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2
결혼식 당일이 됐다. 형은 분명 나에게만 축가를 부탁했지만, 어째서인지 멤버들 전원이 함께 차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확실히 혼자 축가를 부르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식에 우리가 다 같이 나타나도 되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단체로 정장을 챙겨입고 매니저 형의 차에 올라타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동안 휘영은 들뜬 표정으로 노래까지 직접 선곡했다. 덕분에 우리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결혼 행진곡이 가는 내내 흘러나왔다.
“저 어제 노래 연습 진짜 많이 했어요. 결혼식 축가인데 잘 불러야 하잖아요.”
준이 맹연습을 했음을 어필했다. 축가로 부를 노래는 저저번 타이틀곡이었다. 사랑이 주제라서 결혼식과도 적당히 어울리는 노래였다. 마침 적당한 곡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는데 형의 결혼식이라니까 지구가 친히 원곡보다 느리고 잔잔하게 편곡까지 맡아줬다.
“하현이는 가족들이랑 같이 있고 너네는 다 빠져 있어.”
“밥 먹어도 돼요?”
준이 웃으며 어딘가에서 돈 봉투를 꺼냈다. 어디로 봐도 축의금이 들어있는 봉투였다. 쟤는 조그만 게 저걸 언제 준비해서.
“너 그건 왜 준비했어?”
“결혼식에는 축의금이죠.”
보니까 준만 준비한 게 아니었다. 다들 어디선가 슬금슬금 봉투를 꺼내길래 절로 헛웃음이 터졌다.
“그래. 결혼식인데 뭐, 앉아서 같이 밥 먹어.”
“맛있겠다.”
“결혼식 뷔페 맛이 다 똑같지.”
“아니에요. 얼마나 맛있는데. 특히 볶음밥이 예술이에요.”
준이 어떤 음식을 담을 예정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게 없을 수도 있다는 예준의 한 마디에 금방 입을 다물긴 했으나, 자기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신난 표정이었다.
도착한 예식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건물 한 채가 통째로 예식장인데 내부가 얼마나 넓은지, 하객이 얼마나 많이 오길래 이런 곳을 예약했나 싶었다. 오는 하객들을 같이 맞기 위해서 앞에 서 계시는 부모님 옆으로 다가갔다.
신랑 박상현. 신랑이라는 단어 뒤에 오는 형의 이름이 어색해서 한참을 쳐다봤다.
“세상에, 야. 미친.”
나와 마주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놀라는 하객들 때문에 부담스럽긴 했지만 좋은 날이니까 괜찮았다. 사내연애가 결혼까지 이어진 거다 보니 하객 중 회사 사람들도 많았다.
양복을 차려입고 온 상사가 형의 칭찬을 했다. 일도 성실히 잘하고 사람이 참 괜찮다고. 형이 업무 중에 딴짓하지 않았을 리 만무했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예의상 해주는 말이면 그런대로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맨날 집에 있어서 친구가 별로 없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형의 초등학교 친구부터 대학 친구까지 엄청 인사를 하고 갔고, 신부 역시 만만치 않게 지인이 많았다.
연예인이라는 신분은 정말 어디를 가도 불편했다. 결혼식장인데도 여기저기서 이쪽을 향해 카메라가 들이밀어 졌다. 하객이 많은 만큼 복잡해서 그런 것 같았다. 주인공은 신랑이랑 신부인데. 내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과분한 관심을 받는 게 부담스러워서 조용히 자리를 떠 신부 대기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머쓱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안면을 튼 사이라고 용기 내서 들어왔다. 신부 대기실이 이렇게 넓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인테리어도 예뻤다. 꽃으로 꾸며진 대기실 안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는데 이미 손님이 있었다.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거로 봐서는 친구들 같았다. 조금 있다 다시 와야 하나 싶어 발을 물리려는데 형수님이 벌떡 일어났다.
“오셨어요?”
“네.”
이미 인사까지 한 마당에 나갈 수는 없어서 그대로 다가가 앞에 섰다. 친구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는 게 보여서 애써 안 보이는 척해줬다.
“여기 의자가 어디 있지.”
“아, 괜찮아요. 잠깐 들른 거라.”
“잠깐이어도요. 아, 여기라도 앉으세요!”
형수님은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푹신한 신부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당황해서 거절했더니 발을 구른다. 그러더니 갑자기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주접이었죠.”
“아니에요.”
“근데 이게 정말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애써 변명을 하는 형수님에게 형에 대해 물었다. 어떠냐는 질문에 형수님은 단점을 더 많이 이야기했다. 술 좋아하고, 스포츠 좋아하고, 어디 가는 거 싫어하는데 잘해준다고. 맨날 자기한테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며 원망 가득한 소리를 듣고 헤어지던 형이 많이 발전했구나 싶었다.
신부 대기실에서 한참을 얘기하다가 곧 식이 시작한다는 이야기에 나와서 식장으로 향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멤버들 옆에 앉자마자 정면에 커다란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스크린에서는 형과 여자친구의 사진과 영상들이 달달한 노래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2년 동안 예쁘게 잘 사귀었네. 예식장 뒤쪽에서 식을 지켜보면서 괜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둘이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가고. 특히 중간에 같이 휴가 내고 유럽여행 간 영상이 떴을 때는 좀 놀랐다. 귀찮음이 많은 형은 지금까지 많은 여자친구를 사귀면서도 한 번도 멀리 여행을 간 적은 없었기 때문에 거기서 진짜 사랑을 느꼈다. 비행기 멀미도 심한 사람이 프랑스까지는 어떻게 날아갔대.
본격적으로 식이 시작하면서부터는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부모님들이 초를 밝히고 카펫을 밟으며 신랑과 신부가 차례로 입장했다.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신랑의 옆에 선 신부는 척 봐도 긴장한 표정이었다. 맞절을 하고, 맹세 서약까지 하는데 엄숙한 와중에도 달달한 분위기가 풍겼다.
주례의 주례사까지 끝나고 드디어 축가를 부를 타이밍이 돼서 멤버들과 함께 앞으로 나갔다.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가 놀라 넘어질 뻔한 것은 신랑이 잘 잡아줬다. 반듯하게 턱시도를 차려입고 허리를 감싸 부드럽게 일으켜주는 모습이 꽤 멋있었다.
“결혼 축하드려요!”
노래가 끝나자마자 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면서 결혼을 축하했다. 신부는 눈물을 터트렸다. 아까 형이랑 영원을 맹세하는 키스할 때도 안 울었는데. 우는 타이밍이 이상해서 형은 급하게 신부를 달래며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을 때까지도 훌쩍거린 탓에 사진 찍는 데 시간이 한참 소요됐다.
“이상으로 식을 마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형과 형수님은 행복한 표정으로 바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둘 다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해외는 별로라는 사실을 깨달았단다. 그래서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을 겸 제주도로 3박 4일을 다녀온다고 했다.
멤버들에게 돌아가면서 축하를 받은 형수님은 성공했다는 알 수 없는 한마디를 남기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거 맛있다.”
빈 예식장에서 예준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마카롱을 집어 먹다가 눈을 크게 떴다. 테이블마다 10개씩 놓여있는 마카롱은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알록달록 예쁘게 섞인 색이 무슨 맛인지는 가늠하지 못하겠지만, 모양만 보면 10점 만점에 10점짜리였다.
“야, 이거 진짜 맛있다. 큰 웨딩홀이라 좀 다르네.”
테이블에 남은 마카롱들을 전부 거덜 내는 예준의 뒤로 휘영이 신랑 신부가 걸었던 카펫 위를 사진으로 남겼다.
“형님 진짜 형이랑 안 닮았어요.”
“맞아. 이름만 아니었으면 아무도 우리 형제인지 몰랐을걸.”
“근데 다른 느낌으로 진짜 잘생겼어요.”
준이 엄지 두 개를 치켜들었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10분 안에 예식장을 비워야 청소를 한다며 들어왔다.
“잠시만요.”
그제야 가만히 앉아있던 멤버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면 소란스러워질 게 뻔해서 아까 나왔던 식장 뒤쪽으로 나가려는데 지구가 살짝 손을 잡았다.
“진짜 예쁜 것 같아요.”
환상적인 풍경이라도 본 듯 반짝반짝한 눈이었다. 여기저기 장식용 꽃들이 식장 안 가득했다. 모두가 나갔는데도 여전히 정원에라도 온 것처럼 화사한 결혼식장 안을 돌아보며 지구가 살짝 속삭였다. 비밀이라도 말하듯이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저도 형이랑 이런 곳에서 결혼하고 싶어요.”
몰래 맞춘 커플링 위로 살짝 입술을 누른 지구가 웃었다. 오늘 결혼하는 사람처럼 행복해 보였다. 마냥 동그랗던 눈매는 살짝 날카로워졌고, 선이 굵어져 훨씬 남자답게 변했지만 내 눈에는 똑같았다.
“나도.”
“진짜요? 그냥 해본 소리인데.”
“그냥 해본 말이 어디 있냐니까, 맨날 그냥 해본 말이래. 은퇴하면 해.”
장난스럽게 뱉은 소리에 지구가 팔을 잡고 식장 뒤쪽 커튼 속으로 숨어들었다. 결혼은 형이 했는데 왜 내가 이렇게 간지럽지. 입술이 닿는 부분마다 간지러웠다.
“사랑해요.”
지구가 목덜미에 대고 속삭였다. 3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건 없었다. 웃으면서 그대로 손을 잡고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가는 내내 놓지 않고 꽉 잡은 탓에 손가락이 좀 아팠다.
그리고 신혼여행이 끝난 뒤 형에게 연락이 왔다.
[예진이가 너네 콘서트 가고 싶다는데]
[나중에 결혼 선물로 한 장만이라도 좀 보내주라]
고분고분한 문자에 웃음이 나왔다. 요즘은 막 지폐 둥글게 말아서 꽃다발 만들어서 보내준다던데.
소박한 결혼 선물 요구를 접수하고 다음 콘서트 때 꽃다발 사이사이에 갖고 있는 모든 초대석 티켓을 둥글게 말아서 끼워 보내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야 예진이 울어..]
[고맙다^^..]
* * *
제목 : 헐 나 친척언니 결혼식왔는데 레브옴;;;
(영상)
일반인 얼굴 다 모자이크 처리했음
축가 부르는데 갑자기 레브가 나와서 축가부름ㅋㅋㅋ 진짜 놀라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우리 친척언니 결혼상대가 하현이 친형이래ㅋㅋㅋㅋㅋ 이름보고 알았음 놀랫다 진짜ㅋㅋㅋㅋㅠㅠ 얼굴 진짜 안닮아서 상상도 못했음 하현이 형이라서 유전자빨 개쩌는지 진짜 잘생기심ㅠ
우리 언니 레브 진성이거든.. 진짜 서바이벌ID 시작할때부터 최애 하현이 땅땅 못박고 월급 갈아가면서 덕질함ㅠㅠ.. 나도 레브 좋아해서 맨날 같이 덕톡하고 앨범 사러 같이가고 그랬음.. 진짜 3년 넘게 개꾸준하게 좋아함 팬싸 같은거 한번도 당첨된 적 없고 콘서트도 운없어서 맨날 못갔음ㅠㅠㅠㅠㅠㅠ 피방가도 실패하고 앱으로 해도 실패하고 맨날 안돼서 광탈 당한 날마다 같이 위로주 마시고 그랬음.....
언니 레브 나오자마자 대흥분해서 울고ㅋㅋㅋㅋ 식 끝나고 나한테 와서 자기 이제 성덕이라고 덕계못은 옛날 일이라고 레브한테 결혼축하 받았으니까 절대 이혼안하고 검은머리 파뿌리될때까지 행복하게 살겠대 ㅅㅂㅋㅋㅋㅋㅋㅋㅋ 개웃겨서 미칠뻔
댓글
└ ㅅㅂ 시트콤이야????ㅋㅋㅋㅋㅋ 미쳣네 진짜ㅋㅋㅋㅋㅋ
└ 최애 형이 남편이네 ㅅㅂㅋㅋㅋㅋ
└ 어떡해.. 그럼 이제 내새끼 아니라 도련님이네....
└ 그러네 ㅇㄴㅋㅋㅋㅋㅋㅋ
└ 가족됐네 개쩐다
└ ㅈㄴ현타 맞을듯 누나 통장비밀번호는 0609야 하고 앓다가 남편 동생으로 만나버리기.....
└ 아ㅋㅋㅋㅋㅋㅋ 진심 개웃겨 진짜
└ ㄱㅆ) 야 그거 진짜 언니 통장비번이야 댓글 지워줘
└ 씨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처음 만낫을때 어땠을까
└ 나엿으면 토햇을듯 ...
└ 미쳣냐 하현이 얼굴보고 토가 나올거같애?
└ 그래도 계타셧네 이제 콘서트 VIP표로 가실 듯 부럽다
└ 도련님 찬스 부럽다
└ 근데 진짜 좋은거 아니야?? 가족이니까 티켓받고 굿즈도 받고..
└ 달라하기 좀 부끄러울 거 같은데ㅋㅋㅋㅋㅋ
└ 검은머리 파뿌리 시ㅡ바ㅋㅋㄱㅋㄱㅋㅋㅋ ㅋㅋㅋ
└ 써디 때부터 조아하셧다니... 이분은 ‘진짜’ 다.........
└ ㅇㅈ
└ 초반 ATM의 폭주를 다 참아내신분이라는 거 아냐
└ ㅅㅂ ㅠㅠ 갑자기 동질감들고 겁나 친한사이 같아
└ 팬싸 당첨안되고 콘서트 못가는 이유가 있었네
└ 나도 팬싸 당첨안되고 콘서트 못가는데 하현이랑 엮일날이 올까?
└ 꿈깨
└ 근데 멤버들 다 왔네ㅋㅋㅋㅋㅋ 양예준 랩하는거 개웃김
└ 원래 개빡센 랩인데 결혼식이라고 부드럽게 함ㅋㅋㅋ 조절력 만렙
└ 애초에 편곡한거 같은데
└ 편곡 버전 진짜좋다 음원 나왔으면ㅠ
└ 멤버 형 결혼이니까 왔겠지ㅋㅋ 울 레브 화목해 ^^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