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236)

* * *

나와 당옥정은 복면으로 얼굴을 감추고, 죽립을 꾹 눌러썼다.

그런데 당옥정은 이런 장소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는 듯이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음지에 마련된 도박장.

하오문에게 정보를 얻고, 개방을 통해 거액을 주고 출입패를 구매했다. 용봉지회라는 신성한 대회는, 도박인들 사이에서 가장 큰 잔치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번 용봉지회는 역대급으로 참가자들이 많다고 했다.

그런 만큼 이 도박장에 모이는 돈은 천문학적인 액수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돈을 전부 쓸어 담아야지.’

유가상단의 일로 막대한 금액을 벌었다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단순히 돈으로 따지면, 내가 목표로 하는 천마신교에선 푼돈에 불과했다. 돈으로 싸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력 간의 싸움에서 돈이 있으면 무조건 좋았다.

‘의외로 이곳이 명문 정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지.’

그곳이 배후가 어딘지는 하오문도 알지 못했다.

구파일방 중 하나인 개방이 운영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용봉지회를 주최하는 화산파에서 직접 운영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정확한 것은 이 도박장의 역사는 용봉지회의 역사만큼 깊다는 것이다.

- 옥정아, 너무 긴장하지 마.

흠칫.

당옥정이 나를 돌아본다. 그녀가 긴장하지 않게 손을 잡아주었다. 사실 데리고 올까 말까 고민했지만, 당옥정도 강호의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천당문의 가주가 되진 못하겠지만··· 독봉의 뒤를 이어 내당주까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런 경험들이 언젠간 빛을 발하는 날이 오겠지.

- 미, 미안! 긴장하지 않을게. 난··· 화음현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어.

- 나도 그래.

왠지 모르게 손을 잡으니 당옥정의 떨림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힘을 꽉 주고 있었다.

그녀를 끌고 도박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사실 그녀보고 긴장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도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사실 도박장이라 하면 사파의 문파가 대충대충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너무 본격적이다.

사방에 잔잔하게 흩어진 기운.

해우심법에 반응하여 조금씩 튀어 오른다.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

진법이란 간단히 설명하면, 자연의 기운을 공간 자체에 억지로 묶어두는 것. 기(氣)라는 건 만물을 형성하는 힘이라 정의한 적이 있는데, 진법은 그걸 나아가서 고차원적으로 활용하는 단계를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진법이 만능은 아니다.

다루기도 어려울뿐더러, 예상보다 효과가 미미한 경우가 많았다. 직접 내력을 몸에 쌓는 무공과는 달리, 진법을 잘 다루려면 무공과는 또 다른 재능이 필요했으니까. 나 또한 진법서는 그리 많이 보지 못했었다.

그래도 아예 지식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대충 어느 정도의 수준인진 가늠할 수 있다.

‘상당히 고급 진법이군. 화음현이 본래의 터가 아닐 텐데도 이 정도의 진법을 설치할 정도면··· 역시 이 도박장을 운영하는 곳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앙엔 커다란 천막으로 대진표가 만들어져 있었으며, 그 밑에는 다른 이들이 얼마나 돈을 걸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히 남궁일몽에 걸린 돈이 압도적이었다.

‘정말 본격적이군. 신교에서도 저런 건 없었는데.’

신선한 충격.

내가 알고 있던 무림과 실제로 마주하는 무림은 달랐다. 아마 내가 성장할수록 이런 곳들과 더 가까워지겠지. 강호 무림은 언제나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 장소를 보면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출입패를.”

마치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 일부러 소리를 낸 것은 확실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저런 목소리를 내는진 나도 짐작하지 못했다. 뭐 고민해보면 저런 무공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나는 군말하지 않고 출입패를 건네주었다.

난 두 개의 출입패를 건네주었다.

이새붕과 함께 들어오기 위해 두 개를 샀지만, 하나는 당옥정에게 것이 되었다. 그곳에는 10754, 10755라는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중앙으로.”

그는 어떤 명부와 내 출입표를 대조해보곤 손가락으로 거대한 천막이 설치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탁자에 앉아 장부를 기입하고 있었다. 몇몇 이들은 이미 그곳에서 돈을 걸고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걸음걸이만 봐도 무공을 익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사파인들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 재밌는 곳이네.’

중앙으로 다가가자 한 복면인이 내 쪽으로 손짓한다.

이곳으로 와서 돈을 걸라는 말이다.

슬쩍 공동에 걸린 천막을 바라본다.

내게 걸린 돈은 총 금화 132냥. 절대적으로는 많은 양이지만, 상대적으로는 현격히 적은 양이다. 남궁일몽에게 걸린 돈은 금자 일 만 냥을 돌파한 상태. 화산파의 무연하가 5천 냥. 소림사의 정현이 5천 냥. 그리고 팽염호가 3천 냥 정도였다. 다른 후기지수들도 나와 비슷하거나 더 많았다. 용봉지회가 진행될수록 금액은 더 올라갈 것이다.

옆을 바라보자 여인들의 이름도 쭉 나열되어 있었다.

당옥정과 모용란이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내 옆의 당옥정은 천막에 적힌 그 천문학적인 액수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빠져 있었다.

- 옥정아, 넌 돈을 걸 거야?

- 으, 으응? 돈? 나 지금 동전밖에 없는데?

- 내가 빌려줄 수 있어.

- 아냐···. 나 이런 건 못하겠어.

- 그래? 알겠어.

그녀에게 도박을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더 말하진 않았다. 나는 만금전장에서 발행받은 어음을 떡하니 올려놓았다. 액수는 금자 95냥. 혹시 몰라 조금 빼놓은 것을 빼면 재산의 전부였다.

하지만 복면인은 그 커다란 액수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내 출입패의 번호와 금액을 장부에 기입하기 시작한다.

슬쩍 거대한 천막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스으으으···.

천막의 주위에 감돌던 자연의 기운이 내 이름 아래로 집중된다. 그리고 132냥이라 적힌 글자가 227냥으로 바뀌어 간다. 무슨 저런 진법이 다 있단 말인가? 격공섭물 같은 기예로 먹물을 제어하는 건가? 아니면 환법 중 하나인가? 천막에 가까이 다가가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공동을 떠나주셔야 합니다.”

아마 저것을 더 연구하지 못하게 막는 모양.

입맛을 다시며 떠나가려고 할 때였다.

“잠시만.”

복면인들 중 특이하게 여우 가면을 쓰고 중앙에 앉아 태평하게 부채를 흔들고 있던 인물.

그가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온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뇌왕검의 손잡이를 쥔다.

개회식

여우 가면의 인물이 일어서자 탁상에 앉아 있던 복면인이 모두 긴장한다.

단목장룡은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것은 당옥정도 마찬가지. 이 묘한 분위기의 장소에서 정파의 권역이라도 방심하는 것은 강호인의 태도가 아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무슨 일입니까?”

단목장룡의 말에 여우 가면이 움직임을 멈춘다.

가면을 써서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단목장룡의 허리를 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위협할 생각은 없소. 단지···.”

“단지?”

“냄새를 맡아봐도 되겠소?”

“···?”

단목장룡은 황당했다.

한다는 말이 냄새를 맡아봐도 되겠냐고?

여우 가면도 자신의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곤 더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냄새에 민감한 편인데, 당신의 냄새가 내 취향에··· 아니, 뭔가 묘한 것이 있어서 말이오. 가까이서 맡으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소. 그러니···.”

하지만 설명이 더 이상했다.

저걸 설명이라고 하는 건가? 단목장룡은 변태와 얽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거절합니다.”

“으음.”

여우 가면이 슬쩍 뒤를 돌아본다. 가장 최근에 천막이 수정된 것은 단목장룡. 지하 도박장에 방문하는 이들이 단목장룡에 돈을 걸긴 했지만, 단목장룡의 우승에 저리 많은 돈을 건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걸었다고 해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다. 누군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우 가면은 조바심이 났다.

이제까지 맡아 본 냄새 중 가장 기괴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매혹적이랄까. 이와 비슷한 냄새를 과거에 한 번 맡아본 적이 있었지만, 단목장룡의 냄새는 궤를 달리했다.

‘9할의 확률로 저 사내는 단목장룡. 하지만 1할의 확률로 그가 아니라면?’

여우 가면의 마음이 조급해진다. 만월의 규칙이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저 복면을 벗겼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이 깨지는 순간 만월의 존재가 흔들린다.

- 나중에 당신을 찾아가겠소. 이름을 알려주시오.

여우 가면의 전음에 단목장룡은 황당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한다.

“죄송하지만, 알려줄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다른 곳에서 돈을 걸고 있던 거한의 복면인이 다가온다.

“지금 뭘 하는 것이오? 만월 내에선 통성명이 금지되어 있을 텐데?”

“댁 말이 맞소. 하지만···.”

“하지만 뭐? 내가 꼬장 한번 부려줄까?”

꼬장이라는 말에 여우 가면이 멈칫한다.

사내의 말투로 보나, 만월 내에서 저리 큰소리치는 걸 보면 무림에서의 배분을 대강 예측할 수 있었다. 다른 손님들의 이목도 이곳에 집중되고 있다. 이제 대진표가 발표되었으니 점점 손님이 많아질 것이다. 이런 사건 자체가 만월에겐 큰 피해다.

“미안하오. 갈 길 가시오.”

여우 가면이 정중히 허리를 숙여 사과한다.

그 행동에 거한 사내가 혀를 차더니 떠나간다. 단목장룡은 그의 손에 무수히 많은 흉터가 새겨져 있는 걸 놓치지 않았다. 권법을 사용하는 자인 듯하다.

단목장룡 또한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당옥정과 함께 공동을 나선다.

등 뒤로 여우 가면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차피 내가 낸 어음을 파고들면 나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그런데도 직접 내게 누군지 물었다. 조바심이 난 것 같았어. 냄새가 궁금하다고? 그런···.’

냄새를 생각하다 보니 불현듯 한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는 분명히 사람마다 냄새가 다르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이 맡는 냄새와는 다른, 영적인 무언가를 읽는다고 했던가? 그녀도 단목장룡의 냄새가 좋다고 했었다.

천마신교의 신녀(神女).

영령.

단목장룡이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여인이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오른팔에 찬 옥 팔찌는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다.

슬쩍 뒤돌아 공동을 바라본다.

진법의 수준으로 판단컨대 이곳은 제갈세가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여우 가면과 마주하고 나니 다른 생각도 든다.

설마 신교와 연관이 있을까?

단목장룡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신교가 아무리 단일 세력 중 가장 강하다고 해도, 버젓이 정파의 권역에 도박장을 차릴 순 없어. 저 여인이 만약 신교의 인물이라면 저렇게 내게 접근해오지도 않았겠지.’

신교와 관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피를 봐야겠지.’

천마신교, 그러니까 마교는 단목장룡에게 복수의 대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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