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236)

* * *

단목세가 성도지부.

갑자기 찾아온 두 명의 무림오룡.

당연히 난리가 났다. 문지기는 헐레벌떡 내게 달려와 그들이 찾아왔다고 내게 알렸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땐 수련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무림오룡은 보는 것은 처음이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같이 수련하고 있던 이새붕과 함께 접객실로 향한다.

그렇게 문을 열고 두 사람의 얼굴을 마주한다.

의복이 터질듯한 근육을 가진 거한의 사내.

그리고 얼굴에서 광이 나는 사내.

두 사람의 얼굴을 본 이새붕이 화들짝 놀란다.

“왜?”

이새붕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인다.

“당 공녀님과 같이 있던 공자님들이에요···.”

무림오룡이 본 단목장룡

‘당옥정이 말했던 그 친우들인가 보군.’

당옥정도 무림오화 중 하나다.

그녀는 사천당문의 제 1공녀였다. 그렇기에 그녀와 친한 친우들이 무림오룡이라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왜 날 찾아왔을까? 당옥정은 안 보였고, 두 사람만 지부에 방문한 듯했다.

“반갑소! 난 하북팽가의 팽염호라 하오!”

팽염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 인사했다. 어찌나 근육이 큰지 옷이 터져나갈 듯하다. 나도 키가 작은 편이 아닌데, 나보다 머리 반 개 정도는 큰 듯하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미소를 지은 채로 날 바라보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전 위지세가의 위지풍이라 합니다.”

다음으로 내게 인사하는 위지풍.

깊은 눈과 오뚝한 콧날. 뭔가 표정이 조금 굳어있는 듯했지만, 확실히 잘 생겼다. 무림오룡에 관한 것은 대충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는데, 확실히 소문만큼이나 곱게 생긴 사내였다. 전형적인 귀공자라고 할까?

“단목장룡입니다.”

내가 인사하자 팽염호의 시선이 무복을 입은 이새붕에게로 향했다.

이새붕이 깜짝 놀라 허리를 숙인다.

“저, 저는··· 도련님의 시종인 이새붕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새붕이 잔뜩 긴장하여 인사하자 팽염호가 껄껄 웃는다.

“내 얼굴이 험악하게 생겼다곤 하나 그리 무서운 사람이 아니오.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되오! 편하게 하시오, 편하게! 하하하하!”

“하하···.”

어찌나 목청이 큰지 내부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새붕은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로 머리를 긁적였다.

“앉으시죠.”

나와 이새붕이 자리에 앉으니, 팽염호와 위지풍 또한 자리에 앉는다.

“이리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위지풍이 내게 사과한다.

수련을 방해받은 건 맞지만, 이렇게 사과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날 찾아온 이유는 알아야 했다. 일면식도 없는 자들이 지부까지 찾아올 정도면 뭔가 있을 테니까.

“그런데 두 소협께선 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그 말에 팽염호가 말한다.

“사실 큰 이유는 없소! 당옥정과 친우라 하여 얼굴이나 볼 겸 찾아온 것이오! 친우의 친우는 벗이 아니겠소? 하하하!”

정말 그런 단순한 이유인가?

뭐 팽염호의 말투나 행동을 보면 어떤 성격인지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무림오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만큼 연을 만들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군요. 이리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하하, 내가 더 반갑소. 당옥정이 어찌나 칭찬을 아끼지 않던지 보고 꼭 보고 싶었소!”

“옥정이가 말입니까?”

“그렇소! 하하하!”

웃음을 지우지 않는 팽염호와는 달리, 위지풍의 얼굴은 더 굳어지고 있었다. 당옥정의 이름이 나오자 더 굳어진 듯하다.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이것도 인연인데···.”

팽염호가 내게 손을 내민다.

어찌나 혹독하게 수련을 했는지 손에는 온갖 흉터와 굳은살이 가득했다. 하북팽가는 도(刀)를 주로 사용하는 가문이었다. 그런데 손을 보면 권법이라도 익힌 것 같다.

“힘 대결을 해볼 수 있겠소?”

“예?”

힘 대결?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싶었다. 팽염호에 옆에 앉은 위지풍이 말린다.

“염호, 처음 보는 분에게 무슨 무례야? 힘 대결이라니?”

위지풍 또한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팽염호는 당당하게 말한다.

“사내끼리는 서로의 힘을 알아보며 우애를 쌓곤 하지! 단목 소협의 첫인상이 좋으니 얼마나 힘이 강한지 알아보고 싶군! 옥정이를 지켜줄··· 끄윽, 왜 꼬집는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위지풍이 내게 사과한다.

옥정이를 지켜? 어쩌면 두 사람은 친우로서가 아니라 사내로서 만나러 온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하, 하하하···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워낙 이런 것을 좋아해서 말입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

“아닙니다. 팽 소협께선 참으로 밝은 성격이군요.”

“내가 그런 칭찬을 많이 듣는 편이오! 하하하!”

슬쩍 손을 내밀었다. 팽염호의 손은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억세고 단단했다.

팽염호와 시선을 마주한다. 그는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손을 잡았으니, 말리던 위지풍도 한숨을 내쉬며 물러선다.

“후우···.”

“준비됐소?”

“어떻게 하는 겁니까?”

“별거 없소! 그냥 손에 힘을 주면 끝이오! 단, 내력을 사용하면 안 되오!”

겉으로 보기엔 내가 밀리는 게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근육이 크다고 무조건 더 강한 것은 아니다.

손에 힘을 주자, 팽염호도 그에 상응하듯 힘을 더한다.

날 배려하듯 적절히 완력을 조절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력의 대결도 아니고, 힘의 대결이라···.’

은근히 흥미가 생긴다.

나 또한 근력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 근육 괴물을 이기기엔 부족하다. 아마 팽염호는 오랜 기간 신체를 단련해왔을 것이다. 만약 내가 지부에 온 직후에 그와 만나 이렇게 힘 대결을 했다면···.

‘상대가 되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당문의 대법을 받으며 육신이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해우심법의 경지가 오르며, 온몸에 내력이 쌓여가고 있다. 천마신공을 대성하면 내력이 없이도 바위를 부술 수 있는 육신을 가지게 된다.

천마(天魔).

마로서 하늘을 복속시킨다는 그 이름처럼.

나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다.

‘아직은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자만하지 않는다. 무공을 익혀감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그것을 상기하며 점차 손에 힘을 늘려간다.

우둑!

뼈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여유롭던 팽염호의 시선이 조금 바뀐다.

“보기보다 꽤 힘이 강하시구려?”

“그만할까요?”

내 도발에 그가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 난 힘 대결에서 물러선 적이 없소!”

우지지직!

어찌나 악력이 강한지 손에 피가 통하지 않는 기분이다. 그것은 팽염호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우락부락하고 강인한 그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덜덜덜!

얼마나 세게 쥐고 있는지 나와 팽염호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팽염호는 이제 한계를 두지 않고 힘을 주는지 진중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며, 나 또한 방심하면 손이 부서질 것 같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나와 팽염호는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힘겨루기를 지속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만···!”

위지풍이 벌떡 자리에 서서 외친다.

“이러다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칠 겁니다!”

팽염호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힘을 빼지 않았다. 나도 끝까지 승부를 보고 싶었다. 과거엔 없었던 승부욕. 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으로 살아가면서 나 자신이 뭔가 바뀌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염호! 용봉지회에서 팔 하나만 사용할 생각이야?”

움찔!위지풍의 말이 효과가 있었던지 순식간에 팽염호의 손에 힘이 빠진다. 내가 그대로 힘을 주다간 그의 뼈를 다치게 할 수도 있었기에 나 또한 힘을 뺀다.

“···.”

팽염호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나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하··· 하하하하하-!”

팽염호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댔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그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연다.

“내가 졌소! 정말 대단하군! 미안하지만 처음엔 단목 소협을 약골이라 생각했었소. 하지만 그게 아니군! 장사야, 장사! 크하하하! 내가 힘 대결에서 지다니!”

난 내가 승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위지풍의 말에 그가 힘을 빼지 않았다면 어찌 될지 몰랐던 승부였다.

그런데 팽염호는 선선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그것이 참으로 신선했다.

“아닙니다. 끝까지 갔으면 어찌 되었을지 몰랐던 승부입니다. 누구 하나 승리했다고 정하기보단 ··· 무승부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훗날 다시 만날 때 다시 승부를 가리는 거지요.”

내 말에 환한 미소를 짓는 팽염호.

“하하하! 단목 소협은 진짜 사내로군! 진국이야! 진국! 좋소! 단목 소협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다음에 다시 승부를 냅시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위지풍이 미안함을 가득 담아 말한다.

“두 사람의 승부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끝까지 간다면 한 사람은 무조건 다칠 듯하여···.”

그의 말이 맞았다.

위지풍이 아니었다면 나와 팽염호는 하나의 손이 부서질 때까지 계속 힘겨루기를 이어갔을 것이다.

“아닙니다. 위지 소협 덕분에 멈출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내 말에 위지풍의 딱딱했던 시선이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단목 소협께선 좋은 사람이군요···.”

의미심장한 말이다.

사내에게 저러한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하하하! 분위기가 좋군! 이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이라도 한잔해야 하지 않겠소? 힘 대결은 다칠 수도 있으니, 술로 대결하는 것은 어떻소?”

술?

사공천으로 살아갈 땐, 무공으로 누구에게 자존심을 세운 적은 없었지만··· 술은 조금 달랐다.

“재밌는 생각이군요. 팽 소협께서 술이 꽤 강하신가 봅니다?”

“당연하지! 난 중원 제일의 술꾼이오! 하하하하!”

가만히 그걸 지켜보던 위지풍이 은근슬쩍 끼어든다.

“저도 술로는 어딜 가서 빠지진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이새붕에게 말을 거는 팽염호.

“이 소협도 술을 좋아하시오?”

“저, 저는 잘···.”

“하하, 괜찮소! 술을 마시면서 배우는 거지! 내게 술을 배우면 이 소협도 진정한 술꾼으로 거듭날 것이오!”

“지, 진정한 술꾼으로 거듭날 필요까진 없는···.”

팽염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하하하! 갑시다! 오늘은 내가 사겠소! 마음껏 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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