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군대요?”
준이 그 어느 때보다 당황한 표정으로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평소보다 한참 올라간 목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퍼졌다. 그러고 보니까 왜 생각도 못 했지. 1년 전쯤에 사장님이“예준이 곧 군대 가겠네.”하고 장난스럽게 말했을 때도 놀랐는데, 또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예준이 올해로 서른이 됐으니까, 내년 생일이 지나면 만 30세였다. 평균 나이 26.8세인 우리 그룹에 군필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잠시 망각했다.
“만약 계속하게 돼도 2년 동안 난 없어.”
예준이 준이 먹던 과자 봉지를 뺏어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랩을 담당하는 예준이 빠진다면 아주 곤란해질 게 뻔했다. 게다가 리더니까. 공식적인 자리에서 항상 먼저 나서 당당하게 마이크를 잡고 얘기하던 예준의 부재는 상상만으로도 곤란했다.
“형 없으면 우리 랩은 누가 해요?”
“빼야겠지. 아님 누가 대신하거나.”
춤추면서 노래 부르기에도 벅찬 우리가 랩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지구가 좀 할 줄 아는데, 메인보컬이 래퍼로 전향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룹 인원이 적으니 한 명만 빠져도 타격이 너무 컸다.
“근데 이게 계속 이어지는 게 문제지.”
예준이 고갯짓으로 나와 휘영을 차례로 가리켰다.
“너네 몇 살이야.”
“스물여섯, 아니 일곱…….”
갑작스러운 나이 질문에 휘영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세 개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나까지 딱 만 30세 입대고, 그다음 연도부터 만 28세로 법 개정된다고 했잖아.”
맞다. 예준과 같은 해에 출생한 사람들까지 기존 법이 적용되고, 그 이후 출생자부터는 개정된 법이 적용된다는 뉴스를 봤다. 그래서 벌써 만 28세에 입대하는 아이돌 리스트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 제대하기 전에 너네도 입대야.”
아……. 예준의 말을 듣고 나니 현실이 확 와닿았다. 막 스물일곱이 됐으니까, 당장 2년 뒤에 군대를 가야 했다. 이렇게 보니 멤버들 나이가 애매했다. 예준이 나오기 전에 우리 둘이 들어가면 지구랑 준이만 남고, 예준이 나오면 얼마 있다가 바로 지구가 들어가야 했다. 심지어 지구가 제대하고 나면 딱 준이가 들어갈 시기였다.
“동반 입대는 안 돼요? 다 같이 입대해서 다 같이 나오는 거예요! 요즘은 동반 입대 신청하면 같은 부대에 넣어 준다던데.”
애절한 표정으로 준이 손을 모았다. 하지만 지구와 예준이 번갈아 가면서 초를 쳤다.
“이 시기에 어떻게 2년이나 공백기를 가져.”
“망하겠다는 소리를 돌려서 하네.”
맞는 말이었다. 깔끔하게 다 동반 입대를 하면 멤버가 한두 명씩 비는 일은 없겠지만, 중요한 7년, 8년 차를 공백기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아마 제대하고 나면 팬들은 다 떠나고도 남겠지. 그걸 아니까 다른 아이돌들도 멤버 하나씩 보내는 거고.
“……잠깐만요. 그럼 우리 올해가 거의 마지막 완전체 아니에요?”
준의 충격받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한참 대화가 끊겼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 얘기하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예준의 정리로, 갑작스럽게 성사된 재계약 회의는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났다. 먹던 과자를 급하게 마저 해치우는 준을 빤히 쳐다보던 예준이 제안했다.
“회의 끝났으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렇게 근처에 있는 갈비탕 집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언제 해체나 군대 얘기를 했냐는 둥 다들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어제 막 비싼 게임 장비를 집에 들였다는 예준의 말에 준이 집에 놀러 가도 되냐며 물개박수를 쳤다. 휘영까지 껴서 이번에 새로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 얘기를 하는 마당에 지구 혼자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게임을 안 좋아하는 건 알지만, 막상 하면 다 잘하니까 한 번 해봐도 좋을 것 같은데.
“형도 할래요?”
“아니.”
“그럴 것 같았어요.”
예의상 물은 말인지, 바로 거절당했는데도 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막 도착한 따끈따끈한 갈비탕을 한 숟가락 가득 퍼먹었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 숟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들 입안에서 살살 녹는 고기 맛에 반한 건지 더 이상 게임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 * *
매년 데뷔 날이 되면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아침에는 멤버들과 다 같이 모여서 실시간 방송을 켜고, 저녁에는 작은 공연장을 빌려 팬들과 같이 즐기는 자리도 가진다. 아이돌에게 무대만큼 중요한 건 팬들과의 소통이라며 사장님이 강력히 주장한 이벤트들은 전부 반응이 좋았다.
그러니 데뷔 6주년인 오늘도 역시나 매년 하던 대로 진행이 되는 게 당연했다.
“뭐야…….”
한참 잠에 빠져있는데, 탁상 위에서 큰 진동이 울리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알람은 노래로 해놨으니까 아니고, 전화인 것 같은데. 애써 눈을 뜨자마자 이쪽을 보고 누워있던 지구가 휴대폰을 확인해보라며 살짝 고갯짓했다. 딱 봐도 깬 지 한참 된 듯, 전혀 잠에 취해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깼으면 더 자든지 다른 거 하지. 가만히 누워서 뭐 하고 있었어.”
“형 구경이요. 전화 끊어지겠어요, 얼른 확인해요.”
“맨날 질리게 보는 얼굴을 뭘 또 구경을 해.”
잠버릇이 없는 게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괜히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무의식적으로 시계부터 확인했다.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누가 벌써부터 전화를 하나 싶어서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걸려 오는 전화 하나 없이 잠잠했다. 그런데도 진동 소리가 끊기지 않아서 지구 휴대폰을 뒤집어보니 [매니저 형]이라는 발신자명이 떠있었다.
“너한테 온 거야. 매니저 형.”
“아, 그래요?”
지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손을 뻗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매니저 형의 발성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
-웬일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자고 있었어요.”
-그래?
보통 매니저 형이 일어나라며 전화를 해주는 멤버는 따로 있었다. 일단 1순위는 항상 준이고, 그다음으로 피곤하면 잘 못 일어나는 나머지 멤버들에게 전화를 해줬다. 지구는 굳이 모닝콜을 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나 준비하고 기다리는 타입이라 보통 문자만 보내고 마는 편이었다.
-진작 깨어 있을 줄 알았더니.
“피곤해서.”
-너 일어났으면 내려가서 하현이 좀 챙겨서 나와. 걔 아침에 정신 못 차릴 것 같아서.
이사 온 뒤로 줄곧 지구랑 함께 자서 늦게 내려간 적도 없는데, 매니저 형이 저렇게 전화로 따로 부탁할 줄은 몰랐다.
-연말에 보니까 체력 더 떨어진 거 같더라. 회사에서도 모니터링하면서 몸에 좋은 것 좀 챙겨 먹여야겠다고 하던데. 너네한테 별말 안 하냐?
“아…….”
지구가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던 몸을 옆으로 돌려 이쪽을 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지구가 한 글자 한 글자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아파요?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지구가 휴대폰을 고쳐 잡고 대답했다.
“일단 제가 데리고 나갈게요. 밑에 오면 문자 해요, 형.”
-그래. 믿을 게 너밖에 더 있어야지. 두 시간 뒤에 갈게.
매니저 형의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통화가 종료되자마자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은 지구가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어디 안 좋은 데 있어요?”
“요즘은 괜찮아. 활동기도 아니고.”
“도무지 안심할 수가 있어야죠. 멀쩡하게 넘어가는 해가 없는데.”
지난 6년간 내가 일으켰던 사건들을 떠올려보는지 지구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지 눈 깜빡한 사이에 벌써 세 개나 접었길래, 급히 손을 잡아 펴준 뒤에 씻고 나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매니저 형이 빨리 준비하라는데 그냥 같이 씻어요.”
전화 내용 다 들렸는데 무슨. 분명 두 시간 뒤에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급한 것처럼 말하는 게 웃겼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냥 같이 들어가서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전신거울 앞에 나란히 앉아서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데, 시원하기도 하고 별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오늘이 이번 달 마지막 스케줄이잖아요.”
“그럴걸.”
“끝나면 바로 병원 가는 거예요.”
“알았어.”
어디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닌데 지구는 이상하게 걱정이 많았다. 근육통은 이제 없는 게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거고, 연차가 쌓이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아니, 사실 이렇게까지 체력이 뚝 떨어진 건 나밖에 없긴 했다. 춤출 때 발목 뻐근한 것도 그렇고, 연습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했으면 체력이 늘어야 하는 게 맞는데 그러질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체력 박살 난 아이돌 소리도 들어가질 않는 거고.
“회사에서도 몸에 좋은 것 좀 먹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찾아볼게요.”
“야, 사지 마. 너 또 배즙 시킬 거야?”
“그거 효과 하나도 없었잖아요. 다른 거로요.”
작년에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심하게 걸린 이후로 집에 택배가 산더미처럼 도착한 적이 있었다. 형은 체력 보충을 좀 해야 한다면서 배즙을 다섯 박스나 주문시킨 지구 때문이었다. 억지로 꾸역꾸역 먹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결국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한참 휴대폰으로 건강식품을 찾아보던 지구가 왠지 전부 주문하고 싶어 하는 눈치길래, 급히 휴대폰을 뺏어서 화면을 껐다.
“그냥 병원 가서 물리 치료나 좀 받으면 돼. 체력은 타고나길 안 좋은 거고.”
“고등학생 때는 그렇게 해놓고.”
“그때는 대학만 봤으니까.”
편식은 심한데 체중 관리는 해야 하고. 학교에서도 시달리고 학원에서도 시달리고. 새벽까지 연습하고,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등교해서 하루 종일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그때도 힘들었지만 지금도 만만치 않았다. 학교 안 학생들의 시선과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의 무게는 차원이 달랐다. 거기에 느끼는 위압감이나 긴장감도 훨씬 더하고.
“해외 투어 가서 잘해야지.”
“형은 항상 잘했어요. 해외 투어에서 실수한 적 한 번도 없잖아요. 아, 전화 왔다.”
매니저 형에게 온 전화인지, 지구가 40분 뒤에 내려가겠다고 대답했다. 바로 촬영을 해야 하니 신경 써서 입고 오라는 말에 옷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무난한 셔츠를 꺼냈다.
“사복이면 영 불안한데. 예준이 형 정장 입고 오는 거 아니야?”
“설마요.”
그 설마는 놀랍게도 사실이 됐다. 미리 도착해있는 매니저 형의 차 문을 열자마자 정장 위에 패딩을 걸친 예준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형 정장 새로 샀네.”
“어.”
와중에 새 정장이라는 것을 알아봐 준 지구가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가는 내내 예준의 옷차림을 힐끗거리면서, 넥타이라도 하나 얻어서 같이 해줘야 하나 수십 번 생각했다.
차에 실려 도착한 회사 연습실은 이미 준비가 끝나 있었다. 천장에 주렁주렁 달린 풍선 밑으로 커다란 스크린이 보였고, 지금까지 활동했던 타이틀곡 의상들도 한쪽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또 스크린과 연결된 노트북 안에는 지금까지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과 음악 방송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 6주년 브이앱 컨텐츠는 지금까지 했던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이라고 했다. 아직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오래전에 데뷔한 것도 아니고, 언더까지 그린 진한 아이라인이나 삐죽삐죽 솟은 머리 같은 흑역사는 없었지만 그래도 과거의 나를 두 눈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전체적인 진행 내용을 쭉 훑어보다가 정오가 되자마자 방송을 켰다. 한참 시청자 수가 0에서 올라가질 않더니, 렉이 풀리고 나니 순식간에 늘어나기 시작했다.
-OPPA
-1빠
-eng plzzzzzz
-오빠ㅠㅠ 저 지금 학교인데 몰폰중이에용
-(이모티콘)
-예준 정장뭐야ㅋㅋㅋㅋㅋㅋㅋㅋ
-정오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줄ㅜ 흑흑
“안녕하세요.”
일단 얌전하게 다 같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마자, 준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려 손에 쥐고 있던 폭죽을 터뜨렸다.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풍선과 반짝이로 마구 장식해놓은 연습실과 잘 어울렸다.
“저희가 오늘 벌써 데뷔 6주년이에요.”
축하한다는 댓글들이 읽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왔다. 하나하나 읽어볼 수는 없어서 대충 훑어본 뒤에, 예준이 일어나 오늘 할 컨텐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만 끝마치고 곧바로 자리에 앉는 예준을 대신해 역시나 막내가 나서서 노트북을 잡았다.
“와, 6년 동안 쌓인 거 진짜 많아요. 일단 우리 다섯이 이렇게 한 그룹으로 모일 수 있게 해준 서바이벌 ID 영상부터 까볼게요.”
까본다는 발랄한 표현을 사용하며 준이 ‘서바이벌 ID’라고 적힌 파일을 더블클릭했다. 첫 방송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우리가 나오는 부분만 잘라놓은 건지 제목에 ‘CUT’이 붙어 있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방송인 것과 별개로 저 영상에 내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