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말 아쉬워.’
당용아는 날이 선 암기를 던지며 생각했다.
단목장룡의 재능은 대단하다. 칠주야에 한 번 그의 수련을 도와주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과거엔 당옥정을 구해준 은인으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뇌왕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재목이라 여겼다. 단목세가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뇌왕의 검법은 구파일방의 절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가 이 날개를 단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다시금 공간을 꿰뚫는다는 뇌전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사랑스러운 조카인 당옥정과 함께 두 사람이 중원 무림을 뒤흔드는 모습을 상상하니 짜릿하기만 했다.
한 달이 지난 후.
당용아는 단목장룡의 재능에 확신하고, 그에게 뇌공검법을 배워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고, 단지 무공만 알려주는 관계. 그렇기에 단목장룡이 거절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착각이었다.
단목장룡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배우기 싫다는데 억지로 알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심지어는 당옥정에게 단목장룡을 설득해보라고 말해보았지만···.
“장룡이 알아서 잘할 거예요!”
이런 대답만 들었을 뿐.
당용아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단목장룡을 보고 있으니 문득문득 뇌왕이 떠오른다. 외모와 성격은 확연히 달랐지만, 저 재능만은 분명히 닮아 있었다.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단목 공자에게 내 과거를 투영할 순 없어.’
고작해야 한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철심이 박힌 나무 따위가 아닌 진짜 암기로 단목장룡을 공격하고 있다. 더군다나 살기까지 담아서 말이다. 7일 전만 하더라도 허겁지겁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제는 퍽 여유를 갖고 당용아의 암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고생했어요.”
“내당주님, 매번 감사드립니다.”
단목장룡이 예를 차려 그녀에게 인사했다.
의복이 완전히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던 당용아.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연무장을 떠나간다. 당옥정이 장룡에게 다가왔다.
“고모님께선 네가 그 무공을 꼭 익혔으면 좋겠나 봐.”
단목장룡은 한숨을 내쉰다.
사실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이건 정말 하늘이 내린 기연이라 할 수 있었다. 육왕 중 하나였던 뇌왕의 무공을 사제의 연도 맺지 않고 가르쳐준다는데 마다할 이가 누가 있으랴? 하지만 단목장룡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뇌공검법은 그의 머릿속에 다 들어있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고모님께서 저런 일로 노여워하실 분은 아니야. 단지, 네 재능이 너무 아쉬워서 저러시는 거야.”
“알고 있어. 내당주님이 좋은 분이시라는 걸.”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단목장룡과 당옥정이 비무를 시작한다.
매일매일 사천당문의 연무장에 들를 수는 없었다. 당용아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핑계로 사천당문에 들러, 당옥정의 뇌공검법도 봐주는 단목장룡이다.
당용아의 암기를 막아내며 지칠 대로 지친 단목장룡이지만, 오히려 그게 수련에 도움이 된다.
과거 사공천으로 살아갈 때는 무공을 익혀도 밖에서 제대로 활용한 적이 없었다. 신교에 대한 반발도 있었고, 무공에 흥미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렇게 한계까지 육체를 사용하는 쾌감을 즐기고 있었다.
“후우우···. 옥정아, 간다.”
“으응! 어, 얼른 와!”
당옥정이 묘하게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 * *
사천당문의 도움을 받으며 수련한지 일곱 달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무당산에서 펼쳐진 용봉지회에서 위지풍이 우승했다고 했나?’
용봉지회는 정파 후기지수들의 가장 큰 잔치. 위지풍의 위명은 이곳 사천성 성도까지 진동시키고 있었다. 처음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지금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나도 명예욕이 있었던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름을 떨치면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었다. 더 많은 무림인과 싸워보고 싶다.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고 싶다. 넓디넓은 중원에는 온갖 기인들이 즐비하다. 그들과 싸워보고 싶었다.
정파의 고수들을 넘어서 사파 그리고··· 천마신교까지.
‘이제 슬슬 지부를 떠날 때가 됐군.’
더 넓은 세상을 겪어볼 때가 왔다.
난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 신교와 서녕지부에선 작은 동네에서 서책으로 세상을 보았을 뿐. 지금도 의창현과 성도에서 중원 무림의 일부만 엿보았을 뿐이다.
‘용봉지회는 좋은 기회지.’
듣자 하니 이번에는 전대의 우승자인 위지풍을 제외한 모든 무림오룡이 용봉지회에 참가한다고 했다. 화산파에서 열리는 용봉지회. 우승상품은 화산파의 보물이라 불리는 자령단(紫靈丹). 무려 50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진 천하의 영약이다.
자령단의 효능은 단순히 내공을 얻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데, 그것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생기(生氣)를 품고 있었다. 자령단을 건강한 사람이 취하면 잔병치레가 없어지고, 자연적인 회복력이 증가한다고 한다.
뭐 실제로 취해봐야 알겠지만, 구파일방 중 하나인 화산의 보물이라 불리는 영약이니 그 가치는 감히 돈으로 매길 수 없었다.
‘옥정이에게 물어봐야겠군.’
용봉지회에 아는 것이 많이 없었으므로, 수련이 있는 날이 아님에도 당옥정을 찾아갔다. 개방에 의뢰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오랜 기간 살을 맞대며 그녀와 꽤 친해진 상태였다.
당옥정의 전각으로 가 기다리니, 그녀가 문을 쿵 열고 들어온다.
“후우욱···! 장룡!”
“어, 왔어?”
그녀는 방금 씻고 온 모양인지 좋은 향이 났다.
“오늘은 수련 날도 아닌데 무슨 일이야?”
“아, 물어볼 게 있어서. 용봉지회에 대해서 말이야.”
“아, 벌써 그렇게 됐구나···! 뭐가 궁금한 건데?”
우승 후보라 불리는 네 명의 사내.
전대 우승자인 위지풍을 제외하곤 네 명 모두가 용봉지회에 참가한다고 했다.
또 무림오룡 외에도 무림엔 유명한 후기지수들이 많았다. 무림오화에 포함된 당옥정이라면 그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만나본 적도 있겠지.
“이번 화산에서 개최되는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무림오룡. 그들에 대해서 미리 듣고 싶어서 말이야.”
아무리 내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방심할 순 없었다.
이제는 사공천일 때보다 육신의 재능이 훨씬 부족했으며, 무공을 익힌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으니까.
“으음, 사실 위지풍과 팽염호 말고는 그리 친하지 않아서. 십대 초반에 보았던 애들이 대부분이라···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해줄게.”
당옥정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궁세가의 둘째 공자 남궁일몽, 소림사의 제자 정현, 화산파의 대제자인 무연하.
그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인물은···.
“남궁일몽은··· 현 정파 무림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후기지수야. 13살이 되던 해에 검기를 다루고, 20살이 되었을 땐 검강을 발현했다고 해.”
“지금 남궁일몽은 몇 살인데?”
“올해 25살이 되었어. 그리고 10년 동안 천룡각에 머물고 있지.”
“10년?”
그런 재능을 가졌다면, 천룡각의 교육 정도는 금방 수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일부러 이론 교육에서 낙제를 받는다는 소문이 있어. 계속 천룡각 생활을 즐기려고 하는 거지. 천룡각은 또래가 많아서 생활하는 재미가 있다고 들었어.”
“게으른 천재인가···.”
“응, 그런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난 아무리 천재라도 그런 사람은 너무 싫어. 너처럼 재능도 대단하면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 무인이 멋있다고 생각해!”
당옥정의 뜬금없는 고백.
솔직히 양심이 많이 찔린다.
‘내가 사공천으로 살 때 어땠는지 보았다면··· 옥정이가 참으로 실망하겠군.’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욘 없었다.
“무림오화는?”
“무림오화? 왜? 걔들이 궁금해?”
당옥정이 묘한 눈빛을 보낸다.
“너랑 싸울 사람들이 궁금해서. 섬서성에 가기 전까지 대비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아···.”
그녀는 무림오화에 대해 줄줄 읊기 시작한다.
무림오화가 속한 문파는 신교에 있을 적에도 잘 들어보지 못한 문파이거나 무공서를 강탈하지 못한 가문이었다. 아쉽게도 당옥정에게 큰 조언을 해주진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당옥정의 경지는 계속해서 상승해왔으니 그녀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
당옥정은 신이 나서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녀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남궁일몽, 남궁세가의 역대급 천재라 불리는 사내라···. 궁금한데?’
궁금했다.
현 후기지수 중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그 사내가 어느 정도일지. 사실 용봉지회의 우승은 지나가는 관문이라 생각했지만, 조금 고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본가에 전서구를 보내야겠어.’
당옥정의 말을 들어보니 용봉지회가 열리기 적어도 두 달 전에는 숙소를 잡아놓는 것이 좋다고 했다. 본선에 진출하면 화산파에서 숙소를 제공해주지만, 그전에는 일절 그런 배려가 없다나?
거리가 꽤 먼 편이니 미리 출발하는 것이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