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113화 (113/130)

25화

하루 종일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뉴스를 봤다. 딱히 재미있는 소식도 없는데 자꾸만 눈이 돌아갔다. 당일 스케줄을 전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씻자마자 또 뉴스를 켰는데 익숙한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잘 자라준 아이돌’ 투표, 1위는 누구?……]

서바이벌ID 시절 지구의 사진이 걸려있는 기사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빠르게 기사 내용을 훑어보니, 지구가 유명 매거진에서 진행한 잘 자라준 아이돌 투표에서 1위를 한 모양이었다. 100% 팬들의 투표로 이뤄지는 거라 딱히 기준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예전이랑 지금이랑 비교하면 진짜 많이 크긴 했지. 아래쪽에는 서바이벌ID 방송보다도 더 전인 중학생 시절의 사진도 있었다.

연습생 때 영상은 스페이스 사이에 껴서 기를 못 펴는 게 안쓰러워서 조금 보다가 때려치웠는데…….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쳐다보다가, 손가락으로 휴대폰 액정을 쓰다듬었다.

진짜 귀엽다. 이게 16살 때라고. 아마 고등학교 들어가서 키가 확 큰 듯, 화면 속 지구는 170도 안 되어 보였다. 저 때 만났으면 내가 더 컸겠다.

아무래도 같은 반 연습생들끼리 촬영한 브이앱인 것 같았다. 제일 구석에서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는 얼굴이 때 묻은 곳 하나 없이 맑았다. 고작 영상을 정지시켜놓고 캡처한 사진 한 장일 뿐인데 성격까지 훤히 다 보이는 것 같았다. 우물쭈물하는 게 화면 너머까지 전해졌다.

“뭐 봐요?”

마침 지구가 다 씻었는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밖으로 나왔다. 얼굴을 한 번 보고, 사진을 보고, 눈을 한 번 마주치고, 사진 속 16살의 지구랑 아이 컨택을 했다. 그렇게 두 번을 비교해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왜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가온 지구가 옆자리에 앉았다. 소파가 살짝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축축한 머리카락에서 물이 한 방울 떨어져 어깨 위에 떨어졌다. 왜 웃냐고 표정으로 묻는 지구에게 이유를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이거 봐봐.”

기사 화면을 조금 확대해서, 사진에 포커스를 맞춘 후에 지구에게 보여줬다. 아무렇지 않게 화면을 위아래로 쭉 훑더니, 3초도 지나지 않아서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네 얘긴데 왜 그래.”

“아, 형……. 이런 기사 좀 보지 마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쑥스러워하는 표정은 보기 힘든 편이었다. 자꾸만 입술 끝이 살살 올라갔다.

“많이 컸다, 진짜.”

“10년 전 사진이잖아요.”

이게 벌써 10년 전이구나. 스물여섯 살이 열여섯 살의 자신을 똑바로 보긴 힘들겠지. 당장 나만 해도 가끔 올라오는 졸업사진을 보면 바로 휴대폰을 꺼버리기 일쑤였다. 데뷔하지 않고 그대로 쭉 살았다면 과거의 내가 이렇게까지 달라 보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이 변했다. 나도, 지구도, 멤버들도 전부.

지구가 수건을 옆에 내려놓고 조금 더 옆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눈을 마주치더니, 웃으면서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형도 많이 컸어요.”

“뭘 커.”

그대로 뒤로 누워서 눈앞의 얼굴을 쳐다봤다. 진짜 많이 컸지. 투표 1등 한 거 보니까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나 보다.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변해가는 애인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다. 날카로워진 턱을 괜히 손으로 살살 쓰다듬다가 그냥 웃어버렸다. 아무래도

잘 해온 것 같았다.

* * *

이번 활동의 첫 번째 사인회가 열렸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데뷔하고 첫 사인회를 했던 곳과 같은 장소였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앨범을 구매하고 응모권을 작성해서 넣으면 랜덤으로 당첨되는 사인회였다. 사실상 말이 랜덤이지, 많이 넣을수록 당첨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거의 양으로 승부하는 거였다. 실제로 사인회에 온 팬들이 300장 샀다, 500장 샀다, 하며 현실성 없는 숫자를 말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노블 사인회에 몇 번 가본 경험이 있으니 익숙한 일이었지만, 끽해봐야 몇십 장 샀던 게 전부였기 때문에 백 단위로 넘어가는 게 신기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생각하면서 항상 가볍게 갔는데 여기 오는 팬들은 그렇지 않았다.

“저 진짜, 이번에도 떨어지면 죽을 각오로 샀어요.”

첫 번째로 올라온 팬이 비장한 얼굴로 앨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죽을 각오로 샀다는 목소리가 더없이 진지해서, 괜히 조심스러운 손길로 사인을 하다가 물었다.

“몇 장이나 사셨어요?”

“저 800장이요…….”

800장. 한 장에 16,000원이니까 800장이면……. 어마어마한 액수에 차마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우리 한번 보자고, 다 똑같은 사람인데 잠깐 대화하고 만나는 시간을 이렇게 비싸게 산다는 게. 마음 같아서는 한 명씩 다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안 되니까.

“저 이거 집 가서 꼭 읽어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네, 집 가서 꼭 읽어볼게요.”

꼭 읽어달라며 팬이 편지 한 장을 건넸다. 심플한 디자인의 편지 봉투를 받아들고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체가 다가와서인지 작은 편지 한 장에도 고개를 들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

“왔으니까 됐어요. 왠지 이번에 못 가면 앞으로는 절대 못 갈 것 같아서.”

편지를 건네주고 가만히 웃던 팬이 말했다.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하지만 팬은 이런 내 긴장이 우습다는 듯이 툭 다음 말을 뱉었다.

“우리 레브 더 슈스 되면 그때는 진짜 못 오잖아요.”

팬이 까르르 웃으며 앨범을 펼쳤다. 머리 위쪽 배경에 해달라는 디테일한 주문을 받으면서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급히 사인을 끝내고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심장이 뛰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으로 오는 팬들도 전부 비슷했다.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칭찬을 해주고, 다음 활동에 대한 기대를 해줬다. 지금까지 해왔던 사인회는 전부 이렇게 이뤄졌는데도 오늘따라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하고 긴장이 됐다. 뭔가 잘못한 언행은 없는지 한참을 되짚어보고, 마치 지구가 된 것처럼 말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랐다.

“있잖아요, 오빠.”

거의 끝나갈 무렵에 올라온 팬이 갑자기 고개를 아래로 낮췄다. 앞으로 훅 다가온 얼굴에 놀라서 살짝 고개를 뒤로 뺐더니, 팬이 소곤거리며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 집에 왜 칫솔이 두 개에요?”

“네? 뭐가요?”

“리얼리티 방송 보니까 욕실에 칫솔 두 개던데.”

욕실, 칫솔 두 개……. 점점 굳는 게 실시간으로 보일까 봐 황급히 표정을 갈무리했다. 집만  치우고 욕실을 깜빡했다. 수건 두 개 걸려있는 건 세수하다가 발견해서 치웠는데, 그 와중에 칫솔을 생각 못 한 건 정말이지 멍청한 행동이었다.

팬이 이렇게 면전에 대고 물어보는 걸 보면 분명히 이리저리 글이 떠돌아다녔을 게 분명했다. 다른 팬들도 분명 궁금했을 텐데 묻지 못했을 거고. 방송 나간 지 일주일 정도 됐으니까 이미 다 퍼졌겠지. 온갖 루머가 판을 치고 돌아다니는 커뮤니티들을 떠올리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칫솔 두 개, 대충 무슨 얘기가 나올지는 뻔했다.

바로 옆자리에서 얌전한 얼굴로 포스트잇 답을 작성하고 있는 지구를 한 번 힐끔 보고, 뭐라도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옆에서 뭔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거 제 거예요.”

고개를 완전히 돌려보니, 포스트잇 3번 문항에 동그라미를 친 지구가 웃고 있었다. 앞에 서있던 팬이 우리를 차례대로 쳐다보며 물었다.

“오빠 거요?”

“네. 전에 자고 갔다가 그냥 두고 갔어요.”

하루 이틀 자고 간 게 아니면서,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상황을 넘겼다. 같은 멤버 거였다니까 팬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면서, 둘이 친한 거 너무 보기 좋다고 엄지까지 들어 올린 팬은 해맑게 웃으며 예준에게 넘어갔다.

사인회가 끝나고 느낀 건 두 가지였다. 해체라는 게 정말 계약서상으로만 쉽게 끝낼 수 없다는 것과 거짓말이라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 것.

* * *

드디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활동 종료일이 찾아왔다. 마지막 스케줄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의 차는 조용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는데, 그렇다고 자는 멤버는 하나도 없었다.

예준은 평소처럼 게임을 했고, 준은 의자를 뒤로 잔뜩 젖히고 차 천장만 계속 바라봤다. 휘영은 손만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지구는 노래도 듣지 않고 정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형. 저 비타민 좀 주세요,”

침묵을 깬 건 준이었다. 완전히 누워있던 몸을 살짝 일으킨 준이 팔을 내밀었다. 최근 들어 건강에 관리에 신경 쓰기 시작한 준은 오메가3부터 시작해서 눈에 좋은 비타민, 유산균까지 꼬박꼬박 챙겨서 먹고 있었다. 조수석까지 팔을 뻗어 비타민 통을 잡아 건네줬더니 준이 고맙다며 인사했다.

“요즘 왜 그렇게 이것저것 먹어?”

전에 지구가 우리 집으로 건강식품을 잔뜩 시켰을 때, 쌓인 박스를 구경하러 왔던 준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편식 안 하고 밥만 골고루 잘 먹으면 건강해지는데 뭐 하러 이런 걸 먹냐고. 스스로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서 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바로 군대 가려고요.”

네가 왜 벌써? 하고 말하려다가 준의 나이를 떠올리고 입을 닫았다. 맞다, 스물넷이지. 여전히 고등학생처럼 느껴져서 자꾸만 실수를 했다. 해체하면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활동 내내 즐거웠고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혹시나 개인 활동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바로 군대를 간다는 걸 보니.

“형들이랑 같이 갔다가 같이 나와야지. 혼자 외롭게 뒷북치긴 좀 그렇잖아요.”

준이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형이랑 동반 입대 신청할까요?”

“곧 기사 뜰 거야.”

뭐라 대답을 해줄 새도 없이 치고 들어온 매니저 형의 말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 사이 벌써 도착한 건지 차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기사가 올라오는 순간과 내려야 하는 순간이 겹쳤다.

“정각에 올라간다고 했으니까.”

정각이 오기 전에 매니저 형이 주차를 끝냈다. 그리고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내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정각이 되자마자 대형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재계약 포기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치고 올라가는 그룹 이름을 보며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온갖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리기 시작하는 우리 사진을 보며 천천히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활동이 완전히 끝났고, 이제는 더 이상 준비할 것도 없었다. 춤 연습도, 노래 연습도 필요 없고 회의할 일도 없었다. 만약 재계약을 했다면 바로 착수됐을 내년 콘서트 준비도 없던 일이 됐다. 다음 활동도, 서울 콘서트도 기대하겠다던 팬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도착했으면 좀 내려라. 들어가, 빨리.”

예준이 리더답게 해산을 지시했다. 아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데, 먼저 몸을 일으켜서 앞으로 나와 문을 열었다. 문 바로 옆자리에서 겉옷을 벗고 있던 지구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차가운 공기가 차 안으로 마구 몰려 들어가도록 내버려 둔 예준이 밖에서 외쳤다.

“빨리 안 내려? 파파라치랑 사생 몰려오면 인터뷰해 줄 거야?”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내렸다. 줄곧 천장만 쳐다보고 있던 휘영까지 내린 후에 차 문이 닫혔다. 매니저 형이 반대쪽 창문을 열더니 말했다.

“좋은 얘기만 있는 거 아닌 거 알지. 기사 읽지 마라.”

진심 가득한 충고와 함께 매니저 형은 차를 몰고 사라졌다. 아파트 주차장에 다섯 명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마을 주민 몇 명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야, 내일 모여라. 활동도 끝났는데 한잔해야지.”

쓰고 있던 모자를 눌러쓴 예준이 약속을 잡았다. 오늘은 각자 마음 정리하라고 보내는 것 같았다. 얘기 꺼낸 사람 집에서 모이는 거겠지, 오후 늦게. 시간이나 장소를 딱히 정하지 않았는데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몇 사람 울겠구나 싶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다가오기라도 할까 봐 지구의 손을 잡고 아파트 현관까지 빠르게 걸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늦지 않아서인지 주민들이 꽤 많았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을 보며 자연스럽게 계단으로 올라갔다.

차마 기사들을 클릭해볼 용기는 없이 가만히 휴대폰 모서리를 매만지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한 칸, 두 칸, 세 칸.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괜히 숨이 차는 것 같았다. 7층까지 올라간 뒤에 계단에 살짝 주저앉았다. 지구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옆자리에 앉았다. 차가운 계단에 앉아서 창문 밖을 내다봤다.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다.

정말 해체하고 나면 뭐 하지. 어디에 살지. 군대도 가야하고. 아직 20대인데도 이상하게 막막했다. 7년을 쭉 해왔던 게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건 각오했던 것보다 불안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밥 먹듯이 들락날락거리던 공식카페도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팬들에게는 미안하고 안티는 두려웠다.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밖은 어둡지 않았다.

“괜찮겠지.”

인생은 걸어가는 곳마다 다 길이라고 하니까. 멤버들이 힘들어할 때면 예준이 습관처럼 해주는 말이었다. 정해진 게 없다는 건 막연하지만 나쁜 건 아니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찾아보면 되겠지.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숨을 한 번 내뱉었다. 사방이 조용해서인지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그럼요.”

혼잣말이었는데 옆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지구가 웃고 있었다. 지구라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닐 텐데. 천천히 손을 잡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둘이니까 더 괜찮을 것 같았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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