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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축하를 받았다.
사실 승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기에 처음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장원의 모두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제갈교아에게 혼에 관해 들었을 때부터 뭔가 마음이 무거워져 있었는데, 오늘 비무로 뭔가 가벼워진 듯하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착실히 성장해 나가면 된다.’
이대로 용봉지회에서 우승하고, 자령단을 얻는다. 내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육신의 힘과 내공이다. 지금 내공이 50년 정도 되지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1갑자는 넘어야 그래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내 이름에 걸어놓은 돈이 있으니··· 최소 열 배는 벌 수 있겠지.’
돈은 이제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돈은 돈을 부른다. 이걸로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여차하면 적당한 수준의 영초를 구할 수도 있으리라. 백 냥으론 불가능해도, 천 냥으론 가능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밖에서 이새붕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련님···?”
“어, 들어와.”
하지만 이새붕이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다른 이의 기척이 느껴지는 듯했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이곳으로 찾아오리라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단목청야였다.
“오랜만이로구나.”
“예,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단목청야는 딱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 몸의 혈육이었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예, 들어오십시오.”
단목청야와 마주 앉았다.
그는 오랫동안 말없이 날 지켜볼 뿐이었다. 고뇌가 가득한 눈빛이다. 무슨 할 말이 있어 이렇게 뜸을 들이는가? 단순히 나와 친목을 다지고자 올 사람은 아니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하셔도 됩니다.”
“후우···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마.”
단목청야가 천천이 말을 잇는다.
“네가 정말 내 동생이 맞으냐?”
“···.”
그의 질문은 핵심을 관통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진짜 그의 동생이 아니다. 육신으로 따지면 그의 동생 단목장룡이 맞았지만, 그 속에 있는 것은 사공천이다. 물론, 난 이혼대법을 성공시키곤 단목장룡으로 살기로 다짐했기에···.
“예, 맞습니다.”
“그렇군.”
그는 자신도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황당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화음현에 있으면서 내 너를 찾아보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난데없는 단목청야의 사과.
내가 기억하는 그였다면 형님이 왔는데 왜 찾아오지 않았냐고 따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과한다. 언승지와 혼인을 강요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 변화에 어색했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언승지에게 들어보니 단목청야는 천룡각에서 정치로는 퍽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가 내게 적대적으로 구는 것이 이상하리라.
난 무림오룡 중 하나이자 화산파의 대제자를 비무에서 꺾었으니까.
“아닙니다.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수련에 집중하느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내 말에 단목청야의 눈빛이 더욱 깊어진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사람은 변하는 법이니까요.”
“화음현에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청성파의 장로와 싸운 것. 당옥정 소저와 연을 맺은 것. 양씨세가의 보물을 찾아준 것. 모두 네가 한 일이 맞느냐?”
“예.”
단목청야는 담담히 그것을 받아들인다.
“내가 이 밤중에 널 찾아온 것은 할 이야기가 있어서다.”
“말씀하십시오.”
“천룡각에 들어와라.”
“천룡각이요?”
그는 차분하게 날 설득하기 시작한다.
“내가 네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미안하다. 어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성취를 이루어냈는지 난 잘 모르겠구나. 아마 재능뿐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도 동반되었겠지. 네 노력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며, 재능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허나 정파 무림에서 살아가려면 천룡각의 경험은 필수다. 난 단목세가를 오대세가 중 하나로 만들고 싶다. 그건 내 오랜 목표 중 하나였지.”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곤 말을 이어나간다.
“천룡각에선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강호의 경험이 풍부한 노사부님들께 무공뿐 아니라 강호의 전반적인 역사와 위기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지. 거기다 너와 같은 나이의 후기지수들과 연을 맺을 수 있다. 그건 정말 중요하다. 용봉지회에서 연을 쌓았다지만 단편적인 부분에 불과해. 지금의 무림오룡과 무림오화가 영원히 유지되는 게 아니야. 매년 새로운 인재들이 천룡각에 모여들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네가 천룡각에 들어왔으면 좋겠구나. 산산이도 내년에 천룡각에 들어올 것이다.”
단목산산.
오랜만에 그 이름을 들으니 한번 보고 싶긴 했다. 처음으로 가족의 정을 느끼게 준 소녀. 그렇다고 해서 천룡각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단목청야에 말대로 천룡각에 들어가는 것 도움이 될 것이다. 재밌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난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 천룡각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내 단호한 대답에 단목청야가 가만히 날 응시한다. 하지만 과거 언승지와의 혼사를 하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가소롭다는 듯이 보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유가 있는 것이냐?”
“전 따로 목표로 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려던 단목청야.
바깥의 소란에 말을 멈추고 문을 바라본다.
“도, 도련님? 누군가 또 찾아오셨···.”
약간 떨리는 이새붕의 목소리.
나와 단목청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하하! 반갑다!”
온몸에 주먹에 흉터가 눈에 띄는 한 사내. 하지만 죽립을 눌러 쓰고 펑퍼짐한 의복을 입어서 그렇지만, 다른 부위에도 흉터가 있다는 게 힐끔힐끔 보인다. 그의 모습을 본 단목청야가 깜짝 놀랐다.
“광풍개 대협을 뵙습니다···!”
“오호? 날 바로 알아본다고? 눈썰미가 좋구나? 넌 그러니까···.”
“예, 선배님. 단목세가의 단목청야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단목청야가 맨발로 뛰어나가 그에게 인사한다.
가문 내에서 단목청야가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광풍개라는 인물이 대단한 사람인지. 아니면 단목청야가 처신을 잘하는 건지··· 아마 둘 다가 아닌가 싶었다. 광풍개는 난 뭐하냐는 듯이 시선을 보낸다.
나 또한 그에게 인사했다.
“단목장룡입니다. 광풍개 대협, 잘 부탁드립니다.”
“너도 날 알고 있느냐?”
“존명대성은 들어보았습니다.”
사실 들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며칠 전에 본 적이 있었다. 만월의 지하에서 여우 가면을 쓴 제갈교아에게 통성명을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던 사내. 당시에 손의 흉터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또 당시에 그는 목소리를 전혀 숨기지 않았으니.
“그래?”
만월에 방문한 것 때문에 찾아온 건가?
설마 내가 내 이름에 돈을 건 것 때문에?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광풍개라는 별호면··· 대략 어떤 인물인지 알 것 같긴 한데···.’
광풍개가 단목청야에게 말한다.
“나도 같이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느냐?”
“예, 선배님. 당연하지요.”
“넌?”
“예, 괜찮습니다.”
그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과 같은 방에 들어갔다.
광풍개는 실내에 들어왔음에도 깊은 죽립을 벗지 않았다. 듬성듬성 자란 턱수염과 얼굴의 흉터만 조금 비춰질 뿐이었다.
“이곳에서 광풍개 선배님을 만나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용봉지회엔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재능 있는 후배는 언제든 원하고 있지.”
그 말에 단목청야가 긴장한다.
“설마···.”
광풍개가 당당하게 외친다.
“그래, 난 흑룡단(黑龍團)에 영입 제의를 하러 왔다. 당연히 단목청야 네가 아니라··· 네게 말이다.”
죽립으로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광풍개의 시선이 이글이글 타오를 것이라 느껴진다. 광풍개는 내가 일상적으로 알던 거지와는 전혀 달랐다.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고, 겉모습으로는 온갖 풍파를 겪은 낭인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고수였다.
“광풍개 대협, 그건 아니 될 말씀입니다. 장룡은 아직 미래가 창창한 아이입니다. 조만간 천룡각에 들어갈 수도 있기에···.”
“쟤가? 저 실력에? 천룡각에? 넌 남궁일몽 같은 놈들이 천룡각에 있는 게 맞다 보는 거냐?”
“그건···.”
“저런 재능은 썩히지 말아야지. 어때, 네 생각은?”
광풍개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묻는다.
동시에 옆에서 단목청야의 전음이 마구 쏟아진다.
- 하지 말아라. 흑룡단은 무림맹의 적과 싸우기 위한 전투단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으니 정파와는 거리가 멀다. 정파 무림 내에서도 그리 평판이 좋지 않다.
- 적이라면 어딜 말하는 겁니까?
- 그야 당연히 마교와 사파지. 하지만 내 예상에 그들과는 화합의 장이 열릴 것이다. 남궁일몽 공자께 듣기로···.
난 고개를 돌려 광풍개를 바라본다.
흑룡단이라··· 단목청야가 저리 말라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이유가 있으리라. 하지만 난 마교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용봉지회가 끝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그런 고민을 했었다. 자령단을 취한 후에 정기가 맑은 산으로 가서 반년 정도 무공을 갈고 닦은 후, 강호를 돌며 정파 무림의 강자들과 싸우고자 계획했다. 고수들과 마주하며 그들의 무공을 몸소 겪고, 나에게 적용한다. 신교를 상대하기 위해.
하지만 흑룡단에 들어간다면?
사파와 마교를 상대하기 위한 전투단.
나와 딱 맞는 곳이지 않은가?
‘괜찮군,’
광풍개를 바라보며 말한다.
“좋습니다.”
“뭐···?”
“장룡···!”
의외인 것은 내게 흑룡단의 영입을 제안했던 광풍개마저 내 대답에 놀란 듯했다. 단목청야는 전음으로 흑룡단에 들어가면 좋지 않은 점을 마구 일러주었다. 특히 광풍개의 별호가 왜 저 모양인지까지 들려주니. 오히려 난 흑룡단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 흑룡단은 사파나 마교의 권역을 사찰하는 임무가 많다.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겠지만, 너무 위험해!
난 단목청야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어떻게 내 귀에 저리 쏙쏙 박히는 말만 할까?
“흑룡단에 들어가고 싶습니다만··· 지금 당장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다만, 바로 들어오지 못할 이유라도 있느냐?”
“용봉지회에서 우승해야 해서 말입니다.”
정확히는 우승의 영광보다는 우승에 따라오는 자령단이라는 영약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내 대답에 광풍개가 미친 듯이 폭소를 터트린다. 저래서 광풍개라 불리는 건가 싶을 정도.
“하하하! 크하하하! 정말 물건을 발견했구나! 좋다! 좋아! 네가 우승할 때까지 기다리마. 이 정도 인재를 받아들이는데 그 정도 기다림은 짧지, 짧아! 하하하하!”
광풍개는 흡족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으며.
- 장룡아, 광풍개 대협이 가시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단목청야는 조바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전음을 보냈다.
오만한 천재
‘···정말 사람 일은 알 수 없군.’
단목청야가 장원의 입구를 바라본다.
오래도록 단목장룡을 설득했지만 뜻을 바꾸지 않았다. 흑룡단은 분명히 영예로운 단체이긴 하다. 오랜 평화에서도 전쟁을 대비하는 무인들. 어찌 그들을 욕할 수 있으랴? 하지만 단목청야에 입장에선 흑룡단은 언젠간 와해 될 단체였다.
그곳에서 배우는 것이라곤 사람을 죽이는 방법. 전쟁에서 이기는 수단뿐이다. 광풍개 같은 특이한 무인이 그곳에 속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오대세가가 주축이 된 청룡단이나 구파일방이 중심인 적룡단이었다면 그도 이렇게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흑룡단. 그곳에 속한 대부분은 과거 마교와 사파에 원한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단목청야는 흑룡단에서의 생활은 강호 무림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재능이 아깝구나. 어릴 적부터 내가 저 재능을 알아보았다면··· 장룡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보살펴 주었다면···.“
단목청야는 자신이 단목장룡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라도 그런 형의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네가 그곳에서 꿈을 키우고 싶다면 말리지 않으마. 허나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놓겠다.’
단목청야는 천룡각에서 많이 성장했다. 그곳에서 무림과 세상을 배웠다. 홀로 무림맹에 들어간다면 분명히 온갖 부조리한 상황에 마주할 것이다. 그때 힘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가문이다. 그때가 되면 단목장룡도 가문의 소중함을 깨우치리라.
‘나는 나대로 앞으로 나아간다.’
단목청야가 몸을 돌려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