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236)

* * *

친선 비무 대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마 이 일을 계기로 조금씩 내 이름이 강호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현과 성을 넘어 중원 전체로.

물론, 중원 전체로 뻗어 나가는 것 먼 훗날에 일일 테지만.

‘내가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성을 떨치는 것도 중요하다. 신교와 싸우려면 세력이 필요한 법.’

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생각은 아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본신의 실력이다. 고작해야 절정의 경지로 신교와 싸우겠다고 나서면 정파의 누구도 동조해주지 않을 것이다. 절정의 경지가 낮다는 건 아니지만, 천마신교라는 이름에는 너무도 초라해진다.

내가 최소한으로 목표로 잡은 경지는 화경.

검강(劍罡)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 쉽게 말하면 대문파의 장문인 수준은 되어야 한다. 물론, 그 이상이 되면 좋겠지만···.

‘그 이상의 경지는 확신할 수 없어.’

무공을 익히면서 느끼는 건데 확실히 흥미와 재능이 결합하니 발전이 빨랐다. 하지만 그 발전이 무한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역시나 가장 큰 문제점은 육체의 한계다. 지금이야 막대한 의지력으로 내공을 제어하지만, 그 내공의 양이 늘어난다면? 의지력만으로는 부족해지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무공이란 결국 심기체(心氣體)가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조급해하지 말자. 지금도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지부장의 방으로 향한다.

그곳에선 목각처럼 굳은 지부장과 총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하, 하하하··· 부지부장, 왔는가? 여기 앉게!”

“예, 감사합니다.”

날 보는 시선과 행동이 모두 달라졌다.

그 격차가 확연히 보여 실소가 흘러나왔다.

“크흠···, 일단 자네에게 사과하겠네.”

“사과요?”

“그래, 내가 자네의 진면목을 몰라봤네. 미리 알았다면 자네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미리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네. 하지만 적어도 자네가 직접 말이라도 해주었다면 내가 그렇게 대하진···.”

조금씩 변명이 늘어가려는 찰나.

총관이 뚜벅뚜벅 걸어온다. 왠지 화가 난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쿠웅!

무릎을 꿇었다.

“총관···?”

지부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총관을 번갈아 쳐다본다. 무릎까지 꿇을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또 죄송합니다. 이 말씀밖에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성도지부를 단목세가 최고의 지부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해왔지만 제 그릇이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 봅니다. 방계 출신으로 사람의 배경을 보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려 애썼으나 결국 전 모자란 놈이었을 뿐입니다.”

지부장이 총관의 말에 당황한다.

“총관, 지금 무슨 소릴···?”

“지부장님, 지부에 처음 와서 저와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

지부장이 입을 꾹 다문다.

“무시 받는 방계지만, 언젠간 당당히 단목세가에서 어깨를 펼 수 있게끔 지부를 꾸려보자 하셨지요. 협의가 넘치는 지부를 만들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었지.”

“지금 저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본가에서 들려오는 소문만 믿고 부지부장님을 핍박했지요. 지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실 부지부장님에게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지부장님께서 당가와 연이 있다는 것과 무공의 경지가 높다는 걸 알게 되자 부리나케 사과하고 있습니다.”

지부장이 총관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총관은 그의 손을 뿌리친다.

“자네, 대체 왜 그러는가?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지부장님은 변명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저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진지하군.’

총관이 하는 말은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 온 날부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며 모래주머니를 메고 연무장을 돌았다. 나에게 보여주려 그렇게 행동했나 싶었는데, 본래 성격이 저러한 듯하다.

“죄송합니다. 부지부장님. 이 일을 모면하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부장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이미 지부에서 일어난 일 모두를 상세히 적어 본가로 보냈습니다. 전서구를 이용했기에 되돌릴 수 없지요.”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 일을 본가에 알렸다고? 제정신···.”

“그만하십시오! 전 총관의 자질이 없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지부장님의 허락 없이 서신을 보낸 것도 큰 죄이나··· 전 성도지부의 총관직을 오늘부로 내려놓고자 합니다. 나머지 벌은 홀로 반성하며 받도록 하겠습니다.”

총관의 말에 지부장이 머리를 쥐어뜯는다.

사람이 저렇게 밑도 끝도 없다니···.

“미치겠군, 자네 지금 이런 일로 평생을 바쳐온 직급을 버리겠단 말인가? 으응? 내가 장로가 되고 나면 자네가 이곳의 지부장이란 말일세!”

“비무 대회가 끝난 후 줄곧 생각했습니다. 전 자질이 없습니다. 이런 편견을 가지곤 지부원들에게 피해만 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사천당문의 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총관의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다. 아마 이런 부분을 걱정했나 보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지금 말하는 것을 보니 꽤···. 

‘그만두라고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두 사람이 어떻게 연을 맺었고, 합심하여 지부를 키우려고 했었는지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지부장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퍽 많은 사연이 있었던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울컥하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대화를 이어나가던 지부장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모든 것을 해탈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 자네의 말이 맞아.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변명하려 했었다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하고 싶었다네. 하지만··· 나는 변했군. 과거에 가졌던 의협심은 모두··· 더럽혀졌어.”

지부장이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미안하네. 자네에게도 할 말이 없네.”

지부장이 무릎을 꿇는다.

“나 또한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지부장의 자리를 내려놓겠네. 총관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모두 감당하게 할 순 없지. 또한,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군.”

총관이 몸을 움찔했지만,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으로 일관했다면, 나도 마음이 바뀌었을 것이다. 어쩌면 신교에서 배웠던 대로 행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자리를 내려놓는 게 제게 사과하는 겁니까?”

“···?”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부에 왔을 때부터 오늘까지 두 분이 제게 보여줬던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푸우욱···.

두 사람이 다시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자리를 내려놓진 마십시오.”

“부지부장님! 전 그런 용서를 받을 생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

“나 또한 마음을 굳혔다네.”

이 상황을 보면서 그들이 좋아졌다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자리를 내려놓으면? 난 꼼짝없이 이곳의 지부장이 된다. 사실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부지부장의 책임을 다할 것이지만, 그 이상의 책임을 지고 싶진 않았다.

난 목표가 있었으니까.

“두 분께서 자리를 내려놓으면, 저 혼자서 지부를 이끌어야 합니다. 오히려 제게 짐을 떠넘기시는 겁니다. 지부원들이 절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건···.”

“저는 아직 두 분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으시다면··· 지부가 더 발전하도록 노력해주십시오.”

“···!”

두 사람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사실 두 사람을 배려한다기보다 날 위한 선택이었지만··· 상관없지.

“태상가주님껜 제가 따로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제가 괜찮다는데 자리를 내려놓으라거나 하시진 않으시겠지요. 뭐 문책이 있을 순 있으나···.”

그건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아무튼, 이번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 부지부장으로서 책임을 다할 겁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도 노력해주십시오.”

“부지부장···.”

“부지부장님···.”

두 아저씨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날 올려다본다. 참으로 부담스럽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린다.

만약 이곳이 단목세가가 아닌 신교였다면, 저들은 아마 죽음이라는 벌을 받았을 것이다. 교주의 직계에게 무례를 범한 것은 그것으로밖에 갚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신교가 아니다.

‘뭐 이 정도면 됐다.’

처음 지부장이 사과할 때의 눈빛과 총관과 설전을 벌이고 난 뒤의 눈빛은 확연히 달랐다.

마지막은 진심이 보였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법이니.’

나 또한 과거에 많은 실수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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