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언 소협은 어떻습니까?”
“···방에서 전혀 나오시질 않네요.”
“그렇군요.”
언철진은 약속대로 용봉지회 동안의 이 장원의 권리를 모두 양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받지 않았다.
솔직히 장원의 권리를 받는 것은 의무 또한 받는 것이다. 손님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관리할 여유는 없었던 난 장원의 권리를 받지 않았다. 단지, 중앙 전각의 개인 연무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언철진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었다.
“아마 이번 일로 깨닫는 게 있으시겠죠. 단목 공자님 앞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 그렇지만··· 오라버니는 단목 소협을 무시하셨어요. 자신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하셨죠. 전 오히려 지금 단목 공자님께 호되게 당한 것이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요.”
언승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내게 패배하여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언가의 가주가 되기는커녕 소가주직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울 수도 있었다. 언가에서 인재는 언철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번 패배를 딛고 성장한다면, 과거보단 훨씬 나은 무인이 되어 있으리라.
솔직히 언철진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 나 때문에 수렁에 빠져 폐인이 되는 것보다는 그 계기로 더 나은 무인이 된다면.
그것이 더 좋지 않을까?
뭐 어찌 되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언승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당옥정의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린다.
그러자 언승지가 퍼뜩 자리에서 일어선다.
“전 이만 가볼게요.”
언승지는 당옥정이 온 뒤로 내게 다가오지 않으려 하는 게 보였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짐작은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 언승지를 잡을 생각은 없다.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용봉지회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셨으면 합니다.”
“단목 공자님도··· 꼭 우승하셨으면 좋겠어요.”
언승지가 떠나가고, 당옥정이 방에 들어온다.
“언 소저랑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언 소협에 대해서.”
“아···.”
언철진의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이런 반응이었다.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언철진이 어떤 추태를 부렸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을 상기하면 언철진을 비웃는 게 아니라··· 자신도 부끄러워지는 그런 기분이 되어버린다.
당옥정은 그 이야기를 하기 싫었는지 화제를 돌린다.
그녀는 누군가를 뒤에서 험담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참! 대진표가 나왔어!”
당옥정이 곱게 접은 종이를 꺼내 펼쳐 보인다.
이번 용봉지회는 총 64명, 그러니까 여자 32명 남자 32명이 본선에 진출한다.
아쉽게도 본선 진출자의 명단엔 이새붕이 없었다. 아무리 내게 무공을 배웠다 하더라도 짧은 기간 내에 본선에 진출할 정도로 성장하진 못했다. 그래도 예선 7번째 비무까진 갔었으니 부끄러워할 성적은 아니다. 이새붕은 그 계기로 더 무공 수련에 진지해졌으니 오히려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용봉지회의 탈락은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찬찬히 대진표를 훑어보았다.
본선 진출자들은 대부분 좋은 출신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오대세가와 구파일방 출신의 무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나 같은 중소 가문 출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첫 상대는··· 화산파의 무 소협이야.”
“그렇군.”
“···.”
슬쩍 고개를 들어 당옥정을 바라본다.
그녀는 나보다 더 긴장한 것 같았다.
“왜 네가 긴장하고 있어?”
“난 장룡 널 믿어. 하지만··· 무 소협 또한 절대 방심할 상대는 아니야. 내가 듣기로 이번 폐관 수련에서 또 하나의 경지를 넘었대. 또 화산의 장문인이신 환왕(幻王)께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어.”
“불안한가 보구나?”
“아, 아냐! 그런 게 아니라···!”
당옥정이 허겁지겁 변명하려 한다.
그녀의 걱정은 잘 알고 있었다. 32강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인 화산파의 무연하를 만난다. 예선을 치르는 동안 그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이 들려왔다. 내가 예선에서 화제가 되었다면, 그는 화음현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겠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히잉···.”
당옥정이 묘한 콧소리를 낸다.
그녀를 더 놀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다고 치고 당옥정의 대진도 그리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첫 상대는···.
‘언승지.’
당옥정이 패배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언승지도 만만치 않았다.
내 몇 마디 조언에 1년 동안 많이 성장했다. 언철진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그녀가 자신감을 되찾은 만큼 무공의 실력이 올라왔다. 그렇다고 당옥정이 패배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슬쩍 그녀에게 물었다.
“언가 무공의 파훼법을 알려줄까?”
단순히 권을 사용하는 이들을 상대하는 법이 아니라.
언가권의 파훼법. 당옥정은 내게 뇌공검법의 변형을 배우며 내가 무공 이론에 빠삭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은근한 물음에 당옥정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나 혼자서 하고 싶어. 네 도움이 싫은 게 아니야···. 정말! 정말 좋아···!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난 내 목표에 다가갈 수 없어.”
뭔가 의미심장한 당옥정의 말.
그녀의 의지가 느껴진다. 솔직히 그녀가 파훼법을 알려달라고 했다면 조금 실망했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나가자.”
“응? 나간다고? 어딜?”
“가야 할 곳이 있어.”
사실 처음부터 화산파의 무연하와 맞붙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화산파의 대제자인 그와 싸우기 전에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이런 대회에 음지의 오락이 빠질 수가 없지.’
배당이 오르기 전에 미리 돈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