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36)

*  *  *

이틀 뒤.

나는 이새붕과 함께 성성루를 찾아갔다.

내가 있는 의창현은 장강이 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배가 강을 따라 쭉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성성루는 장강 연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확실히 규모가 컸다. 층층 마다 강렬한 등불이 빛나며 강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운치가 상당했다.

‘자식이, 긴장했군.’

어쩌면 이새붕은 실망했을 수도 있었다.

그가 뭘 기대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휴식도 휴식이었지만 기루에 찾아온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성성루로 걸어가니 험악한 인상의 거한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처음 방문하시는 겁니까?”

“응? 도련님이 살이 빠지시긴 했나 봐요. 호위도 못 알아보네요.”

이새붕의 말을 들은 호위가 고개를 갸웃한다.

“설마···?”

“내가 단목장룡이오.”

“허어···.”

호위 사내가 감탄하며 나를 바라본다.

“살을 빼고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정말 많이 빼셨군요.”

호위의 말을 들어보니 단목장룡이 성성루를 얼마나 자주 찾았는지 알 것 같았다.

“천향이의 서신을 받고 왔소만?”

“예, 들어가십시오.”

성성루로 들어가니 기루 특유의 분위기가 감각을 자극한다.

‘역시···.’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기루 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곳이 분명했다. 슬쩍 뒤를 돌아본다. 검은 무언가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대책도 있으니까.’

내가 말하는 대책이란, 나를 은밀히 감시하는 단목세가의 그림자 묵위였다.

과거의 유산

중원 무림에서 천한 일을 한다며 무시당하는 이들. 

사내에게 몸을 파는 기녀.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는 점소이. 높으신 분들에게 봉사하며 살아가는 하인.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강호에서 그들은 철저한 약자였다.

하지만 그런 낮은 계층이 모여 만든 문파가 있었다.

하오문(下汚門).

기녀나 점소이는 물론이고, 수배령이 내려져 있는 도둑이나 소매치기 심지어는 도박꾼까지 일원으로 구성된 문파. 사파 계열인 하오문은 중원 어디에든 퍼져있다. 심지어 정파의 심장이라 불리는 무림맹에 있는 곳까지 말이다.

하오문은 일반적인 무림의 문파와는 조금 다르다.

결속력을 모아 중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다른 문파와는 달리, 그들은 오로지 생존만을 목표로 했다. 언제 어디서 눈먼 칼에 맞아 죽을 줄 몰랐기에 하오문은 그들에게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었다.

하오문은 직접 복수해주지 않는다.

문도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더라도 그들은 잠시 슬퍼할 뿐이다. 분명히 하오문에는 무공을 익힌 이들이 있었지만, 칼로 복수하면 개죽음일 뿐이었으니까. 다만, 그들은 정보를 모아둔다. 원한이라 불리는 그 정보. 하오문이 품고 있는 무림비사(武林秘事)를 풀게 되면 중원은 대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하오문은 그 정보를 풀지 않는다.

왜냐고?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생존이었으니까.

단언컨대 중원은 복수 따위가 밥 먹여주는 세상 따위는 절대 아니었다. 비사가 풀리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은, 참으로 집요하고 무서웠다. 아무리 하오문이라도 괴물들에게서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 * *

“오랜만이네.”

“예?”

“아니야.”

성성루가 하오문의 지부 중 하나라는 건 들어오고 나서 알아차렸다. 청해성에 있을 무렵,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루에 출입했다. 술과 여인들이 판치는 세상. 사내들이라면 당연히 환장할 수밖에 없는 장소에서 인생을 즐겼다.

당연히 기녀들과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시간이 넘쳐나는 도련님이었으니까. 뭐 신교에선 날 망나니로 여겼지만 상관없었다. 짧은 인생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술 한잔에 생의 시름을 날려 보낸다. 어떠한 인생을 살고 있든 간에 그 순간만큼은 모두 즐거워했다. 그것이 설령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분위기가 좋았다.

“단목 공자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천향 소저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깔끔하게 옷을 입은 사내가 다가온다. 밖에서 험상궂은 인상을 자랑하던 인간들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손님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얼굴이랄까?

‘천향이라···.’

기녀들은 가명을 쓴다.

이새붕에게 들어보니 천향은 이 일대에서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기녀라 한다. 과거 단목장룡이 그에게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고 했다. 단 하룻밤을 위해서. 하지만 천향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꼴에 기녀 주제에 정조를 지킨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몸을 막 굴리는 기녀보다는 천향 같이 행동하는 게 오히려 더 인기가 많았다.

“가자.”

난 사내의 안내를 받아 성성루의 가장 높은 층으로 이동했다.

하층의 분위기와 달리 확실히 더 고급스러웠다. 은은한 악기의 선율에 분위기가 상당하다.

“이 방입니다.”

방으로 들어가자 하얀 피부를 가진 두 명의 기녀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기루의 특별실에선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즐길 수 있도록 요리를 준비해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성성루도 그러했다. 이미 상에는 온갖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단목 공자님을 뵈어요.”

두 여인이 합이라도 맞춘 듯이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이새붕은 당황하여 입만 뻐끔거리고 있다. 두 기녀도 시종의 출입에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크게 티 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살이 빠진 게 놀라운지 내 몸을 곁눈질한다.

“천향은 아직인가 보군.”

“예, 천향 언니는 분을 칠하고 있답니다. 그때까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앉아. 새붕아.”

“예···? 어, 어디에 앉으면···?”

“반대쪽에 앉아라.”

“옙!”

잔뜩 긴장한 이새붕.

그 모습에 기녀들이 작게 미소를 짓는다. 이새붕은 여인들의 웃음에 헤벌쭉해졌다.

오기 전에 이새붕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했었지만, 그는 이 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확 빠져버리면 안 되겠지만, 내가 옆에서 지켜본 이새붕은 순수하고 성실했다. 괜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게 기녀의 시중을 받으며 술을 마신다.

여인들의 몸에는 절대 손대지 않았다. 기녀들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오늘은 왠지 부끄러움이 많아 보이셔요.”

“그래? 예전에는 부끄러움이 없었나 보네.”

“그런 의미가 아니오라···.”

“아니야. 난 술만 있으면 돼. 음식도 맛있네.”

술을 비워낼 때마다 옆에 앉은 기녀가 술을 채워준다. 이새붕은 술은 마시지 않았고, 상 위에 차려진 요리에 흠뻑 빠져 있었다. 처음엔 여인들에게 홀딱 빠진 줄 알았더니.

그렇게 배를 채우고 있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천향이 들어온다. 앉은 상태로 올려다보니 확실히 태가 남다르다. 뽀얀 살결에 긴 생머리. 은근히 몸에 붙은 의복까지. 사내의 욕망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천향인가?”

“단목 공자님···?”

아직도 많이 뚱뚱한 편이었지만, 천향은 내가 살을 뺀 것이 정말 놀라운 듯이 바라본다.

“앉지.”

뭔가 어색한 듯이 내 옆에 자리를 잡는 천향.

자연스레 술을 따라주며 그녀가 말한다.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지신 것 같아요.”

“그래? 죽음을 극복하면 사람이 달라진다고도 하더군.”

“···.”

침묵이 감돈다. 열심히 배를 채우던 이새붕도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본다.

“방 하나 더 내줄 수 있나?”

“방이요?”

“그래,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천향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무언갈 착각한 모양이다.

“죄송하지만···.”

“아니, 내 시종과 다른 기녀들은 다른 곳에서 즐기도록 하고 우리는 여기서 대화만 나누는 거야.”

“그건 괜찮아요.”

이새붕과 두 기녀가 방에서 나갔다. 천향은 묵묵히 내 술잔을 따라주고 있었다. 취기는 딱히 오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내공으로 술기운을 몰아내고 있었으니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네, 단목 공자님. 뭐든 물어보세요.”

“내가 혼자서 언덕에서 구른 게 맞나?”

“네···?”

천향의 얼굴이 굳는다.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단목장룡이 망나니였다고 하더라도 언덕에서 굴러 죽을 뻔했다는 것은 잘 믿기질 않았다. 혹시나 하여 물어본 것이다.

“그 정도면 대답이 된 것 같군.”

“아뇨, 지금 무슨 오해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단목 공자님은 당시 만취한 상태였어요.”

“같이 나들이를 가서 혼자 넘어진다?”

“네, 그렇지만 단목 공자님께서 그렇게 만취한 데에는 제 탓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리 서신을 보냈던 거랍니다.”

“알겠다.”

“네···?”

“그 이야기는 됐다고.”

다시 술을 마신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단목장룡을 죽이려 했다면 이런 허술한 수를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천향이 하오문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면 말이다.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하오문 내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는 말이지.’

천향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내뱉는다.

“낙양에는 한 마리의 범이 북경에는 두 마리의 뱀이 있다.”

“···!”

천향의 몸이 움직임을 멈춘다.

마치 목각인형처럼 그녀의 목이 부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움직인다.

“단목 공자님···?”

“정주에서 백응이 날아오르면, 남창에선 흑응이 날아오를 것이다.”

“어떻게 그걸···?”

“나는 알고 있으면 안 되는 건가?”

“잠시만요. 대체 누가 그걸 단목 공자님에게 알려주신 거죠? 그건···.”

“맞아, 하오문의 은인에게 선물하는 암호 중 하나지.”

천향의 입이 크게 벌어진다. 동시에 그녀의 기세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한없이 부드러웠던 분위기가 한 자루의 예리한 검처럼 변화한다. 당연히 그 기세가 향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진정해.”

“당신, 누구죠?”

“단목장룡.”

“거짓···.”

“거짓이라고? 만져 봐.”

그녀는 황급히 손을 올려 내 얼굴을 만져본다. 인피면구(人皮面具) 따위를 썼는지 확인하려는 모양. 당연히 벗겨질 리 없었다. 진짜 얼굴이었으니까.

“아주 오래전 하오문의 특급 기녀를 구해준 적이 있거든.”

“대체 왜 지금 와서···?”

“머리가 깨지고 나니 그게 생각나더라고. 돌이켜보면 천향 너도 무공을 익힌 것 같았고 말이야. 하오문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

하오문은 거창한 복수 따위를 염원하는 문파는 아니다.

다만, 은혜를 잊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복수할 힘이 없기에.

약자들의 모였기에.

그들은 은인을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사실 깊이 들어가면 그것마저도 하오문의 생존을 위한 방법론 중 하나였지만, 그것까지 신경 쓰고 싶진 않았다. 난 하오문 사람이라 하여 종(種)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들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은인을 뵈어요.”

천향이 태도를 바꾼다.

미심쩍은 표정이 남아있긴 했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하오문의 은인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편히 앉아. 예를 바라고 말한 건 아니야.”

“···네.”

천향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

은근히 불안한 시선이다. 은인이라는 이유로 하오문에 요구할 수 있는 건 많다. 심지어 천향의 정절마저도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난 하오문에 코가 꿰이는 거다. 하오문은 천향을 이용해서 날 생존을 위한 패로 사용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 네 몸을 요구하진 않을 테니.”

안도의 표정과 동시에 얼굴이 굳어진다.

생각이 읽힌다는 게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찍은 건데 정곡을 찔렀나 보다.

‘내가 그렇게 비호감인가?’

사실 예전에는 대부분 기녀들이 먼저 들이대곤 했었기에 지금의 경험이 신선하긴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정보야.”

“정보요?”

“그래, 공짜로 정보를 받을 생각은 없어. 셈도 치를 거야. 하지만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원해.”

하오문은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정보는 조금 가공하기도 한다. 하오문에서 정보를 사서 문파끼리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먼 훗날 그 화살이 하오문에게 돌아올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정말 더 원하시는 게 없으신 가요?”

“성성루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군. 아마 자주 애용할 테니까.”

내 말에 천향이 고민에 빠진다.

누군가에게 보고하지 않고 이렇게 앉아있는 것만 봐도··· 그녀가 성성루의 실권을 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하오문 의창지부의···.

‘지부장.’

혹은 부지부장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녀가 지부장이라고 확신했다. 움직이는 발걸음만 보아도 익힌 무공을 알 수 있다. 천향의 보법은 하오문 서녕지부장의 걸음걸이와 똑같았다. 하오문에서 특급에 속하는 자들만 익힐 수 있는 보법.

“이렇게 본문의 은인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어 환영이에요. 앞으로 저희 성성루에서 성심껏 모시겠어요.”

큰 기대를 담은 말은 아니다. 의례적인 표정. 단목장룡이 아무리 하오문의 은인이라 해도, 그녀는 과거의 단목장룡을 알고 있다. 가문에서도 배척받는 망나니. 돼지처럼 밥만 축내고, 기녀들 앞에서 단목세가의 검법을 검무로 선보이는 멍청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사고 싶은 정보는 말이야.”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온다.

사실 진짜로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서녕은 어떻게 됐는가? 나는 서녕지부에서 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만약 신교의 사람뿐 아니라 나와 사소한 연이 있는 사람을 모두 제거했다면···.

‘지금은 아니야.’

정보는 역 추적이 가능하다.

특히 이런 정보는 위험하다. 신교는 의심이 많다. 지금은 십만대산에 박혀 있다지만, 그들의 힘은 전 무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그들의 시선을 끌 필요는 없다. 참아야 한다.

‘언젠간···.’

마음을 다스린다.

새롭게 태어난 해우심법의 묘리로.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천향에게 묻는다.

“누가 날 해하라고 사주했지?”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진다.

우리 망나니가 달라졌어요

솔직히 확신은 아니었다.

단목세가의 도련님이 나들이를 가서 대뜸 머리를 박고 죽는다면, 그 화살은 당연히 천향에게 돌아간다. 하오문이 사파이긴 하지만, 그들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여긴다. 망나니였던 단목장룡의 존재가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할 만했을까?

그렇지만 천향의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과거처럼 낙천적으로 상황을 넘기기엔, 혈우검마에게 내 목이 잘리는 모습이 눈에 생생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천향.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정말 예전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셨군요. 사람이 바뀐 것처럼.”

난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죽다 살아나면 그렇다고 하더군.”

“그런 경우는··· 후우···.”

한숨을 내쉬던 천향이 졌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그 일은 사고였어요.”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군.”

“가공되지 않은 정보를 원하셨으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어요. 다만,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으시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천향이 말을 이어나간다.

“이 일을 의뢰한 자는 단목세가의 단목경 공자에요. 사실 의뢰라기보단··· 협박에 가까웠죠.”

단목경은 단목세가에 갔을 때 만났던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동생이었다.

그놈이 이 일을 꾸몄다?

“계속 말해 봐.”

“하지만 단목경 공자가 단목 공자님을 일부러 넘어뜨려 위험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뭐··· 계획했던 대로 됐다면 단목 공자님께서 위험한 것 똑같지만 말이에요. 그는 단목 공자님을 취하게 하라고 했어요.”

“취하게 하라고 했다고?”

“네, 취한 단목 공자님이 검무를 추면 그걸 빌미로 압박하려고 했답니다. 그는 단목 공자님을 정말 미워하더군요.”

“그러니까 정리하면 단목경이 나를 취하게 해서 다시 검무를 추게 하려고 했고··· 상황이 꼬여 내가 언덕에서 넘어졌다는 말인가?”

“맞아요.”

어처구니없는 상황.

하지만··· 사실 그 일이 없었다면 내가 단목장룡의 몸으로 다시 깨어날 수 없었다. 단목경은 내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의도한 행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목경이 날 미워하는 건 무시할 수 없군. 혈육끼리의 싸움이 가장 무서운 법이니.’

내가 침묵하자 천향이 긴장한다.

“정말 죄송해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일이 그렇게 된 것에는 제 탓도 있으니까요. 사과드려요.”

천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애매한 상황이긴 했다. 술을 권한 것이 잘못인가? 자제하지 못하고 술을 마신 게 잘못인가? 단목경의 의도 또한 괘씸한 것이 사실이고, 천향 또한 그 의도대로 행동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거 단목장룡 또한 망나니짓을 했던 것을 사실이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군.”

“정말 죄송···, 네···?”

“이 일로 널 추궁할 생각은 없어. 단지 다음부터 그런 의뢰가 들어온다면 미리 내게 알려주면 좋겠군.”

“···정말 많이 달라지셨군요.”

과거를 짊어지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천향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대단한 이들이 모인 문파는 아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신분이 낮은 이들이 모여 만든 문파였기에 그들의 정보력은 상당했다. 어떤 부분에선 정파의 최고 정보 문파인 개방보다 더 뛰어나다. 나는 하오문의 저력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지금과는 결과가 크게 다를 것이다.

무림에선 착하기만 하면 호구가 되기 마련이니까. 난 과거처럼 낙천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다시금 술을 마신다.

천향과는 이야기가 잘 풀리는 듯하다. 쓸데없는 것을 묻지 않으며, 이해가 빠르다. 하지만 그녀도 궁금한 것이 있는 모양이다.

“성성루에 고수 한 명이 침입하여 감시하고 있어요. 혹, 그 사람과 단목 공자님이 관련이 있나요?”

“아마 그럴걸?”

묵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의 감시는 이틀 전에 알아챘다. 내공의 양이 늘어나고, 살이 빠지니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 서고에서 나올 때부터 느껴졌던 위화감. 고수의 시선이었다. 이제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가주인 단목무광이 붙인 감시라는 걸.

“그렇군요···. 모시라고 할까요?”

“그럴 필요 없어. 이제 볼일도 끝났으니 가봐야지.”

자리에서 일어선다.

천향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벌써 가시려고요?”

“왜 더 있으면 좋겠어?”

“그건···.”

“나중에 다시 보자고. 이제 사적인 이유로 여기 찾아올 일은 잘 없을 거야.”

“···.”

그렇게 방을 나서려고 할 때.

천향이 황급히 입을 연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위험?”

“오늘 단목경이 공자님을 노릴 수도 있어요. 목숨을 노리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단목경과 친한 패거리들이 공자님을 벼르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답니다.”

아마 저번에 내게 맞은 것에 대한 보복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 건가?”

“그건 아니에요. 사실···.”

그녀가 말하기를 망설인다.

“말해 봐.”

“공자님께선 다른 세력을 끌어들일 정도로 무서운 분은 아니시다 보니···.”

그건 그렇지.

지금 그들은 과거의 단목장룡만을 생각하고 있다.

“고맙군. 나중에 얼마를 보내면 되는지 서신을 보내. 셈을 치를 테니.”

“아니에요. 이 정보는 돈을 내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그럼 마다하지 않지. 고마워.”

방문을 닫을 때까지 천향의 시선은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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