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36)

* * *

“뭔가 이상해.”

사실 방금 있었던 일에 천향은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녀는 단목장룡을 호구로만 취급했다. 매번 거금을 내면서도 손 한 번도 잡으려 하지 못하는 겁쟁이. 단목장룡에게 미안하지만, 천향은 지부를 먹여살려야 할 의무가 있는 여인이다. 그렇기에 단목장룡을 잘 요리해왔었다.

그런데 오늘 본 단목장룡은 다르다.

은인에게만 선물하는 암호문을 알고 있다는 건 그렇다고 쳐도···.

‘사람이 저리 바뀔 수가 있다고···?’

딴사람이 되었다. 말투도 달라졌고, 행동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심지어 살마저 빼고 있단다.

‘다른 사람의 혼으로 바뀐 것은 아닐 테고···.’

설마?

‘망나니인 척 본모습을 숨겨왔던 건가?’

정말 그렇다면?

천향은 하오문에 있으며 온갖 더러운 꼴을 보았다. 친혈육을 찌르고, 10년 동안 자신을 보살펴준 부모와도 같은 사람을 팔아넘기는 것도 봤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의 성향을 잘 파악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목장룡의 이제까지의 행동이 연기였다면?

천향의 숨을 멈춘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설마 장남과의 경쟁 때문에···?’

천향은 미궁 속에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단목장룡에 대한 그녀의 착각은 시시각각 커져만 갔다.

* * * 

성성루에서 나왔다.

이새붕은 기루에서 취하지 않은 나를 보고 상당히 놀라워했다.

“도련님이 취하시지 않으니 꿈만 같아요.”

“···내가 취하면 넌 어떻게 했는데?”

“집까지 부축해드렸죠.”

다시 보니 이새붕의 몸이 제법 튼실하다. 실전에서 단련된 근육이랄까.

“처음 와본 기루는 어땠어?”

“으음, 재밌었어요. 하지만 제 돈 주고 기루에 찾아오진 않을 것 같아요. 기녀분들이 정말 예쁘긴 했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그래?”

“네, 근데 도련님께선··· 어떻게 되셨어요?”

궁금증이 가득한 이새붕의 눈빛.

과거의 내가 천향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대화만 좀 했어.”

“아···.”

무슨 착각을 했는지 탄식을 내뱉는다. 지금은 천향에게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워지는 것 같아 변명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너 혼자 집에 가야겠다.”

“왜요? 어디 들리시려고요?”

“어, 그래야 할 것 같다.”

오늘 단목경이 내게 수작을 걸어올 수도 있었다. 그놈들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이새붕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시종까지 건드리진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은 대비해야 했으니까.

“예, 그럼 저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조심히 오세요!”

“그래.”

이새붕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달려나갔다.

망나니 같은 도련님을 정말 잘 믿어주는 모습이다. 언젠간 그에게 선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현의 중심부로 걸어가고 있을 때. 주변의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폭풍전야라고 할까? 저 멀리서 사내들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왔군. 천향의 정보가 정확해.’

사실 현마다 하오문의 지부는 존재한다.

하오문의 정보력은 지부마다 차이가 있다. 과거 내가 있던 청해성의 서녕지부. 신교의 텃밭이라 불리는 그곳에 자리 잡은 서녕의 하오문 지부는 정보력이 대단했다. 뭐 본산에서 혈우검마가 내려오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그건 중원 어느 정보 세력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하오문 의창지부는 성성루를 시작으로 현 전체에 퍼져 있는 모양이었다. 의창에서 제일가는 세가인 단목세가 3공자의 행적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보력이 어느 정도 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오, 정말 살을 많이 뺐네?”

“술 냄새가 진동하네. 또 술을 얼마나 처먹은 거야. 으휴.”

“정말 단목세가의 수치구나. 오늘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그렇게 돌아다녀?”

본 적이 있는 얼굴.

단목세가에 처음 찾아갔을 때, 길가에서 대놓고 날 조롱하던 사내들이다. 덩치가 꽤 있었지만, 얼굴은 앳되어 보였다.

‘모심천, 엽운경, 소상원.’

이새붕에게 들어 그들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의창현에서 좋은 집안을 타고난 단목경의 친우들이었다. 당연히 단목경이 대장이었고, 그의 묵인 아래 날 조롱해왔다고 한다.

언젠간 조롱의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빨리 찾아올 줄이야.

“어이, 돼지 새끼!”

그리고 화가 잔뜩 난 단목경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생아.”

“씨발, 동생아? 그때도 그랬었지? 너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됐냐? 기억을 잃었다고 하더니 정신도 잃어버렸어?”

그게 그거 아닌가?

“왜들 그렇게 무섭게 그래?”

나는 겁먹은 척 연기하며 몸을 움츠렸다. 아무리 살을 뺐다고 해도 정상 체중이 되려면 한참 남았다. 그런 몸집으로 연기하니 그들이 폭소를 터트린다.

“푸하하핫! 이놈 겁먹었어.”

“돼지 잡는 날이구나!”

“야야, 비켜.”

단목경이 다가온다.

살짝 긴장한 듯한 보법을 밟는다. 내게 급소를 맞았던 기억에 본능적으로 살피는 것이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왜긴 왜야? 넌 술 처먹고 난동만 피우니 단목세가의 망신만 되니 내가 교육해주는 거야.”

단목경의 말에 모심천이 야비함이 가득 묻어난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이미 피해자도 있을걸? 크크크.”

“야,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왜? 저 망나니 말을 누가 들어주기라도 할 것 같아?”

“그건 그렇네?”

그들에 말에 놀란 척하며 입을 열다.

“피해자도 있다고? 설마···?”

단목경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래, 넌 이제 끝이야. 너 같은 망나니를 아버지가 보호해주는 것도 이젠 끝이라고. 상황 파악이 돼?”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목소리를 바꾼다.

이제 겁먹은 척할 필요는 없다.

“왜 그러냐고? 당연히 네가 망나니니까! 단목세가의 수치니까! 아무도 나서지 않는 걸 내가 직접 하려는 거야! 네가 알아? 네 동생이라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원한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될 수도 있었다.

단목경이 느꼈을 수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단목장룡이 망나니였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의 행동은 과하다.

난 슬쩍 뒤를 돌아본다.

내가 망나니짓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던 단목세가의 사람. 아마 가주와 아주 가까운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봤지?’

뭐 내 생각이 그에게 전해지진 않았을 테지만.

그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행동은 정당하다고 말이다.

망나니에게 까불지 말자

“수치스러운 형이라 미안했다. 이젠 존경할 수 있는 형이 되도록 하지.”

“뭔 개소리야?”

단목경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온다. 꽉 쥔 주먹을 보아하니 제대로 날 패버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뭐 가소로울 뿐이었지만.

“다시는 의창현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줄게. 알겠어?”

우드득.

어찌나 주먹에 힘을 줬는지 뼈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권법을 잘 사용하지도 않았다는 증거. 허리춤의 검을 뽑아도 내게 위험이 되지 않는데, 미숙한 주먹을 사용한다?

단목경이 순식간에 내게 접근하여 주먹을 날린다.

복부로 날아오는 권격. 하품이 날 만큼 느리다.

‘살을 빼둬서 다행이군.’

과거였다면 눈에 보이더라도 그것을 피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뭐 피하지 못하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작해야 동네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소년의 주먹을 피하지 못한다면, 내 목표가 가당키나 한가?

이틀 동안 개선하여 새롭게 태어난 천유보를 펼친다.

천유보는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보법이다. 마치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이 특징. 당연히 살이 가득한 하체로 완벽하게 펼쳐내진 못했지만, 단목경의 주먹을 피하는 수준으로는 충분했다.

휘익-!

강한 힘이 담긴 주먹이 내 어깨를 지나간다.

“···!”

자신의 주먹이 빗맞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단목경.

순간 얼굴에 당황의 빛이 스쳐 간다.

동시에 나는 어깨를 밀어 그의 주먹을 밀어낸다. 단목경의 발이 꼬이는 순간.

타앗!

나는 그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발을 쭉 밀어 넣었다. 단목경은 자신이 뭘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경아!”

“뭐야? 저 돼지?”

“어두워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건가?”

단목경의 친우들이 황급히 달려온다. 넘어질 때 얼굴을 부딪친 단목경. 그는 고통을 끅끅 참아내며 친우들의 손을 뿌리친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치심이 가득한 얼굴.

“감히··· 얕은수를···!”

얕은수라는 말에 실소가 흘러나온다.

만약 이게 정말 얕은수에 불과했다면, 그것에 당한 너는 대체 뭐냐?

“모가장의 모심천, 진천보의 엽운경, 소가장의 소상원. 너희들은 적당히 봐줄 용의가 있다. 지금이라도 정중히 사과하고 물러서면 말이야.”

당연히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엽운경이 허리춤의 검을 뽑는다. 달빛에 비치는 검신. 딱 봐도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그 검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비켜! 저 새끼는 내 거야!”

이제 좀 넘어질 때의 충격을 흘러냈는지 단목경이 외친다. 확실히 그가 그들 중 대장이었다. 단목경의 말에 세 명의 소년이 찍소리도 못하고 뒤로 물러선다. 이렇게 보면 망나니는 내가 아니라 단목경인 것 같았다.

“검을 뽑으면 많이 다친다.”

사실 오늘 단목경은 제대로 교육하려 했다. 그가 검을 뽑든, 뽑지 않든. 이런 놈들은 초장에 잡아놓아야 한다. 신교였다면 이 자리에서 목을 베어도 상관없었지만··· 지금 그런 행동을 한다면 내가 곤란해진다.

“다치긴 씨발! 넌 오늘 진짜 뒤졌어!”

단목경이 두 손으로 검을 쥐고 달려온다. 주먹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모양. 확실히 재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단목경의 검이 내 다리를 노려온다. 그도 이 자리에서 내 목을 치려는 것은 아니었다.

쉬이익!

천유보를 밟는다. 확실히 단순히 걷거나 뛰는 것보다 훨씬 몸에 무리가 간다. 잠시 움직인 것뿐인데 땀이 줄줄 흐른다.

‘괜찮은 수련이군.’

지금 내 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단목경의 검을 피해내며 알아보고 있었다.

점점 단목경의 검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검에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오랜 기간 수련한 검법으로, 진심을 담아 휘두르는데도 털끝 하나 베어내지 못하면 저런 반응을 내보이는 게 당연하다.

‘딱 이 정도군.’

단목경의 검이 내 상체를 노리고 휘둘러 질 때.

나는 순식간에 다섯 걸음을 옮겨 단목경의 왼쪽에 근접했다. 그는 어깨로 날 밀치려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얕은 수였다. 그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순간, 발을 걸어 그를 넘어뜨린다.

쿠웅!

단목경이 바닥에 쓰러진다.

“으으윽··· 이 씨발···!”

분을 이기지 못한 단목경이 욕지기를 뱉어낸다.

나는 현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퍼어억-!

무게를 담아 넘어지듯 그의 얼굴을 후려친다. 주먹이 아닌 팔꿈치로.

“끄어어···.”

적어도 이가 몇 개는 부서졌을 것이다. 하중을 담아 팔꿈치로 후려쳤으니 그 위력은 대단하다. 내공을 전혀 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경아!”

“이 미친 돼지 놈이!”

단목경의 친우 놈들이 떼로 달려든다.

슬쩍 뒤를 보니 날 감시하는 무인은 나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럼 나야 좋지.’

짖는 개들에겐 매가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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