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236)

* * *

용봉지회가 개최된 지 이틀이 지났다.

지금 32강에선 이틀에 한 번씩 비무가 펼쳐진다. 난 오늘 비무를 관전하기 전에 구석에 있는 객잔에 방을 빌려놓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제갈교아가 같은 자리에 앉았다. 먼 거리에 있는 그녀에게 전음을 보낸다. 사실 거리가 멀어지면 전음의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지금 내 수준에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만 없다면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 해시에 육공 객잔으로 오십시오.

제갈교아의 무공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이 거리에선 전음을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 거리에서 전음을 보낸 이유도 그녀의 무공 실력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녀에 관한 정보를 그렇게 머릿속에 쌓아놓고 있을 때.

- 예, 감사해요.

전음이 들려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전음이라기 보다는··· 공간 자체가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찰나의 순간 바람이 비틀렸던 듯하다. 몇몇 이들은 그 이질감을 알아차린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술법의 한 종류인가.’

내공, 그러니까 자연의 기를 다루는 것은 여러 방식이 있었다.

포괄적인 개념으로는 모두 무공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특징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었다. 보통 무공이 신체 내부에 쌓인 기운을 제어한다면··· 진법이나 술법 따위는 외부의 기운을 이용한다. 사실 외부의 기운을 끌어 쓰면 더 위력이 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그다음부턴 다시는 제갈교아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남궁일몽이나 무연하가 다가오는 일은 없었기에 제대로 집중하여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 * *

어둑한 밤.

복면을 쓴 두 사람이 어느 한 객잔의 방 안에서 마주한다.

“···.”

“안녕하세요.”

이제 막 방문을 열고 도착한 여인이 바로 복면을 벗는다. 순간 코를 움찔하는 것이 냄새를 맡으려 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단목장룡은 내공을 끌어올려 기감을 널리 퍼뜨렸다. 주위에 수상한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갈 소저,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점은··· 왜 제 냄새를 맡고 싶어 하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춘다. 솔직한 이유로는 흥분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많은 것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런데 단목장룡의 냄새는 이제까지와는 격이 다르다. 비틀려있지만, 비틀려있지 않은. 불안하면서도 완전한 무언가가 향긋한 내음을 퍼트리고 있었다. 어찌 매혹적이지 않으리?

“정확히 말하면 균형이 맞지 않아서예요.”

“균형?”

“네, 영혼과 육체의 격이 다르다는 느낌일까요?”

“···!”

단목장룡은 깜짝 놀랐다.

사실 그의 몸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얻은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제갈교아는 그걸 은연중에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절대 나쁜 게 아니에요. 사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죠. 오히려 완벽한 것이 이상한 거예요. 불안전함과 완전함이 공존하며 그 균형이 맞춰가고 있기에 오히려 그토록 아름다운 냄새를 가지신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혼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진실인 것 같았다.

제갈교아는 단목장룡이 이혼대법으로 새로운 삶은 찾은 것은 모르지만, 혼과 육체의 격이 다르다는 건 알아챘다.

‘천마신교의 신녀만이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할 순 없지.’

단목장룡의 시선을 느꼈는지 제갈교아가 말을 이어간다.

“제 말을 의심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전 결코 당신껜 거짓을 말하지 않아요. 당신 같은 사람은 한번 척을 지면 다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제 정체를 말씀드리겠어요.”

“또 다른 정체?”

만월에 대해서 말하려는 건가?

장룡이 그렇게 생각할 때.

“전 신녀문의 계승자예요.”

“신녀문?”

“네, 신녀문은 아주 비밀스러운 문파에요. 중원 무림의 안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미리 찾아내서 천지신명께 그것을 보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사실 단목 공자님은 이미 제를 올려 알렸어야 해요."

“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네. 사실 전 신녀문 또한 믿지 않아요. 오직 제가 믿는 건 제 실력과 감이죠. 태어나서 처음 본 공자님과 같은 냄새를 그곳에 내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요.”

그녀의 말을 듣다보니 그럴듯하긴 하다.

제갈교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녀문은 무림의 어떤 세력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천지신명? 세상에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 미신일 뿐. 천마신교의 교주도 자신을 천마라 칭하지 않던가?

“천지신명의 정체를 알고 계실 듯한데요.”

제갈교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멈춘다.

“죄송하지만, 제게 더 확신을 줄 수 있으신 가요?”

“냄새를 맡고 싶단 말입니까?”

제갈교아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단목장룡을 바라볼 뿐이었다.

장룡이 천천히 왼손을 건넨다. 손등의 냄새를 맡으면 되겠지.

“아, 백회혈의 냄새를 맡으면 더 좋았을··· 죄송해요. 이걸로 만족할게요.”

그녀가 조심스레 얼굴을 가져다 댄다. 검지. 중지. 약지. 손가락 끝의 냄새를 음미하듯 맡아댄다. 그녀의 얼굴이 흥분으로 물들어간다. 짜릿하다. 이런 냄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다. 이 냄새를 계속 맡을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라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단목장룡은 손을 거두었다.

“아···!”

마치 나라를 잃은 얼굴을 한 제갈교아.

그녀의 시선이 단목장룡의 손에 집중된다.

그리고···.

“어, 그 팔찌는···.”

“이걸 아십니까?”

단목장룡조차 긴장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제갈교아와 영령의 관계가···

“과거에 혼이 담겼던 물건이군요.”

“···!”

순간 뇌리에 번개가 쳤다.

세 수 위

사실 이혼대법을 성공하기 전이었다면, 영혼의 존재라는 걸 온전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영혼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이다. 난 죽음을 경험했으며, 내 목이 떨어지는 것을 직접 보았다. 물론, 아직 그 원리가 무엇인지. 영혼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이유는 모른다.

다만.

‘이혼대법은 결코 물건에 혼을 담는 술법이나 무공은 아니었어.’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혼대법의 구결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일회성의 무공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모든 무공을 상상 속의 세계에서 펼쳐냈던 내가 유일하게 이해조차 할 수 없었던 무공이었기에.

본래 살아 있는 인간이 손댈 수준의 무공이 아닐지도 몰랐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본다. 가늠할 수도 없는 높이에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다. 거대한 달이 땅에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단목 공자님?”

“당신은 이곳에 혼이 담겼다는 걸 어찌 아는 겁니까?”

내 물음에 제갈교아는 잠깐 침묵한 후, 입을 열었다.

“느낌이에요. 전 태어날 때부터 그것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평범한 백성들은 그 존재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기(氣)를 무림인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더 파고들면 분명히 다르긴 하지만···.”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된다.

나 또한 자연의 기운을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시작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중원엔 제갈 소저와 같은 능력의 사람이 많습니까? 혼을 물건에 담을 수 있는 겁니까?”

“아뇨? 그건 저도 하지 못해요. 그걸 할 줄 알면 제가 이 무림을 지배했겠죠. 그리고 아마 그것을 의도적으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만··· 분명히 물건에 혼이 담길 수는 있겠죠. 제가 느꼈으니까요. 몇몇 무지한 이들이 말하는 신병이기가 아닌 진짜 신병이기(神兵利器). 저도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경위로 그런 물건들이 생겨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존재하긴 하니까요. 어쩌면 소림사의 달마 조사님이라면 그런 게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혼자서 할 수 없었다면 여럿의 소망을 갈아 넣었다든지 말이에요. 제 추측일 뿐이지만.”

그런가.

옥 팔찌는 과거의 단목장룡이 저잣거리에서 구매했다고 한다. 이걸 가진 채로 거의 죽음 직전에 도달했으며, 난 단목장룡의 몸에서 깨어났다. 어쩌면 이 모든 인과에 관여한 인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것이 어쩌면 영령이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왜? 그녀는 날 밀어냈었다. 신교에서 떠나라 했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단목 공자님이 차고 계신 검은 명검이 분명하지만 절대 신병이기는···.”

그녀는 내게 뭘 알려주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처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네?”

“혼자 생각하고 싶군요.”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아뇨. 도움이 됐습니다.”

“그게 저는···.”

제갈교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녀를 신경 쓸 틈은 없었다.

“후우··· 하지만 다음번엔 꼭 백회혈의 냄새를 맡고 싶어요. 냄새만 맡게 해주신다면 저는··· 알겠어요. 이만 물러날게요. 다음에 뵙도록 해요.”

제갈교아는 혼자 뭐라 중얼대더니 떠나갔다.

그녀에겐 백회혈을 내보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를 온전히 신뢰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내 육신과 혼의 괴리감을 알아냈으니까.

‘령, 다시 만나면 물어볼 수 있겠지.’

때마침 객잔의 창이 난 방향이 북서쪽이다.

육안으론 보이지 않지만, 저 끝에는 분명히 신강이, 십만대산이 존재한다. 아마 그곳에 그녀가 있겠지. 그리고 날 죽이라 명령했던 아버지와 목을 베어갔던 혈우검마가 있었다.

‘때가 되면.’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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