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당옥정.
그녀는 무던히 노력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의 목표는 용봉지회에서 우승하는 것. 여인 중에서 가장 강해져야 한다. 꼭 그래야만 했다.
‘장룡이 설마 묵을 방을 구하지 못하진 않았겠지?’
당옥정이 고개를 젓는다.
단목장룡은 어딜 가나 잘 적응할 인물이다. 장보도 사건만 봐도 그는 어떤 일에도 휘둘리지 않았다.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같이 수련하고 싶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고 싶어! 그리고···!’
화끈.
찬 바람이 부는데도 그녀의 볼이 따스하게 달아오른다.
그녀는 당문의 호위 둘과 함께 말을 타고 용봉지회가 열리는 화음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시작된 예선
팽염호는 얼마나 수련을 했는지 그때보다 덩치가 더 커진 듯했다. 그리 작은 의복도 아니지만, 근육으로 옷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언철진이 팽염호에게 다가간다. 둘이 나란히 서 있으니 장관이 따로 없었다. 언철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한다. 그가 지금 장원의 주인이었으니까.
“동생, 오랜만이군.”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채로 서로의 어깨와 팔뚝을 매만진다. 근육을 중시하는 자들은 저게 인사법인 듯했다. 중원 무림에서 저리 인사하는 것은 두 사람이 유일하리라.
“크으, 어찌 수련했길래 이리 단단한가?”
“형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마친 두 사람.
팽염호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처음 봤을 때부터 사내답다고 생각했던 팽염호다. 뭐 그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들어보니 강호에서 평이 상당히 좋았다. 의협심이 넘치는 정열적인 사내랄까.
용솟음치는 활력이 느껴진다.
“오랜만이군, 장룡! 잘 지냈는가!”
“그래, 여기서 보니 반갑네.”
당연히 나는 언철진처럼 해괴한 방식으로 인사하진 않았다.
그렇게 팽염호와 시선을 마주하고 인사하고 있으니 양주아가 툴툴대며 말한다.
“나는 보이지 않나 봐?”
양주아의 말에 팽염호가 피식 웃는다.
“주아, 너도 있었구나! 모용 누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염호야. 넌 시간이 지나도 정말 똑같구나. 목소리가 큰 것도 여전하고.”
“자고로 사내란 대호와 같은 목청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암, 동생의 말이 맞네! 그런데 자네도 내 장원에 머무르려고 왔는가?”
언철진의 말에 팽염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예! 사실 객잔에 묵으려 했는데, 듣자 하니 제 친우 장룡이 형님의 장원에 묵고 있다 하여 이리 찾아왔습니다! 남는 방이 있다면 용봉지회가 펼쳐지는 동안 신세를 질 수 있겠습니까?”
팽염호의 말에 잠시 언철진이 멈칫하곤 나를 바라본다.
표정으로 대충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인다. 처음 만났을 때도 나에게 사고를 치지 말라니 으름장을 놓았던 언철진이다. 하지만 지금 그걸 지금 입 밖으로 꺼낼 정도로 우둔하진 않았다.
“당연하지! 방은 많다네! 란이와 주아도 본가의 장원에 묵기로 했으니 천룡각에서의 추억도 되새길 수 있을 걸세! 하하하하! 눈치 볼 것 없이 편하게 지내게! 내 자네를 친동생처럼 여기는 걸 알고 있겠지?”
“감사합니다! 베풀어주신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크하하!”
곰과 호랑이 같은 두 사내의 목청 대결에 여인 두 명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난 내공까지 활용해 그들의 목소리를 줄이고 있었다. 그만큼 범인과 비교할 수 없는 목청이다.
두 사람이 계속 대화하게 두고 싶지 않았는지 모용란이 묻는다.
“근데 단목 공자님과 네가 친우라고? 어찌 알게 된 인연이야?”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
모든 것을 알아내겠다는 눈빛. 양주아나 언철진도 그것이 궁금하긴 한 듯 시선을 보낸다.
“옥정이가 새로이 사귄 친우라 하여 성도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지요! 첫 만남에 서로의 사내다움을 알아보고 친우가 되기로 했습니다. 친우란 얼마나 오래 사귀었나보다 얼마나 깊이 사귀었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당옥정의 이름이 나오자 모용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그녀가 날 바라보며 말한다.
“아, 옥정이 덕분에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됐구나···. 소문으로 듣자 하니 옥정이와 친한 사이시라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당옥정의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사실 모용란이나 양주아가 당옥정과 그리 친한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예, 뭐···. 아무튼 이리 보게 되어 반갑군. 같은 장원에서 머무니 자주 볼 수 있겠어. 나중에 같이 식사나 같이하지.”
내 말에 팽염호가 조금 당황한다.
“으응? 오랜만에 만났는데 거하게 한잔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번에 내지 못했던 술 대결도 끝장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중에 하지. 조금 전까지 검을 수련하고 있었거든. 당분간 술은 자제할 생각이야.”
“···!”
팽염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러다가 탄식의 웃음을 흘린다.
“하··· 하하하···! 이거 내가 생각이 짧았군! 용봉지회가 코앞인데 술이라니? 내가 실언을 했어. 매년 있는 행사라 그렇게 생각했군. 내가 너무 가볍게 여겼어. 자네에게 사과하지! 미안하네.”
사과할 일도 아니었지만, 팽염호가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시원시원하다.
“미안할 필요는 없어. 나중에 식사나 같이하며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지.”
“좋네!”
얼핏 말투나 과장된 몸짓을 보면 언철진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팽염호는 자신이 부족한 걸 인정한다. 겸손하면서도 당당하다. 사실 그것이 공존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는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전혀 불안정하지 않았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다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팽염호의 얼굴을 봤으니 됐다.
어차피 장원에 머무를 것이니 나중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그렇게 모두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떴다.
* * *
단목장룡이 떠나가자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는다.
모용란은 이번 기회에 단목장룡에 대해 더 알아보려 했는데, 수련을 한다며 떠나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 괜찮게 느껴진다.
‘저 팽염호에게도 전혀 끌려다니지 않아. 염호가 깊게 사귄 친우라 하는 이유를 알겠어. 그리고··· 상당한 노력파인가 보네. 강한 이유가 있었어.’
사실 단목장룡이 무공에 재미를 붙이긴 했지만, 노력보다는 재능의 비중이 컸다. 그걸 모르는 모용란은 단목장룡에 대한 평가 방향을 바꾸었다. 무공 수련에 집중하는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건실한 사내로 말이다.
양주아도 훌쩍 떠나는 단목장룡에 왠지 모르게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이번 용봉지회에서 분명히 좋은 성적을 내리라 생각하며, 삼현마금을 받아 왔었다. 그런데 그것을 도둑맞은 것을 모자라,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사내의 무위를 직접 목격했다.
‘본선에서 바로 탈락하면 어쩌지···? 그건 절대 안 돼! 나도 지금이라도 수련을 해야 해.’
양주아가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팽염호가 말한다.
“형님! 이곳에 연무장이 있습니까?”
“있지. 개인 연무장 세 개 그리고 같이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장소가 하나 있다네. 바로 수련을 하려 하는가?”
“예! 저 친우를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는군요! 이젠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너무 기대됩니다!”
“단목 소협과 겨뤄본 적이 있나?”
“예, 힘 대결을 했었지요.”
“당연히 자네가···.”
“비겼습니다. 사실은 졌지만, 저 친우가 절 배려해주더군요!”
“네가 힘 대결에 졌다고? 팽염호가?”
씨익.
팽염호가 부리부리한 눈을 뜨며 웃는다.
“다음번엔 이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바로 수련하러 가야겠습니다! 모용 누님! 주아야! 나중에 보자!”
“잠시만···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식사를···.”
“오라버니, 다음에 해요. 단목 공자님도 없는데 굳이···.”
양주아가 평소대로 툭툭 말을 내뱉자 모용란이 그걸 막아 세운다.
“언 오라버니, 저녁에 같이 식사하도록 해요. 저희는 이미 객잔에서 배를 채우고 와서 아직 배가 고프지 않네요.”
“그래···? 크흠, 알겠다!”
팽염호쪽을 바라보자 그는 수련에 몸이 근질거리는지 연무장을 찾는 듯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거 원··· 장원의 주인보다 단목장룡이 더 주목받고 있으니···. 대체 저놈이 뭐기에?’
분명히 뜻대로 되었다.
무림오룡 한 명과 무림오화 두 명이 장원에 방문했다. 이제 손님이 끊이질 않을 게 분명하다. 그들의 영향력은 중원의 후기지수들에게 절대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거지?’
언철진의 시선이 단목장룡이 떠난 방향을 향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