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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를 피하는 방법-101화 (101/130)

13화

기자? 또? 시선이 절로 저쪽에 주차되어있는 차 쪽으로 눈이 향했다. 설마 이렇게 팀으로 움직이나. 하긴 그 수많은 이동 경로를 혼자 추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저 차는 거의 항상 집 앞에 있었고. 주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지구가 이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오늘 데이트를 계속 따라왔던 게 확실했다.

지구랑 눈이 마주친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잡고 있던 핸들을 손으로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창문을 내리나 싶었는데, 바로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와중에 인사하는 태도는 정중했다. 고개를 살짝 숙여서 인사한 남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까지 청했다. 뻔뻔하게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입꼬리가 떨리는 걸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지구는 손을 잡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살짝 잡았다 놓았다.

“권상철 기자님이시네요.”

지구가 툭 기자의 이름을 뱉었다. 누구인지 기억하는 걸 보면 인터뷰를 한 적 있는 기자 같았다. 6년 동안 한 인터뷰들을 전부 모아보면 어마어마할 텐데, 어떻게 이름까지 기억하는지 신기했다.

“아까부터 계속 쫓아오셨죠.”

차분한 목소리로 지구가 추궁을 시작했다. 부정하지 않는 거로 봐서 그런 것 같았다. 분식집, 영화관, PC방, 마지막으로 병원. 둘만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한 데이트를 누군가가 계속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다 아는 분들이.”

기자가 멋쩍게 웃었다. 웃는 얼굴이 이렇게 소름 끼쳐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본인이 잘못했다는 건 아는 눈치였다. 대충 사정을 알 테니 넘어가 달라는 말이었다.

“기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면서 사생활이나 사진 찍어대는 직업이었습니까.”

“아니…… 기사 쓰려면 사진이 필요하니까요.”

진짜 화가 많이 났는지 지구 표정이 놀랄 정도로 딱딱했다. 남에게 잘 웃어주고 살갑게 대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대한 적은 없었다. 기자도 당황했는지 대답하는 발음이 살짝 씹혔다.

“어디 켕기는 거라도…… 있으신가 보죠?”

갑작스럽게 기자가 반격을 시도했다. 켕기는 게 있냐는 말에 지구는 미동도 없었지만, 오히려 움찔한 건 나였다. 연애 증거를 잡기 위해 쫓아다니는 기자에게 엄청난 특종이 실제로 있으니까.

“이만큼 계셨으면 충분히 아실 것 같은데.”

지구가 기자와 눈을 똑바로 맞췄다. 거리도 가깝지 않았고, 크게 위협적인 태도도 아니었는데 기자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연애 안 해요.”

연애, 안, 해요. 한 글자 한 글자가 정확히 지구의 입에서 떨어졌다. 거짓말인데도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계속 이렇게 따라다니면 불법 스토킹으로 신고할게요.”

이번까지만 봐주겠다는 단호한 말에 기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대충 숙였다. 알겠다는 뜻인 것 같았는데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마침 아파트 단지 안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고, 기자가 다시 차에 올라타 벨트를 맸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에요. 그러게 누가 켕기는 짓을 하랬나.”

“뭐라고요?”

“아, 연애 안 한다면서요. 그럼 됐네요. 게이 아닌 거잖아.”

“이봐요!”

끝까지 한 마디 더 덧붙이고는, 다시 한번 짧게 고개를 숙인 기자가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는 듯싶더니 곧 매일 같은 자리에 주차되어있던 차도 움직였다. 진짜로 같은 회사 기자였네. 빠르게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차들을 바라보는데 지구가 손을 잡았다.

“일단 들어가요.”

집으로 들어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지, 누구랑 하는지가 그렇게 궁금한가. 스케줄도 아닌, 개인적인 외출을 저렇게 따라오면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방금 그 기자는 걸렸지만 몰래 따라오는 기자들이 더 있을 가능성도 버릴 수 없었다.

진짜 걸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엘리베이터 벽에 붙어있는 거울에 비친 우리가 보였다. 순간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6년을 멀쩡히 연애하면서 지냈지만, 의심 비슷한 것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동성끼리 연애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나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신발을 벗던 지구가 말했다.

“당분간 외출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행동도 더 조심해야 할 것 같고.”

들어오자마자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지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길래, 소파에 앉으면서 조심스럽게 한 마디 꺼냈다.

“카메라 달라고 해서 사진을 지울 걸 그랬나?”

“어차피 그런 거로 기사 안 내요. 건수 잡으려고 들고 다니는 거니까.”

지구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내 턱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왼손으로 커튼을 붙잡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렇게 빛이 다 차단된 상태에서 한참 키스를 했다.

“……으음.”

너무 길어져서 호흡이 힘들어졌을 때쯤 지구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집에서까지 커튼을 치고 키스한 건 처음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피곤하니까 일단 자요.”

피곤하니까 일단 자자는 말에 씻고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지구가 휴대폰으로 노래를 재생했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 멜로디가 좋아서, 눈을 감고 감상하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지구도 눈을 감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반듯한 얼굴을 이마에서부터 쳐다보며 내려오다가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정말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뜨거운데, 한 살 어린 지구가 과연 아무렇지 않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래가 끝났다. 더 들을 생각은 없는지 지구가 휴대폰을 내려놨다.

“잘 자요.”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방 안이 조용해졌다. 대신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데뷔하고 6년. 단 한 번도 부진한 적 없었던 성적. 언제나 과분할 정도로 많은 걸 주는 팬들. 지하철 광고, 버스 정류장 광고, 회사로 도착하는 선물들.

어딜 가도 쫓아오는 기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찍힌 사진. SNS에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사생활. 숙소에 들어온 사생, 키보드 뒤에 숨은 악플러, 면전에서 욕하는 안티팬.

여러 생각들이 충돌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안 좋은 꿈을 꿨다. 콘서트 중이었는데, VCR이 재생되던 도중에 우리가 키스하는 사진이 떴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욕설과 함께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던 응원봉이 무대 위로 비처럼 내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렸다기보다는 집어던진……. 날아온 응원봉에 머리를 맞는 순간 잠에서 깼다.

“헉……!”

숨을 가다듬으며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 앉았다. 평소에는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금방 깨는 애가 미동도 없었다. 작은 숨소리만 내면서 곤히 자고 있는 지구 얼굴을 한 번 내려다보고 천장을 쳐다봤다. 별로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이 고작 기자와 만났다는 거 하나로 머릿속에 가득 찼다.

연애, 활동, 기사. 6년의 시간 동안 너무 높은 자리에 올라왔다. 이 위치에서 만약에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이런 새벽에 안 좋은 생각을 해서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 고개를 털어 생각을 떨쳐냈다.

겨우 다시 잠을 잤는데 또 기분 나쁜 꿈을 꿨다. 꿈속의 내가 주차장 중간에 서서, 숨지 말고 다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살면서 저렇게까지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낯설었다. 그 커다란 목소리에 숨어 있던 기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주차되어있던 차에서, 경비실 뒤에서, 분리수거장에서……. 아무나 붙잡아 손에 들린 카메라를 빼앗았더니 찍은 사진들이 보였다. 전부 우리 둘이 같이 찍힌.

“헉!”

“왜 그래요?”

이번에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있던 지구가 놀란 목소리로 바로 물어왔다. 나쁜 꿈을 꿨다고 하면 걱정할 것 같아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다행히 땀에 젖어 있지도, 숨을 헐떡거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넘어간 다음 아무렇지 않게 아침을 먹고, 대충 챙겨 입은 뒤에 병원을 다녀왔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해외 투어가 시작됐다.

* * *

제목 : 우리 이모부가 연애부 기자인데

이번에 유명 남돌 취재하는 중이거든..... 얘네가 이번에 숙소 나가서 각자 아파트에 독립해서 사는 중인데 솔직히 수상하잖아ㅇㅇ..... 연차가 많이 쌓이긴 했어도 활동 중인데 굳이 나가서 산다는건 여친 있다는 얘기지 집에 데려오기도 편하고.

근데 어제 이모부가 아들뻘인 새끼가 연애 안한다고 정색빤다면서.... 아무래도 켕기는거 있는게 100%랬는데 ㄹㅇ 드디어 연애각 뜬거같아.....

얘네가 기자들 사이에서 연애 안하기로 소문 파다한 애들이거든? 동성애자거나 무성애자가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클린할 수가 있냐고..... 그래서 하나 걸리면 진짜 난리날 수도 있음 그정도로 파급력 큰 애들이기도 하고ㅇㅇ

근데 난 얘네 진짜 동성애자 아닌가 의심되기도 해. 같은 멤버랑 너무 붙어다녀서.. 걍 나갈 때 들어갈 때 맨날 같이 있다는데 좀 이상하지 않아...? 같이 사는거 아니야? 숙소 나와서 독립한 애들이 굳이 같이 사는 이유가.. 성인 남자 둘이 개인 사생활도 없나??? 평소에도 약간 수상했거든 얘네 하는 거 보면.. 그냥 친한 멤버 형 동생이라기에 좀 이상하더라고 내가 평소에 감이 좀 좋거든.

+ 욕 쓰지마... 내가 이모랑 이모부가 둘 다 기자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기자도 먹고 살기 힘들어.. 다른 기자들도 연예인들 이동경로 따라다니면서 찍는 건데..? 그렇게 하니까 데이트 하는 순간 키스 하는 순간 잡아내는거지.. 직업이 기자인데 그럼 어떡하니 남일이라고 너무 뭐라고 하지마ㅠㅠ

댓글

└ 유명 남돌 / 숙소 나가서 따로 삼 / 연차 쌓였는데도 열애설 없고 클린.... 이게 레브 아니면 누구냐 걍 이름을 써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 ㄹㅇㅋㅋㅋㅋㅋㅋ 레브 맞네

└ 인증이나 해

└ 요즘 노인증글 왤케많냐 으ㅡㅡ

└ ㅋㅋㅋㅋㅋㅋㅋ 연애 안해도 시발 그따위로 사생활 침해당하면 화가 안나겠냐?

└ 나같아도 가서 지랄하지ㅋㅋㅋㅋ

└ 정색한거 가지고 화난거임?ㅋㅋㅋㅋㅋ 아니 그럼 웃으면서 말해야되나??

└ 인증도 없고 어케믿어ㅠ 연애 한다는 것도 결국 걸린 건 없고 느그 이모부 피셜아냐?

└ ㄹㅇ 니네 이모부가 캥기는거 있는거 같다한게 팩트야?

└ 감이 좋ㅋㅋㅋㅋㅋㅋㅋ대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

└ 이런 글 쓰는놈 특) 나 감 좋아!

└ 너 호모파냐?

└ 빼박임ㅋㅋㅋㅋㅋㅋ 야 그런다고 니네 오빠들이 진짜 사겨?

└ 아니 이모부가 스토킹하는 기자인거 알겠는데 동성애 얘기는 왤케 무뜬금임..

└ ㄹㅇ 갑자기 헛소리하네 싶음

└ 그거 불법 스토킹이야 시발 존나 당당하네??

└ 소속사 이딴거 안잡냐ㅠㅠㅠㅠ

└ 기자들은 건들기 힘든걸로 암ㅠ

└ 아니 연애를 하든말든ㅋㅋㅋㅋㅋㅋ 걸린것도 아닌데 사생활을 쫓아다녀ㅋㅋㅋㅋㅋㅋ

└ ㄹㅇ... 기자들 밥벌이 하다가 사람 하나 죽이는거임

└ 기자들 특종 하나하나가 밥줄이고 소중한거 아는데 활동기도 아닌데 쫓아다니면서 뭐하는거야.... 걔네는 사람 아니야? 진짜 불쌍하다

└ 뭔 개소리야 멤버랑 붙어다니면 사귐???ㅋㅋㅋㅋㅋ 마음 잘맞으면 맨날 같이 놀러다닐수도 있는거지 글쓴이 정신병원 가봐

└ ㄹㅇ 망상병인가ㅋㅋㅋㅋㅋ 걔네가 들으면 얼마나 기겁하겠어ㅋㅋㅋ

└ 꼰대 집합했냐ㅋㅋㅋ 정작 열애설 뜨면 제일 쌍욕하실분들

└ 넌 왜 혼자 지랄이야?

└ 느낌이 친한 형동생이라기엔 이상하다고??ㅋㅋㅋㅋ 그 논리면 우리 오빠들도 사귄다!!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 엥 근데 같이 나가고 같이 들어간다고 독립했는데..? 그건 좀 이상하긴하네....

└ ㅇㅇ 같이 나가서 놀 수는 있는데 왜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지?

└ ㅇㅈ 각자 집이 따로 있는데 그건 좀 이상함

└ 같이 나가고 같이 들어간다고? 그거 박하현 온지구 말하는거지? 걔네 같은 라인 살아서 그런거야 층이 달라

└ 뭐야 레브 맞네

└ 미친 너 뭐야?;; 박하현 온지구 같은 라인 사는걸 니가 어떻게 알아?

└ ????? 잠깐 너는 그걸 어케아는데?

└ ?? 야 같은 라인사는지 어떻게 알아ㅋㅋㅋㅋㅋㅋㅋ?

└ 와 씨발 사생 존나 당당하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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