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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났다.
당옥정에게 듣기로 암천회의 소회주가 사천의 성도에 나타났던 것은 당문 입장에선 큰 사건이었다. 주요 인물이 성도까지 들어왔는데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 정보의 틈이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요즘 들어 부쩍 성도의 길가에는 사천당문의 무인의 숫자가 많아졌다.
그 이후에 난 당연하다는 듯 무공 수련에 매진했다.
검강을 발현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실전에 사용하려면 계속 기의 제어력을 높여야 했다.
그것을 수련하는 방법은 반복 수련이 제일이다.
쯔으으으···.
뇌왕검은 확실히 내공을 잘 받아들인다.
검강을 발현한 상태로 유성환상검의 초식을 펼쳐낸다. 내력을 활용하지 않은 것보다 확실히 그 속도가 느렸지만, 최대한 정확하게 움직인다. 초식의 틀에 박히면 안 되지만, 기초가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우우웅! 후웅!
그러다가 검신 전체를 둘러싼 검강을 조절한다. 아직 검강을 쭉쭉 뽑아내는 수준엔 이르지 못하였으니, 맺힌 검강을 다른 곳으로 집중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검강이란 강철도 베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 검 끝에 검강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면···.
‘목젖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지.’
사각!사람의 형체를 한 나무의 윗부분이 뎅겅 잘려나간다.
“괜찮네.”
사실 검강이라는 것은 단순히 검기를 중첩하거나 압축한다고 정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준에 이른 자들은.
검강으로 색다른 것을 선보이곤 한다.
예를 들자면···.
콰짓-!
작았지만 뇌왕검에 미약한 뇌전이 흘러나왔다. 내공을 유형화한 검기와는 조금 다르다. 이건 다른 종류의 검강이었다.
‘기(氣)는 자연 그 자체다.’
대부분 무공은 자연에 떠도는 기운을 운기토납으로 흡수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어떤 무공은 화(火)의 기운을 활용하고, 또 어떤 무공은 빙(氷)의 기운을 사용한다.
어찌 그게 가능하겠는가?
지금 내 옆을 떠도는 자그마한 기운들은 음양오행의 기운을 모두 품고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성질을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화산파의 장문인이 매화검법(梅花劍法)을 펼치면 그 검무에서 매화향이 난다고 한다. 아쉽게도 매화검법의 무공 비급은 본 적이 없었지만, 난 그것이 검강의 한 종류라 확신했다.
검강.
그러니까 내공의 활용에 극에 이른 자들은.
저마다 다른 성질을 부여할 수 있다.
‘대부분은 보통의 검강을 사용하긴 하지만.’
사실 과거엔 이 부분에 대해 크게 고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무공을 익히고, 고찰하다 보니 어쩌면 그 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우심법은 천마신교의 무공부터 정종 심법까지 조합한 심법.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심법이었다.
‘난 무공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뇌공검법의 뇌기를 활용하는데, 성공하며 깨달았다.
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그리고 반가웠다.
‘만약 지금의 성찰이 빛을 본다면.’
지금의 내가 확신하지 못했던 경지에 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막 검강을 다루는 시점에서 현경을 바라보는 건 너무 앞서나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과는 확실히 다르다. 무공의 경지란 결국 수많은 무인들이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나 또한 그 경지를 이용했지만, 틀에 얽매이고 싶진 않았다.
‘무공이 더 재밌어지기도 했고.’
뇌왕검에 맺힌 뇌기는 금방 사라졌다. 단순히 내력의 압축으로 만들어진 내력을 활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실전에선 당연히 그냥 검강을 활용하는 게 낫겠지만, 내 수준이 발전하게 된다면 시기적절하게 이걸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뇌왕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는다.
이제 검강을 다루는 것이 끝났으니, 천유보와 유성환상검을 수련할 차례였다. 생각으로는 이미 두 무공의 수십, 수백 가지의 공격 방식을 생각해두었지만 그것을 몸으로 펼치는 건 다르다.
초식을 펼치려 할 때였다.
저 멀리서 이새붕이 뛰어온다.
뭔가 급한 일이 있나?
검을 내리고 그를 바라본다.
“도련님···!”
“왜 그리 급해?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게···! 그러니까···!”
“심호흡하고, 천천히.”
“후우욱···! 후우욱···!”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얼굴이 하얗게 떠 있었다. 아직 체력 안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새붕이다. 다음 수련에서 더 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가 입을 연다.
“노, 놀라지 마세요?”
“안 놀라.”
이새붕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뻥끗한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게···. 당 소저께서···.”
“옥정이 왜?”
“어떤··· 잘 생긴··· 공자님들과 저잣거리를 거닐고 있었어요···!”
“그게 왜?”
며칠 전 당옥정은 지부에 찾아와서 친한 친구가 성도에 온다며 기뻐했었다. 나한테도 소개해준다고 했었는데, 수련이 바빠 괜찮다고 했었다.
“부, 불안하지 않으세요?”
“내가 왜?”
만약 내가 당옥정과 연인 관계라고 해도 그것에 질투하여, 매몰된다면 그게 더 문제다.
난 첫사랑과 이별하며 집착을 버리는 법을 가장 먼저 깨우쳤다.
“한 분은 엄청나게 잘 생기셨고, 또 한 분은 사내가 봐도 멋진 근육을 가지고 계셨어요···! 혹시 이러다가···.”
“혹시 이러다가 뭐? 괜한 걱정을 하는구나. 그리고 달릴 때 호흡을 조절하라 했지? 조금 전에 뛰어올 땐 전혀 호흡법을 활용하지 못하더구나. 이리 와라.”
“도, 도련님? 지금 상황이···. 억!”
그의 옷깃을 잡아끈다.
이새붕이나 나나 수련이 더 필요했다.
무림오룡과의 만남
무림오룡.
정파의 후기지수 중 가장 강한 다섯명의 사내를 부르는 별칭이었다.
현 무림에서는 무림오룡이라 불리는 자들이 대문파의 장문인인이 되었으며, 한 세가의 가주가 된 경우가 많다. 정파 무림의 최강자라 불리는 육왕(六王) 또한 어릴 적에는 대부분 무림오룡의 이름으로 불렸을 때가 있었다.
그런 만큼 무림오룡은 중원 어디를 가든지 무인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언젠간 그들이 이 무림의 주인이 될 것이니 잘 보여서 나쁠 것이 없었으니까. 물론, 이제까지 모든 무림오룡이 그 이름을 달가워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북팽가의 장남이자 소가주인 팽염호는 그 이름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저기 봐봐! 저 세 사람 혹시···?”
“저 어깨가 딱 벌어진 것 좀 봐. 저 사람이 바로 하북팽가의 팽염호 공자군! 딱 봐도 알겠어.”
“내가 무림오룡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그런 속닥거림이 팽염호의 귓가에 쏙쏙 박힌다.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친우들-! 오늘 참 기분이 좋아!”
“귀 아파.”
당옥정이 눈살을 찌푸린다.
이제까지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목청이 큰 것이 팽염호였다.
“크하하하! 귀청도 단련하면 튼튼해지는 것을! 천룡각에서 만났던 친우들 모두 마지막엔 적응했었다! 너도 적응해라, 당옥정! 하하하하!”
당옥정이 귀를 막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위지풍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위지세가의 위지풍.
위지세가는 오대세가는 아니었지만, 과거엔 하북팽가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막강했던 가문이었다. 위지세가의 둘째 공자인 위지풍은 장남을 제치고 차기 가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만큼 능력도 뛰어났지만, 무림오룡 중 가장 잘생긴 것으로 유명했다.
저잣거리를 지나는 여인들이 위지풍의 얼굴을 흘끔거렸지만, 그는 그 수많은 여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가 바라보는 건 오로지 당옥정 하나였다.
그 시선을 느낀 탓일까?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있던 당옥정이 고개를 돌려 위지풍을 바라본다.
“왜 그렇게 봐?”
“그냥. 넌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여서.”
“너희 둘도 똑같은데? 특히 팽염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사내대장부는 올곧게 한 길만을 정진할 뿐이지!”
“이젠 좀 점잖아지면 안 돼?”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지금 세 가문의 가주들은 이들처럼 같이 호형호제하며 강호를 누볐다. 그 연으로 어릴 때부터 셋은 친구가 되었다. 사천성과 하북성의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쌓아온 우애는 얕지 않았다.
“에잇! 나 먼저 간다. 너희들도 빨리 와!”
당옥정은 제 할 말만 하고 크게 웃어대는 팽염호에 질려 달려나갔다.
팽염호는 자신이 이겼다며 의기양양했고, 위지풍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당옥정을 따라 뛰어갔다.
“나 혼자만 두고 가는 것이냐! 곧 따라 잡아주마!”
술래잡기하듯 팽염호가 두 사람을 뒤따른다.
그렇게 도착한 명각루.
성도에선 세 손가락에 꼽는 고급 주루로 고위급 인사들이 많이 방문하는 주루였다. 친우끼리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을 마시기 위해 방을 잡아놓았다.
예약을 해두었기에 상에는 온갖 요리와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팽염호는 옳다구나 하며 자리에 앉자마자 술병 하나를 통째로 비워버린다.
“크아···! 좋다!”
당옥정도 이젠 팽염호의 목청을 지적하진 않았다.
애초에 저건 하북팽가의 집안 내력이다. 억지로 목소리를 낮추려 하면 화병이 난다나? 뭐 그중에서도 팽염호가 가장 특출나긴 했다.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며 이제껏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눈다.
위지풍과 팽염호는 5년 전에 천룡각에 들어가 이제는 교육을 모두 마친 상태였다. 본래 세 사람은 같이 천룡각에 들어가려 했으나, 당옥정이 마지막에 천룡각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위지풍과 팽염호만 천룡각에 들어갔다.
위지풍은 그게 아쉽긴 했으나···.
지금은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천룡각에 들어갔다면 마음이 여린 옥정이가 상처받았을 수도 있어.’
천룡각은 소무림(小武林)이다.
경쟁하고, 싸우고, 파벌을 만든다. 물론, 당옥정이 그곳에 적응하지 못했을 리는 없지만··· 위지풍은 당옥정이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언제까지고 순수한 저 모습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주제로 대화하다 결국 당옥정이 최근의 일을 언급한다.
“참, 최근에 암천회의 갈유화를 봤어.”
“갈유화! 정말인가!”
팽염호가 깜짝 놀란다.
갈유화가 누군가? 유흥의 성지라 불리는 해남도에서도 최고 미녀로 추앙받는 미녀! 그녀가 사파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팽염호는 대체 그녀가 어느 정도이길래 그런 소리를 듣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을 뿐이다.
“어떤가! 정말 소문대로 그 커다란 가···.”
위지풍이 그의 허리를 찌른다.
팽염호도 그렇게까진 눈치가 없진 않았다.
“크흠, 예쁘던가?”
“예쁘긴 했지.”
당옥정의 말에 팽염호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그런 팽염호를 내버려 두고 위지풍이 묻는다.
“넌 계속 사천에 있었잖아. 갈유화가 성도까지 왔단 말이야?”
“응, 자기 말로는 강호 유람을 다닌다는데··· 알아보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더라고.”
“무슨 일은 없었지?”
당연히 정파에선 갈유화의 소문이 좋지 않았다.
“딱히···. 처음엔 장룡과 싸우지는 않을까 걱정했긴 했는데···.”
“장룡?”
위지풍이 되묻는다.
“아, 새로 사귄 친우야!”
당옥정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새로 사귄?”
“응, 최근에 더 친해졌어. 무공도 엄청나게 강하고 성격도 되게 좋아. 팽염호와 달리 의젓하달까? 옆에 있으면 든든해져. 후후!”
“뭐? 나보다 강하다고!”
상상 속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팽염호가 외친다.
“아니, 너보다 의젓하다고.”
“허허! 그거참 의외군! 강호에서 나보다 의젓한 사내는 찾기 힘든데 말이야! 하하하!”
밝은 두 사람과는 달리 위지풍의 표정은 어두워져 있었다. 당옥정이 새로운 친우를 사귀었다? 그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이름이 장룡이라는 것을 보니 여인은 절대 아니었다.
“너와 친우라면 우리와도 친우지. 한번 보고 싶은데?”
위지풍이 말한다.
그러자 당옥정이 고개를 젓는다.
“안 돼. 장룡이 바쁘다고 했어.”
마치 그의 말이 법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 당옥정.
“그래?”
위지풍은 조급한 마음을 숨긴 채로 그에 관해 물어보았다.
하지만 당옥정은 그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대답했을 뿐이다. 과거의 당옥정이었다면 위지풍에게 굳이 숨기는 것 없이 아는 것을 다 말했을 텐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결국, 위지풍이 마지막에 알아낸 것이라곤···.
‘단목세가 성도지부의 부지부장.’
그러고 보니 천룡각에서 단목세가의 장남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나이는 위지풍보다 많았지만, 꼬박꼬박 선배 대우를 해주는 모습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옥정과 친우가 되었다면 좋은 사람인 것 같긴 한데···.’
마음이 쓰리다.
위지풍은 당옥정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그것을 표현해본 적은 없었다. 혹여나 그 마음을 고백했다가 당옥정이 거절이라도 하는 날에는, 세 사람의 우애가 깨질 것은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거 참···.’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당옥정의 말대로 단목장룡이라는 사람과 그녀는 친우일 뿐이고, 위지풍이 과대해석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룡이라는 이름을 말할 때, 그녀의 표정은 이제까지 위지풍이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건 그렇고 갈유화는···.”
왠지 당옥정 앞에서 그에 대해 더 이야기하긴 싫었다.
그렇기에 위지풍은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갈유화에서 암천회로, 암천회에서 사파로.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대화의 꽃을 피워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