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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이 지나갔다.
청성파의 장로였던 청성산인과 속가제자인 유한생은 단전을 폐하고, 청성산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평생을 깊은 동굴에 갇혀 벽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혹여나 청성파가 그들을 빼돌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들은 죽으면 죽었지 살아서 청성산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버젓이 강호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청성파의 명예가 또 한 번 땅에 처박힐 것이기에. 청성파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감시할 것이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청성파 자체는 이번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듯했다. 미약에 대한 것은 딱히 알아낸 바가 없었다. 유독 유한생이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떤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의심이 갔지만 이젠 거의 일이 거의 마무리됐다.
유가상단에 쌓여 있는 계약 문서를 보고, 우리처럼 당한 문파에 유가상단의 재산을 나누어줬다. 나 혼자만 꿀꺽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보는 눈이 많았기에 추후엔 탈이 날 것이 분명하다.
또 선의를 베풀면 언젠간 내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정파 무림에서 살아가려면 망나니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쌓이고 쌓여 내게 좋은 영향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성도지부는 유가상단과 계약을 맺었던 만큼만 지분을 가졌다. 그렇다고 해도 금화로 따지면 오백 냥은 족히 넘었기에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막대한 돈을 번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이득은.
‘소청단.’
청성파의 작은 보물이라는 영약이다.
고풍스러운 목궤를 열자 청아한 향이 방을 가득 메운다. 냄새만 맡아도 품질이 좋은 영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금화 오백 냥을 주고도 이런 영약은 못 구하지.’
무림에서 영약은 귀하다.
더군다나 구파일방 중 하나인 청성파가 제조한 영약이다.
‘이걸로 더 강해진다.’
난 고민하지 않고 바로 그것을 입에 가져갔다.
* * *
“곡위, 유가상단이 망했다며?”
여인의 앞에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내는 얼굴을 자세히 보아도 특징이 없어 기억하기 힘들었지만, 여인의 얼굴은 잠깐 스쳐보아도 그 아름다움에 매혹될 수준이었다.
“죄송합니다. 소회주님.”
“들어보니 당문이 엮었다고 하던데···.”
“유한생이 그것을 발설하진 않은 듯합니다. 지금 청성파로 가고 있다고 하니, 습격해서 죽일까요?”
“됐어. 그러다 일만 더 커지지. 어차피 그들이 우릴 지목한다고 해도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야. 자기네들이 뭐 어쩌겠어? 우리와 전쟁할 것도 아니고.”
“예, 소회주님.”
“그건 그렇고 말이야. 성도에서 단목장룡이라는 사내와 마주친 적이 있어?”
“죄송합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단목세가 성도지부의 부지부장으로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죽일까요?”
곡위의 말에 여인이 한숨을 폭 내쉰다.
“곡위, 넌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환장했니?”
“···죄송합니다.”
“그냥 궁금해서 말이야. 청성산인을 꺾을 정도라면 강하겠지?”
“예, 최소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으음, 그럼 그가 새로운 무림오룡이 되려나?”
“제 생각엔 그 정도 무위라면 충분히 무림오룡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말에 여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머, 그러면 눈도장이라도 찍어 놔야겠네. 후후···.”
정파인이 사파인에게 반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그녀는 이미 단목장룡을 꼬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단목장룡에 대해서 알아봐. 어렵게 사천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잖아?”
“예, 소회주님.”
명령이 떨어지자 사내는 바로 방을 나섰다.
여인은 콧소리를 내며 중얼거린다.
“그런데··· 너무 쉽게 내게 빠지진 않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하아아···!”
과연 그녀의 의도대로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검강 발현
소청단의 기운을 모두 단전에 담았다.
청성파의 작은 보물이라 불리는 소청단은 30년의 내력을 품고 있었다. 정파 무림의 최고 영약이라는 대환단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내가 이전에 지니고 있던 내력이 20년. 그리고 소청단이 품은 기운을 모두 흡수했다.
지금 내공의 총량은 50년.
아직 일 갑자엔 조금 모자라긴 했지만···.
‘슬슬 검강(劍罡)을 발현해볼 수도 있겠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왔다. 중원 무림에서 정립해놓은 경지. 쉽게 말하면 삼류에서 검기를 다룬다는 절정까지 성장했다. 그렇지만 확실히 검강이라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검강은 무공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
무림에선 검강을 다룰 수 있을 때부터 초절정이라 칭한다.
그런데 검강이란 게 무엇이냐?
초절정 그 이상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 많았지만, 제각기 정의가 다르긴 했다. 어떤 이들은 검기를 발현할 내력의 열 배 이상을 사용하여 기(氣)를 압축한 것이 검강이라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심법에 깨달음을 얻어 내공심법의 특성을 극대화한 것이 검강이라 했다.
모두 틀린 건 아니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른다면, 압축력보다는 내공심법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상태에선 검강의 발현 자체가 중요하다. 결국, 검기를 압축하고 또 압축하여야 한다.
20년의 내력으로 그것이 불가능했던 건 아니지만,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중원 무림에서 초절정에 이른 자들은 적어도 일 갑자 수준의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검강을 한 번 발현하고 그다음부터 내력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그렇기에 난 검강보다는 다른 부분의 발전에 더욱 신경을 쏟았었다.
‘이젠 검강이 있어야 한다.’
초절정과 절정을 나누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검강.
검기는 고작해야 검에 생채기를 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것만으로 대단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건 검강을 사용하는 자들을 만나면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보통 검강의 절삭력은 두꺼운 철검도 베어버릴 수준이었다. 검기로 그것을 몇 번 정도 방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검기로 검강을 상대하다 보면 결국 내상이 쌓이게 된다. 검을 부딪칠 때마다 검기의 사용자는 손해를 보는 거다.
현재 무림에서 나누는 경지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 경지를 나누는 이유는 존재했다. 최소한 무림에서 정립해놓은 경지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검강부터는··· 나도 조금 어렵겠군.’
사실 초절정도 초입과 중급 그리고 화경에 이르기 바로 전인 상급까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지금도 가만히 서서 검강을 발현하라면 일 각 내로 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다간 당장에 목이 뎅겅 잘려버릴 것이다.
‘이젠 내력도 많아졌으니 속도를 더 올릴 수 있다.’
나는 소청단의 내력이 말끔하게 단전에 가득 찬 것을 확인하고, 뇌왕검을 들어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얀 연기가 피어난다.
그리고 검날에서 푸르스름한 무언가가 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바로 검기였다.
‘검기 단계에서도 할 것이 많긴 하지만···.’
이미 겪어본 단계.
만약 내가 절정에 처음 올랐던 것이고, 검강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수련은 대단히 위험하다. 내공이라는 것은 결코 다루기 쉬운 것이 아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날아갈 수도 있다.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무공 수련은커녕 평생을 병상에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난 자신이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내가 가진 천재성은 비록 지금은 이론에 국한된다고는 하나, 천마신교의 교주조차 천재라며 칭송할 정도였다. 또한, 초절정은 이미 과거에 겪어본 경지다. 나처럼 처음부터 다시 무공을 익힌 이가 무림에 또 있을까?
쯔으으으읏!
검기가 점차 중첩되기 시작한다.
본래라면 검강은 이렇게 구현하지 않았다. 아마 내게 사부가 있었다면 미쳤다고 호통을 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편법이라 해도, 쉬운 방법이라 해도 틀린 방법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일단 검강을 발현해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후우우우···!”
내 모든 정신력이 검에 집중된다.
한 번 올라본 경지라 해여 절대 쉬운 게 아니다.
중첩되고 또 중첩되는 검기.
내공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모이면 모일수록 그 성질은 더욱 극대화된다. 내력이 공간 자체로 흩어지기 전에 압축하고 또 압축하여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집중력과 의지력.
어렵게 표현하자면 의념(意念).
내력을 신체의 한 부분처럼 기를 제어해야 한다.
파스스으으읏···!
그렇게 일 각이 지나갔다.
푸르스름한 색의 검기는 힘이 더해지고 또 더해지자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기운. 이것이 인간의 살점이나 뼈에 닿는다면···.
천천히 검을 휘두른다.
팔에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속도가 붙지 않았음에도.
두꺼운 목재 탁상이 반으로 쪼개졌다.
“후우우우···!”
폐부 깊숙한 곳부터 숨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검강이 자연 속으로 사르륵 흩어진다.
“됐군.”
검강을 발현한 상태로 검까지 움직였다. 그런데도 아직 내력은 충분하다. 소청단을 취한 덕분이다.
‘검강을 발현한 상태로 유성검을 휘두른다···.’
상상만으로 짜릿하다.
분명히 한 번 겪어본 경지였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역시 무공은 재밌어.’
과거였다면 검강을 만들어낸 것에 만족하고 수련을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력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검강을 발현한다. 더 빠르고,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다시금 자세를 잡고 뇌왕검에 내력을 불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