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236)

* * *

웃음을 지우고 날 노려보는 단목청야.

나 또한 지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아낸다. 예전의 단목장룡이었다면 그 시선에 시선을 내리깔았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렇게 시선을 마주한 채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푸하하하!”

단목청야가 통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더 화를 내거나 무력으로 겁박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하하! 아버지께 네 이야기를 들었을 땐 믿지 못했는데 정말 기억을 잃은 모양이구나. 예전이었다면 내 말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만 까딱거렸을 터인데 말이야. 후후, 제법 사내다운 티가 나는구나.”

“형님.”

사실 그에게 형님이라 말하는 것 자체도 어색했지만, 반말을 찍찍 내뱉을 순 없는 노릇.

단목장룡으로 살아가려면 지켜야 할 것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언제까지고 참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언가의 여인들은 자신감 없는 사내를 싫어하지. 지금 너처럼 할 말은 하는 사내를 좋아한다. 지금 이대로 행동한다면 언승지 소저와 잘 통할 것이야. 그녀도 지금의 너처럼 겁이 없는 여인이거든.”

언가···.

진주언가를 말하는 것인가.

그곳 또한 오대세가는 아니었지만, 하북성내에서 명문가로 소문이 난 세가였다. 단목세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고 있다.

“이번 만남은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만남일 뿐이다.”

“그렇습니까?”

“그래, 내가 네게 혼인이라도 강요할 줄 알았더냐?”

지금도 날 살살 달래려는 것이 눈에 보인다. 강제로 윽박지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굳이 그에게 발톱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아직은 말이지.

“그게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전 아직 혼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듯 형님도 아직 혼인하지 않으셨는데, 아우가 먼저 가면 세간에서 비웃을 겁니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어색하긴 하구나.”

내가 망나니짓을 했던 것을 비꼬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웃음을 지우지 않는다.

“잘 생각하거라. 언가는 우리 가문 못지않은 명문가이며, 언 소저는 후기지수 중에서도 미인으로 소문이 났다. 그 천향이라는 기녀보다는 백 배는 나은 여인이야. 실제로 보면 너도 그녀에게 빠져들 것이야.”

“예, 내일 만나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 되겠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문끼리 확정 난 것은 없는 듯했다.

만약 그랬다면 날 달래가며 설득하진 않았을 테니까.

“내일이면 언가의 일행이 도착할 예정이니 넌 준비하고 있거라. 장룡아, 널 믿겠다.”

그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려주었다.

*  *  *

다음 날.

나는 처음으로 직계 가족들과 함께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당연히 가주인 단목무광도 있었고, 형제자매도 모두 모였다. 단목산산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셋째인 단목경은 감히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좌불안석으로 앉아 있었다.

“천룡각에서 남궁세가의 대공자와 비무를 벌인 적도 있습니다. 확실히 남궁세가의 검은···.” 

장남인 단목청야는 대화를 주도했다. 가주인 단목무광은 그걸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고 말이다. 장남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천룡각에서 꽤 두드러지는 성적을 냈다고 하니 아비로서 자랑스러울 만했다.

“장룡.”

단목무광이 날 부른다.

그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당연히 오늘은 언행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 알고 있겠지.”

“예.”

“장룡이도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니 그럴 일은 없겠지요.”

첫째 부인이 가주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과연 그럴지 지켜봐야 할 일이겠지요.”

셋째 부인은 서늘한 시선으로 날 노려보며 말했다. 단목경을 때린 것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뭐 단목경이 하려던 짓이 있으니 내게 그 문제로 직접 따지진 못했지만.

그렇게 어색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언가의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말이 들렸다.

가문끼리의 교류.

거리가 있었기에 언가에서는 가주가 직접 오진 못했지만, 언가주의 친동생과 두 명의 젊은 남녀. 그리고 열 명의 언가 무사들이 뒤따랐다.

‘으음, 언가라··· 언승지는 예상보다 덩치가 작군.’

단목청야가 말한 것처럼 확실히 외모는 출중하다. 신교에 있을 적에도 언가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무공도 연구해본 적이 있었고 말이다. 그들의 골격은 평범한 중원인들보다 훨씬 두텁고 단단한데 언승지는 조금 왜소해 보이는 듯했다.

그에 반해 그 옆에 선 언가주의 친동생이자 장로인 언양과 언승지의 오라비인 언철진의 덩치는 무식할 정도로 컸다. 뭐 풍채로 보면 나보다 못하지만, 나는 살덩이일 뿐이고 그들은 근육이라는 게 차이가 있다.

‘정말 무식하게 몸을 키우는 자들이군. 저래선 안 될 텐데 말이야.’

그들의 무공을 분석했을 때, 이점은 당연히 있었다.

단단한 몸으로 바위도 부숴버린다는 언가의 권법과 각법은 확실히 매서웠지만···. 다른 명문가의 무공과 비교해보면 내공심법이 너무 부족했다. 아니, 부족했다기보단 균형이 맞지 않는달까?

내가 생각하는 무공은 기(氣)와 체(體)가 균형을 이루어야 했다.

그런데 언가의 무공은 그게 묘하게 뒤틀려있었다.

“허허!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주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러게나 말이오. 정말 오랜만이오.”

단목무광과 언양이 인사를 나누고, 다음으로 언가의 자제들이 포권지례를 하며 예를 표했다.

“언가의 장남! 언! 철! 진! 단목세가의 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호오, 소문의 언 공자로군. 조만간 무림오룡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는 말이 들리더군?”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요! 하하하!”

풍채답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다.

무림오룡은 정파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다섯 명의 후기지수를 말한다. 나 또한 신교에 박혀 있으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마주했던 적은 없었다.

‘무림오룡이라··· 수준을 보고 싶긴 하군.’

언철진의 인사가 끝나자 언승지가 앞으로 나서 인사한다.

“단목세가의 어른들께 인사드려요. 언승지라 하옵니다.”

언철진과 비교되게 참한 여인이었다.

뭐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단목청야의 말대로 미모가 상당했다.

단목세가의 형제자매들도 언가의 장로에게 인사했다.

서로 통성명을 마치자 단목무광이 말한다.

“자자,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좋지요.”

접객실로 들어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본다. 언승지는 당연히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와 언승지에게로 향했고, 당연히 부담스럽긴 했지만··· 긴장되진 않았다.

언승지가 어떤 여인이든 이렇게 코가 꿰일 수는 없었다.

과거 삶에서도 사실 혼인의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은 누구와 깊은 관계를 맺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가주인 단목무광이 움찔한다.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하는 건가?

“말해 보아라.”

“언 소저와 저는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러니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군요.”

“오! 좋은 생각이군!”

언승지의 오라비인 언철진이 손뼉을 딱 친다.

딱 봐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향인 듯했다.

내 말에 첫째 부인과 셋째 부인도 동의하듯 말했다.

“맞아요, 남녀끼리는 말이 통해야지요. 어른들이 있으면 제대로 대화도 나눠보지 못할 터이니···.”

대부분이 찬성하자 단목무광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도록 하라.”

언승지와 함께 나가려는데, 뒤에서 전음이 들려온다.

장남인 단목청야였다.

- 그래, 잘 생각했다. 네가 봐도 확실히 좋은 여인이지? 네 수준에 과분한 여인이니 잘 대해 주어라.

지금 나도 전음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지만,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언승지와 함께 접객실을 나서 장원을 거닐었다.

장원 중앙에는 운치가 좋은 연못과 정자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딱 좋을 듯하다.

“언 소저.”

“네. 말씀하세요.”

그녀는 무표정했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사실 지금 내 외모엔 전혀 끌리지 않을 것이 당연하고···. 내가 망나니라는 소문도 듣지 못했을까? 대체 무슨 이유로 하북성에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

이런 자리에서 당사자들끼리 말을 맞추면 일은 수월하게 끝날 수 있다.

굳이 가문의 사람들과 대립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와 대화를 해보아야 한다. 그녀의 마음이 진짜 어떤 것인지 알아야 했다.

“언 소저, 저와 정말 혼인하고 싶습니까?”

“···그게 무슨?”

“언 소저의 마음을 묻는 겁니다.”

잠시 침묵하던 언승지.

그녀가 조금 딱딱해진 말투로 대답한다.

“그게 왜 중요하죠?”

“중요하지 않습니까?”

“후우···. 가문의 일에서 저와 단목 공자님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요. 혼인하라면 하고, 같이 살라고 하면 살아야 하죠.”

“전 싫습니다.”

“그러니까··· 네? 뭐라고요?”

“저는 언 소저와 혼인하기 싫습니다.”

“미치겠네···.”

그녀가 콧김을 흥, 내뿜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뒤로 묶는다. 인상이 확 바뀐다.

“저기요, 단목 공자님. 저도 사실 그쪽이랑 혼인하기 싫거든요? 자기 관리도 못 하고 살만 뒤룩뒤룩 쪄서 뒤뚱대는 남편을 맞이하고 싶진 않다고요. 근데 왜 제가 이곳까지 왔는지 아세요?”

“왜 그렇습니까?”

“가문의 결정이니까요! 전 가문의 세를 불리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하나의 패에 불과하고요! 그건 단목 공자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전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예, 이제는 그들의 말을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려 합니다.”

내가 말하는 과거란 신교에 있을 적을 말한다.

“대체 어쩌려고요? 저와 혼인하기 싫다고 가문끼리의 자리를 망쳐놓으려고요?”

“필요하다면 그래야겠지요.”

“정말 소문대로 구제 불능이군요. 저와 말을 맞췄다고 허튼소리를 하신다거나 하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뭐 대충 어떻게 말할지는 정해놓았다.

언승지는 이 혼인을 깰 생각이 없다. 뭐 그녀도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만···.

‘깨면 그만이지.’

혼인을 깰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있었다.

과거 신교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을 조금 따라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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