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36)

* * *

“후우, 출출하군.”

이미 어둑해져 달이 높게 떠 있었다.

밖에 문을 열어보니 작은 상에 음식이 담긴 그릇이 올려져 있다.

이새붕이 나를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아마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으니 들어오지 않고 이렇게 준비해놓은 것이리라.

참으로 고마웠다.

식었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맛있게 먹으리라.

상을 들고 안으로 방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뭐지?’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혈우검마가 쳐들어 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분명 그때 육신의 감각보다는 훨씬 떨어지는 감각이었지만···.

슬쩍 옆을 바라본다.

객잔이 조용하다. 밤이 늦었으니 당연할 테지만···.

‘문이 열려 있어.’

당옥정의 방이다.

똑똑.

혹여나 그녀가 안에 있을 것을 우려하여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다. 천천히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새붕아!”

이새붕이 눈만 끔뻑끔뻑 뜬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에게 맞기라도 했는지, 입가엔 피가 흐르고 있다.

‘점혈 당했군.’

점혈이란 사람의 혈을 눌러 일정 기간 말을 못 하게 하거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인간의 혈이란 급소나 다름없었기에 제대로 점혈을 배우지 않고 사용하면,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기술이다.

다행히 이새붕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듯하다.

오랫동안 몸이 굳은 상태로 있어 제대로 움직이는 못하는 이새붕. 나는 그의 몸을 주물러주며 주위를 살핀다. 싸움이 일어난 흔적이다.

‘당옥정이 없다. 설마 그녀가 말했던 놈들이?’

무슨 이유로?

장보도는 이미 훔쳤고, 본래 당옥정이 그들을 추적하고 있지 않았던가?

생각을 정리하며 이새붕에게 진기를 활용하여 몸을 주무르고 있으니, 이새붕이 턱을 달달 떨며 말한다.

“도, 도련니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더냐?”

“그게···.”

더듬거리며 설명하는 이새붕.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았다. 내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자신의 방에 돌아가려던 이새붕은 당옥정의 방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 들어갔더니 이런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이상하군. 당옥정의 무공의 수위가 낮은 편이 아닐 텐데···.’

킁킁.

무언가 묘한 냄새가 방 안에 감돈다. 산공독(散功毒)의 향. 아무리 독에 해박한 당문 출신이라도 모든 독에 내성을 가진 건 아니다. 또 자고 있을 때 산공독에 노출됐다면··· 가능성이 있다. 해우심법은 호흡으로 좋지 않은 기운을 바깥으로 몰아낼 수 있다. 이미 희미해진 산공독을 체외로 내보내는 것쯤이야.

그렇게 산공독을 흩어내며 이새붕의 얼굴을 바라본다.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

당옥정은 그렇다 치고, 이새붕을 이렇게 만들어 방치한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복수를 다짐했지만, 최대한 평온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새붕의 얼굴에 있는 멍과 피를 보니 분노가 치민다. 서녕지부에서의 악몽이 떠오른다.

“그, 그리고··· 당 공녀님께서 기절하시기 전 이걸 바닥에 던지시고···.”

주머니 속에는 약병이 담겨 있었다.

‘추종향이군.’

이건 전문적인 추적 훈련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리도 당연히.

나는 약병을 열어 그 냄새를 뇌리에 새긴다. 머릿속에 시큼한 무언가가 자리를 잡는 게 느껴진다. 신교에서도 추종향을 활용한 무공이 있다. 사천당문과 그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냄새만 활용하면 된다.

‘난다. 아직 그리 멀지 않아.’

과거였다면 추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거라, 금방 돌아오마.”

“예, 도련님··· 꼭 그분을··· 구해주세요. 도련님과 정말 잘 어울리시는···.”

나는 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사람을 건드린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한다.

그래야 누구도 내게 이러한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 * *

“크크크크! 와, 정말 열리잖아!”

중원에서는 백독이흉으로 불리는 두 사내.

당옥정의 손가락에 상처를 내고 피 두어방울을 흘리니 기적처럼 바위가 움직인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 장소를 만들었는지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보도와 바위에 적힌 대로 하니 열리니 굳이 그 원리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백독이흉의 반용라는 희희낙락하여 손뼉을 친다.

“오, 굳이 이 계집을 죽이지 않아도 되겠네?”

당가 계집, 납치된 당옥정이 눈으로 그들을 욕하고 있다. 점혈에 당해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백독이흉은 사천당문의 여식에게 산공독을 중독시키는데 성공했다. 사실 그들 또한 아주 오랜 세월 독을 연구해온 사파의 마두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가 자고 있던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긴 했지만.

처음에 그들은 당옥정을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만약 피의 양이 많이 필요할 수도 있었기에 그녀를 직접 납치해오는 길을 택했다.

“씨발! 있다! 있어!”

바위가 열리자마자 안으로 뛰어 들어간 엽상의.

그는 흉한 얼굴에 잔뜩 미소를 띤 채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뭐? 있다고?”

“뇌공검법(雷空劍法)! 뇌왕의 절기가 분명해! 그리고 이 옆에 있는 건··· 뇌왕검이야!”

“오오, 빛깔부터 다르네.”

“좋아! 아주 좋아! 나도 이제 고수가 되는 거야. 그냥 고수도 아니고, 초고수가 되는 거라고!”

그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아 입에 담지도 못할 일들을 많이 겪으며 자랐다. 이제 그 설움을 풀 기회가 찾아왔다. 이 무공을 익혀 중원에 나선다면 그들도 천하제일의 자리를 논하는 무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 좋아! 이제 여기서 이걸 익히는 거야! 우리 둘 다 이걸 대성하면 천하제일인이 두 명이 되는 거라고! 엉? 알겠어? 우리가 사마련의 련주가 되는 거라고!”

“으응, 알겠어.”

반용라는 담담히 그의 흥분한 말에도 수긍했다.

반용라는 덩치가 엽상의보다 훨씬 컸지만, 그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반용라의 말을 들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도 이겨내 왔다.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게 손해였다. 그리고 지금 반용라의 신경은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상의야.”

“···왜?”

마음이 급한지 뇌공검법을 읽어가던 엽상의.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저 당가의 계집은 어떻게 해?”

계집?

순간 엽상의의 시선이 점혈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당옥정에게로 향한다. 얼핏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참으로 아름답다.

“씨발, 맞다. 저년 어떡하지?”

“저기 내가 생각이 있는데···.”

“네가 뭔 생각을 해?”

혹여나 당옥정을 풀어주자고 할까 봐 겁이 난 반용라. 그가 엽상의를 설득한다.

“우린 뇌왕의 무공을 익히잖아!”

“근데 뭐?”

“그럼 천하제일인이 되는 거 아니야?”

“아, 씨발. 그래서 뭐 어쩌란 거냐? 결론이··· 아!”

반용라의 말에 엽상의가 뭔가를 깨닫는다.

“맞네···! 굳이 사천당문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잖아?”

“맞아! 내 말이 그거야!”

반용라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엽상의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보물인 뇌공검법은 품속으로 살며시 집어넣는다.

“오랜만에 좀 즐겨볼까?”

“어! 먼저하고 와! 기다리고 있을게!”

반용라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외친다.

엽상의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당옥정에게 다가간다.

“씨발, 적당히 예뻤으면 그냥 돌려보내 주려 했는데 안 되겠다. 그렇게 낳아준 네 애미를 탓해라.”

그렇게 엽상의가 욕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의 몸을 훑으며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었다.

자비는 사치다

서걱···!

하늘을 밟아 이동한다는 천유보. 내가 보았던 절세 무공의 심득이 모두 집약되어 단목세가의 원형과는 궤를 달리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접근하는데 성공하여, 검을 휘두른다. 당연히 노리는 것은 놈의 목이었다.

“크읏!”

하지만 아직 몸이 둔한 탓일까.

머리로는 충분했지만,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아니, 만약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체력을 소진하지 않았다면 이 기습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놈은 당옥정을 취하려던 순간에도 내 공격에 반응했고, 팔을 들어 목을 막았다.

“제기라라아알! 당문의 무사가 왔어!”

“뭐! 뭐야! 벌써 왔다고!”

둥둥둥!육중한 몸의 사내가 달려 나온다.

뭘 준비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의를 탈의한 상태였다.

나는 놈들이 뭘 하는지 기다리지 않고 일단 당옥정의 점혈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당장 움직이긴 힘들 것이다. 일단 산공독의 영향도 있으니 내력을 돌리기에도 여의치 않을 것이고.

그래도 몸을 피할 순 있을 거다.

“장룡···! 와줬구···.”

“뒤로 물러나 있어.”

바로 그녀에게 시선을 뗀다.

감동의 재회 인사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두 사내를 바라본다.

자세를 낮추고 경계하고 있다. 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건 나도 똑같았다. 놈들의 팔과 다리를 살피며 언제든 반격할 수 있게 준비한다. 친선 비무 따위가 아닌 실전. 만약 저놈들이 익힌 무공을 알았다면, 완벽하게 파훼할 수 있을 테지만··· 아직 놈들의 무공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다. 진주언가의 언승지와 비무할 때와는 다른 상황이다.

‘마구잡이로 싸울 수는 없다. 분노가 치밀수록 냉철해져라.’

신교의 가르침.

그걸 실전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난 그 극소수에 속한다.

“씨바알! 그냥 놓아주자고 했지? 이제 곧 당문의 정예들이 들이닥칠 텐데!”

“내, 내가 언제 그랬어!”

두 사람은 날 당문의 무인으로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심리를 흔든다. 무공은 몸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일다경이 지나기도 전에 본가의 무사들이 도착할 것이다. 네놈들은 독에 절여져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내 말에 놈이 분개한다.

“제길! 그럴 줄 알았다!”

두 놈은 초조한 눈빛으로 출구 쪽을 바라본다.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마음이 급해지면 그대로 몸에 나타난다.

“시간을 끌어 여기서 도주한다!”

“저, 저 여자는···?”

“이 와중에 여자 타령이냐! 아직 우린 천하제일인이 아니라고!”

그때 작은 체구의 사내가 움직였다.

의외로 그가 향한 곳은 동굴의 출구 방향이 아니다.

‘뭐지? 안쪽에 함정이라도 설치한 건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당문의 정예들은 두려워하면서 바로 탈출하지 않으려 한다?

‘좋아, 알아서 서로 떨어져 줬으니.’

나는 거한의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천유보를 펼치고, 놈의 지척에 도달하는 순간 이제는 팔십이식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뺀, 유성환상검이 펼쳐진다. 본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게. 그 쾌를 바탕으로 환을 펼쳐내는 검법.

이 몸으론 아직 환을 펼칠 만한 속도를 구현할 순 없었다.

하지만 꼭 쾌를 이용해서 환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전의 내력이 세맥을 통해 검으로 이동한다. 이미 나는 검에 내력을 담을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 내력이 적고 검기를 마구 뽑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환상검.’

사르르르···!

내공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들여 미지의 힘을 인간의 몸에 쌓는다. 그것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내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공이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무한한 힘이라 생각했다. 자연은 음양오행이라는 이름으로 천지만물을 구성한다. 죽음을 마주하고, 배교의 이혼대법으로 혼을 옮겼던 것을 줄곧 상상해왔다. 그 깨달음은 내 몸속에 조금씩 녹아들고 있었다.

번쩍!

“어억···?”

놈은 지금 기의 비틀림에 당황했다. 의도적으로 상대의 기감을 흔드는 거다.

찰나의 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타닷!

“뭐···!”

거한 사내는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둘렀다. 산만한 움직임이었지만, 위협적이기도 하다. 실전에서 갈고닦은 권격이었다. 이게 친선 비무였다면 적당히 그 공격을 피해냈겠지만, 지금은 실전이었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삶과 죽음이 갈리는 실전.

타앗!

팔꿈치로 놈의 팔을 쳐낸다. 순간 상단이 열리고, 선이 보인다. 단단하게 담금질 된 철검. 베는 것보다 찌르는 게 훨씬 위력이 강하다. 검을 두 손으로 잡고 힘을 다해 쭉 밀어 넣었다.

그리고···.

“꺼륵···!”

거한 사내의 목에 검이 박혔다.

바로 검을 뽑는다. 놈의 목에서 피가 터지며 내 얼굴와 의복에 가득 묻었다.

“용라야! 이제 가자! 검을 챙겨 왔···?”

내부에서 나온 작은 체구의 사내가 움직임을 멈춘다.

놈의 손에는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검이 들려 있었다. 정말 이곳이 뇌왕의 비고라도 되는 것일까?

“네놈··· 감히··· 감히···!”

눈에 핏발이 선다.

저러한 분노는 가끔 위협이 되기도 한다. 눈먼 검에 베일 수도 있는 게 강호였다.

“···.”

채앵!

놈은 검을 바닥에 던진다. 그리고 기다란 손톱을 세워 자세를 취했다. 조공(爪功)이다. 등불이 옅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톱이 약간 검어 보였다. 독이라도 발려져 있는 건가? 스치면 위험하다.

“죽여버린다!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일 거야···!”

사내는 고양이처럼 잔뜩 자세를 낮추고 내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초 근접전은 내게 불리하다. 놈의 손톱에 어떤 독이 발려져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스치기만 해도 난 손해였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확보한다.

“당문의 개새끼···! 뒈져!”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움직일 방위가 마땅치 않은 동굴 내에서는 검이 불리하다. 놈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내 품으로 파고들려 했다.

‘틈을 주지 않는다.’

천유보.

단목세가에선 거의 기본적인 보법 중 하나다. 가문의 직계라면 필수적으로 익히는 보법. 하지만 내가 펼치는 천유보는 달랐다. 좁은 동굴 속에서도 최적의 방위를 밟을 수 있다.

휘이익-! 휘익-!

놈의 손톱이 내 몸에 닿지 못하고 지나갔다. 검을 휘두르기엔 너무 근접해있다. 하지만 나는 검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을 쓴다고 해서 꼭 검만 활용하라는 법은 없다.

“흡!”

숨을 참고 몸을 움직인다. 단전의 내력이 근육의 수축과 팽창을 수월하게 한다.

옅은 등불에 놈의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놈의 동공이 커지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대로 이마로 안면을 강타했다.

“커헉···!”

이마에 확실한 충격이 전해졌다.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서 무릎을 차올린다. 내가 노리는 곳은 인간의 급소 중 가장 튀어나온 부분이었다. 

퍼억-!

“꺽!”

코를 맞고도 손톱을 찔러넣으려 했던 놈이었지만, 이번 공격에는 온몸에 힘이 쭉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몰랐으니 천유보를 펼쳐 뒤로 물러선다. 동시에 검을 쥐고 자세를 잡는다.

“어어억··· 끄어어어···!”

놈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끝이군.’

나는 바로 검으로 놈의 발목의 힘줄을 베었다.

놈이 고통에서 빠져나오더라도 날 공격하지 못하도록.

뒤를 돌아보니 입을 벌린 채로 내가 싸우는 걸 지켜보는 당옥정이 보인다.

“움직일 수 있어?”

“으, 으응···.”

그녀는 일어서려 하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오랫동안 점혈을 당했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내공이라도 활용할 수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넌 누구냐.”

“···.”

땅에 머리를 박고 부들부들 떨던 사내.

그가 고통에 젖은 얼굴을 든다.

“개새끼··· 언젠간 널 죽여버릴···.”

무림에는 온갖 고문 방법이 존재한다.

나는 그중에 최고를 알고 있다.

분근착골(分筋錯骨).

혈도에 적정량의 기를 쏘아 근골을 뒤틀어버리는 고문법이다. 내부의 혈을 자극하는 고문법이었기에, 일반적인 고문과는 궤를 달리한다. 내력의 제어가 일정 수준에 올라야만 시도 할 수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놈의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올 때쯤.

난 고문을 멈췄다.

“이름, 별호.”

놈은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여, 엽상의···! 백독···이흉···!”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뒤를 돌아 당옥정을 바라본다.

“알고 있어···! 꽤 악랄하다고 소문났던 놈들이야···! 현상금도 걸려있어!”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곤, 다시 엽상의에게 시선을 돌린다.

“소속.”

“소, 소소옥···? 끄아아아아!”

대답을 지체하는 것 같으면 고통을 준다.

“없어! 없어! 나는 그런 거 없다고오!”

그렇게 난 그를 심문했다.

목적이 무엇인지. 여기서 발견한 게 뭔지.

놈이 가져나온 보검과 품속에 감춰두었던 무공서를 보아하니 뇌왕의 비고는 확실한 듯했다. 그리고 그와 사천당문이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것 같았다.

“장룡···.”

그렇게 심문을 마치자 당옥정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마치 겁을 먹은 듯했다. 자신이 납치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목이 꿰뚫려 죽은 반용라라는 사내의 시체 때문에 그런 듯하다. 사람이 죽는 것은 처음 보는 건가?

엽상의에게 시선을 돌린다.

놈은 만신창이가 되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울먹이며 날 바라보는 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하다.

그에게 다가가려 하자 당옥정이 내 소매를 잡는다.

“왜?”

“죽일··· 거야···?”

“그래.”

나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자비를 베풀 때가 아니다. 이놈을 살려줬다간 언제 갑자기 나타나 뒤통수를 때릴지 모른다. 만약 놈의 뒤에 다른 세력이 있었다면 선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놔줄래?”

난 그녀를 설득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당옥정이 소매를 놓았고, 난 그대로 엽상의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었다.

지금의 나에겐 자비란 사치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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