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36)

* * *

‘말이 되는 건가···?’

묵위.

단목세가의 그림자로 가주의 명으로 살아가는 존재. 그는 망나니 단목장룡의 감시하라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가주의 앞에서 달라지겠다며 선언한 뒤로 방에만 박혀 있다가 최근엔 확실히 살을 빼겠다고 결심한 것인지 밖에선 걷곤 했다.

그렇지만 묵위는 단목장룡을 믿지 않았다.

언제 또 망나니짓을 하며 단목세가의 명예를 실추시킬지 몰랐으니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니까.

오늘 단목장룡이 시종과 함께 기루에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땐, 그럼 그렇지라며 혀를 찰 뿐이었다. 이번에 또 사고를 친다면 가주에게 정식으로 보고할 생각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단목경.

가문 내에서는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재능도 출중하고, 주변인들에게 평이 좋아 장남인 단목청야와 함께 단목세가를 이끌어가리라 생각했던 셋째 공자.

그와 단목장룡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목장룡은 단목세가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망나니였으니까. 그런데 오늘 상황을 지켜보면 오히려 단목경이 망나니 같았다. 피해자를 미리 만들어놨다? 단목장룡이 아무리 단목세가의 수치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선을 넘었다.

하지만 지금 묵위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비하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걷는 것만으로도 헉헉거리던 단목장룡.

단목세가에 돈을 받아 기루에 돈을 바치던 그 망나니가···.

‘검도 들지 않고 셋째 공자님을 제압했다고?’

상황을 수습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광경을 넋놓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의 머리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뭐지···?’

묵위가 정신을 차렸을 땐, 단목경과 그의 친구들은 피떡이 되어 바닥에서 신음할 뿐이었다.

“후우욱··· 넌 다시 보자. 동생아.”

단목장룡의 말에 단목경이 신음을 흘려댔고, 뚱뚱한 육신을 마구 움직이던 단목장룡은 녹초가 되어 떠나갔다. 그의 몸에는 작은 생채기도 없었다.

*  *  *

“그러니까··· 묵 대협께서 아버지의 명으로 절 감시했다고요?”

“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감시자. 묵위라는 이름이었나.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얼굴. 퍽 나이가 든 듯했다. 경지에 이른 무림인들은 막대한 내력으로 노화를 늦추지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닌 듯하다.

‘어제 그 광경을 다 봤으니.’

단목세가주 단목무광이 부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나타난 것은 묵위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뭡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만.”

“···.”

“···.”

침묵이 감돈다.

나는 느긋하게 묵위의 말을 기다렸다. 사실 그는 하나의 관문에 불과했다. 무공의 재능이라곤 발톱의 때만큼도 없던 단목장룡. 나는 서서히 재능을 드러낼 것이다. 뚫고 나오는 송곳은 주목을 받기 마련이니까.

뭐 지금은 신경 쓰기도 싫은 송곳에 불과할 테지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나빠서요.”

“크흠··· 어제 셋째 공자님을···.”

“절 감시했다니 보셨겠군요. 그놈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말입니다. 묵 대협이 잘 처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뭐 사실 응당한 대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단목경의 친구들도 묵사발로 만들었다. 그들도 지은 죄가 있기에 어제의 일을 떠벌리지 못하겠지만 그들도 의창현 내에선 힘깨나 쓰는 집안의 자제들이다. 어른들이 나서게 되면 나도 조금 곤란해진다.

“그건 이미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오, 그거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전 수련을 나가야 해서···.”

내가 몸을 휙 돌리자 묵위가 황급히 날 부른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예? 제게 할 말이 남으셨습니까?”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어제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둘째 공자님의 무위로는 절대 셋째 공자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지요. 마치 딴사람이 된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렇죠?”

“그렇죠라니···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둘째 공자께선 분명히···.”

“분명히?”

“그러니까···.”

순간 말을 잇지 못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예상된다. 망나니였던 네가 어떻게 단목경을 이긴 거냐? 그게 말이나 되는가? 내가 본 것을 설명해달라. 뭐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머뭇거리는 그에게 해답을 주기로 했다.

“사실 제가 무공에 재능이 있었나 봅니다.”

“둘째 공자님께선··· 예?”

“제가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요. 대답이 됐습니까?”

“그게 무슨···.”

그는 멍한 눈빛으로 날 바라볼 뿐이었다.

“참, 경이는 뭘 하고 있습니까? 세가에 있습니까?”

“셋째 공자님께선 만추 의방에서 치료를···.”

“그렇군요. 병문안이라도 가야겠군요.”

멍한 얼굴의 묵위를 뒤로하고 만추 의방으로 향했다.

감시의 시선이 없어진 것을 보니 아마 묵위는 이번 일을 가주에게 보고하러 갔을 것이다. 이제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군. 다시는 이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다.

* * *

만추 의방.

이곳은 무림인을 진료하는 무림의가 있었다. 기(氣)를 체내에 쌓는 무림인은 보통 의원은 진료할 수 없었다. 무림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방의 평가가 높아진다. 단목장룡이 머리를 다치고 쓰러졌을 때, 진료해준 곳도 바로 만추 의방이었다.

만추 의방의 주인이자 무림의인 추운행은 어젯밤 새로이 들어온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막 때린 것 같아도 급소는 전혀 노리지 않았구나. 이가 부서진 것 빼고는 크게 다치지 않았어. 실력자에게 당했군.’

끄응, 하는 신음이 들려온다. 온몸에 피멍이 든 사내, 의창현에서는 최고의 명문가로 꼽히는 단목세가의 셋째 공자였다. 대체 누가 그를 이렇게 패버릴 수 있었을까?

의원이라면, 더군다나 무림인을 치료하는 무림의라면 그런 사정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약재를 발라준다.

“아직, 안, 끝났어요···?”

“예, 이제 끝났습니다. 잘 버텨주셨습니다.”

추운행이 치료를 마치고 방에서 일어섰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단목세가의 가주이리라 생각했다.

아들이 이렇게 다쳤으니···.

그렇게 짐작하고 문을 열어주니 그 앞에는 왠지 익숙한 얼굴의 뚱뚱한 사내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누구···?”

“단목장룡입니다.”

“어···?”

시종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단목장룡이다. 살을 빼서 순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뭐 빼더라도 아직 돼지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제 동생이 다쳤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이지요.”

아무리 무림사에 관여하지 않으려 하는 추운행이지만 단목장룡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머리를 박고 쓰러졌음에도 찾아오는 가족 하나 없었다. 단목세가에서도 철저히 소외받는 인물. 그런 자가 동생이 다쳤다고 병문안을 오다니?

‘이런 사람이 망나니라니···. 후우···.’

추운행은 직접 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다. 아무리 주변에서 망나니라고 욕해도 그는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이상 그 여론에 동참하지 않았다. 다친 동생을 걱정해주는 순진하고 착한 형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럼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단목장룡. 

살을 빼서 그런지 호감이 생겨난다.

그렇게 떠나가던 중, 단목경이 있는 방에서 격한 신음이 들려왔지만, 형의 방문에 감동한 동생의 감격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후후···.”

다른 이들이 모르는 진실을 알게 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아름다운 형제애라면···.

추 의원의 마음이 따스함으로 물들었다.

장남이 돌아왔다

단목세가는 의창현에서 명문가로 이름을 떨쳐왔지만, 사실 중원 전체로 보자면 그들의 명성은 그리 대단치 못했다. 수준 높은 고수를 많이 배출하지 못했으며, 정파 무림의 심장이라 불리는 무림맹의 요직엔 단목세가의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

단목세가의 장남 단목청야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단목세가를 오대세가(五大世家)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하늘이 내려준 사명이며, 장남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아우라고 하는 것들은 죄다 쓸모없는 놈들뿐이야.’

단목장룡은 그렇다고 치고, 단목경도 아랫것들이 천재라며 떠받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전 무림의 천재들이 모인다는 천룡각(天龍閣)을 겪어본 단목청야는 그 천재라는 말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나마 쓸모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단목산산.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으로 무공에 재능도 있으며 인성도 괜찮다.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이 예쁘다는 점이었다.

단목청야는 인간들의 생리를 어릴 적부터 파악했다.

외모, 집안, 무력.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갖추고 있다면 다른 것은 충분히 얻어낼 수 있다.

‘산산이는 머리가 영민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전에 세상에 순응하게 해야 한다. 경이는 내가 직접 지도하여 천룡각으로 데려가면 될 것이고···.’

단목장룡은···.

꽈직.

쥐고 있던 붓을 부숴버린다. 그놈은 도대체가 쓸모가 없다. 무공의 재능도 없고, 평판도 나쁘다. 어릴 적엔 얼굴이 봐줄 만했지만, 살이 뒤룩뒤룩 찐 지금은 마주치기도 싫을 정도로 혐오스럽다. 그를 보고 있자면 인간이 아닌 괴기한 생명체를 보는 듯했다.

“도움이 안 되는군.”

뭐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룡각에서 알게 된 인연은 참으로 많았다. 그중에서 사내의 외모를 보지 않고 출세에 매달리는 여인들도 많이 봤다. 퍽 마음에 드는 여인도 있었지만, 오대세가를 꿈꾸는 단목청야의 성에 차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쓰임을 다해야지.’

내일이면 단목세가가 있는 의창현에 도착한다.

천룡각에서 배우고 익혔던 모든 것을 활용하여 단목세가의 이름을 중원에 떨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