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236)

* * *

그 시각 서안의 뒷골목.

머리끝까지 복면을 뒤집어쓴 사내가 연신 불안한 듯이 뒤를 흘끔거리며 달려나간다. 어둠과 동화되어 달려나가고 있는데도, 뒤를 쫓는 사내와 거리를 벌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경공과 은신술 잠행술이라면 중원 어디에서도, 심지어는 십만대산에서도 살아올 수 있다 자부했던 그였지만···.

‘씨발, 저딴 괴물이 왜 갑자기 나타나선···!’

삼현마금을 훔쳐내기 위해 산서성에서부터 양주아를 미행했던 사내.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에 도착하니 두 여인의 경계가 풀어진 것이 확연히 보여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삼현마금을 훔쳐 창문을 통해 달아나자마자 저 뒤의 사내가 미친 듯이 뒤를 쫓기 시작했다. 처음엔 여유롭게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흐읍!”

사내의 뒤를 쫓는 단목장룡의 경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 느낌이 흡사···.

‘뒈진 사부가 날 쫓는 것 같잖아!’

무영신투(無影神偸).

중원을 뒤흔들었던 대도(大盜)가 바로 그의 사부였다.

약조를 지키는 도둑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만약 내가 검법 수련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면, 옆 방 창문을 통해 누군가가 뛰어내리는 걸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당시에 난 내력을 끌어올려 기감을 넓혀가는 수련을 하고 있었기에 벽면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거무튀튀한 형체가 지면에 도착하여 어둠 속으로 달려가고 있는 게 보였다.

‘벽을 타고 내려갔다? 대단한 경공술이군.’

그런 의문도 잠시.

본능적으로 신형을 움직여 그의 뒤를 따른다.

편한 길을 놔두고 저리 어둠 속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니 너무도 수상하다. 더군다나 저 경공술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잡아서 심문한다. 그런 생각이 몸을 지배했다.

이미 거리가 벌어졌기에 따라잡기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정 거리를 벗어나자 놈의 움직임은 상당히 느려진 상태였다. 아마 뒤쫓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안심하고 있는 듯했다.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타닷!

기척을 최대한 숨겼지만, 속도를 내서 달려가는데 발소리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어둠 속에 먹힌 놈의 형체가 꿀렁거린다.

아마 뒤를 돌아본 모양이다.

놈은 속도를 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놀랄 수준의 경공술이다.

‘그래도.’

그렇다고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차근차근 그를 추적한다.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포기하지 않는 것. 도주하는 쪽이 더 지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긴장을 놓치진 않았다. 저 정도 수준의 경공술이라면 무공 실력 또한 상당할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추적했을까?

놈의 움직임이 상당히 느려진 것이 느껴진다. 담을 넘기도 하고, 민가의 지붕을 밟기도 했지만 난 꾸역꾸역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를 거의 따라잡았을 무렵.

“씨발! 그만 쫓아와!”

놈이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쳤다.

나도 걸음을 멈춘다. 혹시 모를 함정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

“대체 누군데 이렇게 지독하게 쫓아오는 거야? 응? 내가 너한테 뭔 잘못이라도 했냐? 양씨세가의 호위는 아닌 듯한데, 날 쫓아오는 이유가 뭐야! 어? 할 말 있으면 거기서 해!”

대답하지 않는다.

천천히 거리를 좁혀나간다.

“이 빌어먹을 새끼!”

놈이 다시 뒤돌아 도망치려 할 때.

단전의 내력이 폭발했다. 그 거대한 흐름이 온 세맥을 회전하며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파바밧!

“제기랄!”

십 장.

오 장.

일 장.

놈이 도주를 포기하고 내게 주먹을 휘두른다.

그런데···.

‘자세가 왜 이렇게 엉성해?’

경공술, 은신술, 잠행술.

추적하며 느낀 것인데 저 세 종류는 이미 일정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권법의 수준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준이 아니었다.

쉬익!

얼핏 맹렬해 보이는 주먹이지만, 너무 힘이 들어갔다. 허리는 크게 비틀려 있었으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주먹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내고, 놈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푹!

묵직한 감각이 손에 전해진다. 이놈은 공격을 흘려내지도 못했다.

“커허억···!”

동시에 놈에게 다리를 걸고 멱살을 잡는다.

순간 놈의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내려꽂혔다.

쿵!

“허억···!”

복부에 주먹을 맞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점혈로 움직임을 봉한다. 지금 놈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입술과 혀뿐이다.

복면을 벗기니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천상루에서 보았던 얼굴이 맞군.’

난 놈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조금씩 몸의 경련이 줄어든다.

“개··· 새···.”

잡혔는데도 욕지거리을 내뱉는 걸 보면 성격을 알만하다.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날 쫓아온··· 씨발···.”

“질문은 내가 한다.”

놈의 왼쪽 손에는 양주아가 등에 메고 있던 금이 들려져 있었다. 그걸 빼앗으니 놈이 발작하듯 입을 연다.

“내 거야···! 내··· 놔···!”

“이건 양씨세가의 물건일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양주아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굳이 주인을 찾아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이걸 찾아주면 양주아가 아니라, 양씨세가가 내게 빚을 지는 거다. 그만큼 그들에겐 소중한 보물이었으니까.

‘일단 이 문제는 제쳐두고.’

이놈이 누군지 알아봐야 한다.

균형이 전혀 맞지 않은 무공 경지. 경공술은 그리 빠르면서 권법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듯한.

“넌 누구지? 무영신투랑 무슨 관계냐?”

“너 어떻게···?”

사실 찔러본 것에 가까웠다.

무영신투의 무공은 무공서로 본 게 아니었다. 사실 그와는 청해성 서녕의 기루에서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언젠간 허름한 행색의 노인과 기루에서 술로 대작한 적이 있는데, 내가 마음에 든다며 자신의 정체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의 별호가 바로 무영신투였다.

기억을 돌이켜본다.

그때 분명히 무영신투는 내게 길에서 죽어가는 고아를 제자로 거뒀다고 말했었다. 특이한 이름이라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와 헤어질 때, 그의 경공을 잠깐 견식한 적이 있는데 나조차도 감탄했었다.

‘이거 참,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네 이름이··· 그러니까··· 방구였던가?”

“···미친. 그 좆같은 이름은 이미 버렸다고! 씨발, 어쩐지 잘 달리더라니! 설마 너도 노인네의 제자냐? 응? 그래서 날 쫓은 거냐? 그리고 넌 다른 무공도 배운 거야? 난 달리기밖에 안 가르쳐줬는데···! 빌어먹을 노인네···!”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방구.

뭐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내게 편했다.

“근데 이건 왜 훔친 거지? 삼현마금은 양씨세가의 보물이라 처분하기도 어려울 텐데? 네 정도의 실력이면 다른 물건을 훔쳐도 되지 않나? 아니면 음공이라도 익힌 건가?”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놈을 어깨에 들쳐메려는 순간.

“잠깐! 말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어! 너도 노인네의 제자라면 내 사형제가 아니냐! 그만 멈춰!”

“말해. 그냥 돈을 위해서 훔친 거냐?”

“내가 미쳤다고 돈 때문에 그걸 훔쳤겠냐? 차라리 금궤를 훔치고 말지! 너도 알 거 아니야! 그 미친 노인네가 마지막으로 맡긴 시련!”

“시련···?”

황당하다는 표정의 방구.

“뭐야? 넌 시련도 없는 거야? 나보곤 무조건 하라고 했는데? 그걸 해야만 진정한 대도가 된다고 했는데?”

이건 무영신투와 술자리를 하면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눈빛으로 욕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씨발, 노인네. 나보곤 무공에 재능이 없다고 하더니··· 재능 있는 놈에겐 시련도 안 줘?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그래서 시련이 이걸 훔치는 거다? 이걸 훔치면 뭐가 있는데?”

“뭐가 있어? 그냥 노인네와의 약조를 지키는 거지.”

“···.”

약간 어이가 없었다.

“이걸 사부에게 가져가면 무공을 알려준다고 했나?”

“뭔 개소리야. 10년 전에 죽는 사부가 어찌 무공을 알려주냐? 아니, 설마··· 넌 모르는 거냐? 하기야 내가 마지막에 땅에 묻어줬으니까··· 모를 수도 있겠네.”

순간이지만 사내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듯했다.

“에라이, 씨벌. 침 좀 뱉으면 안 되냐? 어차피 내가 도망치면 넌 금방 잡을 수 있잖아. 점혈 좀 풀어주라. 응? 사형아, 제발.”

나는 놈의 복면을 쭉쭉 찢어 길쭉하게 만든 다음 발목을 묶고, 점혈을 풀어주었다.

“되게 깐깐하네. 카아아악··· 퉷!”

놈은 바닥에 침을 뱉고는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다.

“무영신투가 죽어?”

“그래, 수련을 마치고 동굴에 와보니 죽어있더군. 노인네는 중원에 적이 많았으니까.”

그러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금제라도 걸려 있나? 하지만 양씨세가의 보물인 삼현마금을 훔쳐야지만 풀리는 금제? 그런 식의 세밀한 금제를 걸 수 있다면, 무영신투가 무림을 지배했어야 했다.

아니면 설마?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데 사부와의 약조를 지킨 거냐?”

“얻는 게 왜 없어? 내 마음이 편해지는데? 노인네가 남겨놓은 보물이 얼마나 많은데? 양심이 있으면 약조는 지키고 써야지.”

도둑치고는 참으로 양심적이다.

그가 진지한 눈빛으로 묻는다.

“날 죽일 거냐?”

“아니.”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내가 살육에 미친 광인은 아니다. 내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삼현마금을 훔치다 내게 걸렸을 뿐. 양씨세가 입장에선 당연히 죽이고 싶을 테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그의 저런 대답을 듣고 어찌 죽일 수 있겠는가?

“···정말이냐?”

놈의 기묘하게 변한 얼굴로 물었다.

“대신 삼현마금은 내가 가져간다.”

“그건···.”

“어차피 이걸 훔쳤으니 끝난 거 아니냐? 난 네 사형이니 실패한 게 아니잖아.”

“···.”

내가 객잔에서 급하게 뛰어나가는 것을 몇몇 이들이 보았다.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려면 삼현마금을 가져가는 게 좋다. 동시에 양씨세가에 빚을 지게 할 수도 있다.

삼현마금을 들고 일어서는 순간.

방구가 말한다.

“···고맙다. 사실 물건을 훔친 건 그게 처음이었어. 아마 그걸 그대로 동굴에 가져갔으면 한숨도 자지 못했을 거 같다.”

무영신투가 제대로 된 제자를 받은 거 같진 않았다.

도둑이 저리 담이 작아서야.

그는 날 뚫어지게 바라보고 말한다.

“날 살려준 은혜는 언젠간 꼭 갚는다. 나 방구··· 아니, 구방이 약속한다.”

방구에서 구방으로 이름을 바꾼 건가?

원래 이름을 알고 있으니 더 어이가 없다.

“어떻게?”

“응···? 그건···.”

“무명신투의 무공서 가지고 있냐?”

“있긴 한데··· 너 정도 실력에 그게 필요해? 아니, 애초에 다 익힌 거 아니냐?”

“다시 보고 싶어서.”

무명신투의 무공서라면 볼 가치가 있었다.

“지금은 없다. 동굴에 있어.”

“알겠다. 나중에 가져다 줘. 한번 보고 돌려줄 테니.”

나는 그의 발목을 묶은 찢어진 복면을 풀어주었다.

“···정말 이렇게 풀어준다고? 노인네의 보물이 탐나지 않아? 그 무영신투의 보물인데?”

보물이 뭐가 있는지 모르기에 대체 뭘 훔쳤을까 하는 흥미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굳이···?

더군다나 곧 용봉지회가 시작된다.

“네 것이 아니냐.”

삼현마금을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꽤 거리가 멀어질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육안으론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구방의 악바리 같은 외침이 들려온다.

“난 약조는 꼭 지킨다!”

죽은 무영신투와의 10년 전 약조를 지키는 놈이었다.

‘다만, 큰 기대는 없으니.’

약조를 지키지 않더라도 내가 그에게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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