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문을 닫고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침대를 향해 직진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당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침대 위로 몸을 던졌는데 허리가 찌릿하게 아파져 왔다. 급히 손을 뻗어 허리를 붙잡고 천천히 자세를 바꿨다. 이런 상태로 콘서트를 하겠다는데 억지 부리는 것처럼 보였을 만했다. 문득 너무 생각 없이 밀고 나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도 분명 위험한 걸 알아서 반대한 걸 텐데.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팬들 반응을 살피기 위해 깔아둔 SNS에 접속했다. 검색창에 ‘홍콩 콘서트’라고 써넣고 잠시 기다렸다. 로딩이 끝나자 두 개의 단어를 모두 포함하는 게시글들이 잔뜩 떴다. 당장 1분 전에 올라온 게시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콘서트 보려고 홍콩까지 날아오는 날이 있구나...... 드디어 하현이 물 빠진 금발 실물로 보나ㅠㅠ 나도 칼군무 보는건가ㅠㅠ 기대된다]
쉴 새 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보이는 글들을 전부 읽었다. 홍콩에서 하는데도 온다는 한국 팬들이 많았다.
[홍콩콘서트 간다 레전드 사진 마니 찍어오겟음ㅠ]
[내일 콘서트임 드뎌 저스트고 풀버전 본다ㄷㄷ 외가가 홍콩에 있어서 다행이다]
[낼 홍콩 날씨 좋다~~! 님덜 제가 콘서트가서 애들 사진 마니 찍어올게욤ㅠ]
이렇게 다들 기대하고 있는데. 더 이상 스크롤이 내려가지 않을 때가 돼서야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한참 씹어서 엉망이 된 손톱으로 화면을 두드리다가 휴대폰을 뒤집었다.
무리해서 얻는 게 없는 거 아는데, 포기해서 잃는 게 많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가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어 공식 카페에 접속했다.
뭔가 쓰고 싶어서 글 작성 버튼을 클릭했다. 지난 6년 동안 여러 잡다한 이야기를 많이 적어왔다. 연습하다가, 지구 작업하는 걸 보러 왔다가, 콘서트에서 실수하고 힘들어서. 글을 올리면 팬들이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예쁜 댓글을 잔뜩 달아줬다. 왠지 그런 댓글을 받는 것조차 미안할 것 같아서 화면을 껐다, 켰다 하다가 결국 카페 어플을 종료했다.
* * *
리허설을 하러 가기 위해서 11시까지 복도 제일 끝에 있는 매니저 형의 방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최대한 편한 옷을 챙겨 입고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었다. 앉아서 기다리다가 나가도 되는데, 그냥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매니저 형의 방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차피 한 층을 전부 다 멤버들과 회사 직원들이 쓰고 있어서, 누가 본다고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가만히 벽에 등을 기대고 허리의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하고 있는데 바로 옆 방문이 벌컥 열렸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으며 준이 문을 살짝 닫았다. 자기도 20분 먼저 나와 놓고. 잠깐 가만히 서 있던 준이 곧 이쪽으로 와서 내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형. 결국 콘서트 할 거예요?”
“해야지.”
“지구 형이 걱정 많이 하던데. 어제 형 나가고 그 형 한숨 몇 번 쉬었는지 모르겠어요. 분위기 완전 얼음 돼가지고…….”
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양팔을 쓸어내렸다. 어제 느꼈던 감정을 재현하는 것 같았다.
“형 마음도 이해는 해요. 또 형이 그런 쪽은 예민하니까. 형 성격에 콘서트 불참이 가당키나 하겠어요.”
“알아줘서 고맙다.”
“그래도 지구 형 생각도 해줘요. 걱정되니까 그러는 걸 텐데.”
“알아.”
아직도 미성년자인 것 같은데 많이 크긴 한 모양이었다. 갓 입학한 고등학생이었던 그때부터 6년이 흘러서, 스물셋으로 잘 자란 준을 속으로 칭찬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나와 있냐?”
자연 그 자체의 모습으로 매니저 형이 등장했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손으로 몇 번 누르고 모자를 눌러쓴 매니저 형이 문을 툭 밀어 닫았다. 곧 나머지 멤버들도 제시간에 맞춰 나왔다. 뭐라도 말을 걸 줄 알았던 지구는 공연장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했다.
바로 리허설에 들어가서 말을 걸 틈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예준의 솔로 랩 무대 리허설이 시작됐을 때 지구를 데리고 끝쪽으로 갔다. 관계자들이 없는 곳까지 걸어와서 손을 놨다. 예준의 랩이 여기까지 크게 들렸다.
“진짜 조심해서 할 수 있어. 의료팀이랑 얘기도 다시 할 거고.”
“그래서 기어코 하겠다고요?”
평소답지 않게 말투가 날카로웠다. 어제 그 상황이 또 이어졌다. 말싸움을 하긴 싫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이상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응, 할 거야.”
“몸보다 중요한 공연은 없다고 수없이 말했잖아요.”
결국 또 제자리였다. 그렇게 하다가는 결론이 안 나겠다 싶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의료팀이랑 상의해서 조심히 한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았어요, 형 알아서 해요.”
지구가 포기한 듯 알아서 하라는 말이 내뱉었다. 저게 허락의 의미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 그렇다고 콘서트를 안 할 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지구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할 거면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결국 무대에 서기로 결정이 났다. 오로지 내 고집 하나로 이뤄진 결정이었다. 팀에 폐를 끼치기도 싫었고,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는 것도 싫었다. 딱 마지막 한 번이니까 어떻게든 마치고 내려오면 될 것 같았다. 의료팀 쪽에도 이야기해서 결국 오케이를 받아냈다. 이미 정해진 공연이라 빠질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허리에 무리가 가는 동작들은 전부 애드리브로 넘기라는 조언을 해줬다. 정말로 빼야 하나 싶어 긴장하고 있던 회사 측에서는 안심한 듯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대기실에 앉았다. 정신이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혹시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하거나 중간에 넘어지면 어떡하지. 6년 동안 몇 번 일을 쳤던 걸 생각하니까 일어나지 않을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물 마셔.”
“어, 고마워.”
휘영이 건네주는 물을 받으면서 살짝 지구를 봤다. 답지 않게 입술을 물어뜯으면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오른손으로 볼도 긁고 있었다. 완벽하게 세팅된 얼굴을 망치고 있는 걸 보니 곧 지적을 받겠다 싶었는데, 예상대로 곧 직원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메이크업 다 해놨는데 물어뜯으면 어떡해!”
“아. 죄송합니다.”
“저기, 와서 수정 좀 해줘요!”
잠깐 사이에 다시 소란스러워진 대기실에 조용히 고개를 아래로 내리꽂았다. 지금은 공연만 생각해야 할 때였다. 일단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내려와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눈앞에 닥친 일이 먼저니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푹 쉰 다음에, 진정이 되면 자기 전에 불러서 다시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그렇게 잔뜩 긴장한 상태로 올라간 콘서트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그냥 항상 했던 것처럼 춤추고, 노래 부르고, 마이크를 붙잡고 말하다 보니까 어느새 엔딩 무대였다.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는데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엔딩을 끝내고 내려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스태프들이 뛰어왔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온 매니저 형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많이 아파? 무리했어?”
“아니요.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다음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대로 물 한 통을 비우고 바로 차에 올라타서 호텔로 실려 갔다. 정말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공연장 열기에 몽롱하게 취해서 느껴지지 않던 통증이 차에 타자마자 진짜 마법처럼 시작된 게 이유였다. 다급히 의자를 뒤로 젖히고 숨을 골랐다. 옆을 보니 지구는 이어폰을 꽂은 채로 자고 있었다.
분명 자기 전에 지구 방으로 가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너무 아프고 피곤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옆에서 멤버들이 떠드는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결국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방에 들어갔다. 일단 진통제를 하나 먹고 허물 벗듯 옷을 벗어던졌다. 씻을 기분도 아니라 그냥 엎어지듯이 침대에 누워서 잠들었다. 오후 10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 * *
공기가 유독 찼다. 커튼을 쳐서 방 안이 어두운 탓인 것 같았다. 아니다, 지금 보니 옷을 벗고 자서였다. 피곤함이 온몸을 꽉 짓눌렀다. 여기저기가 쑤시고 너무 아팠다. 이런 고통은 익숙한데 오늘은 평소보다 심했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소리를 참고 손을 더듬어 탁자 위에 놓아뒀던 휴대폰을 잡았다.
주소록을 켜서 바로 보이는 지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구가 온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차라리 매니저 형에게 전화하는 게 빠를 텐데도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금방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호음이 끝나지 않았다. 자나. 겨우 눈을 떠서 확인한 시간은 정오가 넘어 있었다. 콘서트 바로 다음 날에도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있던 지구가 아직 자고 있을 리 없는 시간이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결국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직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전화를 안 받은 적은 없었는데. 흘러나오는 안내음을 들으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
어쩔 수 없이 매니저 형을 찾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간지 3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 전화 건너편에서 매니저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일어났어?
“형. 저, 지금 방에 있는데…….”
-왜? 기다려봐, 지금 갈게.
정확히 상황 설명도 못 했는데, 매니저 형이 바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곧바로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줘야 해서 겨우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기어갔다. 눈물이 날 것 같은 통증이었다. 팔을 뻗어 문을 열자마자 매니저 형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왜 그래, 어? 괜찮아?”
“허리가 너무, 아픈데…….”
“허리? 일단, 일단 일어나 봐.”
놀란 매니저 형이 일단 일어나라며 손을 뻗었다. 우악스럽게 일으켜진 몸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아, 미안.”
깜짝 놀란 매니저 형이 급히 사과했다.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누웠는데, 매니저 형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후드와 바지를 들고 왔다. 어제 오자마자 벗어 던진 옷이었다.
“하현아, 잠깐만. 일단 옷 입고. 의료팀 부를게. 어? 정신 차리고.”
매니저 형이 휴대폰을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우고 통화를 하면서, 손으로는 직접 옷을 입혀줬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닥에 누워있는데, 금방 의료팀이 도착했다.
“잠깐만요, 볼게요.”
상태를 확인하고 심각한 대화가 몇 마디 오가더니, 결국 병원으로 가기로 얘기가 됐다. 여기서는 치료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니까,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현아, 여권 어디 있어?”
“가방에요…….”
손등으로 이마를 짓눌러 통증을 참았다. 매니저 형이 여권을 찾자마자 치료사들과 통역사를 대동하고 홍콩의 대형병원으로 이동했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서 치료를 받았는데, 대체 몇 개나 놓는 건지 샐 수도 없을 만큼 주사를 많이 맞았다. 뻐근하고 찌릿한 통증이 계속 느껴져서 생각보다 더 아팠다. 그래도 고통이 좀 가라앉아서 바로 호텔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매니저 형이 생각도 못 한 이야기를 했다.
“하루 입원하기로 했어.”
“입원?”
놀라서 되물었는데,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매니저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하는 사이에 입원은 일사천리로 이뤄져서,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1인 병실에 누워있었다. 머리 위에서 수액 팩이 흔들렸다.
“안정 취해야 되니까 오늘만 누워있어. 너무 무리해서 그렇대. 지금 열도 살짝 난다더라. 급한 스케줄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일 비행기 취소하고, 3일 뒤로 다시 잡을 거야. 한국 가면 제대로 시술받고 입원해야지. 이제 말 안 할 테니까 쉬어. 잠을 자든지.”
한숨을 쉬며 구석에 놓인 소파에 앉은 매니저 형이, 아무 말도 안 할 테니 푹 쉬라며 휴대폰을 꺼냈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결론은 고집을 부려서 이렇게 된 거니까 내 잘못이었다. 아프다고 말할 자격도 없었다.
왜, 항상, 이렇게.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당긴 다음 눈을 감았다. 잠에 빠져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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