이 아닌 검으로 부딪친다.
확실히 주먹보단 검의 숙련도가 더 높은 남궁일몽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목장룡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중들은 두 사람의 수준 높은 비무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움직임은 후기지수 수준이 아니었다. 강호에 내로라하는 기성 고수들의 싸움. 그것과 같았다.
검법이라 그런지 두 사람의 움직임은 더 현란해졌다. 마치 유성처럼 내리꽂히는 단목장룡의 검과 벼락처럼 움직이는 남궁일몽의 검. 유성과 벼락이 부딪칠 때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을 뚫고, 섬광이 번쩍였다.
순식간에 수십 합이 지나간다.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에 전혀 밀리지 않는 단목세가의 검법을 보며 모두가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남궁일몽이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걸 가장 잘 파악한 이는 당연히 화산파의 장문인이다.
‘저게 정말··· 단목세가의 검법이 맞나?’
정확히는 팔십이식유성환상검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무공은 단목장룡에 의해 새로 태어났다.
하나의 유성이 떨어질 때마다 남궁일몽의 신형의 뒤로 밀려난다.
우우우웅! 쿠웅!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기묘한 비틀림이 남궁일몽의 감각을 뒤흔들었다.
‘이런, 제기랄···!’
남궁일몽은 단목장룡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그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세월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한 수 접는다. 지금 남궁일몽이 남궁세가의 가주인 검왕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란 말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과 같은 또래라면?
거기다 나이가 더 어리다면?
‘어찌!’
대체 왜 단목장룡을 상대하는데 아버지를 상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단 말인가!
남궁일몽은 단목장룡의 유성우와 같은 검을 마주할 때마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천룡각에서 다른 이들에게 훈수를 둘 시간에 조금만 수련에 시간을 쏟았다면?
화음현에 와서 검법을 가다듬었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남궁일몽의 표정에서 단목장룡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단목장룡 또한 과거 그러했다.
혈우검마의 검에 목이 잘려나갈 때, 자신이 틈틈이 무공을 수련했다면 달라졌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란 것은 다 그렇다. 일이 현실에 닥쳐와야만 과거를 후회한다.
남궁일몽은 오늘의 패배로 후회할 것이다.
그 후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순전히 그의 몫이었다.
‘이제 슬슬 끝내야겠군.’
내력이 고갈된다.
겉으론 단목장룡도 표를 내지 않았지만,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남궁일몽은 수련을 게을리했다고는 하나 확실히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본능만으로 무연하는 일격조차 감당하지 못한 검격을 막아냈으니까.
하지만 단목장룡이 진심으로 끝을 생각했기에.
그 끝은 현실로 다가왔다.
“···!”
남궁일몽은 그의 급변한 분위기에 온몸의 솜털이 삐죽 솟는 듯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단 한 번의 기회···.’
남궁일몽은 검을 꽉 쥔다.
단목장룡의 다음 검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최선을 펼쳐 보인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제왕검형을 펼쳐내려 했다.
본래 남궁세가의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지만, 그는 아버지의 배려로 제왕검형을 익힐 수 있었다.
‘이것이라면···.’
남궁일몽의 단전에서 세 번의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충돌과 충돌 그리고 연쇄 작용.
폭발하는 뇌전이 그의 검에 맺혀간다.
콰지직-!
화창한 오후인데도 그 뇌전의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눈이 멀 것만 같았다. 검강을 다룰 수 있어야지만 펼칠 수 있는 제왕검형의 오의 중 하나.
폭뢰운비(爆雷雲飛).
수십 갈래의 뇌전이 하나로 뭉쳐지며.
하나의 선을 그려냈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찢어놓을 듯이 강렬히 흔들렸다.
“검강···!”
한눈에 보아도 검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보인다. 검강을 실전에서 저리 활용할 수 있는 것만 보아도 남궁일몽의 경지를 알 수 있었다. 폭뢰운비를 본 순간 군중 대부분 남궁일몽의 승리를 직감했다.
어찌 저것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폭뢰운비에 마주하는 단목장룡의 검에는 아무것도 맺혀 있지 않았다.
“끝이다!”
관중 한 명이 그렇게 외치는 동시에.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친다.
“···!”
그리고 남궁일몽은 마지막에야 볼 수 있었다.
충돌하는 순간 유성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단목장룡의 검을.
단목장룡의 유성일락(流星一落)이 무림에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우승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하늘에서 떨어지기에 모두 아름답다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직접 유성이 떨어진 곳에 가보면, 지면에 구덩이가 파이고 주변이 박살이 나 있다. 마주하지 않고서는 밤하늘을 수놓는 유성이 실제로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없다.
단목장룡이 펼친 유성일락.
유성환상검의 오의 중 하나가 그러하다.
찰나의 순간에만 빛이 발하기에 항시 드높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보다 희귀하다.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집중한 이들에게만 선사하는 빛. 관중석에서도 뇌왕검의 찬란한 빛을 본 소수의 관중은 멍한 눈으로 입을 벌렸다. 대부분은 뭐가 지나갔는지도 모를 표정으로 비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오오오···!
유성이 지면이 아닌 남궁일몽의 검을 강타했다.
파라라라랏!
단목장룡의 검을 마주한 남궁일몽의 옷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빛을 발하는 유성은 사라졌으며, 남은 것이라곤 유성이 남긴 파괴의 흔적뿐이다. 남궁일몽의 검에 흩날리던 폭뢰운비의 뇌전은 유성의 휩쓸려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쿨럭···!”
남궁일몽이 피를 토한다.
유성일락에 남긴 힘을 온전히 마주했다. 남궁일몽의 팔과 다리는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끝내 쓰러지진 않았다.
사실 지금 정신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내가··· 졌어···?’
남궁세가의 제왕검형은 절대 부족한 무공은 아니다. 대성한다면 천하를 논할 수 있는 절세의 무공이었다.
단지··· 약했을 뿐이다.
이 순간 단목장룡이 더 강했으며, 남궁일몽이 더 약했다.
그것뿐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궁일몽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오른다.
이기고 싶다. 이대로 패배하기 싫다. 처음으로 겪는 패배. 씁쓸함. 모든 것을 부정하고픈 감정이 벅차오른다. 자신의 재능이라면 단목장룡의 마지막 일격을 파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남궁일몽은 검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도 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움직여주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놓칠 것만 같았다.
“그만 쉬십시오.”
고개를 든다.
단목장룡의 눈빛을 마주한다. 그의 눈빛에는 승리의 도취감 따위는 담겨 있지 않았다. 단지 남궁일몽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왜 단목장룡은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지금 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단목장룡이 검을 회수한다.
남궁일몽의 시선이 자신의 검으로 향한다. 그의 검과 마주한 부분이 움푹 파여 있었다. 마치 그 부분만 용광로에 넣었다가 망치로 두드린 듯이 말이다.
그걸 본 순간 깨달았다.
파훼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의 무공을 분석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아니다.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지금의 폭뢰운비로는 그의 유성과도 같은 검을 막아낼 수 없다.
‘이게 방만함의 결말인가···.’
천천히.
남궁일몽의 무릎이 꺾인다.
쿵.
남궁일몽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하늘을 바라본다. 뭐가 하늘의 재능인가? 뭐가 괴물인가? 그보다 더한 괴물이 눈앞에 있는데 말이다.
- 강호는 넓다.
순간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넓어봤자 얼마나 넓겠냐고 생각했던 남궁일몽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버지의 조언이 심장을 찔렀다.
‘아버지의 말씀이 맞군요.’
그렇게 남궁일몽은 무릎을 꿇은 채로 정신을 잃었다.
“···.”
일순 비무장에 고요해졌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그 고요함을 가장 먼저 깬 것은 화산파의 장로였다.
“우승, 단목세가의 단목장룡!”
그 한 마디에.
비무장 전체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우와아아아아아!”
“대단하다! 단목장룡!”
“단목세가 최고다아아아아!”
단목장룡은 사방에서 전해지는 그 거대한 함성에 담긴 힘에 짜릿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