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89화 (89/130)

1화

“드디어 올해의 앨범상!”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은 조명 아래에서 MC가 크게 소리를 쳤다. 드디어 마지막 수상 발표였고, 여기서 영광을 거머쥘 그룹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시상식이 끝난다. 국내 시상식 중 가장 중요한 자리인 만큼 긴장감이 맴돌았고, 뒤쪽에 있는 수많은 팬도 조용했다. 고요한 공간에서 MC가 조용히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꺼냈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랑을 받은 해였다. 발매하는 족족 백 만장을 넘기는 엄청난 기록을 남긴 만큼 앨범상을 기대할 만도 했지만 이미 대상 격인 상을 두 개나 거머쥔 상태라 그럴 리는 없었다. 이미 앞으로 나가 소감을 두 번이나 하고 들어온 터라 긴장은 전부 풀린 상태였고, 언제든지 박수를 치기 위해 손을 대기 시켜둔 상태였다.

“축하드립니다, 레브!”

한참 똑바로 카메라를 쳐다보던 MC가 입을 열자마자 우리 그룹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상상도 하지 못한 호명에 막 맞부딪히려던 손이 허공에서 갈 곳이 잃고 멈췄다. 화면에 우리 그룹이 선명하게 잡히고 뒤쪽에서 환호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혼자만 당황한 게 아닌지 다른 멤버들도 모두 시간을 멈춘 것처럼 멍청하게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예준이 양쪽에 앉아있던 휘영과 준을 일으켰다. 예준보다 정확히 한 박자 늦게 일어난 지구가 여전히 박수치기 바로 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손을 친절히 내려줬다. 그리고 다 함께 두 번이나 밟았던 길을 그대로 다시 밟아 무대 위로 올라갔다. 당황한 상태 그대로 올라가느라 발이 걸려서 넘어질 뻔했지만, 티 나지 않게 잘 균형을 잡아서 올라왔다.

당연히 다른 주인이 있을 줄 알았던 트로피가 예준의 손에 넘어가고 마이크가 꼿꼿하게 서서 수상소감을 종용했다. 건네준 꽃다발을 얼떨결에 받아들고 정면을 바라봤더니 화면에 다섯 명이 선명하게 잡히고 있었다.

“삼관왕이 됐어요.”

앨범상, 가수상, 퍼포먼스상을 한 그룹이 전부 수상한 경우는 시상식이 생긴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개를 한 그룹이 받은 것도 작년의 우리가 처음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리더답게 예준이 가장 먼저 마이크 앞에서 입을 열었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상이라 깜짝 놀랐어요. 앞서 받은 두 상도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했는데.”

역시나 예준답게 미리 준비하지도 못했을 소감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6년 동안 쌓아온 기술로 노련하게 대처한 예준을 시작으로 한 명씩 소감을 이야기했다. 이 넓은 공간 어딘가에 있을 팬들을 부르고 감사를 전하며 트로피를 잘 보이게 높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없을 영광을 거머쥔 여섯 번째 시상식이 끝났다.

“삼관왕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시상식 엔딩이 끝나자마자 대기실에서 수많은 가수가 인사를 건네왔다. 처음 보는 얼굴의 후배들부터 데뷔 10년 차가 넘은 대선배까지. 축하들을 하나하나 받으며 짐을 챙겨 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불과 1년 전에 타던 것보다 더 크고 비싼 차였다.

“와, 진짜 세 개네.”

차로 옮겨지는 트로피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준이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소중한 트로피 세 개는 지난 6년 동안 건물 확장을 여러 번 거친 소속사 건물의 3층 전시실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저 트로피 사진 카페에 올릴게요.”

“알았으니까 차에 타서 해. 빨리 가서 쉬어야지.”

연말인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며칠 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닌 덕에 내일 하루 휴가를 얻었다. 다들 지친 만큼 설레는 얼굴로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 2년 전 교통사고를 낼 뻔했던 사건 이후로 그 누구보다 안전하게 운전하게 된 매니저 형이 천천히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완전 뒤집어졌더라. 다른 아이돌 팬들은 엄청 화났고. 너네가 세 개를 다 먹는 바람에 못 받았으니까.”

매니저 형은 신난 표정이었다. 상을 받은 우리보다 더 뿌듯한 표정으로 웃는 매니저 형에 그제야 멤버들이 아까 표정 관리를 하느라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것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와, 진짜 저 마지막에 이름 불렀을 때 놀라서 소리 지를 뻔했어요!”

“난 진짜 질렀는데.”

흥분한 얼굴로 소리치는 준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휘영이 실토했다. 아까 그룹 이름이 불렸을 때 어! 하는 소리가 나길래 누구인가 했더니.

“오늘 VIP는 하현이 형이잖아요.”

“설마 그거?”

“아까 형 춤추다가 화면 잡힌 거요. 진짜 웃겼는데 봐, 벌써 올라오잖아요.”

SNS로 팬들이 올린 글들을 구경하는 게 취미인 준이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신나게 웃었다. 포인트 안무가 참신하길래 살짝 따라 해봤는데 그 순간이 딱 카메라에 잡힐 줄은 정말 몰랐다. 당황해서 손을 슬그머니 내리고 어색하게 웃는 것까지 그대로 담긴 영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 쪽팔려.”

“너도 아까 화면 잡혔을 때 웃겼는데. 볼래?”

휴대폰 화면을 밀어내는 동안 지구가 준에게 반격을 했다. 아마도 영상을 보여주려는지 휴대폰을 앞으로 내미는 지구에 준이 질겁하며 몸을 뒤로 바짝 붙였다. 그 행동에 지구가 바람 빠지게 살짝 웃은 다음 계속해서 휴대폰 화면을 내렸다. 그리고 내 영상을 조용히 저장하는 손가락을 봤다.

30분도 안 됐는데 벌써 도착한 차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했다. 핸들을 돌리며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간 매니저 형이 입을 열었다.

“A동 주차장에서 내려줄 테니까 각자 집 찾아 들어가.”

우리는 반년 전에 각자 집을 구했다. 연차도 좀 쌓였으니 따로 살면서 편하게 할 일을 하자는 예준의 주장 때문이었다. 멤버 중 세 명이나 부모님이 외국에 계셔서 휴식기에도 숙소를 지켰고, 예준도 숙소를 떠나지 않아 본가로 가는 건 준뿐이었다. 휴식기에도 갈 곳 없는 멤버들이 죄다 숙소에 있으니 혼자 편하게 쉰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도 했다.

그렇게 결정된 집은 소속사 건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새로 신축된 아파트였다. A동부터 F동까지가 단지 내에 모여있는데, B동에 사는 예준을 제외하고는 모두 A동에 살았다. 분명 다섯 명이 따로 집을 구했는데, 거리가 너무 가깝다 보니 솔직히 한 집이나 다름없었다.

“내일 우리 집 올 사람 있어요?”

“피곤한데 그냥 좀 자라.”

“누가 아침에 오래요? 잠 좀 깨고 오후에요. 점심 먹자고요.”

“그래.”

심지어 이렇게 밥 먹듯이 서로에 숙소에 들락날락했다. 실제로도 모이면 밥을 먹고. 준의 집에서 점심 약속을 한 뒤에 각자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지구랑은 같은 A동에 살지만 라인이 달랐다. 하지만 같은 문으로 들어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 집이지만 도어록 비밀번호는 지구가 눌렀다.

“……으응.”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입술부터 부딪혔다. 현관문에 등을 기대고 한참을 뒤로 넘어갈 것처럼 입술 사이를 파고들던 지구가 팔을 잡아 안쪽으로 급히 들어갔다. 잘 알고 있는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 과격한 움직임으로 침대에 밀어 눕힌 지구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형. 아까 마지막에 상 받으러 올라갈 때 삐끗했죠.”

“그건 언제 봤어?”

“다 보여요. 발목 삔 건 아니죠? 형 아까 구두도 불편하다고 했잖아요.”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한다는 일이 발목 검사였다. 발목을 한 손으로 붙잡고 삐었냐고 물어보는 얼굴이 진지해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그냥 가만히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안 삐었어.”

“그래요?”

“그래서 발목 검사하려고 올라온 거야?”

“설마요. 못한지 좀 됐잖아요.”

스물여섯이 된 지구의 얼굴에서는 더는 어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단하게 자리가 잡힌, 성숙해진 얼굴로 웃어 보인 지구가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었다. 점점 아래 단추를 풀어 내려가는 긴 손가락을 눈으로 따라가는데,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는 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연말엔 항상 그랬잖아.”

“그래서 연말이 제일 힘들어요.”

답지 않게 투정을 부리는 듯싶더니 셔츠를 벗어 침대 아래쪽으로 던져버린 지구가 이번에는 내 셔츠에 손을 댔다. 대체 얼마나 급한 건지, 한 손으로 단추를 풀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뒤통수를 감싸 입을 맞췄다.

“하아…….”

빠른 손길로 내 셔츠 단추를 다 풀어 내린 뒤에야 입을 뗀 지구가 낮게 숨을 쉬었다. 목에 닿는 숨결에 나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다. 간지러운 느낌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는데 바지 버클 풀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오랜만이니까 천천히 할게요.”

지구가 느리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새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이 진지하게 눈을 맞춰왔다. 천천히 하겠다는 말과 다르게 얼굴은 잔뜩 급해 보였다. 물론 내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고갯짓을 확인한 지구가 곧장 가까이 다가왔다.

숙소를 나와서 가장 좋은 점은, 더는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 * *

눈을 뜬 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계가 2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아마 그보다 더 늦게 잠들었을 게 분명한데, 아직 해가 한창 뜨는 중이었다. 항상 지구가 먼저 일어나서 깨워줬기 때문에 이렇게 혼자 눈을 뜬 적은 거의 없었다.

천천히 한다더니, 딱 처음에만 천천히 하고 그다음부터는 인정사정없이 속도를 올린 바람에 평소보다 더 무리했다. 당연하게도 몸이 무겁고 뻐근했지만 찝찝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따뜻한 방 안 공기를 느끼며 푹 자고 있는 애가 깰까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게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고 침실을 나서자마자 욕실 문을 열었다.

“어제 얼마나 한 거야…….”

거울에 비친 얼굴은 좀 충격적이었다. 라면 세 개는 끓여 먹고 바로 잤다고 해도 믿을 만큼 부은 눈은 메이크업으로도 가리기 힘들어 보였다. 오늘 스케줄이 없음에 감사하며 급히 찬물을 끼얹었다. 다섯 번이나 세수를 한 뒤에야 치약을 짠 칫솔을 입에 넣는데, 거울에 커다란 형체가 잡혔다.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요.”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은 지구가 물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잔뜩 잠긴 목소리였다. 손에 칫솔을 쥐여주고 그 위에 치약까지 친절하게 짜주자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로 지구가 양치를 시작했다. 이렇게 잠에 파묻힌 얼굴은 오랜만이라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엄청 부었어.”

“봐봐요.”

칫솔을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으로 턱을 붙잡은 지구가 이리저리 얼굴을 살폈다. 예전에는 못난 얼굴을 이렇게 살펴볼 때면 부끄러워서 괜히 시선을 피하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사귄 지 무려 5년이 넘었으니 익숙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형 어제 너무 울어서 그래요.”

커다란 손으로 볼을 살짝 누르더니 지구가 웃었다.

“귀여웠는데.”

“이 닦는 중이잖아.”

다 뭉개지는 발음으로 대답한 뒤에 손을 슬쩍 밀어냈다. 얌전히 손을 떼고 양치에 집중하기 시작한 지구의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겨주고, 같이 깨끗하게 입안을 헹군 뒤에 나란히 욕실을 나서서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기 위해 준의 집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다. 정오를 한참 넘기고 해가 질 무렵 느지막하게 눈을 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일어난 탓이었다. 양치까지 했지만, 그냥 잠이나 더 잘까 싶어 불을 끄려는데 지구가 넌지시 물었다.

“형 허리 안 아파요? 아니면 어디 다른 곳.”

“매일 아프지.”

“……앞으로 정말 살살할게요.”

“아니, 근육통 때문에.”

“아.”

크고 작은 근육통은 6년 활동 내내 달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더 심해졌다. 관리할 시간도 없이 이어지는 공연 때문에 무리한 탓이었다. 한 번도 긴 휴식기를 가져본 적이 없이 달려온 6년이 몸에 준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어제처럼 지구가 흥분하는 날에는 더더욱 그랬다.

“여기 누워 봐요.”

지구가 침대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불을 끄려던 손을 멈추고 침대로 가서 누웠더니 돈 주고도 못 받을 만큼 애정과 정성이 넘치는 안마가 시작됐다. 큰 손이 여기저기를 주무르는데, 최대한 힘을 빼려고 해도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야, 아파. 살살해.”

“이거 형이 항상 연습을 무리하게 해서 그래요.”

“그것도 맞는데 오늘은 너 때문이거든.”

“다음 활동부터는 연습 좀 쉬엄쉬엄해요. 쉬는 날에도 계속하고. 제대로 푹 쉬는 날이 없으니까 계속 이러잖아요.”

말은 천천히, 살살하겠다고 해놓고 어젯밤에 본인이 어떻게 했는지 다 알면서 지구가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물론 활동기마다 무리하게 연습을 하는 건 사실이었으므로 더는 반박하지는 않았다. 언제나처럼 시작되는 잔소리에 엎드린 그 자세 그대로 조용히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는 무조건 알겠다고 하는 게 좋았다. 입으로는 뭐라고 하면서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강도가 약해지는 걸 그대로 느끼면서 웃으면서 팔에 얼굴을 묻었다. 단단한 팔에 볼이 눌렸다. 함께 쓰는 바디워시 냄새, 샴푸 냄새. 익숙한 체취 때문에 그 상태 그대로 순식간에 잠들어버렸다.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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