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단목세가의 지부.
두 명의 문지기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떤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나는 단목장룡이라 하오. 이번에 새로이 부지부장으로···.”
“아, 네. 들어가십시오~”
왼쪽에 있는 사내가 피식피식 웃으며 날 바라보며 말했다.
부지부장을 대하는 태도가 영 시원치 않았다. 지부에도 내 소문이 퍼져있는 건가? 뭐 그럴 만도 했지만···.
따악!
“악···!”
정강이를 살짝 걷어찬다.
그래도 조금 아플 것이다.
“무, 무슨 짓입니까···!”
“자세가 너무 불량하군. 손님이 와도 그런 태도를 취할 건가?”
“그건···!”
사내가 말을 잇지 못한다. 할 말이 없겠지. 새로운 부지부장. 더군다나 망나니였다는 걸 듣고 저리 행동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걸 봐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저런 행동을 참기만 한다면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초장에 잡아야 한다. 과거의 망나니였다고, 지금도 망나니 취급을 받을 순 없었다. 더군다나 난 부지부장으로 온 것이 아닌가? 문지기 정도는 이리 훈육해줄 수 있는 위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지부원을 폭행하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덩치가 분개하며 나선다.
놈에게도 훈계를 해주려고 할 때.
문이 열린다.
딱 봐도 깐깐하게 생긴 사내가 무표정하게 서있다.
“안녕하십니까, 부지부장님. 저는 성도지부의 총관인 단목우현이라 합니다.”
총관이라···.
직급상으론 내가 높았지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예, 반갑습니다. 단목장룡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안에서 들으니 뭔가 소란스럽더군요.”
“그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총관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문지기 두 명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경계 임무가 끝난 뒤, 모래주머니를 달고 연무장 스무 바퀴를 뛴다.”
“예, 알겠습니다! 총관님!”
두 문지기가 어떠한 억울함도 없이 총관의 말에 대답한다.
나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일부러 그랬던 건가.’
대충 상황이 그려지고 있을 때.
총관이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아랫것들을 관리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지부는 규율이 있으므로 잘못한 것이 있다면 확실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새로 부임하신 부지부장님께 처음부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니 저도 연무장을 뛰는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아닙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지는 법이지요.”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리는 총관.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
“총관은 상벌이 확실한 사람이라네.”
지부장 단목필이 진중한 눈빛으로 말한다.
나는 그와 나란히 서서 연무장을 뛰고 있는 총관과 두 명의 문지기를 보고 있었다.
총관의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행동을 묵인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지부장이다. 총관씩이나 되는 이가 모래주머니를 메고 연무장을 도는 건 당연히 내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나도 잘못한 것이 있다면 저렇게 될 수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겠지. 성대한 환영식이군.’
애초에 난 본가에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
오죽하면 친동생인 단목경이 면전에서 욕을 했겠는가?
가주에겐 과거를 감당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었다. 그 말은 과거에 사로잡혀 반성만 하며 살아가겠다는 말이 아니다. 참고 참으면 주위에서 인정해주는 게 아니라 얕보게 된다. 호구가 되는 것이다. 난 그런 취급을 받고자 성도지부에 온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지켜볼 때였다.
여기서 총관이 스스로 벌을 받겠다는데 만류하는 것도 애매한 상황.
“성도지부는 이런 곳이군요. 본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은 사천성이라네. 구파일방에 속한 명문 거파 둘과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당문이 있지. 단목세가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그리 빛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야. 나나 총관이나 여기선 철저한 약자라네. 그렇기에 최대한 기강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는 거지.”
“그렇군요.”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겠다.
‘말썽을 피우지 마라’라는 간단한 말을 참으로 복잡하게 설명한다.
“난 자네가 이곳 지부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본가로 돌아갔으면 하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나 총관에게 고민하지 말고 말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톡톡.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려준다.
“살을 빼니 확실히 인물이 살아나는군. 이곳에서 살을 마저 다 빼고 돌아가면 태상가주님께서도 만족하실 것이 분명하네.”
한마디 한마디에 의도가 담겨 있다.
‘빨리 여기서 떠나라.’
‘여기서 네가 할 건 살을 빼는 것밖에 없다.’
단순하게 해석하면 좋은 말이었지만, 오늘 막 부지부장으로 온 내게 할 말은 아니었다.
‘상관없지.’
오히려 기대감이 없는 편이 활동하기에 더 편하다.
신교에서는 과한 기대감을 없애기 위해서 주색잡기에 빠졌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확고한 목적이 생긴 상태. 부지부장의 책임을 저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당분간은 무공 수련에 전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여 그에게 묻는다.
“그럼 전 내일부터 뭘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오느라 피로가 쌓였을 텐데 쉬면서 여독을 풀게나. 할 일이 있으면 나나 총관이 알려주도록 하겠네. 부지부장은 따로 독립된 전각을 배정받으니 그리 눈치가 보이진 않을 걸세.”
말을 들어보니 당분간은 일을 시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가서 쉬도록 하게.”
“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부장에게 인사하고 연무장을 떠나간다.
그는 조금의 미소조차 짓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 *
“도련님! 괜찮으세요?”
이새붕이 긴장한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지부에 온 첫날부터 언성이 높아졌으니 그가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별일 없었어.”
“그래도 너무한 거 같아요. 보란 듯이 도련님한테 언성을 높이다니···.”
“본가에서는 뭐가 달랐느냐?”
“그렇지만··· 도련님은 기억을 잃으시고 많이 달라지셨잖아요···. 아직 그런 대우를 받으시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지부 사람들은 모르니까.”
이새붕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정말 나중에 도련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면 얼마나 놀랄까요? 분명히 태도를 싹 바꿀 거예요! 두고 보라죠!”
그의 반응에 웃음이 난다.
“됐다. 남 걱정하지 말고 너부터 걱정해라. 오늘부터 바로 수련을 시작할 거다.”
내 말에 이새붕이 주먹을 쥐며 긴장한다.
“아, 맞다···! 이제부터 뭘 하면 될까요?”
“넌 체력은 좋으니 육체단련보다는 기(氣)의 존재를 느끼는 게 급선무다. 검법이나 보법 등을 익히는 건 그 후다.”
이새붕은 무공을 익히기엔 늦은 나이였다.
명문 무가에서 어릴 때부터 내공심법을 익히는 이유는, 자랄수록 세맥에 불순물이 쌓이기 때문이다. 세맥이 좁아지면 운기행공으로 취할 수 있는 내공이 줄어들고, 무공을 사용할 때도 한 번에 가용할 내력의 양이 줄어든다.
절세의 영약이라도 취하지 않는 이상 그걸 극복하긴 힘들다.
‘아니면 환골탈태라도 해야겠지만···.’
나 또한 환골탈태를 겪어보지 못했다.
보통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 내부의 노폐물이 배출되며, 신체가 재구성된다고 한다. 노화됐던 근골이 다시금 젊어진다. 당연히 이새붕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천운이 따라준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새붕이 적당히 자신의 몸을 지킬 힘을 지니는 것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옙!”
이미 그에게 전수해줄 심법은 만들어두었다.
* * *
“부지부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조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방 안에는 성도지부의 지부장 단목필과 총관인 단목우현이 마주 앉아 있었다. 새로이 부지부장으로 온 단목장룡이 부임해온 지도 보름이 지났다. 다행스럽게도 단목장룡은 걱정만큼 망나니는 아니었다. 부임해오자마자 기루에 들락거리며 지부의 분위기를 망쳐버릴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그는 조용히 지내주고 있었다.
“으음, 자네의 생각이 맞았군. 자신도 벌을 받을까 봐 무서운 게야.”
“···사실 제가 예상했던 반응과는 조금 다르긴 했습니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더군. 자네가 연무장을 뛰고 있을 때, 넌지시 의중을 떠봤네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어.”
단목장룡은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내색하지 않았던 것뿐이었지만, 단목필은 장룡의 반응을 오해하고 있었다.
“아무튼, 한시름 덜었군. 장룡 때문에 자네가 부지부장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건 아쉽네만···.”
“괜찮습니다. 총관의 자리도 제게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닐세. 자네가 성도지부에서 이룬 성과를 생각하면··· 절대 과분하지 않아. 부지부장도 줄곧 여기에 있진 않을 테니 조금만 참아주게. 본가에서처럼 망나니짓을 하다간 연무장을 뛸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총관 또한 자리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가문의 직계가 꿰찬 부지부장 자리를 당장 빼앗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기다리는 건 자신 있는 총관이었다.
“참, 태천문(泰天門)에서 친선 비무에 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오오, 다행이군. 그렇다면 참가 문파가 넷으로 늘어난 게로군?”
“예,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습니다.”
성도지부의 지부장인 단목필은 야심이 가득한 사내였다.
단순한 지부를 넘어 단목세가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 지부와 차별화된 방식으로 지부의 명성을 떨친다. 그 첫걸음이 바로 사천성의 중소 문파들을 모아 비무 대회를 여는 것이다.
그곳에서 지부원들이 실력을 보여준다면, 사천성을 넘어 그 명성이 중원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라는 계획에서 출발한 비무 대회. 당연히 아미파와 청성파 그리고 사천당문은 다음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본가가 아닌 지부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세력이 참가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친선 비무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면···.
‘그들도 참가 의사를 보낼 테지. 내 힘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와 직접적인 연을 맺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본가에서도 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지부장은 언젠간 꼭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미 지부에선 그들 중 하나와 커다란 연을 맺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