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236)

* * *

천룡각.

무공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정파 무림의 학관이었다. 전 중원의 재능있는 후기지수들은 모두 이곳에 들어오려 애쓴다. 들어오기만 하면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무사부들의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정파 후기지수 중 최고라 불리는 이들.

대부분의 무림오룡이 이곳 출신이었다.

그리고 무림오룡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으며, 무림 역사에서도 몇 없었던 천재라 불리는 인물. 남궁세가의 둘째 공자인 남궁일몽. 그가 드디어 천룡각을 나선다.

“용봉지회에서 우승한 다음엔 암천제에 참가해볼까? 재밌겠지?”

암천제란, 해남도의 패자인 암천회가 주최하는 비무 대회로.

정파의 용봉지회와는 달리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틀에 박힌 정파 비무 대회의 상품과는 달리 파격적인 상품을 자주 내건다.

이미 남궁일몽은 용봉지회 우승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아무리 출신을 따지지 않고 참가자를 받는 암천제라 해도, 정파인이 우승한 역사는 없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가문의 위신이 서지 않겠는가?

“형님이 가신다면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당연히 남궁일몽에겐 많은 추종자가 따르고 있었다.

남궁일몽은 귀찮은 일은 질색이라 적당히 그런 이들을 제어할 이들을 수하로 삼아 곁에 뒀으며, 그 사람은 매년 바뀌곤 했다. 천룡각의 교육을 마치면 자신의 가문이나 문파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올해 새로이 그의 일등 수하가 된 사내가 있었다.

“청야가 따라와 준다면 좋긴 한데··· 괜찮겠어? 거긴 사파의 소굴이라고.”

“형님과 함께라면 사파 따윈 무섭지 않습니다.”

단목세가의 장남 단목청야.

그는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의 줄을 타고 있었다.

용봉지회에서의 첫 인연

그리 길지 않았던 지부 생활이었다.

고작해야 그들의 무공을 조금 봐주었을 뿐. 더군다나 처음부터 지부장을 비롯한 모두와 딱히 첫인상이 그리 좋진 않았었다.

‘그래도 정이 들긴 했던 것 같군.’

천마신교의 교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위치에 맞는 성격을 가지지 못했었다. 굳이 무공을 익혀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걸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이 세상엔 재밌는 일이 많았다고 여겼으니.

아무튼, 지부장 이하 지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지부장은 날 지부에 묶어두려 하지 않았다. 내 앞날에 행운만 빌어줬을 뿐. 언젠간 다시 만날 땐, 성도지부를 단목세가 지부 중 최고로 만들어놓겠다며 내게 약조했다.

과거의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문득 미소가 새어 나온다.

좋지 않은 일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니 그리 나쁜 기억은 아니다.

“도련님!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서안(西安)에 도착할 것 같아요!”

이새붕은 지부에 있을 적에 많은 것을 공부했다. 과거 의창현에서 사천성 성도까지 올 적에도 이새붕이 날 모셨다기보단, 내가 그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새붕 입장에선 그게 고역이었나 보다. 이렇게 여정을 떠날 때 필요한 지식을 서책이나 총관에게 배워 익혀두었다. 지도를 보는 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사천성 성도를 출발할 때는 어리숙한 모습이 많이 보였지만, 이제는 이 상황에 적응한 상태였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많은 걸 느꼈다. 재능만으로 세상을 쉽게 보고,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던 과거가 떠올랐다.

“서안에선 일정을 어떻게 잡을까요?”

서안에서 화산파가 있는 화음(華陰)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오랫동안 걸어왔으니 이틀 정도는 쉬자꾸나.”

“네, 도련님!”

성도를 떠나 온 지 거의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중원은 너무도 넓어서 걸어서 여정하기엔 참으로 멀다. 유가상단의 일을 통해 돈은 충분해서 말 두 마리쯤은 쉽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공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도에서 조금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새붕의 무공도 봐주기도 하고, 걸으면서 지적한 내용을 상기하라 했었다.

그리고 나는.

솨아아아···!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모르는 거대한 기류. 그 자연의 움직임으로 일어나는 많은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미동도 없는 바위.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새의 움직임.

수련을 거듭할수록 당용아의 공격은 갈수록 예리해졌었다. 그것을 피하려면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지금도 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보통의 무인들에게 이런 건 무공 수련이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내겐 꽤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감각을 일깨우며 걷다 보니 어느샌가 거대한 성이 보인다.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이었다.

서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용봉지회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정파 무림의 대잔치. 용봉지회가 열리는 곳은 화산이었지만, 서안에도 인파가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딱 봐도 무림인처럼 보이는 무리들도 많이 보인다.

거리에 보이는 수많은 젊은 무인 남녀들.

정파 무림인은 용봉지회를 통해 평생의 친우를 만든다고 들었다. 천마신교 서녕지부에 있을 적에도 그런 소식을 듣고 부러워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정파인이 되어 용봉지회에 참가하려 여기까지 왔다.

묘한 기분이다.

“당 공녀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넌 옥정이 무서워하잖아.”

“무, 무서워하다뇨···. 그런 게 아니라 그분 옆에 있으면 말이 안 나와요.”

“그게 그거지. 근데 옥정이는 왜?”

“그야···.”

아, 내가 젊은 무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당옥정을 그리워한다고 생각한 건가. 뭐 당옥정이 보고 싶긴 했다. 처음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같이 수련하며 살을 맞대다 보니 정이 들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착한 당옥정이었으니···.

본래라면 그녀와 같이 와도 됐었겠지만.

그녀는 뇌공검법 3성의 경지에 도달하기 전에는 출발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무공에 대한 열정이 상당했다.

“용봉지회에 왔으니 너도 인연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어?”

“이, 인연이요? 제가요? 전 무리에요.”

“네가 뭐가 어때서?”

솔직히 이새붕의 외모는 잘 생긴 건 아니었지만, 그리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딱 평범한 수준.

또한, 내게 무공을 배웠으니 그 실력 또한 부족하지 않았다.

이새붕이 시종이라고, 나만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어.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으란 말이야. 너는 절대 부족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새붕은 용기를 내서 주변을 훑어본다. 당연히 여인들 위주였고, 눈을 마주치면 홱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여인 공포증에 걸린 사내는 신교에 있을 적에도 몇 번 보았다. 이건 한순간의 계기로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객잔으로 가자.”

“네! 도련님!”

이새붕이 후다닥 객잔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확실히 사람이 많은 만큼 객잔 또한 자리가 없었다. 관도 근처에 세워진 객잔은 모두 예약이 되어 있었으며, 그건 가격이 저렴해 보이는 허름한 객잔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이새붕을 따라가다 말한다.

“새붕아.”

“도, 도련님. 죄송해요. 더 빨리 뛰어서 객잔을···.”

“굳이 이 근처의 객잔을 갈 필요는 없어.”

“예···?”

“중심부로 가자.”

이새붕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중심부로 가면 인파가 더 몰려있기에 당연히 그곳에 객잔도 만석이라 생각할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이새붕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중심부에 있는, 가장 높은 층의 객잔. 그곳은 아마 자리가 다 차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 하루에 은자 한 냥이요···?”

이새붕이 손을 부들부들 떤다.

점소이는 그런 광경을 많이 보았는지 조금의 비웃음도 없이 정중하게 답한다.

“예, 그렇습니다. 특실은 은자 두 냥입니다. 지금 특실은 마지막 두 자리만 남은 상태입니다.”

“그, 그럼···.”

내가 나서야 할 때다.

“특실 두 개 부탁하오.”

은자 네 냥을 점소이에게 건넨다.

“저희 천상루에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도련님··· 저는···.”

당연히 자신은 특실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난 고개를 젓는다.

“괜찮다. 돈은 많아.”

사실 난 돈 욕심은 그리 없었다. 더군다나 내 사람에게 쓰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새붕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더 거부하진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련님.”

“올라가자.”

그렇게 점소이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려 할 때.

한 무리의 일행이 객잔으로 들어오자마자 다른 점소이에게 다가갔다. 여인 둘과 딱 봐도 그 두 여인의 호위로 보이는 사내가 둘이었다. 호위 사내가 묵직한 저음으로 점소이에게 말한다.

“특실 두 개.”

“죄송하지만, 남아 있던 특실은 방금 모두 나갔습니다. 일반실은 자리가 남아 있기에···.”

점소이의 대답에 한 여인이 말한다.

“전 이곳 특실이 마음에 들어서 온 거예요.”

“주아야, 난 일반실도 괜찮아.”

“언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해결해볼게요.”

이새붕이 두 여인을 보고 홱 고개를 돌린다.

눈을 마주치지 않더라도 이새붕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면···.

‘외모가 출중하긴 하군.’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여인.

한 여인은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 여인은 뒤에 등에 악기 중 하나인 금(琴)을 메고 있었다.

무림인으로 보이면서 금을 메고 있다?

당연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주아라는 이름은···.

‘양씨세가.’

음공을 주로 다루는 이들. 양씨세가는 오대세가는 아니었지만, 단목세가와 비슷한 규모의 가문이었다.

“거기 서 계신 두 분?”

“예엡···?”

이새붕이 화들짝 놀란다.

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휘휘 저으며 그녀에게 답한다.

“예.”

“죄송하지만, 특실을 양보하실 생각은 없으신 가요? 제가 체질이 특이하여 편한 잠자리가 아니면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말이에요. 대신, 방을 내어주시면 두 배로 값을 치러드리겠어요.”

억지스러운 부탁이었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여인.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간 눈썹이 그녀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했다.

“저 도련님··· 제가···.”

이새붕에게 고개를 젓고는 여인에게 시선을 돌린다.

천상루 같은 고급 객잔에 묵을 생각을 하는 이들이면 당연히 배경이 좋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두 여인이 외모가 출중하다고 하여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행동한다면 저 사람들의 호감을 사긴커녕 호구 취급을 받을 게 분명하다.

“저희도 댁들과 똑같이 체질이 특이해서 말입니다.”

“네···?”

“그러니 죄송합니다. 저흰 오랜 여정으로 피곤해서 이만···.”

그렇게 다시 올라가려 할 때.

다다닥!

거무튀튀한 무복을 입은 사내가 굳은 얼굴로 내 앞으로 달려온다.

“소협, 저희 공녀님의 말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

“그만해. 냉추. 무력으로 상대를 겁박하는 건 정파인의 행동이 아니야.”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혀 죄송하다는 표정이 아니다. 금을 등에 멘 여인도 가소롭다는 듯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저 눈빛, 행동. 신교에서도 많이 보았다. 타고난 배경으로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업신여기는···.

더군다나 외모를 보면 사내들의 추파를 수없이 받아왔을 것이 분명하다.

‘저 여자가 옥정이와 같은 무림오화라니.’

당옥정과 비교하니 너무 차이가 난다.

옆의 하얀 의복을 입은 여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저런 여인과 어울리는 것을 보이 알만했다.

“양 소저, 소문과는 다르시군요.”

“절 아시는 것 같군요?”

맞군.

당옥정에게 무림오화에 대해 들었다. 양씨세가의 셋째인 양주아. 화려한 연주 솜씨로 사내의 혼을 빼놓고, 음공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아마 저 여인의 등에 있는 것은 양씨세가의 보물인 삼현마금(三絃魔琴)이 아닐까? 호위의 수준을 보면 그럴지도 몰랐다.

“그쪽은 어디의 누구인지 들어봐도 될까요?”

“단목세가의 단목장룡입니다.”

“단목장룡이요? 혹시 방계인가요?”

방계라는 걸 저리 직접 말하는 것을 보니 여간내기가 아니다.

보통 여인들 같으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무림의 평판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옥정이 양주아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그녀가 왜 그리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직계입니다. 굳이 이런 대화를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전 청야 오라버니와 친해요.”

“···.”

여기서 단목청야의 이름을 들을 줄이야.

“천룡각에선 서로 같은 무사부님께 가르침을 받았었죠.”

“어쩌란 말씀인지?”

“···네? 어, 어쩌란···?”

슬슬 짜증이 난다.

그래도 용봉지회에 왔으니 여러 무인들과 연을 맺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주아와 대화하다 보니 그 생각이 싹 사라진다. 모두가 당옥정 같이 착하지 않다. 그게 절실하게 와닿는다.

“형님의 이름을 팔 생각은 마십시오. 그것 때문에 방을 양보해줄 생각은 없으니. 그럼 이만.”

한 번 더 호위가 길을 막으면 실력행사를 하려 했는데, 단목세가라고 말해서인지 호위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혀를 차며 이새붕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직 화산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소란을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감각 수련으로 인해 예민해진 귓가에 두 여인의 대화가 들린다.

“저, 저···!”

“그만해, 주아야. 단목세가의 사람과 감정이 상해서 어쩌려고 그래? 요즘 청야 오라버니가 누구랑 같이 다니는지 잊었어?”

“알아요, 아는데··· 전 단목장룡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저 사람이 거짓말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이지 않아요?”

“잠시만 단목경이 셋째라고 하지 않았어? 혹시 둘째가 아닐까?”

“둘째?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용봉지회가 그리 순탄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팽염호나 위지풍을 만나고, 무림오룡이나 무림오화에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었다. 좋은 연을 만드는 기쁨을 또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기대.

하지만 오늘 무림오화 중 한 명인 양주아를 보니 그런 기대감이 싹 사라졌다.

불현듯 한 여인의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재미있군

천상루.

하루 숙박비만 은화 두 냥이 드는 만큼 확실히 좋은 객잔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방 안에 있는 종을 울려 점소이를 부를 수 있었고, 목욕할 때 뜨거운 물도 채워준다. 또 방이 넓은 것도 장점이었다. 제대로 무공을 수련하기엔 좁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서서 검을 휘두를 정도는 되었다.

이미 몸에 새겨진 감각이란 그리 쉽게 잊히는 건 아니었지만, 뇌왕검을 들고 정확한 자세로 휘두른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검을 잡는 게 중요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장은 없을지 모르겠으나, 이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훗날 크게 되돌아올 것이다.

재능만으로는 고수가 될 수 없다.

성도에서 수련하며 느낀 내용이었다.

‘나가볼까.’

적당히 감각을 일깨우고 난 뒤 방을 나선다.

점소이를 불러 방 안에서 식사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객잔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객잔에서 식사하는 자들은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기 마련이고, 어떤 이에겐 아무런 쓸모없는 정보라도 내겐 쓰임새가 있을 수도 있었다.

정말 특별한 경우긴 했지만, 장보도에 관한 것을 들었을 때처럼 말이다.

이새붕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간다.

청상루는 숙박으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객잔이었지만 그래도 음식 가격은 엄청 비싼 편이 아니었고, 음식의 맛도 훌륭했기에 1층엔 손님이 많았다.

그래도 숙박 손님을 위한 배려인지 기다리는 손님이 있는데도 몇몇 자리는 비워둔 상태.

점소이가 다가와 자리로 안내한다.

“공자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고맙소.”

자리에 앉아 점소이에게 요리를 주문하곤 주위를 둘러본다. 역시나 무림인이 꽤 있었다.

“어차피 우승은 남궁일몽 소협이 아니겠어?”

“예끼, 그걸 어떻게 확신하나? 화산검룡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했나? 이번 화산의 용봉지회를 위해 3년 동안 폐관 수련을 했다지 않나?”

“그래도 남궁 소협은 현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라 불리지 않나?”

“내 무림의 역사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는 거 알지?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불렸던 이들보다 대기만성하여 경지를 이룬 무인들이 천하제일로 평가받았다네.”

“그럼 지금은 남궁 소협이 우승한다는 말이군?”

“이 사람이! 답답하군! 그게 아니라···!”

용봉지회의 우승자가 누구일지 격렬하게 토론하고 있다. 두 사람 다 자신의 말이 옳다며 우기고 있었다. 그걸 듣다 보니 두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3년 동안 폐관 수련을 했다고는 듣지 못했는데··· 하기야 화산에서 개최되는 용봉지회니 화산의 대제자가 우승하는 게 그림에 맞긴 하지.’

뭐 양보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솔직히 크게 신경 쓸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세간에서 무림오룡을 정확히 어떻게 평가하는지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림오룡 다음엔 당연히 무림오화였다.

“난 양 소저의 음공을 견식하고 싶군! 대체 어떻게 악기로 상대를 공격하는 걸까?”

“사실 무공의 수위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 같았네. 무림오화 중에선 그래도 모용 소저가 가장 강하지 않겠나?”

“자네, 그걸 듣지 못했어? 제갈세가의 셋째 공녀가 남궁 소협과 비견될 만한 천재라는 걸?”

‘제갈세가라면··· 제갈교아를 말하는 건가.’

당옥정에게 듣기로 음침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 같은 여인이라 했던가.

무공보다는 진법이나 술법 등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그것들도 넓게 보자면 무공에 포함되어 있긴 했다.

그렇게 대화는 흘러 다시금 양주아를 입에 올리는 두 사내.

“양 소저의 금 솜씨를 들으며 술이라도 한잔한다면···. 헉!”

시선을 돌리니 어제 보았던 아름다운 두 여인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내의 탁자에 서 있었다. 일단 사내들은 두 여인의 얼굴에 놀라는 듯했다.

기어코 특실을 얻은 것일까?

양주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 사내들의 술맛을 돋우기 위해 금을 연주하진 않는답니다.”

그 말에 두 사내의 표정이 굳어진다.

“야, 양주아···.”

“이, 이런 곳에서 양 소저를 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양주아가 고개를 젓는다.

“전 전혀 영광이 아니네요. 제 금을 단지 흥을 돋우기 위해 듣고 싶다는 분들과 이렇게 마주하는 것도 거북하고요.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떠나주실 수 있으신 가요?”

“가, 가자. 욱철! 우리가 잘못한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두 여인의 뒤에 서 있는 흉흉한 기세의 호위 무사.

그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두 사내가 떠나간다. 순간 객잔에는 침묵이 가라앉았고, 양주아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인다.

양주아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콧방귀를 뀌며 날 노려보던, 그녀를 만류하는 건 백의를 차려입은 여인이었다.

저 여인의 정체를 대충 짐작하고 있지만, 확신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의 여인이 내 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어제는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네요. 저는 모용세가의 모용란이라 해요. 어제의 무례는 사과드릴게요.”

“언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까지 해요?”

“얘, 가만히 있어.”

모용란.

역시 그녀도 무림오화 중 하나가 맞았다. 오대세가 중 하나인 모용세가의 장녀. 무공 실력으로는 무림오화 중 으뜸이라 평가받는 여인. 당옥정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같이 다니는 사람을 보면 성격을 알 수 있지.’

그녀도 딱히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리 사과까지 하는데 뻣뻣하게 굴고 있을 순 없었다. 강직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더군다나 모용세가, 양씨세가와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보통 사소한 원한이 점점 커지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비위를 맞춰줄 생각은 없었지만.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이해해주셔서 다행이에요.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합석할 수 있을까요? 값은 저희가 다 치르도록 하겠어요.”

나 혼자였다면 고려해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쁜 여자 울렁증(?)이라는 해괴한 병을 앓고 있는 이새붕이 있기에 그건 무리였다. 나도 솔직히 두 여인과 같이 식사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저희끼리 긴밀히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흥, 저리 말하는데 굳이 같이 식사할 필요 있겠어요? 가요, 언니.”

모용란은 내 거절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쉽네요. 그래도 사과를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나중에 뵙도록 해요.”

“예.”

뒤돌아 떠나가는 두 여인.

양주아의 등에 있는 금이 눈에 들어온다. 저건 정말 그 유명한 삼현마금이 맞을까? 그걸 궁금해하고 있을 때, 묘한 감각이 엄습한다. 마치 누군가 날 훑어본 듯한 느낌. 

‘음···?’

고개를 돌리니 시선이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다.

누군가 날 보고 있었다? 아니면···.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었나?’

가만히 앉아 시선이 느껴졌던 방향을 응시한다. 총 열 명의 사람이 자리에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그중 무공을 익힌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다섯 명.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내가 느낀 것을 알고 바로 기척을 감추었다. 예사로운 실력이 아니야. 재미있군···.’

당용아의 무자비한 암기 세례를 견디며 발달한 기감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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