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236)

* * *

다음 날 아침. 

묵위는 쪽잠을 자며, 단목장룡을 감시했다. 또 기루에 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말이다.

‘어제 살을 뺀다고 하더니 그것도 거짓말이었구나. 어찌 단목세가에 저런 망나니가 나왔을꼬···.’

단목장룡에 대한 묵위의 실망감은 돌이킬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살을 뺄 차례

단목장룡이 단목세가의 장원에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났다.

가주의 명으로 단목장룡을 감시하고 있는 묵위는 더 이상 지켜볼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살을 빼겠다느니, 다시 무공을 익히겠다며 서고에 출입하더니 무공 수련은커녕 방에서 거의 나오질 않았다.

뭐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킬 요량인지 잠깐 걷기는 했지만 잠시일 뿐이다. 일 각 정도 걷고 나면 반죽음 상태가 되어 방으로 들어갈 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식하던 습관을 버린 것인데··· 일단 시선이 삐딱해지고 나니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방 안에 박혀서 대체 뭘 하는 거지?’

마음 같아서는 몰래 방안에 침입하여 감시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는 단목세가주의 아들이었다. 침실까지 침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종일 단목장룡을 감시하던 묵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한다.

‘후우··· 그래, 사고를 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단목장룡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채 말이다.

* * *

‘으음, 그래도 체질이 나쁜 편은 아니군. 그럭저럭 내력이 잘 쌓이고 있어.’

보름 동안 운기행공에 집중했다. 살을 빼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것은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평소 잘 걷지도 않고 심할 때는 가마까지 불렀다고 하니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식사 후에 잠시 걷는 것만으로 지금은 충분하다.

‘식사도 줄였으니 살은 금방 빠져. 무거운 살을 걷어내고 나면 몸을 움직이는 게 더 수월해지겠지.’

쥐꼬리만 하던 단전의 내력은 이제는 쥐의 몸통 수준까지는 성장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상당히 만족스럽다. 과거보다 육신의 재능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무공을 익혀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내공심법을 운용하는 것이 너무도 재밌었다.

과거에는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아직 내공심법은 완전한 게 아니야. 익히면서 조금씩 수정해야겠어.’

중원의 온갖 무공의 장점을 가져와서 결합한 새로운 해우심법. 분명히 그것은 천하제일을 논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완벽하지 않았다. 보통 무공은 사문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게 보편적인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오직 나만을 위한.

내 육체에 알맞은 무공을 만들 수 있었다. 아직 내 몸에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었기에 차츰 심법을 개선해나간다. 과거였다면 굳이 이러지 않았을 테지만, 새로운 육신에서는 무공 수련이 너무도 재밌었다. 의욕이 충만하다.

‘이제 슬슬 나가야겠군.’

확실히 내력이 있으니 몸을 움직이기가 수월하다.

물론 살을 빼야 하기에 단련하며 내공을 사용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겠지만.

방에서 나오니 이새붕이 한가로이 마루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 도련님. 아직 식사 시간이 아닌데요?”

“어, 안다.”

“어디 가시려고요?”

“살 빼야지. 잠시 나갔다 오마.”

“예, 도련님! 전 도련님이 오시기 전까지 식사 준비를 해놓을게요!”

“그래.”

과거에는 이새붕이 근처 반점과 객잔을 돌며 요리를 구매해왔다. 하지만 식사량이 현격히 줄어든 후부터 그가 직접 요리하기로 했다. 가문에서 지원해주는 돈은 제한적이었기에 최대한 아낄 생각이다.

돈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돈이란 것은 언제든 귀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최대한 아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신교에 있을 때 가용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작긴 하지만··· 뭐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지.’

그리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음?’

건물의 천장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분명히 누군가 천장에 있었다. 나를 감시한다고? 설마 신교에서 온···.

섬뜩한 느낌에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이제야 한 발자국을 뗐는데 신교에게 걸린다면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잔뜩 긴장하며 장원의 출구를 곁눈질하고 있을 때.

“냐아아아···!”

지붕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풀쩍 뛰어내린다.

따사로운 햇볕마저도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 고양이도 눈을 피하지 않고 날 노려본다.

‘후우, 고양이의 시선이었구나.’

안도감에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다가가자 기겁하며 도망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감각이 꽤 예민해졌는걸?’

과거였다면 천장에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 * *

“허억··· 허억···.”

지붕에서 기척을 숨기고 단목장룡을 감시하던 묵위.

그는 깜짝 놀라 천장에서 떨어질 뻔했다. 둔하디둔한 단목장룡에게 감시하는 것을 들킬 뻔했다. 사실 들켜도 가주의 명이었기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다. 망나니 같은 단목장룡에게 은신을 들킨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하군.’

긴장을 늦추지 말자고 다짐한 묵위였지만, 지금 단목장룡의 성장 속도는 그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 * *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조리 수련에 쏟았다.

남들은 만사태평하게 산책이나 다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에겐 걷는 것도 수련이었다. 일 각만 걸어도 녹초가 되어버리는 몸이었지만 이제는 걷는 것에 적응했다. 체력이 점점 붙고 있었다.

그리고 체력보다 더 빨리 늘어나는 것은 내공심법의 성취였다.

내력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운기행공의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몸이 내력을 더 잘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체질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제 슬슬 뛰어도 되겠군.’

걷기만 했지만 살은 꽤 많이 빠졌다. 매일 같이 생활하는 이새붕도 살이 빠진 것을 체감하고 놀라워할 정도였기에 의미가 있었다. 살이 빠진 만큼 뼈와 근육이 부담하는 무게도 줄어들면서 뛰는 것까지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조금씩 걷는 속도를 높여간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런 느낌마저도 기분이 좋았다.

“후우욱··· 후우욱···.”

마지막에는 적당한 속도로 뜀박질을 했다.

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고, 옷이 몸에 딱 달라붙는다. 주변 사람들이 그 흉한 몰골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난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성향이 아니었다.

‘슬슬 보법과 검법도 고쳐볼까.’

단목세가의 보법은 천유보(天流步).

딱히 모난 것 없는 보법이었지만 그게 끝이다. 이렇다 할 장점이 없었다. 보통 검법과 보법은 연계되는 경우가 많으니 같이 손을 봐야 할 듯하다.

머릿속으로 천유보와 팔십일식유성환상검을 조화하며 초식을 구체화한다.

내공심법과 마찬가지로 익히면서 계속 개선해야 하겠지만, 기초적인 틀은 잡아놓아야 했다.

‘팔십일식은 모두 활용할 필요는 없어. 쓸모 있는 초식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다.’

보통 무인이었다면 상상하지도 못할 방식. 온갖 무공을 연구해본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천천히 걸어가며 적당한 초식을 선별한다. 그리고 큰 틀이 바뀌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수정한다.

‘너무 많이 바뀌면 의심을 살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의심을 받지 않는 선에서 활용할 수준으로만···.’

집에 도착할 즈음엔 하나의 틀을 완성했다.

“도련님, 오셨어요? 오늘은 땀을 더 많이 흘리셨네요.”

“어, 뛰었거든.”

“허··· 뛰었다고요?”

“살이 빠졌으니 뛰는 것도 가능하지.”

이새붕이 감격한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이게 그리 놀라운 일인가?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물이나 줘.”

“옙!”

이새붕이 떠다 준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수련 후에 마시는 물은 정말 꿀이라도 탄 듯이 맛있다.

“참, 도련님.”

“응?”

“성성루에서 서신이 왔는데요···.”

“성성루?”

기억을 돌이켜보니 이새붕이 화월루나 성성루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단목장룡이 자주 찾아가던 기루라고 했던가?

“예, 그 도련님이 기억을 잃기 전에···.”

“줘 봐.”

“예!”

서신을 읽어나간다. 세심한 여인의 필체가 서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필체를 보면 사람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성정이지만, 은근히 고집이 있어 보인다.

옆에서 이새붕이 흘끔흘끔 서신을 바라본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왜?”

“뭐라고 온 건가요?”

“성성루를 찾아달라는데?”

“예에? 정말 염치도 없지···! 도련님이 언덕에서 구르는 것도 막지 못했던 년··· 아, 죄송해요···.”

“아니다. 성성루의 기녀들과 나들이를 나갔던 건가?”

“예, 그때 도련님은 설레서 한숨도 못 주무셨다니까요.”

“천향이라는 기녀가 예쁜 모양이지?”

내 말에 이새붕이 당황한다.

“그게···.”

“왜?”

“예쁘긴 한데···, 설마 성성루에 가시려는 건 아니죠?”

잠시 고민한다.

무공 수련은 정말 상상보다 훨씬 흥미롭고 재밌었다. 하지만···.

“가보지 뭐. 공짜로 대접한다는데.”

나는 예전부터 기루를 좋아했다.

술을 마시고, 가락에 몸을 맡기는 그 순간만큼은 걱정이 모두 사라졌었다. 사실 그것이 나쁜 취미도 아니고 말이다. 겉으로 선한 척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또 궁금한 것도 있었고.

“예? 살 빼는 건 어쩌시려고요?”

“하루 정도야 괜찮아. 그때의 일을 사과하고 싶다는데 무시하는 건 강호의 도리가 아니지.”

“그, 그런가요?”

“그럼.”

강호의 도리라는 말에 이새붕이 조금 당황한다.

“가자. 넌 기루에 가본 적 없지?”

“예, 도련님을 따라 가본 적은 있지만···.”

“같이 가보자. 너도 고생했으니 오늘은 즐겨.”

“즈, 즈, 즐기다니요? 전 그런 거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이새붕의 흥분하여 소리친다.

기루라는 것에 뭔가 대단한 환상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물론, 기루에선 사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은밀한 무언가도 팔았지만 나는 그런 것 때문에 기루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호들갑은··· 이 근방에선 성성루가 가장 큰가?”

“네, 성성루가 가장 유명한 객잔으로 알고 있어요.”

“좋아, 그럼 이틀 뒤에 가자.”

“예? 이틀 뒤요?”

“오늘 가고 싶어?”

“그게···.”

그런 걸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꽤 기대한 모양이다. 이번에 성성루의 초대를 받는 것은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알아볼 것이 있어서였다. 이새붕의 기대는 아마 충족되지 못할 것이다. 뭐 맛있는 음식과 술은 충분히 먹을 수 있겠지.

“난 그럼 씻으러 간다.”

“예, 도련님! 전 식사 준비를 마저 할게요!”

이새붕은 실망의 표정을 깨끗이 지우고 다시 본래의 그로 돌아왔다.

낙천적이고 순박한 성격, 그래서 이새붕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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