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각에서도 무사부들이 경악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다른 이들에게 조언해주며 재미를 느끼는 그라면 분명히 이 상황을 설명해주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냥 가잔다. 복잡했던 단목청야의 머리가 더더욱 복잡해진다.
떠나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단목장룡.
‘뭐지?’
단목장룡은 두 사람이 왔다기에 더욱 신경 써서 무공을 펼쳤는데, 끝나자마자 남궁일몽과 단목청야가 떠나버리니 어이가 없었다. 뭔가 할 말이 있어서 이곳까지 온 게 아닌가?
‘이해할 수 없군.’
그리고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그 상황을 지켜보던 여인도 있었다.
바로 모용세가의 모용란.
그녀는 남궁일몽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단목장룡의 실력은 진짜다. 뭐 오늘 비무만 보고서도 그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남궁일몽이 얼마나 경이적인 수준의 무인인지 잘 아는 모용란으로선 지금 그의 반응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이런, 당옥정 이 약삭빠른 계집애가 순진한 척은 다 하더니···!’
하지만 모용란의 그런 흐뭇한 미소도 금방 사라진다.
당옥정이 단목장룡에게 후다닥 달려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모용란의 눈에 그녀의 행동은 여우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장룡! 축하해! 정말 대단했어!”
“아니야. 근데 남궁 소협이 온 거 봤어?”
“응?”
당옥정이 고개를 갸웃한다.
“난 너만 보고 있었는데···? 남궁일몽 소협을 말하는 거야? 왔었어?”
그렇게 말하는 당옥정의 표정에 단목장룡이 피식 웃는다.
그때 모용란이 비무장 위로 올라와 당옥정에게 말한다.
“어머, 넌 보지 못했나 보구나? 남궁 소협이 단목 공자님의 비무를 관전하러 왔었어. 평소처럼 조언하지 않은 걸 보면, 남궁 소협의 기준을 넘으셨나 봐요.”
그녀의 말에 단목장룡이 되묻는다.
“기준을 넘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천룡각에서 남궁 소협과 함께 기대주라 불렸던 사내들이 있죠. 무림오룡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는··· 화산파의 무 소협 그리고 소림사의 정현 스님. 평소 천룡각에서 누구에게나 조언을 아끼지 않던 남궁 소협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만은 함부로 다가가지 않았어요.”
“다가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뭡니까?”
“제 솔직한 생각을 말씀해드릴까요?”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껴서 먹는 법이죠.”
“아껴서 먹는다?”
“예, 산해진미를 먹어도 일상이 깃든 장소에서 먹는 것과 높은 층의 주루에서 동호(東湖)를 바라보며 먹는 건 다르겠죠. 단목 공자님은 남궁 소협에게 인정을 받으신 거예요.”
그에게 인정받았다···.
좋아해야 할까? 딱히 기쁘진 않았다.
‘그래도 나만 보여준 것이 아쉽긴 하군.’
단목장룡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당옥정이 삐죽 입을 내밀며 말한다.
“장룡은 산해진미가 아니에요.”
“그런 의미가···.”
“알아요. 전 남궁 소협의 태도가 기분 나쁠 뿐이에요. 전 사실 남궁 소협을 잘 알지 못하지만, 모용 언니의 말대로라면 장룡을 아래로 보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전 장룡이 남궁 소협에게 전혀 뒤질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뇌왕의 무공을 재해석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단목장룡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옥정은 맹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바보는 아니다.
단목장룡의 그러한 재능이 무림에 알려지면 천하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당옥정의 말을 들어주던 모용란의 눈썹이 꿈틀한다.
모용란의 입장에선 당옥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 여인은 당옥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순진한 척하는 행동에 뒤에는 앙큼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옥정이가 이 언니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구나.”
“···정말요?”
“당연하지. 단목 공자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정말 잘 알고 있단다.”
당옥정도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매일 붙어있으며 장룡을 지켜본 건 그녀 자신이다. 뭐 장룡을 좋게 생각하는 건 고마웠지만···.
‘왜 오늘따라 모용 언니가 얄밉지?’
두 여인이 서로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언니! 왜 저만 두고 가셨어요!”
저 멀리서 양주아가 달려온다.
그 모습에 모용란이 한숨을 폭 내쉰다. 몰래 나왔다. 기회를 틈타 단목장룡과 동행하려 했다. 그런데 양주아까지 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그렇게 세 명의 무림오화가 모이자 슬금슬금 사내들이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녀들과 말이라도 섞은 게 소원인 자들은 무림에 널려 있었다.
“당 소저, 처음 뵙겠습···.”
“양 소저, 저는 비월문의···.”
“모용 소저의 명성은 저 멀리 안휘성에도···.”
사내들이 각 여인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
단목장룡이 당옥정에게 말한다.
“옥정아, 가자.”
“죄송해요! 전 가봐야 해서요!”
당옥정이 포권 지례로 예를 표하고, 단목장룡을 따라나선다.
남은 사내들은 그런 당옥정을 쫓기보다 남아있는 두 명의 무림오화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타다닥!
모용란은 당옥정에게 질 수 없다고 생각하여 후다닥 걸음을 옮겼고, 그걸 본능적으로 따르는 양주아였다.
말이라도 걸어보려던 무림의 후기지수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터덜터덜 비무장에서 빠져 나왔다.
잔치의 시작
‘더 강해져야 해.’
당옥정은 두 손으로 검을 꽉 쥔다. 혹독한 수련으로 살이 터지고, 굳은살이 생긴 손. 본래 암기를 다룰 때는 손의 섬세함이 필요했지만, 검을 다루게 된 시점에선 섬세함보다는 힘이 필요했다. 물론, 뇌공검법을 배우더라도 암기술의 수련도 게을리하진 않았다.
단목장룡은 굳이 검 하나에만 모든 것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을 들었고, 당옥정을 그것을 충실히 따랐다. 그의 조언만 들으면 그녀 또한 독봉과 같은 고수가 될 수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급했다. 며칠 전 단목장룡의 비무를 관전하고 그와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장룡보다 더 강해져야 해.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당옥정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휘휘 저어 상념을 날려버린다.
약한 생각은 금물이다!
그녀는 정신을 집중하여 뇌공검법을 펼쳐낸다.
쉬익!
찌리잇···!
검이 특정한 방위를 가를 때마다 미약한 뇌기가 공간을 수놓는다. 과거 육왕 중 하나였던 뇌왕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아직 당옥정은 그러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단목장룡은 그것이 기의 낭비라 했다.
‘내력은 필요할 때만 쓰는 거야.’
검날이 적의 피부에 닿았을 때.
상대의 병장기와 부딪쳤을 때.
때마다 뇌기를 방출한다면 내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로했지만, 미래를 위해선 이러한 방식으로 수련하는 게 좋다고 했다. 당옥정은 그것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후우우···!”
그렇게 뇌공검법을 모두 펼쳐내자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손목이 후들거리며, 입에서 단내가 난다. 그래도 기분만은 상쾌했다.
‘좋아.’
그렇게 오전 수련을 끝내고 연무장을 나섰다.
당옥정의 시선에 한 여인이 눈에 보인다. 모용란이다. 그녀는 평소의 차림과는 달리 한껏 자신을 꾸민 상태였다. 무림오화 중 하나이니만큼 미모가 뛰어났지만, 적당한 화장으로 얼굴이 더 환해졌다.
“옥정아, 수련을 마치고 왔니?”
“네, 언니.”
사람을 가리지 않는 당옥정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용란은 거슬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고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생각하려 했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무슨 일 있으세요?”
“응? 아니. 왜?”
“평소보다 많이 꾸미신 것 같아서요.”
“호호, 티가 좀 나니? 단목 공자님은 이렇게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으려나?”
빠직.
순간 당옥정이 두 주먹을 꽉 쥔다.
“장룡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아요.”
당옥정의 말에 모용란의 표정도 굳어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야···.”
“그야?”
“저와 장룡은 친우니까요! 정말 친한 친우!”
“후후, 친우라 해서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 않니? 연인 사이도 아니고···.”
“언니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저흰 훨씬 더 가까워요! 우린 같이 목욕까지 한 사이라고요!”
“뭐···?”
당옥정이 흠칫한다.
자꾸만 단목장룡에게 다가가려는 모용란이 거슬렸다. 사실 모용란이 평범한 여인이었다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옥정은 그녀를 잘 알았다. 무림오화 중 가장 어른스러웠으며, 배경도 사천당문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모용 언니라면 나보다 더 장룡을 잘 보필해줄 것 같아···.’
그런 생각에 자꾸만 불안했다.
사실 그녀는 이제 장룡을 연모하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처음엔 독봉과 이야기하며 극구 부정했지만, 단목장룡이 떠나곤 그 마음을 인정했다. 처음 겪는 것이라 서툴긴 했지만 말이다.
“목욕을 했다고? 같이?”
“사실··· 목욕은 아니고··· 본가에서 같이 시술을 받았어요.”
이런 소문은 장룡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시술로 정정한다. 모용란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에게 말한다.
“옥정이 너 단목 공자님을 연모하니?”
당옥정이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올 줄은 몰랐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솔직하게 고백하면 마음은 편할 거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단목장룡보다 강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단목장룡은 그녀의 마음을 거절할 것이다.
당옥정은 그게 무서웠다.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자 모용란이 따스한 눈빛으로 말한다.
“내가 널 너무 몰아붙였구나. 미안해. 너와 싸울 생각은 없어. 네가 단목공자님을 좋아한다면, 내겐 그걸 말릴 권리가 없어. 그럴 생각도 없고. 하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내게 뭐라고 하면 안 돼.”
당옥정이 모용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묻는다.
“언니는 장룡을 좋아해요?”
“아니.”
모용란의 대답에 의아하면서도 뭔가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지는 당옥정이다.
그런 당옥정에게 모용란이 말을 이어간다.
“사실 잘 모르겠어. 너도 알겠지만, 혼인이라는 건 두 사람만 좋다고 하는 건 아니잖아? 가문과 가문이 서로 연을 맺는 거야.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해야 해. 그래서 알아보고 싶은 거야. 단목 공자님을. 내게 어울릴 만한 사람인지.”
모용란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단목장룡과 당옥정의 유대감은 정말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다. 당옥정이 모용란을 자꾸 밀어내려 한다면, 단목장룡 또한 그러리라 예상했다. 당옥정과의 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또 사천당문의 장녀와 사이가 틀어질 필요도 없었으니.
당옥정은 조금 충격을 받았다.
모용란은 그런 것까지 생각했던가?
맞다. 혼인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당옥정은 단목장룡의 옆에 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 있었다. 사천당문의 가주 당허도는 그녀가 25살이 되기 전에 혼인했으면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혼인? 장룡과···.’
사실 그런 현실적인 부분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지 그가 좋았고.
그와 함께 있고 싶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난 너무 어렸어.’
당옥정이 아랫입술을 깨문다.
그 모습을 본 모용란이 말을 잇는다.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우리 각자 나름대로 힘을 내보자. 정정당당하게. 응?”
“···아뇨.”
“···?”
모용란이 아는 당옥정이라면 그녀의 말에 수긍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저희끼리 이런 이야기를 해보았자 소용없어요. 현실을 말씀하셨지만··· 전 가장 중요한 게 마음이라 생각해요. 현실의 조건이 맞춰졌어도 두 사람이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그건 이루어질 수 없어요.”
“단목 공자님이 날 좋아하게 될 리가 없단 말이니?”
“그런 말은 아니에요. 아직 언니는 장룡에 대해 잘 몰라요. 제가 왜 이렇게 열심히 수련에 열중하는지 알면, 언니도 저처럼 생각하실 거예요.”
무슨 말이야?
모용란의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자신이 단목장룡에 대해 모르는 게 있단 말인가?
“전 이만 가볼게요. 장룡과 오늘 수련에 대해 담론을 나눠야 해서요.”
꾸벅, 인사하고는 당옥정이 떠나간다.
사실 지금 단목장룡에게 찾아가 차를 마시려 했지만 당옥정이 가면 오붓한 이야기는 힘들어진다. 그리고 지금은 장룡에 대해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더 알아봐야겠어.’
당옥정이 저리 말한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