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36)

* * *

잔뜩 심통이 난 청년.

단목세가의 셋째인 단목경이 단목산산에게 다가간다.

“야! 산산!”

“응? 오라버니?”

오늘 수련에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어 희희낙락하던 단목산산. 단목경이 성난 기세로 다가오니 고개를 갸웃한다.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거지?’

“왜 오라버니?”

“그 망나니··· 한테 뭘 배우고 있는 거야?”

단목산산은 분명히 느꼈다.

망나니라고 말할 때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다는 것을. 역시 둘째 오라버니에게 단단히 겁은 먹은 모습이다.

“오라버니한테 망나니라니? 다 이른다?”

“뭐, 뭐어? 이, 이른다고? 이 조그만 게!”

“조그맣긴! 나도 다 컸는데 뭐!”

단목산산과 단목경이 서로 노려본다.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은 단목경이다.

“됐고! 둘이서 매일 뭘 하는 거야?”

“뭘 하긴 같이 수련하지.”

“그래서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단목산산의 묘한 웃음을 짓는다.

“왜? 부러워?”

“부럽긴! 형님의 수련으로는 강해질 수 없어! 난 다 알고 있다고!”

이른다고 했던 게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는 망나니라는 말 대신 형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단목산산의 웃음이 짙어진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지! 형님은 무공의 재능이라곤 전혀 없어! 너도 알잖아! 매번 기루나 들락거리던 사람이 무공에 대해 뭘···.”

“그런데 왜 그렇게 심통이 났어?”

“심통이 난 게 아니라 널 걱정해서···!”

“흥, 언제부터 날 그렇게 걱정해줬다고?”

“정말 이년이···!”

“년? 나보고 년이라고···.”

두 사람의 감정이 격해지려고 할 즈음.

한 사내가 나타난다.

“그만해라. 가문 내에서 왜 언성을 높이고 있느냐.”

“혀, 형님!”

“오라버니···.”

단목세가의 첫째 공자, 단목청야.

그는 평소에 조용했지만, 화가 나면 정말 무서워진다. 어릴 때 그에게 벌을 받았던 기억이 두 사람의 뇌리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사실 단목청야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기도 했다. 중원의 인재들만 들어간다는 천룡각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으니까.

“산산아, 장룡과 같이 수련하고 있다고?”

“네에···.”

“경이는 그걸 보고 왜 화를 냈던 것이냐?”

“그게··· 그러니까··· 산산이가 걱정되어서요! 둘째 형님과 수련하면 산산이의 무공이 퇴보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단목청야는 단목경을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강한 척, 당당한 척을 하지만 그처럼 심약한 이도 없었다. 사실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심약한 성정을 고치기 위해서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어릴 적의 단목경은 못 봐줄 정도로 소심했었으니까.

그래도 분명히 단목경의 재능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단목산산은 무공보다는 영특한 머리로 상황 판단을 잘했었고 말이다.

‘산산이는 장룡과 언승지의 비무를 보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그게 진짜 실력으로 알고 있군. 운이 좋았을 뿐이거늘··· 쯧.’

단목장룡이 살을 빼고 열심히 수련한 것은 맞지만, 그때의 승리는 운이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천룡각에 들어온 언승지가 단목장룡에게 패배할 이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목청야는 그녀를 말로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단목산산은 어릴 적부터 영특했으니 직접 보여주면 깨달을 것이 분명했다.

“산산아.”

“네.”

“아버지의 명으로 장룡의 옆에 있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같이 무공을 수련하라고 하셨느냐?”

“그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더냐.”

“하지만 전··· 장룡 오라버니와 같이 수련하는 게 좋아요.”

단목산산이 용기를 내서 고백한다.

그녀는 사실 눈치를 많이 본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그녀를 영특하다고 생각했었다. 어른들이 듣기 좋은 말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어른들에게 숙이지 않고 제 할 말을 내뱉는 그를 보며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단목청야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내가 뭐라고 했느냐? 네가 하고 싶다는데 말릴 사람처럼 보이느냐?”

“아뇨···.”

“허나 네가 걱정되는 건 경이와 똑같구나. 장룡은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않았어. 네게 좋지 않은 습관을 심어줄 수도 있단 말이란다.”

“전···.”

단목산산이 용기를 내서 그의 말을 거역하려고 했지만.

단목청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와 수련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 달 뒤에 경이와 비무를 해보거라.”

“네?”

“경이는 내가 직접 지도해주마. 천룡각에서 배운 제대로 된 무공의 기초를 말이다.”

“혀, 형님!”

단목경이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흘릴 지경이다.

자신의 무공을 갈고닦기도 바쁠 텐데 동생에게 무공을 가르쳐주겠다니?

“산산아, 직접 몸으로 배우거라. 중원이 넓다는 것을 말이다.”

단목청야.

단목세가의 장남은 그렇게 말한 후 자리를 떴다.

당연히 단목경의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으며, 단목산산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었다.

나만 믿고 따라와

“아앗!”

어제보다 훨씬 못한 움직임. 오로지 상대만을 바라봐야 하는 비무에서 지금 단목산산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보법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냐?”

“죄송해요···.”

“아니다. 오늘은 그만하자.”

“더 할 수 있어요···!”

아니다. 더 할 수 없었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니 단목산산이 실망한 듯이 한숨을 내쉰다. 나를 향한 실망이 아닌 그녀 자신을 향하는 듯했다.

“어젠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하더니?”

무공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끊임없이 풀어가는 것과 같다. 내가 무공의 천재라고 하지만, 나라고 해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듯이 무공 또한 그러하다. 또한, 같은 무공을 익히더라도 사람마다 차이가 생겨난다.

이런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육체를 혹사한다면, 흔히 말하는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몸을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게···.”

“당장 말하기 어려우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난 널 재촉하지 않아.”

입을 꾹 다무는 단목산산.

그래, 이럴 때는 가만히 쉬는 것이 낫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비켜주려는데···.

“저, 오라버니!”

“음?”

뭔가 굳게 결심한 듯한 표정.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당장 내가 해결해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의껏 들어주는 것이 그녀에게도 이로우리라.

“편하게 말해.”

“저··· 사실은···.”

단목산산이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목경과 말다툼을 한 것부터, 장남인 단목청야가 나타나 한 달 뒤에 비무를 하라고 했던 것까지. 모든 것을 듣고 나니 단목산산이 왜 저리 긴장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그녀도 날 절대적으로 신뢰하진 않을 것이다.

바뀐 내 모습을 보고, 어른들의 명에도 굴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가졌을 뿐이다. 물론, 날 향한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단목세가의 장남인 단목청야.

그리고 무림에서 천룡각이라는 무링맹 산하 교육 기관이 중원에서 가지는 의미를 볼 때, 단목산산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경이에게 패배할까 봐 겁이 나는 것이냐?”

도리도리.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그럼?”

“그게 오라버니 때문에···.”

음?

나 때문이라고?

“제가 패배하면 또 모두 오라버니 탓을 할 거 같아서요. 바뀌고 계신 오라버니께 제가 폐를 끼치진 않을까 해서···.”

“···.”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자신이 패배할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날··· 걱정했다고?’

신선한 충격이다.

지금 이렇게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나 때문이다···?

할 말을 잃었다.

뭔가 찌릿한 것이 심장을 자극한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 조금 전 그녀에 대한 것을 혼자 속단했던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다.

“왜 내가 걱정되는데?”

“그야 당연히··· 오라버니니까요.”

그렇다.

나는 단목산산의 오라버니였다. 그녀가 날 완전히 신뢰하지 않을 거라느니. 단목청야와 천룡각의 위치가 어떻든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잘못생각하고 있었다.

가족, 그래··· 그녀와 나는 가족이었다.

‘이거 참···.’

걱정 가득한 단목산산.

그녀의 머리에 자연스레 손이 간다. 

“괜찮다.”

“네?”

“네가 이기고 싶으면 이기게 해주마. 그렇지만··· 져도 괜찮다. 그깟 비무가 뭐라고 날 걱정하여 그리 마음을 쓰느냐?”

“그래도···.”

“걱정도 팔자네.”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런데도 산산은 싫은 기색조차 내지 않았다. 신교에서 이런 여동생이 있었던가? 사실 단목세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려 했지만, 그들과 진짜 가족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단목산산에겐 정이 간다.

“정말 그렇게 걱정되면 이기면 되지.”

“치, 아깐 져도 괜찮다면서요?”

내가 가볍게 말하자 그녀도 입꼬리를 올리며 응수했다.

“뭐 네가 하도 걱정하니까.”

그런데 단목청야는 무슨 연유로 산산과 경의 비무를 만들었을까? 내가 관심법을 쓰는 것도 아니니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의도한 게 있을 것이다. 내가 만나본 단목청야는 그리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가끔 똑똑한 사람들도 쓸데없는데 기력을 쏟곤 하지. 특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땐 말이야.’

어떤 이유로 비무를 제안했는지 예상이 간다. 아마 장남으로서, 대공자의 위신을 더 높이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내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날 이렇게 생각해주는 동생이 있는데, 제대로 한 방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산산아.”

“네.”

“이기고 싶어?”

“이기고 싶어요···!”

“그러면 나만 믿고 따라와. 네가 이기게 해줄게.”

내 자신감 가득한 말투에 단목산산이 동화되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조금 고되긴 할 거야. 확실히 이기려면 그 정돈 감수해야겠지?”

“네···! 열심히 해볼게요!”

그렇게 단목산산과의 특별 수련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그녀만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 나도 그녀에게 공격하기로 했다. 아마 한 달이 지나면, 그녀도 나도 꽤 많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 * *

“하앗-!”

강렬한 일격이 내 명치를 찔러온다.

천 번 휘두르기 라는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땐, 단목산산은 혹여나 내가 다칠까 봐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내가 다치는 걸 염려하지 않았다. 어쩌면 날 믿는 것도 있겠지만, 그녀 자신도 공격을 제어할 자신이 생긴 것이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검에 힘을 뺄 자신이. 무림인은 전투 중에 수십 번, 수백 번 방향성을 생각해야 한다. 산산이 유기적으로 초식을 휘두를 수 있도록 정말 피나는 수련을 했다.

비무를 하지 않을 때도 검을 쥐고 다녔으며, 잘 때도 검을 품었다.

검이 마치 인간의 몸처럼 다룰 수 있도록 수련했다.

물론, 정말 검과 하나가 된다는 신검합일(身劍合一) 같은 건 당연히 아니다.

그를 목표로 두고 한 수련이었기에 검과 꽤 친해졌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지금도 단목산산의 검이 순간적으로 휘어지며 명치에서 내 허벅다리 안쪽을 노린다. 내가 명치를 방어하자 바로 판단을 바꾸어 검로를 휜 것이다. 첫날에는 이런 공격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명치를 노려 검을 휘둘렀으면, 뚝심 있게 막히더라도 명치 쪽에서 막혔다.

하지만 이제 산산은 포기할 줄 안다.

처음 공격이 막히면 다른 최선의 길을. 그것도 어렵다면 차선의 길을.

따악!

목검과 목검끼리 부딪친다.

사실 저런 공격쯤은 내 살로 받아낼 수도 있었다. 내가 만들어낸 해우심법은 저런 예리함이 없는 공격은 쉬이 막아낼 수 있었다. 언승지와 싸움에서 그녀의 주먹을 받아낸 것도 전부 다 내공심법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특별한 경우였다.

나는 최대한 일반적인 적처럼 싸우려고 노력했다.

타악-! 따아악! 딱! 딱!

목검과 목검이 줄곧 부딪치며 통쾌한 타격음을 만들어낸다. 부딪치는 순간 서로 손목에 힘을 빼서 상대의 힘을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뭐 내가 진심으로 했다면 산산은 이미 패배했을 테지만, 적당히 봐주며 상대하고 있다.

‘그게 나한테도 도움이 되고 말이야.’

그리고 스스로 제약을 걸어 봐주면서 하는 것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체력적으로나 육신의 감각을 발달시키는 것이나 말이다. 이렇게 수련하면 재미도 있었다. 내가 발전하는 재미와 산산이 점점 달라지는 모습.

이런 재미에 제자를 키우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제 슬슬 끝내자꾸나.”

“가요!”

목검이 다시 수십 번 부딪치고, 결국 목검은 서로의 목젖에 거의 닿을락 말락 할 정도에서 끝이 난다. 나와 단목산산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괜찮네.”

“헤헤···.”

단목산산도 오늘의 비무에 만족한 듯이 미소지었다.

“좋아. 내일은 비무날이니 오늘 수련은 여기서 끝이야. 푹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도록 해.”

“네! 알겠어요!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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