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대법이 끝나는 날.
당옥정은 왠지 모를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처음엔 너무도 부끄러웠을 뿐이다. 아주 어릴 적을 빼고는 사내와 함께 알몸으로 탕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알몸을 보았던 것은 형제자매들일 뿐이다. 처음엔 당용아가 같이 대법을 받는 게 어떻냐고 물었을 땐, 완강히 거절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에겐 보답을 해야 했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그에게 영약이나 은패(恩牌) 따위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같이 대법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당옥정은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서로 알몸으로 있으면서 어색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법을 받는 동안 장룡과 그녀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진다. 장룡은 다른 사내들처럼 자신에게 음침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장룡이 좋아하겠지?’
‘장룡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기도 해. 그때 보여줬던 차가운 눈빛···.’
‘설마 이상한 짓을 하진 않겠지···?’
그녀 딴에는 제법 결의를 다졌다.
만약 피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면, 단호하게 의사를 표현하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단목장룡과 일절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있긴 했지.’
처음 탕에 들어왔을 때, 간지럽냐고 물었던 것이 대화의 마지막이다. 단목장룡은 그 후로 심각한 얼굴로 가부좌를 튼 채로 명상했을 뿐이었다. 중반까지는 당옥정도 머리가 어지러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지만, 마지막 날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단목장룡을 보고 있으니 뭔가 심사가 뒤틀린다.
‘흥···. 끝까지 눈만 감고 있겠다 이거지?’
팔짱을 끼고 그의 얼굴을 노려본다.
어차피 그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단목장룡의 앞에서 알몸을 훤히 내보이는 것이다. 그녀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를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
단목장룡의 명상이 끝이 났다.
번쩍.
“···?”
단목장룡이 의아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백옥 같은 살결을 드러낸 당옥정을 바라본다. 그녀 또한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몸이 굳은 상태였다.
잠시 뒤.
“꺄아아악!”
당옥정이 두 팔을 교차하고 탕 안으로 몸을 던진다. 머리끝까지 잠수한 그녀는 보글보글 거품을 내뿜으며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당옥정.”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꿋꿋하게 그녀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단목장룡. 당옥정이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더욱 발작한다.
“그만.”
단목장룡이 내공을 담아 말한다.
그러자 당옥정이 아주 천천히, 빼꼼히 눈만 드러낸다. 그녀의 콧김에 의해 조그마한 기포가 퐁퐁 터져댄다.
“대법은 이제 끝난 거지? 외부에서 들어오는 내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네.”
부글부글!
그녀는 입을 내놓지 않고 무언가 말을 했다.
그녀의 부끄러움을 이해했기에, 미소를 짓고 최대한 나긋나긋하게 말한다.
“지금 피부가 벗겨질 거 같은데, 자리를 비켜줄 수 있어?”
부글부글!
“말로 해줄래?”
당옥정이 목 위로 얼굴을 내민다. 부끄러움에 귀까지 빨갛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단목장룡의 말을 허투루 듣진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피부가 벗겨진다니?”
“환골탈태··· 가 아니라, 환피탈태(換皮奪胎) 정도려나? 아무튼, 내 상황이 그래. 지금도 내력으로 최대한 억제하고 있어.”
당옥정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문이 만든 만독대법은 체질을 바꾼다. 보름 동안 온갖 약재와 독을 섞어 만든 것을 마시고, 피부에 닿게 두면 많은 종류의 독에 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피부가 벗겨지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도마뱀도 아니고 인간이 탈피를 해?
그런 생각을 품은 당옥정이지만 단목장룡의 피부가 하얗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른 고모님을···!”
“아니야.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 하루 정도만 여기서 혼자 있고 싶은데···.”
“정말 괜찮겠어?”
“날 믿어줘.”
순간 그녀는 단목장룡의 말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왜 저 말에···.
“그럴 수 있어?”
“으으응···! 알겠어! 내가 책임지고 여기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할게!”
“고마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당옥정.
그녀가 멈칫한다. 그리고 단목장룡을 빤히 바라본다.
그녀가 뭘 원하는지 파악한 단목장룡이 눈을 감는다.
그가 눈을 감자 당옥정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제대로 물기도 닦지 않고 옷을 휙휙 입더니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당옥정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단목장룡은 액에서 빠져 나와 깎아놓은 돌 위에 가부좌를 튼다. 아마 피부가 벗겨지며··· 다른 무언가도 많이 배출해낼 것이다. 탕에 든 액을 다시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더럽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단목장룡의 피부가 벗겨지고, 오랜 기간 신체에 쌓이고 쌓였던 노폐물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 * *
환골탈태를 경험한 이에게, 정확히는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를 기억하느냐고.
그는 무의식중에 뼈가 갈라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고통이 심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후우, 역시 그 환골탈태와는 달라. 정말 아프네.’
자리에서 일어선다.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다.
바위 주위로 내 몸에 들어있던 노폐물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토악질이 올라왔지만, 참아낸다.
‘이건 내가 치워야지.’
이곳은 사천당문.
나는 은인으로 이 자리에 왔지만, 결국은 손님이다. 내 몸에서 나온 건 내가 치워야 한다. 반 시진이 지나자 깔끔하게 모두 치워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몸을 씻고, 옷을 입었다.
‘헐렁하군.’
몸의 노폐물이 배출되며 살도 빠졌다. 피부가 벗겨진 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바지춤을 줄로 꽉 묶는다. 밖에 나가서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니 당옥정과 두 무인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게 보인다.
“장···! 룡···?”
당옥정이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살이 훅 빠졌으니 놀랄 만도 했다. 나도 이렇게 살을 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뭐야···? 정말 환골탈태라도 한 거야?”
환골탈태라는 말에 당옥정의 옆에 선 두 무인이 경악했다.
“아니야. 뼈까지 바뀐 것 같진 않네.”
“그게 대체···.”
“일단 가자. 독봉께 인사를 드려야지.”
당옥정과 함께 만독전을 나서 독봉의 방으로 향했다. 대법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보름 동안 탕 내부에 내력을 부어댔으니 당연히 피로에 쩐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날 보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완전히 뒤바뀐다.
“아닛! 정말 환골탈태를 했단 말이에요? 대체 어떻게? 대법엔 그런 효과가 없는데?”
사실 설명하려면 천마신공을 비롯한 온갖 무공들의 구결을 알려줘야 한다.
또 구결을 안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들은 나처럼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순간순간의 본능으로 내력을 움직였다.
‘아마 나도 다시 못하겠지.’
현재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으로 뽑아냈다. 다시 대법을 받는다고 해도, 이번처럼 큰 효과를 보진 못할 것이다. 막대한 내공을 바탕으로 육체를 재구성한다는 진정한 의미의 환골탈태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난 독봉에게 가장 적절한 답을 들려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단목세가의 내공심법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고맙긴 했지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독봉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수긍했다.
“알겠어요. 만약 대법에 관해 조금이라도 조언할 것이 있다면··· 꼭 제게 말해주세요. 내당주의 권한으로 아니, 허도를 들들 볶아서라도 최대한의 보상을 약조하겠어요.”
허도는 사천당문 가주의 이름이었다.
그 말에 당옥정이 독봉의 허리를 찌른다.
“아, 허도라는 말은 실수. 가주님에게 부탁해서라도 최대한···.”
“예, 알겠습니다.”
독봉이 그럼 됐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작은 약병을 소매에서 꺼내 그곳에 기다란 침을 찔러 넣는다. 침을 꺼내자 끝부분에 허연 연기가 솟아오른다. 침에 독이 발라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본가에서 2급 위험 독으로 분류하는 아이랍니다. 이걸 단목 공자의 손바닥에 찌를 거예요.”
독을 아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니.
사천당문의 내당주답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내성이 생겼는지 확인하는 겁니까?”
“그렇죠.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내가 손을 내밀자 독봉이 침을 손바닥에 찔러넣는다.
따끔!
순간 손바닥에 후끈한 고통이 전해진다.
“손에 감각은 어때요?”
“괜찮습니다. 침에 찔려서 따끔한 것을 빼곤···.”
“그래요? 그럼···.”
몇 번 더 찔리고서야, 확실히 내성이 생겼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전에 말했듯 완벽한 것은 아니에요. 당문에서도 조심히 취급하는 최상급의 극독은 막아내지 못해요. 그리고 중원에는 독을 사용하는 곳이 본가뿐만이 아니죠. 당연히 본가가 독에 관해서는 최고지만··· 아시죠? 중원은 넓으니까요.”
그녀의 조언을 알아들었다.
내성이 생겼다고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1공녀의 목숨을 구해주신 온당한 보상을 받은 것뿐이에요. 본가는 원수를 2배로 갚는 대신에, 은혜도 2배로 갚는걸요. 호호.”
그녀의 말에 사천당문 자체에 호감이 생긴다.
정파에 이런 가문이 또 있을까?
“참,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예.”
“혹, 옥정이와 보름 동안 이런저런 나쁜 짓을···.”
“고모님!”
당옥정이 빽 소리친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독봉이 인상을 찡그렸다.
“옥정아, 고모한테 그렇게 언성을 높이면 쓰니?”
“됐어요! 이상한 소리 하실 거면 갈 거예요! 가자! 장룡!”
“후우우, 까칠하긴. 그러렴. 나도 이젠 피곤해서 안 되겠어. 더 자야지···.”
독봉이 어깨를 으쓱하고 침상으로 향한다.
당옥정은 흥, 콧김을 내뿜고 날 끌고 나갔다.
“배고프지? 얼른 밥 먹자.”
꼬르륵.
보름 동안 이상한 액만 먹었더니 정상적인 음식이 그립긴 했다.
“우리 가문의 요리는 정말 맛있으니까 기대해! 그리고 저녁엔 저번에 안내해주기로 했던 반점을 안내해줄게!”
저녁?
‘이제 도착했겠군.’
그러고 보니, 오늘은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오늘은 안 되겠어. 다음에 가자.”
“응? 아··· 지부에 가야 하는구나···. 그래, 다음에 가지 뭐.”
뭔가 목소리에 힘이 빠진 당옥정이다.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미안해진다.
사실 내가 가려는 곳은 지부가 아니었다.
내 목적지는··· 기루였다.
당연히 술과 여인이 고파서 가는 것은 아니다.
‘슬슬 정보를 모아야지.’
의창현에서 떠나오기 전 하오문 지부인 성성루에 방문했다. 사천성이나 청해성 그리고 감숙성에 정보를 달라고 말이다. 정파의 영역이 아닌, 청해성만 정보만 원한다면 혹시 모를 의심을 받을 수도 있어서 감숙성과 사천성까지 포함했다.
덕분에 꽤 많은 돈을 썼지만, 당분간 성도지부의 부지부장으로 있을 생각이기에, 다른 사천성과 감숙성의 정보도 있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청해성의 정보.’
천마신교 서녕지부의 일은 아마 기록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의 편린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늘어나는 연의 고리
당옥정이 그리 자랑하는 반점엔 같이 가지 못했지만, 같이 식사는 했다. 확실히 사천당문의 요리는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특색이 있었다. 보름 동안 괴상한 녹색빛 액을 먹어서 더 맛있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었다.
오랜만에 포만감을 채우고 당옥정과 인사한 후 당문의 장원에서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세화루.
당연히 성도에는 기루나 주루가 있다. 하오문은 정파가 득세하든 사파가 득세하든 무조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무력으로 강호에서 살아남는 자들이 아니다. 관리들이나 무림인들의 술 시중을 들며 혹은 마부 일을 하며, 심지어는 도둑질하며 정보를 모은다.
그렇게 모은 정보들은 하오문의 중심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다.
나도 하오문의 본체가 어딨는진 모른다.
그건 크게 상관없다.
난 하오문의 정보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건 그렇고 몸이 너무 가벼운데?’
폴짝!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살덩이들이 배출되니 몸이 너무 가벼워졌다. 살집이 있는 사람들은 왜소한 사람들보다 보통 힘이 강하다. 걷더라도 움직여야 하는 몸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뭐 과거의 단목장룡은 애초에 걷는 것조차 싫어했기에 그리 힘이 세다고 할 순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꾸준한 수련으로 확실히 근력이 붙은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쌓여있던 살들이 모두 배출되어버렸으니···.
‘이젠 쾌(快)의 검을 펼칠 수도 있겠어. 천유보도 다음 단계를 무리 없이 펼칠 수 있겠군.’
관도를 따라 걸으며 몸을 관조한다.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몸의 노폐물이 빠진 것만으로 이 정도라니··· 세맥도 넓어져 제어할 수 있는 내력의 양이 더 많아졌군.’
그 외에도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거나 하는 변화가 느껴진다.
독의 내성뿐 아니라 많은 것을 얻었다.
강호인들은 이런 것을 기연이라 칭하지 않던가?
‘나쁘지 않군. 지부에가서 더 자세히 확인해야겠어.’
이번 대법을 통해 내 목표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몸을 관조하며 관도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기루와 주루들이 몰려 있는 성도의 유흥가에 도착했다. 확실히 의창현보다 확실히 그 규모가 컸다.
‘저기 있군.’
세화루.
다른 기루들과 외관으론 크게 다른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입구를 지키는 호위 무사들을 보면 확실히 다른 게 느껴진다. 그들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내가 입구에 서자 호위들이 입구를 가로막는다.
“오늘 본루는 손님을 받지 않소. 다음에 다시 오시오.”
“···?”
기루가 손님을 마다한다?
“으음, 무슨 일이 있소?”
“일은 무슨. 오늘 낮에 온 손님이 기루 전체를 통으로 빌렸소. 그러니 다음에 오시오.”
그는 마치 자신이 이 기루를 빌린 것처럼 으스대듯 말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발걸음을 돌리긴 싫었다.
어차피 난 기루에 온 목적이 즐기기 위함이 아니다. 의창현에서 보내온 정보만 받아가면 된다.
성성루의 천향에게 받은 목패를 보여준다.
하오문의 손님이라는 증거였다.
“이건···.”
“혹시 모르니 안에 전갈이라도 전해주시오.”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내가 하오문의 손님인 것을 아는데도 쫓아낸다면 기루를 빌린 손님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말이었고, 그렇다면 굳이 소란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잠시 뒤, 들어갔던 호위가 나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들어오시오. 하지만 오늘은 술과 여인을 내주진 못하오.”
“알겠소.”
호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본래 시끌벅적했을 기루의 1층은 손님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위층에선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여인의 간드러진 음색이 들려온다. 잘 즐기고 있나 보군. 하지만 딱히 마음이 동하진 않는다. 사실 즐기려면 언제든 즐길 수 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고.’
호위를 따라 지상이 아닌 지하로 내려간다.
요즘 지하로 자주 가는 듯하다. 문득 여기서도 기연을 얻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기연이 그렇게 쉬운 거라면 누구나 고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하는 전혀 침침한 분위기가 아니라 화사함이 가득했다.
만독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기루니까 당연하려나.
호위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 한 중년 사내와 마주한다.
그는 정중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포권지례를 했다.
“본문의 손님을 뵙습니다. 만약 호위가 무례를 범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딱히 호위가 무례하진 않았다.
“아닙니다.”
“하온데 어떤 용무로 저희를 찾아주셨는지···?”
아직은 조심스러운 태도.
하오문에서 발급해준 목패라 해도 모든 것을 증명해주진 않는다.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
“가을바람 불어도 끝이 없는데 옥관에 달리는 마음 설렌다.”
문장으로 된 암호.
천향이 알려준 것이다. 성도의 세화루에 가면 이 문구를 읊으라고 말이다. 이것이 정보의 주인이 나라는 걸 알려주는 마지막 증명이었다. 목패는 잃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문구는 땅에 흘릴 리가 없었다.
“아, 본문의 은인이셨군요.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미 목패에 적힌 것을 보고 짐작했겠지만, 이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다.
“정보는 이곳에서 바로 읽고 나가겠습니다.”
“예, 그럼 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안내해준 빈방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아주 묵직한 종이뭉치를 중년 사내가 끙끙대며 들고 온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받아주었다.
“하핫, 감사합니다. 차라도 내어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예, 그럼 언제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주시길···.”
중년 사내는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바닥에 놓인 종이 뭉치들을 바라본다. 이걸 모두 읽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청해성의 정보.’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