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236)

* * *

지부장은 당연히 유가상단과의 계약을 환영했다.

본가에서 지원이 있긴 했지만, 돈이야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유가상단의 상행은 주기적으로 이뤄졌으며, 보름에 한 번은 성도지부가 그 상행을 호위했다. 왕복으로 열흘 정도 걸리는 상행. 완료하면 금자 다섯 냥이 꼬박꼬박 생겨났다. 하는 일에 비해서 과한 보상이라 할 수 있었다.

지부원들은 조금씩 유가상단의 호위 일에도 크게 긴장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호위를 대충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난 상행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상행을 같이 나가보기도 하고, 몰래 뒤따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지금.

네 번의 상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부원 하나가 내게 보고했다.

“부지부장님, 다음 상행은 이전보다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규모가 커진다.

즉, 상품의 가격이 비싸진다는 말이다.

‘물었군.’

마지막 조항을 추가한다는 것은 내가 유가상단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셈이었다. 유한생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 의도를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을 벌인다. 강호라는 곳은 힘이 지배하는 잔인한 세상이다. 정당하고 온건한 방법으론 앞서나갈 수 없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 * *

유가상단의 상행.

다섯 개의 마차가 줄을 지어 이동한다. 이번 상행에는 성도지부 뿐 아니라 교룡문까지 참가하는 대규모의 상행이다. 교룡문도 이제까지 한 번도 괴한의 습격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한 번의 기회로 두 문파를 노리는 것이다.

이번 상행의 목적지는 이전 상행보다도 목적지가 멀었다.

광원현. 조금만 더 나아가면 섬서성의 경계였다. 이번 상행의 보상은 금자 오십 냥이었으니 한 번의 상행으로 열 번의 효과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교룡문의 부문주는 연신 웃음꽃이 핀 상태였다.

이제 곧 광원현에 있는 유가상단에 도착하면 호위 일도 끝나게 된다.

그리고 이때가 가장 긴장해야 할 시간이었다.

‘왔군.’

대법 이후 예민해진 기감.

저 멀리서 수십의 인원이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 준비해라.”

“예!”

몇 번의 교육 이후 내 말이라면 끔뻑 죽는 지부원들이었다.

성도지부원들이 검을 뽑자, 교룡문도들이 당황한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왜···?”

그때 교룡문의 부문주도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감지한 듯했다.

“습격이다!”

달그닥! 달그닥!

말을 타고 달려오는지 그 속도가 상당하다.

‘피해를 최소화한다.’

그 방법은.

내가 정면에 나서는 것이다.

‘오랜만에 실전이구나.’

뇌왕검을 뽑는다.

단전에서 세맥으로 흐른 내력이 그 검에 담긴다. 확실히 명검이라 그런지 반발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묘한 흥분이 육신에 감돌았다.

‘가장 뒤편에 있는 놈은 꽤 재밌겠어···.’

* * *

과거로 돌아가서.

단목세가 성도지부와 유가상단이 계약을 맺은 날이었다.

“단목세가는 그렇게 건드리면 위험하지 않겠느냐? 비록 오대세가는 아니라고 하나··· 그곳의 태상가주나 가주는 만만한 인물이 아닐 텐데?”

수염을 곧게 기른 중년인이 차를 홀짝이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유가상단의 첫째이자 청성파의 속가제자인 유한생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듣자 하니 당문과도 연이 있다고 하던데? 내당주라던가···?”

내당주라는 말에 유한생이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단목장룡은 분수에 맞지 않은 연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도 거사를 진행한다?”

“예.”

“그래, 제자의 의견을 들어봐야겠구나.”

“첫째로 이번 일에 사천당문이 개입할 여지는 없습니다. 혹시라도 당가 씨를 가진 사람이 상행에 개입하려는 낌새가 있다면··· 바로 계획을 중지할 겁니다.”

“그래, 그건 당연한 것이고.”

“그리고 단목장룡은··· 단목세가에서도 내놓은 자식입니다.”

“내놓은 자식?”

“예, 개방을 통해 단목장룡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단목세가의 본가에선 망나니 취급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망나니 취급이라··· 그런데 성도지부의 부지부장직을···?”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것으로 파악됩니다. 만약 여기서 큰 사고를 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문에서의 신뢰는 완전히 사라지겠군.”

“예.”

하지만 노인은 아직도 고개를 젓고 있었다.

“네가 알아본 정보도 틀린 것은 없으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유한생이 고개를 숙여 보인다.

“경청하겠습니다.”

“단목장룡은 무위가 상당하다. 태천문의 대제자를 일격에 꺾었으며, 사천당문의 1공녀인 당옥정을 구해줬다. 당옥정은 결코 약하지 않아. 그렇기에 그 아이를 얕잡아볼 수 없다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그 아이는 더 강해지겠지.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

유한생이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는다.

“그렇기에 싹을 잘라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싹을 잘라낸다···?”

“괴한의 습격에 죽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허허, 내 말을 허투루 들은 모양이구나. 단목장룡 그 아이는 천룡각에 들어갈 수 있는 인재야. 네가 부리는 아이들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혀를 차는 노인.

그 말에 유한생이 뭐가 문제냐는 듯이 말한다.

“사부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뭐야? 클클···, 이놈이 늙은 사부를 부려먹으려 하는구나.”

“제자, 오랜만에 사부님의 실력을 보고 싶습니다.”

“좋다. 사랑스러운 제자의 부탁은 들어줘야겠지. 다만···.”

“예, 사부님의 취향에 맞게 착착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유가상단이 이토록 막무가내로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이유.

그 뒤에는 청성파의 장로 중 하나인 청성산인(靑城山人)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못 건드렸다

도가 계열의 문파라도 현 무림에선 속세와 완전히 담을 쌓은 경우는 잘 없다. 수많은 문도를 거느린 명문거파인 청성파. 산에서 도만 닦는다고 하늘에서 음식이나 의복 따위를 내려주는 건 아니다.

물론, 무력을 가진 그 자체만으로 무림에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 했다. 특히 화산과 무당을 필두로 명문거파에선 적극적으로 속세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사파처럼 속세에 찌든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건 아니다. 명문거파는 체면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구파일방 중 하나인 청성파에서 속가제자들을 전담하여 가르쳤던 것이 청성산인이다.

어릴 때부터 청성파에서 나고 자랐던 그는 자연에 묻혀 도를 닦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배웠다. 무공의 경지를 높이기 위해선 당연히 그러함이 마땅했었다. 

성실하게 무공을 익히고, 속가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을 느끼던 청성산인. 그와 유가상단의 대공자인 유한생을 만났던 것은 운명이라 할 수 있었다.

13살의 어린 나이에도 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의젓하고 성숙했다.

당연히 사부의 말을 잘 듣는 유한생을 아낀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속가제자로 들어와서 말썽을 부리는 아이는 흔하지 않았지만, 유한생은 그중에서도 특출난 아이였다.

가르치는 맛이 있었다고나 할까?

언젠간 사부인 자신을 뛰어넘을지도 몰랐지만, 청성산인은 그것 또한 기꺼워했다. 참된 스승의 표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였을까.

그러한 청성산인이 속세의 진득한 맛을 알아버렸던 것은.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천룡각에 합격한 제자를 축하하기 위해 청성산을 내려갔던 날, 그는 이제껏 몰랐던 놀라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술에 취해 무공에 대한 압박감을 털어내고, 여인과 정을 통해 정신을 맑게 한다. 애초에 도가 계열의 문파에선 여인과 혼인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물론, 매번 기루에 들락거려 명문거파의 체면을 훼손시킨다면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또 역설적이게도 청성산인은 그 해방감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절정이라는 경지에 도달했다.

무공을 익히는 것은 고난의 연속. 어쩌면 굳이 그런 일탈을 통하지 않았더라도 도달했을 경지였을 수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겐 기회는 찾아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하루로 인해, 청성산인의 세상을 보는 눈은 완전히 달라졌다.

무위자연 속에서 살아가지 않더라도.

도(道)를 깨우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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