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36)

* * *

“네에에에? 사천의 성도로 간다고요? 왜요? 갑자기? 설마 아버지가 혼사를 깬 벌로 가문에서 쫓아내는 거예요? 설마?”

단목산산이 곧 울음이라도 터트릴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한 달 동안 줄곧 붙어있으면서 정이 쌓인 모양이다. 단목산산은 나를 의지하는 게 느껴졌고, 나 또한 산산을 아꼈다.

“태상가주님께서 내게 기회를 주시고 싶은 것 같더구나.”

“기회요···?”

“그래, 그곳에 가서 부지부장의 직무를 수행하라더구나.”

“허어···?”

단목산산이 입을 벌리고 고개를 갸웃한다.

그녀도 이것은 상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잠시 뒤.

“잘 됐어요···! 드디어 어른들도 장룡 오라버니가 달라진 것을 깨달은 거라고요!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긴 것을 보면 말이에요!”

“그런 것 같구나.”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얼굴에 웃음이 번져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럼 언제 가시는 거예요?”

“언제 출발하라는 말씀은 없으셨으나··· 아마 곧 출발해야 할 거야.”

오늘 아침에 장남인 단목청야와 단목경이 가문을 나서 천룡각으로 떠났다.

사실 나를 천룡각으로 보내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지부로 가서 부지부장의 직무를 수행하라니··· 아마 여러 가지 계산이 깔린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태상가주는 장남의 경쟁자를 만들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우우··· 오라버니가 나가면 무슨 재미로 무공 수련을 한담?”

“음? 내가 없으면 수련을 게을리할 생각이더냐?”

“에에··· 그건 아니고요. 절 뭘로 보시고!”

단목산산이 휘휘 고개를 젓는다.

이제는 서로 장난을 칠 정도로 친해졌다. 요즘 들어 산산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덜 보게 된 것도 같아서 보기가 좋았다.

그렇게 산산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태상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흘흘, 산산이도 같이 있었구나.”

“할아버지!”

“그래, 그래. 어이쿠, 우리 예쁜 강아지.”

단목산산을 쓰다듬어주던 태상가주가 무언가를 내놓는다.

고풍스러운 목궤, 이것에는 내가 원하는 물건이 잠들어 있으리라.

영약.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몰랐으나, 영약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내겐 큰 도움이 된다.

“감사합니다.”

“흘흘, 아니다. 영약을 취하는 방법은 알고 있겠지?”

“예.”

“그럼 바로 취하도록 해라. 호법은 내가 서주도록 하마.”

사실 단목세가 내에서 위험 요소는 없을 테지만, 태상가주가 날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연무장에 앉아 바로 영약을 취하기로 했다.

“구룡환이라는 물건이다. 오랜 벗이 내게 준 선물이지. 운이 좋다면 총 10년의 공력을 모두 흡수할 수 있을 것이야.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해라.”

태상가주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영약을 취하는 것은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당연했다. 

목궤를 여니 붉은빛이 감도는 영약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잘 만들어진 영약이었다. 나는 가부좌를 튼 상태로 그것을 입속에 털어 넣는다. 그리고 손에 닿았던 단단한 촉감과는 달리 혀에서 스르륵 녹아내린다.

“···.”

내가 새로이 만들어낸 해우심법.

이것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운기행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영약을 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약의 거대한 기운이 세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후끈!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약의 기운.

구룡환은 양(陽)의 기운을 품은 영약이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세맥을 헤엄쳐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해야할 것은 그것이 온전히 단전에 흡수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보통 영약을 취하면 그 기운을 모두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작은 기운의 손실마저도 아까웠다.

모두 흡수해야 한다.

즈으으으···!

‘그래도 매일 심법을 수련한 덕분에 세맥이 기운을 잘 받아들이는구나. 이 정도면 충분히 단전에 갈무리할 수 있겠어.’

해우심법의 구결대로 구룡환의 기운이 세맥을 통해 움직인다. 단전으로 그 기운을 유도하는 것은 내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가 흘러갔을 무렵.

‘좋아. 다 취했다.’

구룡환의 기운이 모두 단전에 고이 잠들었다.

단전에 품은 기는 보통 년이라는 단위로 세는데,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내공은 5년 수준이었다. 그리고 구룡환의 영약을 취해 15년의 공력을 가지게 되었다. 3배나 늘어난 것이다.

확실히 몸에 힘이 샘솟는 게 느껴진다.

사실 15년도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운기토납을 통해 쌓으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양이었다.

단목장룡이 아주 어릴 적부터 무공을 수련해 모은 내공이 5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단목산산과 태상가주가 두 눈을 끔뻑끔뻑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태상가주님.”

“오라버니?”

“음?”

태상가주가 굳은 얼굴로 뚜벅뚜벅 다가온다.

설마 태상가주가 아닌 할아버지라고 불렀다고 저러는 건가? 단목청양에게 할아부지라고 불러보라고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영약의 기운을 모두 흡수했다고?”

“예, 정말 좋은 영약이더군요.”

“반 시진 만에?”

그제야 난 태상가주가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있었다.

보통 영약을 취하면 꽤 오랜 시간 기를 흡수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오래 걸리는 척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예.”

태상가주가 내 맥을 짚는다.

그의 수준이 되면 맥을 짚어 상대의 단전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내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내 내공심법을 파악할 순 없었기에 순순히 손을 내준다.

“허허허허! 정말이로구나. 이렇게 빨리 영약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 것도 모자라··· 구룡환의 기운을 하나도 빠짐없이 흡수했어. 어찌···.”

“운이 좋았습니다.”

태상가주가 고개를 젓는다.

“운이 아니야. 네가 특별한 거 같구나. 네게 이런 재능이 있는지 미리 알았다면··· 더 신경 써 주는 건데···.”

“대단해요, 오라버니!”

뒤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단목산산도 태상가주의 칭찬에 밝은 목소리로 외친다.

이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약간의 머쓱함이 느껴질 때.

“우리 장룡이 장하다! 장해!”

태상가주가 날 부둥켜안고 등을 두드려준다.

“오라버니 최고!”

단목산산도 빠질 수 없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 당연히 밀쳐내려면 밀쳐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썩 나쁘지 않아.’

그 빌어먹을 신교에선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뭔가 구린 냄새가 나네?

단목세가를 떠나간다.

가주와는 잠시 독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사천성에 가선 사고를 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곳에선 단목세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나. 내가 사고를 치더라도 뒤를 봐줄 사람이 없다고 주의하라 했다.

사고를 칠 생각도 없었기에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가주님은 날 신뢰하지 않아.’

뭐 나였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최근 살을 빼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 전의 과거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과거를 감당하겠노라고 그의 앞에서 약조했으니 그러한 시선이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달라진 것으로 크게 기대를 품는 것이 더 부담스럽다.

특히 태상가주의 신뢰 가득한 눈빛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오묘한 감정이었다.

단목산산은 한 달 동안의 무공 수련으로 정이 들었는지 내가 떠날 때 눈물을 글썽였다. 참으로 귀엽고 착한 동생이었다. 다시 가문으로 돌아오는 날 선물을 사오겠다고 약조하고 겨우 단목세가를 떠나갈 수 있었다.

뚜벅뚜벅.

시종인 이새붕과 함께 길을 나선다. 뒤를 돌아보니 단목산산과 태상가주가 아직 날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정이 들었나.’

피식.

벌써 다시 만날 때가 기다려진다.

“가자, 새붕아.”

“예···!”

평생을 살아온 의창현을 떠난다니 겁을 냈던 이새붕. 하지만 하루만에 회복하고 평소의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홀로 가는 것도 아니고 함께 가는 것이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 * *

의창현에서 성도지부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대략 두 달이 걸린다.

천천히 걸어간다면 더 오래 걸릴 것이고, 말을 타거나 하면 그 시일이 짧아질 것이다. 다만, 우리는 말이 없었다. 떠나기 전 여비를 하라며 가주가 돈을 챙겨줬지만, 말에 쓰는 것은 아깝다. 굳이 빠르게 갈 필요도 없었다.

난 특별한 임무를 받아 지부에 간다기보단···.

‘나를 평가하기 위함이겠지.’

그곳에서 뭘 하느냐에 따라 내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 날 성장시킬 생각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대로 망나니인 채로 살도 빼지 않고 살아갔다면 강호로 내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아니, 지금쯤 진주언가와 혼삿날을 잡고 그것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혼인이라···.’

오른팔에 낀 팔찌를 내려다본다.

령이 주었던 마지막 선물. 혼인한다면 그녀와 하리라 여겼지만, 결국 그녀와 나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언젠간 다시 보고 싶긴 하구나.’

그때가 되면 그녀와 나는 적일까?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다. 입맛이 씁쓸하다.

“도련님···.”

“응?”

“역시 음식이 마땅치 않으시죠? 지도를 보니 곧 마을이 나오긴 하는데···.”

중원은 참으로 넓다.

길목마다 객잔이 있었다면 편한 잠자리에 뜨끈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숙은 기본이었으며, 대부분 육포 따위로 끼니를 때웠다. 이새붕은 못내 그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급할 것 없다. 이런 것도 수련의 일종이야.”

“예? 수련이요? 무공 말씀이신가요?”

“맞아.”

쫑긋!

이새붕이 귀를 세우고, 눈동자를 빛낸다. 그는 무공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무림인을 동경한다고 해야 할까? 정확히 말하면 무림인 중에서도 날 특별하게 여기고 있었다.

“허어···! 그게 수련이 되나요?”

큰 연관이 있을까?

사실 그냥 해본 말이었지만··· 생각을 하게 된다.

잠시 뒤 결론을 내리고 이새붕에게 말해준다.

“무공이란 온갖 유혹을 견뎌내야 한다. 검을 천 번 휘두르면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으며, 손바닥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지. 한계에 닥쳐왔을 때 사람은 고민한다. 여기서 멈출까?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오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끝이다. 무림인은 견디고 견뎌야 한다. 부족함을 모르는 이들은 가득 찬 것도 뭔지 모르지. 이렇게 노숙하며 부실한 식사를 한 경험은 언젠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내 말에 감격한 듯이 입을 벌리는 이새붕.

“허어···! 그렇군요. 도련님께 오늘 하나 배웠어요!”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대화하며 사천성으로 나아갔다. 

사실 부지부장직을 맡는다니 긴장도 된다. 나와 연이 있던 자들이 모두 죽었던 비극. 단목세가의 경우 그런 일이 벌어지거나 하진 않을 테지만···.

‘난 더 빠르게 강해져야 한다.’

결국, 절대적인 힘만이 모든 것을 지켜낼 수 있다.

지금 난 망나니였던 도련님치고는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이새붕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땐 줄곧 무공을 생각한다. 몸을 관조하여 어떤 방식의 무공이 가장 어울릴지 계속 개선해나간다.

가장 최근에 개선한 것은 해우심법.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만 운기행공을 할 수 있다는 건 큰 제약이다. 내공은 빠르게 모으면 모을수록 좋다. 100년의 공력을 가진 영약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님에야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전설상에는 자면서도 운기행공을 할 수 있는 무공도 있지만··· 그건 불가능해. 만약 그러한 무공이 있더라도 특별한 체질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걸으면서도 운기행공을 할 수 있게 개조한다.

당연하게 엄청 어려웠다. 일단 무공을 개조하는 것은 둘째로 치고 내 의지력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것을 고려하며 사천성으로 가며 해우심법을 개조해나갔다.

그렇게 단목세가에서 출발한 지 보름이 지났을 때.

드디어 지금 육신에서도 걸으며 행공할 수 있는 해우심법이 완성되었다.

“쓰으읍···.”

가부좌를 틀고 집중할 때보다는 느렸지만, 만족할 만하다. 이렇게 작은 시간도 철저하게 활용해서 내공심법을 갈고닦는다면 훗날 아주 크게 되돌아올 것이다. 

해우심법의 구결을 개조하는데 성공했을 때.

마침 우리는 적당한 관도에 있는 적당한 객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어! 도련님! 저기 객잔이 있어요!”

“그래, 가자꾸나.”

대답한 후에는 내공심법을 운기한다. 머리가 아프다. 상승의 무공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내공이고, 그 내공을 제어하는 것이 의지력이다. 걷는 것에 불과했지만 의지력은 계속 소모된다. 물론, 이렇게 의지력 또한 체력처럼 성장하는 부분이었기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계속 의지력을 소모하는 것이 좋았다.

이런 부분을 정확히 숙지하더라도 그걸 실천할 수 있는 무림인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것을 실시간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객잔 안으로 들어가니 중년의 사내가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사내의 눈빛은 빠르게 우리의 허리춤을 훑어냈다. 무공을 배운 움직임은 아니다. 단지···. 오랜 경험으로 무림인을 경계하는 버릇이 든 사내였다.

내 허리춤의 검을 본 사내가 더 정중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이런 객잔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무림인들은 잠들어 있는 벽력탄이나 다름없다. 언제 터질지 몰랐기에. 뭐 무림인이라고 모두 나쁘진 않지만,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일반 백성으로선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식사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방을 잡으시려고···?”

“둘 다 할 것이오. 일단 식사를 좀 하겠소.”

“예, 편하신 곳에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한다.

특히 고기 위주의 음식들을. 

과거에는 적당히 식사량을 조절했지만, 이제는 근력을 늘리기 위해 고기를 먹는다.

주문하고 얼마 있지 않아 탁상에 그릇이 올려진다. 나와 이새붕은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빠르게 식사했다.

‘으음, 그런대로 음식은 맛있군. 마을과 꽤 떨어져 있음에도 손님이 있는 이유가 있어.’

여기서 하루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온다.

거기서 반점이나 객잔을 들를 생각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객잔이 있다. 나름 이 근방에서 소문이 괜찮게 난 객잔인 듯 손님이 반절이나 차 있었다. 그리 좋은 위치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굶주린 배를 모두 채우고 쉬엄쉬엄 젓가락을 놀리고 있을 때.

“참, 자네 그거 들었는가?”

“뭘 말인가?”

“글쎄, 뇌왕의 장보도가 발견됐다는구먼.”

뇌왕?

그 사내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정파 무림에 큰바람을 몰고 왔던 인물. 나처럼 무림에선 천재라고 불렸던 존재. 아니, 실제 실력으로는 나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었다. 천하제일 중 하나를 논하는 존재였다고 하니 말이다. 난 천재성을 지니고도 수련은커녕 기루에만 들락거렸었다.

‘그런데···.’

뇌왕은 내가 알기로 사마련이 나선 것이라 알고 있었다.

뭐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나도 하오문의 정보를 통해 예측한 것일 뿐이다. 이 일로 중원이 시끄럽겠구나 싶을 때 난 혈우검마에게 죽임을 당했다.

‘애초에 지금 장보도가 발견될 이유가 있는가? 정말 사마련에서 뇌왕을 죽였다면 그의 보물까지 모두 가져갔을 텐데 말이야.’

왠지 구린 냄새가 난다.

더구나 객잔에서 밥을 먹는 평범한 이들까지 장보도의 존재를 안다고?

말이 되질 않는다.

“고, 공자님 들으셨어요?”

잔뜩 몸을 낮추고 속닥이는 이새붕.

그도 뇌왕을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

“자, 장보도라니? 그곳에 적힌 대로만 가면 금은보화가 잔뜩 있는 게 아닌가요?”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지.”

“더 좋은 거요···?”

“그래, 예를 들면··· 뇌왕의 무공 같은 거 말이야.”

“헛! 그렇군요···.”

“굳이 속닥일 필요는 없다.”

“아··· 옙···! 그렇담 저희도 그걸 찾으러 가는 건가요?”

이새붕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아니.”

잔뜩 기대한 이새붕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었지만 금세 본래대로 돌아왔다. 내 말이라면 뭐든 신뢰하는 이새붕이었다. 뭔가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이새붕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물론, 가끔 정말 눈치 없이 행동하긴 했지만 모두 날 위해서 하는 행동이니 얄미울 때는 없었다.

우리는 객잔에서 식사를 마치고, 바로 방으로 올라가 몸을 씻었다. 개울이 발견되면 몸을 씻긴 했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랜만에 몸을 씻으니 개운하군.’

씻은 뒤 이새붕은 바로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지만, 난 그 시각에도 침상에 앉아 심법을 수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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