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236)

* * *

“으응? 옥정아, 움직임이 이상한데?”

사천당문의 내당주 당용아.

그녀는 원로원을 제외하면 사천당문의 2인자였다. 현재는 가주인 당허도보다 경지가 낮다고 하지만, 과거엔 그녀가 훨씬 실력이 앞섰던 때도 있었다. 그런 만큼 당용아가 당옥정이 펼치는 뇌공검법을 지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통 때의 당옥정 같으면 당연히 당용아의 말에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이렇게 움직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뇌공검법은 뇌전의 움직임을 딴 무공이잖아요.”

“그거야 맞는 말이긴 한데···.”

당옥정이 다시금 초식을 펼친다.

이번에는 무공서에 담긴 있는 그대로의 움직임이다.

그것을 모두 펼친 당옥정이 다시금, 조금은 방향성이 달라진 뇌공검법을 펼친다. 당용아는 그것을 몇 번 보다가 깨닫게 되었다. 후자의 움직임이 훨씬 매끄럽다. 그리고 더 날카로웠다. 본격적으로 뇌전을 활용할 단계가 된다면 후자가 훨씬 위력적일 듯하다.

당용아가 직접 검을 들고 뇌공겁법을 펼쳐낸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난 후.

당용아는 진심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옥정아, 너···.”

“고모님, 어떠세요?”

“너 천재였니···?”

사실 당옥정이 무에 재능이 없는 건 아니다. 사천당문의 공녀는 총 다섯 명. 당용아는 그중 당옥정의 재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기준에선 천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당용아 자신도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중원 무림에는 괴물 같은 이들이 즐비했다.

이미 온몸으로 현실을 경험했던 당용아.

그녀가 보기에 지금의 당옥정은 그 괴물 중 하나였다.

“저어···, 그래서 고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당옥정이 진지한 눈빛으로 당용아를 응시한다.

“뭔데?”

“뇌공검법은 저 혼자서 수련해보고 싶어요.”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나 보구나.”

당용아는 불쾌해하긴커녕 오히려 미소를 띠었다.

사실 그녀는 검보다는 암기술과 장법에 더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뇌왕의 검법을 다른 이에게 알려주고, 그걸 당옥정에게 가르칠 수는 없어 직접 뇌공검법을 익혀 당옥정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뇌왕의 맥이 끊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그런데 지금 당옥정을 보면···.

‘믿음이 가.’

당옥정의 성격이 밝고 명쾌한 것은 좋았지만, 사실 가끔 보면 철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당옥정의 눈빛은 어리기만 한 조카가 아니었다.

“그러렴. 대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상관없으니 고모를 찾아와도 된단다.”

당옥정은 그런 당용아가 고마웠다.

“고모님,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당옥정이 안겨 오자 당용아는 징그럽다는 듯이 밀어냈지만,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얘가!”

“헤헤···.”

당옥정을 토닥여주던 당용아.

그녀가 문득 묻는다.

“그러고 보니 단목 공자와 자주 만나는 듯하던데? 둘이서 나쁜 짓 하는 건 아니지?”

“자주 만나고 있긴 하죠.”

“···.”

오히려 당용아가 조금 당황했다.

이렇게 물어보면 평소의 당옥정이었다면 얼굴이 붉어지고, 그녀의 말에 반박해야 정상이다. 이러면 놀릴 맛이 없는데···.

“장룡은 정말 배울 게 많은 친우에요.”

친우라고?

선을 확실하게 그은 것일까? 조금 아쉬웠다. 옥정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옥정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당용아가 불쑥 묻는다.

“친우?”

“응, 아직은요.”

“아직은···?”

당옥정은 묘한 미소를 짓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당옥정은 단목장룡과 약조했다. 그와의 수련은 절대 다른 곳에 발설하지 않기로. 아무리 어릴 적부터 자신을 지극히도 예뻐해 준 고모님이라 해도 말이다.

묘하게 어른스러워진 당옥정.

그게 당용아의 잠들어 있던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녀는 또 한 번 돌을 던져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크기를 더 키워서.

“그래도 혼인하기 전에 사고를 치면 안 된다?”

“···네?”

아무리 최근 성장한 당옥정이라 해도.

그 말엔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미끼를 문 것을 확인한 당용아.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사고 모르니? 내가 정확한 단어를 말해줄까? 교···.”

“무,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은 친우라니깐요!”

당옥정이 당용아를 밀어낸다. 

하지만 밀릴 그녀가 아니었다. 더욱 강하게 당옥정을 끌어당기며 귓가에 속삭인다.

“꺄아앗! 전 몰라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렇게 연신 당옥정을 놀려대던 당용아.

그녀가 불쑥 묻는다.

“참,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니?”

“아, 그게···.”

“뭐든 말하렴. 내가 네 부탁을 거절한 적이 있었니?”

당옥정은 단목장룡과 함께 수련하여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이 그녀를 도와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목장룡은 그녀에게 살기를 담아 암기를 던지라 했었다. 살기(殺氣)를 감지하고, 감각을 예민하게 하는 수련이라나? 당연히 당옥정은 최선을 다해 그의 수련을 도왔지만 이젠 한계에 도달했다. 당옥정의 암기술이 성장하는 것보다 단목장룡의 성장이 훨씬 빠르다.

단목장룡이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당옥정은 장룡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저와 장룡의 수련을 도와주셨으면 해요!”

사천당문의 내당주.

단순히 암기술로는 사천당문의 가주와 동급이라는 고수. 그런 그녀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건 당문 내에서 당옥정이 유일했다.

드러나는 재능

당용아는 칠주야에 한 번 단목장룡과 당옥정의 수련을 도와주기로 했다. 듣기로는 내년의 용봉지회를 위해 두 사람이 수련하는 것이리라 들었다. 청성의 장로였던 청성산인. 사실 평범한 장로보다 급이 떨어졌다고 해도 그를 이긴 것은 사실이었다. 당용아는 단목장룡의 재능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능은 재능일 뿐이다.

사천당문의 내당주이자 독봉이라는 별호를 가진 당용아.

지금도 무림에 나서면 그녀에게 당했던 마두들이 참으로 많았다. 당용아가 한창 강호를 활개하던 시절엔 정파와 사파의 관계가 지금처럼 평화 조약으로 묶여있지 않았을 때였기에 걸핏하면 싸움이 벌어지곤 했었다.

수많은 실전으로 단련된 당용아.

어여쁜 후배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가 긴장할 이유 따윈 없었다.

그녀가 가벼운 마음으로 연공실을 찾아왔다.

“단목 공자님, 오랜만이네요.”

“내당주님, 이리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즘 옥정이랑 자주 만난다면서요?”

“예, 옥정이 덕에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옥정이가 많이 도와줬나 보군요.”

뒤를 돌아보자 당옥정이 가슴을 내밀고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볼을 꼬집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단목장룡 앞에서 그녀를 애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

당용아가 단목장룡에게 묻는다.

“암기를 피하는 수련을 하고 있었다고 들었어요.”

“예, 그렇습니다.”

“옥정이 작정하고 던진 암기도 피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어떻던가요?”

“예, 사천당문의 암기술이 얼마나 매서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암기를 막거나 피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특히 당옥정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사천당문의 수련도 나쁘지 않았지만, 단목장룡이 직접 주체가 되어 그녀의 단점을 하나하나 짚어주니 성장이 느릴 리가 없었다.

당옥정은 재능도 충분했고, 노력 또한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성장보다 단목장룡의 성장이 더 빨랐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당옥정이 먼저 독봉께 부탁드릴 줄은 몰랐네.’

장룡이 힐끔 뒤를 바라보니 당옥정이 앙증맞은 미소로 화답한다.

“지금 옥정이와 단목 공자님이 하는 수련 방식은 당문의 전통적인 수련 방식이에요. 암기를 맞아봐야 사용할 줄도 안다는 어르신들의 논리로 만들어진 수련이었죠. 다만, 수련 중에 사고를 당하는 이들이 많아져 요즈음엔 당문 내에서도 잘 하지 않는 수련이랍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것까지는 단목장룡도 알 수 없었다.

당옥정 또한 최근 방식으로 수련했던 터라 그런 과거가 있었는지 몰랐었다.

“어느 정도로 해드릴까요?”

그녀는 수련의 강도를 묻는 것이다.

다칠 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할 것이냐.

적당히 맛만 볼 것이냐.

당연히 단목장룡의 대답은.

“다치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최대한 실전처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호오···? 실전이요?”

당용아가 뒤를 돌아보니 당옥정이 불안한 눈초리를 하고 있긴 했지만, 입을 열진 않았다.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단목장룡의 재능. 당옥정은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고, 온몸으로 겪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장룡이 다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뇌리에 맴돈다.

‘고모님은 한번 시작하면 적당하게 끝내주지 않으시는데··· 하지만··· 장룡이라면 다치지 않을 거야. 분명해.’

당용아는 진한 웃음을 지으며 단목장룡을 응시했다.

“좋아요. 그럼 최대한 실전처럼 해드리죠.”

그건 오히려 단목장룡이 바라던 바다.

“다만, 처음부터 날이 선 암기로 하기엔 무리가 있겠죠. 그래도 단목 공자께서 어느 정도 실력인지는 알아봐야 할 테니까요.”

그녀가 길쭉한 나무 막대를 꺼낸다.

“처음엔 이걸로 하죠. 겉은 나무지만 철심이 박혀있기에 무게는 꽤 나간답니다. 이게 급소에 맞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열심히 피하셔야 할 거예요.”

당용아가 거리를 벌린다.

단목장룡은 뇌왕검을 뽑았으며, 그 모습을 본 당용아의 눈빛이 흔들린다.

‘후우, 아무리 실전처럼 한다고 했으나 처음부터 심하겐 할 필요는 없겠지.’

당용아는 단목장룡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실전처럼 진심으로 암기를 던진다면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단목장룡은 바닥에 쓰러질 것이다. 그렇게까진 하고 싶진 않았기에 처음엔 적당히 힘을 조절하려 했다.

당용아가 위에서 아래로 손목을 긋자 눈 깜짝할 사이에 나무 막대가 쏘아져 나간다.

이 정도는 단목장룡이 막아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당용아였다.

그리고.

스읏.

작은 충격음이 들림과 동시에 막대가 바닥에 떨어졌다.

“응?”

당용아가 고개를 갸웃한다.

일부러 약하게 던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발은 뗄 줄 알았건만···.

‘상체만 움직여서 막아냈다? 아니, 막아낸 게 아니라··· 흘려냈어.’

무게와 속도가 실렸으니 철검과 제대로 부딪쳤다면 꽤 큼지막한 소리가 나야 했다. 하지만 검과 나뭇가지가 부딪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더 컸다.

그 말인즉슨.

‘이미 어디로 올지 알고 있었다? 하기야 내가 정면에서 막대를 던졌으니까··· 그리 어려운 건 아니긴 하지만···.’

당용아는 다시 막대를 던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담기는 힘을 키워서.

투욱.

툭.

투욱

툭.

그렇게 열 번을 내리 막대를 던진 당용아.

‘뭐지?’

이질감이 느껴진다.

단목장룡이 청성산인에 이겼다는 사실은 그녀도 안다. 그렇기에 결코 실력이 낮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청성산인이 약에 취해있었다는 걸 알았기에, 단목장룡의 실력을 최대 절정 수준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너무 여유롭잖아?’

그를 배려하여 힘을 아낀 게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너무 정직하게 공격해서 그런 거겠지?’

당용아는 이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도 막대를 던지기 시작했다.

투욱.

툭.

투욱.

“···.”

전혀 달라진 것은 없다. 단목장룡은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려 당용아의 움직임을 쫓았지만, 전혀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보법을 활용하지 않고도 이 정도는 막아낼 수 있다는 듯이.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용아의 내부에 승부욕이 끓어오른다.

그녀는 여인의 몸으로 그 험한 강호에서 독봉이라는 별호까지 쟁취한 여자였다.

‘과연···!’

당용아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파바밧!

당용아의 소매에서 두 개의 막대가 동시에 출수된다.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반대편으로 달려나갔다. 이제까지 적당히 예측할 수 있도록 막대를 던져줬다면, 이제는 변칙을 준다. 달리는 중에도 막대를 던졌다.

툭.

투우욱.

막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반대편으로 도착한 당용아의 시선이 단목장룡의 발로 향한다.

“···!”

이번에도 단목장룡은 발을 전혀 떼지 않았다.

‘무슨···.’

사실 단목장룡에 입장에서도 보법을 펼치면 더 수월하게 당용아의 암기 세례를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스스로 움직임을 제약하고 있었다. 아무리 수련이라고 하지만 실전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제약을 두는 것이 수련에 더욱 도움이 된다.

“이제 정말 제대로 해야겠어요. 제가 단목 공자님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듯하군요.”

당용아가 막대가 가득 담긴 봇짐을 허리에 맸다.

“예, 부탁드립니다.”

단목장룡이 수월하게 막아내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당옥정도 다시금 숨을 참는다.

“흡!”

당용아의 움직임이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막대에 담긴 힘도 마찬가지.

투웅!

투우웅!

찰나의 순간, 여러 개의 막대가 쇄도한다. 이제까지처럼 흘려낸다면 모두 막아낼 수 없었다. 검과 목재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무장 내에 울려 퍼진다.

단목장룡이 내공을 끌어올린다.

순수한 육신의 힘으로는 그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퉁!

쿠웅!

투우웅!쿠우우웅!

충격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처음엔 어린 후배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정도라 생각했던 당용아도 점점 진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에 딱 달라붙은 단목장룡의 발이다.

‘아직 발을 떼지 않는다 이거지···!’

내당주가 되며 깊숙한 곳에 박아두었던 승부욕.

그것이 용솟음치며, 단전의 내력이 손끝으로 전달된다. 본래 내공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하고자 했지만, 이대로는 단목장룡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 출수는 이제까지와 전혀 달랐다.

당용아는 기척을 전혀 숨기지 않고 사방으로 뛰어다녔는데, 이번엔 은신술까지 써서 소리와 기척을 감추었다. 암기란 것은 본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던져야 위력이 배가 되는 것이다.

쉬이이잇-!

‘이런···!’

그것을 던지자마자 당용아가 아차했다.

이 상황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진심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떠나간 암기 따위를 내공으로 회수할 재주는 그녀에게 없었다.

“···!”

“어엇···!”

두 손을 꼭 쥐고 수련을 지켜보던 당옥정도 당황한다.

그녀의 눈이 한 번 깜빡이는 순간.

카아앙-!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음이 연무장에 울려 퍼진다.

“···!”

이제까진 나무를 쳐내는 수준에 그쳤지만, 이번엔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단순히 검면으로 쳐낼 수가 없었다.

단목장룡이 뇌왕검을 세워 목재를 갈랐다.

그리고 검과 목재 내부에 박혀있던 굵은 철심이 부딪친 것이다. 단목장룡은 숨을 삼켰다. 이걸 막지 못하고 급소에 맞았다면···.

‘역시 내당주님의 암기술은 확실히 다르네. 이런 투박한 암기가 이 정도인데, 정말 날을 세운 암기에 살기를 담아 던진다면···.’

손바닥이 얼얼했다.

그렇지만 검을 놓거나 하진 않았다. 긴장을 놓지 않고 당용아를 바라본다.

당용아는 저도 모르게 단목장룡의 하체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그가 발을 떼고, 신형을 움직였다.

‘드디어···!’

두 주먹을 꽉 쥐는 당용아.

그러던 중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대체 왜 좋아하는 거지?’

아무리 단목장룡이 미래가 창창한 후배라 해도, 결국은 후기지수일 뿐이다. 사천당문의 내당주이자 독봉이라는 별호를 가진 당용아는···.

‘내가 단목 공자의 발을 떼게 했다고 기뻐했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내당주님?”

단목장룡의 말에 당용아가 정신을 차린다.

“잠시만요. 쉬었다가 하죠.”

“예, 알겠습니다.”

단목장룡은 검을 쥐고 눈을 감았다. 사실 완벽하게 그녀의 공격을 막아낸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암기의 움직임을 놓쳐 지척에 도달했을 때, 검을 휘둘렀다. 암기를 제대로 막아내려면 그 전부터 감지해야 한다.

‘아직 감각이 부족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오늘 수련에서 날아왔던 암기의 방향과 당시에 느꼈던 감각이 어떠했는지 복기한다. 수련을 되돌아보는 것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 단목장룡을 지켜보던 당용아.

“옥정아, 단목 공자가 네 암기를 피하면서 발을 뗀 적이 있었니?”

과거를 돌이켜보던 당옥정.

그녀가 생각을 마치고 답한다.

“어··· 처음에는 계속 보법을 펼치며 제 암기를 막거나 피했어요.”

“그러니까 계속 성장했다는 말이지?”

“네, 장룡의 재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더라고요.”

당용아가 눈을 감고 연무장 중앙에 서 있는 단목장룡을 바라본다.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그는 훨씬 더 재능이 있었다.

마침 단목장룡의 손에는 뇌왕이 사용하던 검 중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그것을 본 당용아는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이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단목장룡은 누군가의 후계자가 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또 다른 천재

“그래, 묵위. 현재 성도지부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현 단목세가의 가주인 단목무광이 묻는다.

그의 말에 묵위가 알아낸 것을 모두 보고한다. 보고가 이어질수록 단목무광의 표정엔 놀람과 의아함이 번져나갔다.

“그 일이 벌어진 이후, 둘째 공자님께선 가끔 사천당문에 들려 1공녀인 당옥정과 함께 무공을 수련한다고 합니다. 성도지부장은 둘째 공자님을 극찬하더군요.”

“잠시만. 당가의 여식은 그렇다고 쳐도··· 청성산인? 내가 아는 그 청성산인이 맞는가?”

“예, 맞습니다. 본래 속가제자들의 입문 무공을 전담하여 가르치던 자였는데··· 절정에 이르고 속가제자들을 잘 성장시킨 공을 인정받아 청성의 장로가 된 인물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제는 파문당하여 청성옥에 갇혀 있다고 합니다.”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청성의 장로가 아닌가?

구파일방의 장로라면, 최소한 절정 이상은 올라와 있을 터.

그런데 단목장룡이 그를 이겼다고?

‘태상가주님의 말씀대로 정말 장룡이가 철이 든 건가? 아니, 철이 들었다고 해도 이 일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단목무광은 기억하고 있었다.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단목세가의 배경을 내세워 약자를 핍박하던 그 추악한 모습을 그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때 단목무광은 자신이 아들을 잘못 키웠다는 걸 깨달았다.

고작 기녀 따위의 사랑을 얻고자 가문의 돈을 훔쳐 기루에 모두 탕진했던 날, 단목장룡은 가문에서 쫓겨났다. 단목무광은 어미를 잃은 아들이 불쌍하여 호적까지 파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는 단목세가의 직계였으니까.

그 후에 조용히 지내다 싶더니 단목세가의 검법을 한낱 기녀의 구경거리로 만들었을 땐, 정말로 단목장룡을 쫓아내려 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가 쓰러졌다고 했을 땐, 그래도 슬프긴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을 덜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 단목장룡이··· 지금은 성도잠룡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단다.

“이제부터 장룡과 관련된 일은 자네가 직접 보고하도록 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예, 알겠습니다.”

가주 단목무광은 더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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