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36)

*  *  *

다음 날.

다시금 단목세가의 어른들과 언가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 또한 그 자리에 참석했다. 어제 나와 말다툼을 했던 언승지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한 태도.

거리낄 것은 없었다.

질질 끌다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보다 빨리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 어제 승지와 대화는 잘 나누었느냐?”

단목청야의 나긋한 물음.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

“잘 나누지 못했습니다.”

“왜?”

나는 단목청야의 물음을 무시하고 모두를 바라본다.

이제부터 혼인이니 뭐니 귀찮게 하는 것은 사절이다.

다시는 이러한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전 저보다 약한 여인과는 혼인할 수 없습니다.”

“뭐?”

“뭐라고?”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내 발언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선다.

단목청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고, 언양과 함께 온 언철진은 적의 가득한 시선으로 날 흘겨보았다.

이렇게 혼사를 파한다면, 다시는 혼사 제의가 들어오진 않을 것이다.

망나니의 첫 비무

“너보다 약한 여인과는 혼인할 수 없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장남인 단목청야가 앞으로 나선다. 모두의 표정은 비슷비슷했다. 뭐 분노를 표출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언가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지금 뭐라고? 내 동생이 약하다는 것이오!”

언철진이 언성을 높이고, 언양은 불편하다는 기색을 대놓고 내비쳤다. 언가에겐 모욕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딱히 그들을 무시한다기보다 이제부터 어정쩡한 혼인 따위가 들어오지 않기 방지하기 위함이었지만··· 그러한 의도를 이해해주기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애초에 어떠한 방식이든 혼인을 깬다면 언가와 잡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 소저가 약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저보다 약한 여인과는 혼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 확실히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그거나, 그거나!”

언철진이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서자 언양이 말렸고, 언승지는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 아우가 뭔가를 착각한 모양인데, 제가 직접 이 혼사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오겠습니다. 잠시 나가서 나와 이야기 좀 하자꾸나. 따라나오거라.”

단목청야의 말에 고개를 젓는다.

“하실 이야기가 있다면 여기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너 정말···.”

“아버지, 제 의견을 존중해주시겠습니까?”

가주 단목무광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네 의견은 알겠다만··· 하나 물어보고 싶구나.”

“예.”

“네가 정녕 승지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더냐? 승지는 그 천룡각에서도 중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천룡각이 어딘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내가 한 말은 허세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 여기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을 많이 빼긴 했지만, 정상 체중까지는 한참 멀었다. 지금 내 외관은 살이 뒤룩뒤룩 찐 돼지. 그 정도일 뿐이다.

그에 반해 언승지는 체구가 작다뿐이지, 오랜 무공 수련으로 단단한 느낌이 강했다.

보통 사내가 여인보다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공을 익히게 되면 그 경계가 희미해진다. 더군다나 그녀는 언가의 여식. 단목세가 못지않은 명문 세가였다.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언가의 최고 어른인 언양 장로가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주목된다.

단목무광이 그에게 사과한다.

“미안하오. 내 아들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한 말이오.”

“괘념치 마십시오. 사내라면 응당 저러한 포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나···.”

“사내의 말은 중천금. 그는 이미 말을 내뱉었습니다. 모두가 그것을 들었고 이제 흘러버린 말은 주워 담을 방법이란 없지요. 그렇다면 장룡의 말대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룡의 말대로 말이오?”

“그렇습니다. 승지와 비무를 하는 겁니다. 거기서 승지가 이긴다면··· 이 혼사는 그대로 진행되겠지요. 승지야?”

“예, 숙부님.”

“자신 있느냐?”

“예, 물론이에요.”

언승지는 나를 한차례 찌릿 노려보며 대답했다.

그런데 오히려 단목청야가 그걸 반대하고 나선다. 

“혼인할 이들끼리 비무라니요. 전 그 일로 부부의 사이가 틀어질까 우려됩니다. 아우에겐 제가 확실히 교육하겠습니다. 아버지,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장남의 말에 단목청야가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잠시만 자리를 파하는 게 좋겠소. 잠시만 쉬었다가 다시 의논하도록 합시다.”

언양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때가 되면 불러주십시오.”

언가의 식구들은 모두 일어나 접객실에서 나갔고,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다만, 셋째인 단목경은 감히 나에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때의 경험이 육신에 녹아든 모양.

‘그때 교육하길 잘했군.’

아니었다면 지금 내 신경을 박박 긁어댔을 게 자명하다.

“청야야, 장룡에게 이 일의 중요성을 확실히 알려주도록 해라.”

“예, 아버지.”

단목청야가 예리한 기세를 세우고 내게 다가왔다.

여차하면 검이라도 뽑을 기세로.

* * *

“숙부님! 단목세가에선 당연히 비무를 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아마 그렇겠지.”

“그럼 시간을 주면 안 되지 않습니까!”

터져나갈 듯한 목청.

언철진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언양은 입꼬리를 올릴 뿐이다.

“본인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 이미 분위기는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비무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말이야.”

“아니, 비무를 해야 우리 언가가 단목세가의 기세를 꺾어놓지 않겠습니까? 저 버릇없는 망나니의 기를 팍···!”

“그만. 단목세가는 사돈의 연을 맺을 가문이야. 그리고 이곳은 단목세가다. 버릇없는 망나니? 아무리 단목장룡이 망나니짓을 했다고 해도, 이곳에 있는 눈과 귀가 모두 그들 것이다. 언행을 주의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언양이 표정이 차가워졌다.

이런 상태의 숙부를 자극하다가 몽둥이찜질을 당한 적이 있던 언철진은 입을 꾹 다문다. 그도 언가의 피를 이어받은 사내였다. 화가 나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죄송합니다. 숙부님···.”

잠시 언철진을 노려보던 언양이 언승지를 바라본다.

“승지야.”

“예, 숙부님.”

“혹시 모르니 몸을 풀어놓도록 해라. 만약 비무를 한다면 꼭 이겨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언승지는 언양에게 대답하고 뒤돌아서 생각했다.

‘고작 했다는 생각이 약한 여자와는 혼인하지 않겠다? 이렇게 되면 난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그럼··· 그 돼지랑···.’

의창현으로 올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단목세가 도련님 정도면 자신의 남편감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무식한 언가보다는 그래도 단목세가에 시집가서 그녀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단목장룡은 무공 수련은커녕 운동조차 하지 않았는지 살이 가득했고, 그녀의 앞에서 혼인하기 싫다며 헛소리까지 했다. 당연히 여인의 입장에선 단목장룡에게 마음이 벌써 떴다. 뭐 정이야 붙이면 되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확실히 기를 잡아놓을 수밖에 없어. 혼인 생활 중에 내가 편하려면 격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줘야겠지···.’

언승지는 단목장룡처럼 가문의 뜻에 반하는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가문의 뜻은 절대적이라는 교육을 평생 받아왔으니까.

* * *

“장룡이 저놈 의지가 확고합니다. 언가의 앞에서 분명히 또 같은 소릴 늘어놓을 겁니다.”

한 시진동안 단목장룡을 어르고 달래며, 심지어는 협박까지 했지만 단목장룡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자신보다 약한 여인과는 혼인하지 않겠다니 그 넓은 무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괴짜들이 내뱉을 법한 말이다.

하지만 그 괴짜가 단목세가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호기롭게 소리쳐놓고 패배한다면 세가의 명예만 실추될 거예요.”

첫째 부인이 우려의 소리를 냈다.

셋째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요. 정말 세가의 수치네요. 이 일을 빌미로 언가에선 간섭하려 할 터인데···, 혼인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에요.”

오랜만에 두 여인의 의견이 잘 들어맞나 싶었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저어···.”

“음? 경아? 왜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니?”

제 아들을 지극히 아끼는 셋째 부인이 단목경에게 다가간다. 과거 단목장룡 앞에서는 험한 말을 마구 내뱉던 그였지만 어머니 앞에선 순한 양이 될 뿐이다.

“근데 둘째 형님이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뭐?”

그 말에 대답하는 건 단목청야였다.

“장룡이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 것이더냐?”

“후후, 우리 셋째가 충격이 컸나 봐요.”

첫째 부인이 셋째 부인을 살살 긁어댔으며, 셋째 부인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단목경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저어는··· 둘째 형님이 이길 것 같은··· 데에···.”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에 단목경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단목산산이 고개를 갸웃한다.

‘정말 장룡 오라버니한테 맞았나 보네? 저 자존심 강한 셋째 오라버니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단목산산은 한 시진 전, 이곳에서 어른들에게 당당히 할말을 내뱉던 단목장룡을 떠올렸다.

사람이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정말 언승지를 이길 수 있을까? 언가의 무공과 맞지 않은 몸을 타고났다고 해도, 그녀의 실력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천룡각의 일원이었으니까. 정파 후기지수 중 상위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룡각이다.

당연히 단목경의 의견은 무시됐다.

“장룡을 불러오거라. 언가와의 화합은 중요하다. 태상가주께서도 이 일을 지켜보고 계신다.”

태상가주.

그러니까 현 가주인 단목무광의 아버지이자 전 가주였다. 이제는 금분세수하여 가문의 일에 관여치 않는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평소엔 유유자적한 삶을 영위하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땐 단목무광이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장룡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직접 깨달을 필요가 있을 것이야.”

단목무광의 단호한 말에.

단목청야 또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가문의 가주가 내리는 결정은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신뢰받는 장남이라 할지라도.

‘장룡 오라버니, 대체 어쩌려고 그런 말을···.’

단목장룡을 걱정하는 단목산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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