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태어나서 가장 바쁜 연말을 보냈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던 수많은 선후배에게 연락이 날아왔고, 그중에서도 고막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것은 부모님과 형이었다. 형과의 통화는 옆에서 해체 콘서트는 따로 없냐고 물어보는 형수님 때문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휴대폰에 불이 날 정도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결국 며칠 전부터 비행기 모드를 걸어놨다.
해체를 목전에 둔 마지막 시상식에서까지 상을 두 개나 받았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만큼 대우와 인정을 받았다. 대중들은 박수칠 때 떠난다며 대단하다고 했다. 시상식은 처음 열린 곳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곳에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트로피는 꼬박꼬박 회사로 배달됐다. 일주일 전에 받은 게 그룹의 이름으로 받는 마지막 트로피였다. 모든 게 차곡차곡 정리되고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터뷰 시작할게요.”
아침부터 또 들어온 인터뷰 요청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 나왔다. 반듯하게 차려입은 기자가 녹음기를 설치하고 노트북을 켰다. 이미 전부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기사가 나갔을 텐데, 이렇게 끊임없이 인터뷰가 들어오는 게 신기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록들이 말하기엔 입이 아플 정도잖아요. 근데 왜 해체를 결심하게 된 거예요?”
“정확히 하나의 이유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긴 힘들 것 같아요.”
매니저 형은 기자회견 전까지 최대한 말을 아끼라고 했다. 어차피 그전까지 들어오는 인터뷰들은 겉치레일 뿐이라고. 결국 영양가 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30분이 지나갔다.
“그럼 혹시 전에 예준 씨 SNS에 올라왔던 글에 대해서 질문해도 될까요?”
“아.”
대체 뭘 올린 거야. 숱하게 많은 질문들을 받아왔지만 이건 처음이었다. 예준과 휘영이 SNS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 허락을 받고 사진을 올리거나 하는 게 아닌 이상 굳이 찾아보지 않아서 뭐가 올라오는지 몰랐다. 본인도 기억이 안 나는지 잠시 생각에 빠진 예준이 곧 손바닥을 부딪쳤다. 그사이 해당 게시글을 찾아온 듯 기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녹음실 마이크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Coming soon’이라는 글이 보였다. 업로드 날짜를 보니 지구 자작곡을 녹음하는 날 올린 것 같았다.
“컴백 전에 팬들 사이에서 한창 이 게시글이 난리가 났었는데요. 예준 씨가 데뷔 전에 했던 것처럼 믹스테이프를 내주려는 거다, 그냥 컴백곡 녹음이다, 팬송이다 말이 많았거든요. 해체 소식 때문에 그냥 컴백곡이었던 걸로 결론이 났는데 제가 보기에는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았거든요.”
날카로운 질문에 뒤쪽에 앉아있던 예준이 웃었다. 숨길 거 뭐 있냐, 하는 표정으로 지구에게 시선을 한 번 보낸 예준이 입을 열었다.
“팬분들께 드릴 곡이에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곡인 거죠?”
“네.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면 올라올 거예요.”
처음 듣는 곡 소식에 지금까지 평온한 어조로 질문하던 기자의 점점 말이 빨라졌다. 어떤 느낌인지, 마지막 가는 길에 주는 선물인지, 어떤 식으로 공개가 되는지. 무료 음원 사이트에 공개된다는 사실만 알린 다음 예준은 입을 다물었다. 굳이 먼저 나서서 과한 정보를 꺼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기자가 바쁜 걸음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한 번 열렸다가 완전히 닫힌 문을 바라보며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오늘의 첫 번째 인터뷰가 끝났다.
“항상 비슷한 내용인데도 인터뷰가 계속 들어오네요.”
“너네 새 인터뷰라는 말만 있으면 사람들이 득달같이 클릭하니까 그렇지. 비슷한 내용에 복붙이면 뭐 어때. 뭐가 어찌 됐든 새 건데.”
매니저 형이 천천히 차를 몰았다. 지금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바쁜 순간이었다. 오늘, 내일, 내일모레. 3일이 지나가면 정식으로 해체였다.
“내일모레면 진짜 해체하네.”
“그럼 형은 이제 뭐 해요?”
“난 이번에 데뷔하는 신인 매니저 맡기로 했어.”
올해 데뷔하는 회사 신인이라면 저번에 복도에서 만났던 연습생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예의도 바르고 연습도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지난 몇 년간 곁에서 가족처럼 함께한 매니저 형은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바쁜 스케줄을 혼자 다 관리하면서도 한 명 한 명 챙겨주고, 귀찮은 일에도 매니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달려왔다. 어찌 보면 돈으로 얽힌 비즈니스 관계인데도 매니저 형은 필요 이상의 애정으로 지난 활동들을 함께 해줬다.
“너네만한 담당 연예인 만나는 게 쉽냐. 주변 애들은 성격 맞추기 힘들다고 만날 때마다 죽상이야. 나만 맨날 너네 자랑해.”
그런 매니저 형에게도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밖으로도, 안으로도 괜찮은 사람으로 활동했구나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봤다. 선팅이 짙게 된 창문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혼자 빠르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넋을 놓고 쳐다봤다.
* * *
드디어 기자회견이 열렸다. 큰 시상식 때, 해외 투어 할 때, 익숙하게 했던 기자회견들과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과 무거움이 맴돌았다. 기자회견에서 억울하다 울고, 루머를 해명하고, 전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 수많은 연예인들을 떠올리며 물을 마셨다. 잘못을 저질러서 나온 자리도 아니고, 충분히 편하게 진행해도 되는 상황인데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수많은 기자들이 모였다. 어림잡아 숫자를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하나같이 단 한 글자의 말실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각을 잡고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질문들이 순서대로 쏟아졌다. 주로 리더인 예준이 그룹을 대표해서 마이크를 잡고 답했고, 머릿속에서 정리가 끝나면 우리도 한 번씩 입을 여는 식이었다. 왜 해체했는지. 앞으로는 뭘 할 건지.
“해체 이유가 멤버들 간의 불화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멤버들 간의 친밀도로 활동 기간이 정해지는 거였다면 저희 30년은 거뜬히 했을 겁니다.”
예민한 질문은 예준이 가볍게 받아넘겨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인터뷰 때마다 숱하게 받아온 비슷한 질문들이 반복해서 쏟아졌다. 신경 써서 최대한 자세히 대답하려고 노력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같은 대답을 다른 말로 둘러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기존 소속사가 아닌 타 소속사와의 계약 얘기로도 여기저기 말이 많은데요. 혹시 차후 각자 솔로 활동 계획이 있습니까?”
“각자가 자유롭게 음악 활동을 하는 일은 생길지 몰라도, 다른 소속사와 계약할 계획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당연히 멤버 하나쯤은 연기든, 예능이든 혼자서라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 당연했다. 슬슬 질문이 마무리되어가는 듯했다. 뒤에 있던 상사에게 등이 떠밀렸는지, 어리숙해 보이는 기자 하나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해체 직후에는 뭐 하실 건가요? 따로 계획해둔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 그건.”
예준이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나란히 입대부터 할 예정입니다. 계획해둔 일들은 그다음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입대 이야기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서 기자회견이 끝났다. 다섯 명이 나란히 서 있어서인지 생각만큼 떨리지도 않았다. 고개를 한 번 푹 숙이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왔다.
섭섭하면서도 시원하고, 답답하면서도 후련했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도무지 말로는 표현이 안 됐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했으니, 오늘 받은 모든 질문들의 충분한 답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자회견이 끝났을 때는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6시 정각에 음원 사이트에 녹음했던 곡이 풀리는 거로 되어 있었다. 당장 오늘 해체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거칠 것도 없는데, 새 앨범이 발매되는 날인 것처럼 이상하게 떨렸다. 문득 내다본 창문 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날이 좋아서 점점 붉게 물드는 하늘이 평소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창밖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집에 도착했다. 6시가 되자마자 지구랑 나란히 앉아 음원 사이트에 올라온 노래를 들었다. 끝나면 처음으로 돌리고, 또다시 돌려서 반복 재생을 했다. 한쪽씩 나눠 꽂은 이어폰 때문에 풍성한 악기 소리를 모두 귀에 담진 못했지만 좋았다.
음원 아래쪽에 1초에 수백 개씩 달리는 댓글들도 되는대로 읽어 내렸다. 그중에서도 고맙다는 말만 보면 심장이 빨라졌다, 다시 천천히 느려지곤 했다. 한글이든, 영어든, 세계 어떤 나라 언어든 간에 의미는 전부 전달됐다. 서툰 실력으로 외국어로 달리는 댓글들을 읽다 보니 창밖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겨울이라 해가 더 빨리 떨어졌다.
나란히 누워있던 지구가 몸을 옆으로 틀었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침대로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 한쪽이 가슴 위로 툭 올라왔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무게에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마자 지구랑 눈이 마주쳤다.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싶더니 귓가에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던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시선을 옆으로 내려 보니 지구가 볼륨키를 꾹 누르고 있었다. 곧 노랫소리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우리 외국 나가서 살까요?”
갑자기 노래를 끄더니, 툭 튀어나온 물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거였다. 갑자기 외국이라니. 혹시 내가 지구에게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소리를 했나 싶어 기억을 더듬어봤는데, 최근에 비슷한 생각조차 한 적이 없으니 무의식중에도 나왔을 리가 없었다.
“형 외국 좋아하잖아요. 전에 독일 갔을 때도 예쁘다고 전화하고, 프랑스 콘서트 때 에펠탑 보고 멋있다고 했고.”
막 며칠 전에 있던 일인 것처럼 말하지만 에펠탑은 첫 해외 투어 때 봤던 거고, 독일에 갔던 건 벌써 4년 전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촬영할 프로그램이 있어서 갔다가 그 주변 풍경을 찍어서 보냈었다.
나중에 투어 말고 개인적으로 둘이 꼭 오자고 약속했는데……. 결국 지금까지 못 갔다. 자유롭게 돌아다니진 못했어도 해외 투어를 하면서 세계를 돌고, 많은 문화를 느끼면서 내가 잘 모르는, 나를 잘 모르는 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긴 했다.
“첫 해외 투어 때 형이 유럽 풍경을 좋아하더라고요. 사진 찍는 것도 안 좋아하면서 계속 휴대폰으로 찍는 거 보고 진짜 예쁜가보다 싶었어요.”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형이 말한 건 다 기억해요.”
너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는 탓에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지 지구가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형 입이 짧아서 좀 걱정이긴 한데 요즘은 다른 나라 음식도 다 파니까요.”
“……넌 어디 가고 싶은데?”
“그건 왜요?”
그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지구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정확히 세 번째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이마를 한 번 툭 쳤다.
“같이 살 건데 의견을 합쳐야지. 내가 사막에서 살자고 하면 어떡할 거야?”
“그럼 사막에서 살 거예요.”
지구는 농담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었다. 천장을 향해 손을 뻗은 지구가 손바닥으로 형광등을 가렸다. 그냥 집 침대일 뿐인데, 그 작은 동작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주위가 사막으로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형이랑 사막에 누워서 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조명 때문에 눈이 반짝였다. 편하게 누워있던 몸을 살짝 일으켜 공중에 떠 있는 손 위로 손을 겹쳤다.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에 내 손가락을 끼우고, 그대로 바싹 맞잡은 손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난 네가 사는 곳에 같이 살고 싶어.”
7년을 해온 활동이 끝났다. 그룹은 해체했고 많은 것들을 남겼다. 커튼을 걷어둔 창문 밖으로 평소보다 달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렇게 아파트에서 내다보는 평범한 풍경조차 같은 날이 없었다. 앞으로도 매일이 다를 테고, 그 모든 날을 함께할 수 있다는 건 더 없는 축복이었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