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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정말 비무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장룡이가 내뱉은 말이니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겠소?”
진주언가의 장로 언양. 그 또한 정말 비무가 성사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애초에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당연히 언승지의 승리였다. 단목장룡은 무공 수련도 하지 않아 살덩이가 출렁이고 있다. 들어보니 살을 뺀 것이 저정도라 하니···.
‘역시 단목세가는 믿을 만하다. 승지를 저 아이에게 내주는 것이 아깝긴 하지만··· 가문의 입장에서 나쁠 건 없다.’
비무를 앞둔 두 남녀가 연무장 중앙에 서 있었다.
이번 혼사는 진주언가가 얻어가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 이걸로 형님도 만족하시겠지.’
비무의 심판은 단목세가의 그림자인 묵위가 맡기로 했다.
과거 단목경과의 싸움을 봤던 그였지만, 그조차도 단목장룡이 이길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단목경이 의창현에서 천재라 불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원 전체로 따지자면 그리 대단치 못한 재능이라는 것도.
“친선 비무이기에 살수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만약 상황이 위험한 것 같으면 제가 개입토록 하겠습니다.”
언승지와 단목장룡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일을 벌여놓고 단목장룡은 어떠한 긴장도 내비치치 않았다. 당연히 자신이 이길 것처럼.
언승지는 그런 단목장룡의 표정을 보고 약이 오른 상태였다.
‘자기만 믿으라더니 일을 이렇게 만들고 있어? 망나니 말을 믿어보는 게 아니었어.’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녀는 제대로 단목장룡에게 격의 차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곳에 시집오더라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도록.
언승지의 몸에서 투기가 솟아오른다.
“가라, 승지야!”
언철진의 응원.
당연히 단목세가에선 어떠한 응원 소리도···.
“힘내요, 오라버니!”
단목산산의 작은 외침에 단목세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단목산산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 모습을 본 단목장룡은 미소를 머금을 뿐이다.
그렇게 비무가 시작됐다.
단목장룡은 목검을 들고 무방비해보이는 모습으로 천천히 언승지에게 걸어갔다.
언승지는 콧김을 내뿜으며 빠른 속도로 보법을 밟았다.
파밧!
언가의 무공은 무식하다 불리곤 한다.
하지만 직접 그들의 무공을 견식 해본 이들이라면···.
‘체구가 작아도 언가는 언가군.’
무엇이든 뚫어내겠다는 듯이 앞으로 돌진하는 언승지의 모습에 단목무광이 감탄했다.
순식간에 단목장룡의 지척에 도달한 언승지.
그녀의 주먹이 단목장룡의 상체를 노린다. 당연히 단목장룡은 저것을 피하거나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두웅.
“···?”
분명히 단목장룡의 가슴에 주먹이 맞았다. 그런데 둔탁한 타격음은커녕 부드러운 소리가 흘러나온다.
‘공격을 흘려냈··· 다고···?’
당황한 것은 언승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주먹이 무서운 기세로 단목장룡을 밀어붙인다.
단목장룡은 분명히 단목세가의 기초 보법 중 하나인 천유보를 펼쳐냈지만, 뭔가가 달라 보였다.
단목무광조차 정확히 뭐가 다른지 알아챌 수 없을 정도···.
연무장에 있는 모두가 단목장룡의 패배를 떠올리고 있을 때.
‘역시 언가의 무공은 너무 단순하다. 언승지의 수준이 낮은 것도 있겠지만, 뭐 그래도 이 몸에 실전 경험을 쌓기엔 나쁘지 않군.’
단목장룡은 언승지의 주먹을 흘려내거나 피해내며 수련하고 있었다.
비무할 상대가 없어서 고민이었던 단목장룡.
오랜 기간 수련해온 언승지는 적당한 비무 상대였을 뿐이다.
그렇게 일 각이 흐른 후.
“허어억···! 허어억···!”
분명히 몰아붙인 건 언승지처럼 보였다.
그런데 언승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팔엔 힘이 빠져 꽉 쥔 주먹이 떨려온다.
‘대체 뭐야? 이 사람···? 마치 내 무공을 다 꿰뚫고 있는 것처럼···.’
물론, 단목장룡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우욱! 후우우욱···!”
‘빌어먹을 저질 체력···!’
단목장룡은 슬슬 비무를 끝내야겠다고 판단하곤 목검을 들어 올렸다.
조금씩 달라지는 시선
“어떻게···!”
비무를 관전했던 모두가 당황하고 있었다.
단목세가 측에선 단목장룡이 패배하리라 생각했고, 당연히 언가 쪽에선 언승지가 무난하게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다. 모두 공통적으로 똑같은 예상을 했지만, 현재 비무의 결과는 정 반대였다.
“제가 졌어요···.”
줄곧 밀어붙이던 것으로 보이던 언승지는 패배를 선언했다. 사실 언가의 장로 언양이나 단목세가의 가주 단목무광은 단목장룡의 움직임이 묘하게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언승지의 공격을 모두 예측하는 듯했다. 다만, 패배한 언승지보다 더 지쳐 보이고 파리한 안색은 단목장룡에 대한 평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언승지가 무리했던 건가···.’
‘긴장하라고 그리 일렀건만··· 어떻게 저런 아이에게···.’
만약 그들의 무공 수준이 조금만 높았다면···.
이 비무에서 단목장룡이 선보인 무공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운이 좋아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
단목장룡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그 자신이 패배한 언승지보다 더 지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그는 예전부터 망나니로 소문이 났다. 무공 수련은커녕 기루에만 들락거리는 망나니. 이 비무 한 번으로 그 평가를 바꿀 수는 없었다.
‘언가의 대공자라는 언철진을 이기면 좀 달라지려나?’
싸울 수야 있다.
버티고 버텨서 결국엔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몸만 축날 뿐이다. 이 빌어먹을 체력은 비무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냈다. 아직 한참 모자란 체력이었다.
“고생했습니다.”
“당신··· 대체 어떻게···? 설마 제 무공을 알고···.”
“개인적인 궁금증은 나중에 풀어드리도록 하죠. 일단 어른들께 갑시다.”
언승지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연무장 한편엔 언양과 언철진이 분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승지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이제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저들의 분노는 제게 향할 겁니다.”
단목장룡이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 말에 언승지가 눈만 끔뻑끔뻑 뜬다.
“네···?”
“가시죠.”
단목장룡이 앞장섰고, 죄인이 된 언승지가 그 뒤를 뒤따랐다.
두 가문의 어른들은 할 말은 찾지 못한 듯이 침묵했다.
“저보다 약한 여인이더군요.”
“···!”
침묵을 깨트린 것은 단목장룡이다.
그 말에 언철진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선다.
“분명히 비무 후반까지 승지가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소! 마지막에 승지가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피식.
단목장룡이 고개를 젓는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비무의 결과는 정해졌지 않습니까? 어찌 됐든 저는 언 소저를 이겼으며, 저는 저보다 약한 여인과는 혼인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에 전 언가의 여인과 혼인할 수 없습니다.”
까드득.
단목장룡이 언승지가 아닌, 언가의 여인이라 언급했다. 그의 말에 패배한 언승지에게 쏠렸던 언철진의 분노가 그에게로 향했다.
“지금 뭐라고 했소!”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만···? 그렇지 않습니까, 장로님?”
단목장룡이 언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
“숙부님!”
“그만. 이미 결과는 정해졌다. 비무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우리는 비무를 강행했으며, 결국 단목세가의 둘째 공자가 승리했다. 여기서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느냐.”
“그래도··· 다시 비무한다면 분명히···.”
“그만!”
언양의 외침에 언철진이 깨갱 한다.
평소에는 언가의 사람답지 않게 냉정하고 조용했지만, 분노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서워지곤 했다. 언철진은 그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소란이 일어나고 나서야 단목무광이 모든 생각을 정리했다.
단목세가의 승리이긴 하지만, 오히려 단목세가 전체에겐 좋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서 비무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혼사를 강행하자고 한다? 오히려 언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사실 망나니 아들의 치기 어린 장난이라 생각했고, 큰 것을 얻기 위해 언가에게 처음엔 지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단목장룡이 승리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망쳐졌다.
다른 때였다면, 단목장룡이 그래도 달라지려고 무공을 열심히 수련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가문끼리의 중대사를 망쳐버리니 자꾸만 그를 탓하게 된다.
‘정말 너란 놈은 가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단목무광이 언양에게 말한다.
“일이 이렇게 되어 미안하오. 내 직접 사과하리다.”
“가주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모두의 판단에서 행해졌던 비무이니···, 둘째 공자의 말대로 해야겠지요. 승지와 둘째 공자의 혼사는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단목무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들은 자존심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여기서 누구 하나가 굽혀준다면 더 나은 길을 모색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둘 다 그러기 힘들다. 적어도 장로가 아닌 진주언가의 가주가 직접 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죄송하지만 가주님. 저희는 저희끼리 대화를 좀 하겠습니다.”
그렇게 언가의 사람들은 연무장을 떠나갔다.
단목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단목무광의 눈치를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