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66화 (66/130)

23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멤버들과 같이 올라간 4층 강당은 한적했다. 축제도 크게 하는 편이고, 예고이다 보니 워낙 공연이 잦아서 강당 규모가 굉장히 컸다. 일찍 도착한 몇몇 학부모들을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앉을 의자도 전부 비어 있었다. 입구 쪽 테이블에 놓여있는 졸업식 안내서를 한 장 집어 들고 안쪽으로 열심히 발을 옮겼다.

“제일 구석에 서야겠죠?”

“사람들이 빨리 오는 이유는 앞자리에 서려고 그러는 거야.”

준이 눈치를 보며 맨 뒤쪽 벽으로 몸을 붙이려는데 예준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결국 학생들 의자 바로 뒤에 서 있는 학부모들의 뒤에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생들이 강당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혹시나 소란이 날까 싶어 다 같이 마스크를 쓰고 모두 착석할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직 시작 안 했지?”

200명도 안 되는 3학년 학생들이 전부 들어온 듯 의자가 가득 찼을 때쯤 매니저 형이 이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금방 올라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었지. 매니저 형이 들고 온 푸른색 꽃다발을 넘기고는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팔에 걸쳤다.

“형 왜 이렇게 늦었어요?”

“지구 홈마 하나가 사진 찍으려고 몰래 들어왔더라. 대놓고 몇백만 원짜리 DSLR 카메라에 망원렌즈 붙여서 들고 있는데……. 졸업식 촬영 금지라고 분명히 공지했는데도 여길 들어올 생각을 다 한다. 저 정도 애정이면 그냥 집착이지.”

매니저 형이 얼굴에 손부채질하며 화를 냈다. 미리 외부인 출입 금지라고 공식 카페에 공지까지 해뒀는데도 들어오는 걸 보니 이미 규칙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화장실에도 들어오는데 이 사람 많은 학교는 왜 못 들어오겠어. 워낙 그 사건 이후에도 경호원이 사생들을 많이 잡아 왔던 터라 이제는 익숙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사진 찍힌 거 있나 보고 퇴장 조치했지. 몇 장을 찍어가려고 했는지 메모리 카드도 용량 빵빵한 거로 들고 왔더라.”

매니저 형의 설명은 더 가지 못하고 멈춰야 했다. 어느새 중앙으로 올라온 교장 선생님이 마이크 앞에 섰고, 바로 졸업식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제52회 한국예술고등학교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들으니까 정말 졸업한 지 얼마 안 됐구나. 저 앞에서 교복을 입고 앉아있는 스무 살 아이들이 불과 일 년 전의 나였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한국예고의 졸업식은 아주 길고 지루하게 이루어졌다. 국민의례를 할 때까지만 해도 괜히 내가 다 긴장이 되고 그랬는데 학사보고가 시작되면서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졸업장 수여가 있겠습니다.”

위풍당당 행진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맨 왼쪽에 있는 반부터 차례로 일어나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학급 대표를 불러서 주는 것도 아니고 한 명 한 명 다 교장 선생님이 졸업장을 건네주고 있으니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다. 결국, 팔짱을 끼고 꾸벅꾸벅 졸다가도 지구 차례는 몸이 귀신같이 알아차려서 퍼뜩 고개를 들었다.

두 손으로 졸업장을 받아들고 허리를 숙인 지구가 다시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한참을 쳐다봤다. 겉옷 없이 교복만 단정하게 입고 있는 걸 보니 또 심장이 주체 못 하고 뛰기 시작했다. 난 저 교복이 유독 안 어울려서 디자인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지구가 입은 걸 보니까 새삼 교복이 예쁘게 보였다.

학교장 회고사, 졸업생 사은사…… 지루한 순서들을 겨우 버텨내고 졸업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쪽에서 학생이 직접 피아노를 치고 또 다른 학생이 혼자 중앙에 서서 독창을 했다. 슬픈 반주와 고운 목소리가 약 4분 동안 흘러나왔지만, 그 어디에서도 반응은 없었다.

학생들이 옆자리 친구와 신나게 수다를 다 떨었을 때쯤 노래가 끊기고 교가 제창이 시작됐다. 나도 모르게 익숙한 교가를 따라 부르다가 산 이름에서 정신을 차리고 입을 다물었다. 졸업했지만 아직도 산의 정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 듯했다.

“이상으로 제52회 한국예술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칩니다.”

굵은 목소리를 끝으로 졸업식이 끝났다. 학생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에 있는 학부모들에게 달려왔고, 우리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잽싸게 자리를 옮겨야 했다.

“온지구 어디 앉아있어?”

“저기 있네요. 저기.”

준이 마스크를 눈 바로 밑까지 올려 쓰면서 저 멀리를 가리켰다. 학생들이 다 빠져나가니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이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같은 반 친구들로 보이는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있었다.

“작별 인사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학생들은 다 가는데 왜 쟤네만 저러고 있어.”

그러면서도 굳이 부를 생각은 없는지 예준은 가만히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신나게 웃으며 지구를 툭툭 치는 애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살짝 찌푸렸다.

멀찍이서 지켜본 지 얼마나 됐을까, 각자 부모님을 향해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나가버려서 강당이 텅 비었는데도 지구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쟤는 왜 안 일어나?”

어깨를 으쓱거리며 묻는 예준에 내가 먼저 발을 움직였다. 워낙 강당이 넓다 보니 의자들 사이 간격도 넉넉해서 어렵지 않게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멈추지 않고 걸어서 지구 앞에 도착하자마자 줄곧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

들어 올린 얼굴에 눈이 마주쳤다. 허공에서 정확히 시선이 맞닿자마자 지구가 잠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꽃다발은 받지 않은 상태였다. 막상 얼굴을 보니까 말이 잘 나오질 않아서 나도 한참 그러고 서 있었다.

“졸업 축하해.”

애써 안면근육을 움직여 웃으며 한 박자 늦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지구가 천천히 손을 들어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하늘색 꽃들을 한 아름 끌어안은 지구는 예상대로 잘 어울렸다. 조끼 밖으로 빠져나온 넥타이가 꽃다발 위에 자리 잡았길래 손으로 살짝 잡아 다시 안쪽으로 넣어줬다.

“이거 꽃다발.”

“주문한 건데 색 별로야?”

“아니요. ……진짜 예뻐서요.”

꽃다발을 끌어안은 채로 내 얼굴만 계속 쳐다보는 지구의 시선을 돌린 건 뒤늦게 이쪽으로 걸어온 나머지 멤버들이었다. 의자 사이를 지나 이쪽까지 순식간에 다가온 준이 제일 먼저 축하의 말을 건넸다.

“형 졸업 축하해요.”

“어, 맞아. 맞아.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한다. 이제 숙소 가서 교복 버리면 되겠네.”

주르륵 이어지는 멤버들의 축하를 들으며 지구가 옅게 웃었다. 먼저 가서 히터 틀고 있겠다며 내려간 매니저 형이 기다릴 테니 슬슬 가자며 다 같이 마지막으로 강당을 빠져나왔다.

강당이 있는 후관에는 동쪽과 서쪽에 각각 나가는 곳이 하나씩 있는데 동쪽으로 나가야 바로 교문이었다. 서쪽으로 나가면 교문과 정반대 편에 위치한 운동장 끝에서 나오는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동쪽 대신 서쪽으로 나왔다.

“와, 사람들 진짜 빠르네.”

졸업식이 끝나고 한 30분 정도 더 머물렀을 뿐인데 이미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차들은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앞쪽 동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서너 가족을 제외하면 운동장은 정말 텅 비어 있었다.

“근데 너네 학교 운동장 뭐가 이렇게 커.”

“직사각형이라 이쪽이 길어요.”

“웬만큼 긴 게 아닌데. 운동장 한 바퀴 뛰다가 실신하겠다.”

지구랑 둘이 같이 가고 싶어서 투덜거리고 있는 예준에게 슬쩍 눈치를 줬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예준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뭐야, 돈 달라는 건가? 뭐든 알겠으니 일단 하라고 고개를 끄덕이니 예준이 팔을 쭉 뻗었다.

“우리 누가 먼저 차까지 뛰어가나 내기할까?”

“아, 무슨 이 겨울에. 미쳤어요?”

“너네 마지막으로 오는 사람은 오늘 나랑 같이 자는 거야.”

“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긴 다리로 달려나간 예준의 뒤를 정말 딱 예상대로 준과 휘영만 따라 뛰기 시작했다. 역시나 지구는 조금도 뛸 생각 없이 조용히 걷고 있었다.

날이 추웠다. 오늘은 근래 한파들을 생각하면 따뜻한 날이라고 했는데 확실히 겨울이긴 한지 얼굴이 다 시렸다.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귀를 두 손으로 살짝 잡으면서 묵묵히 걷다가 옆을 힐끗 쳐다봤다. 푸른색 꽃다발과 졸업장을 각각 양손에 쥐고 조용히 걷는 옆모습을 보고 절로 발이 느려졌다.

그러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나란히 걷고 있던 지구는 내가 발을 멈춘 뒤로도 조금 더 걸어가다가 얼마 가지 않아 같이 멈춰 섰다.

왠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유도 잘 모르면서, 형용할 수 없이 내가 다 벅차오르면서 심장이 답답해졌다. 내 졸업식 날도 이러지 않았는데. 얼굴을 보고 싶은 친구도 없었고 전교생이 보고 있는 앞에서 졸업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쪽팔려서. 곧 새롭게 신입생이 될 애들이 부러워서. 울적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아서.

그런데 졸업장을 받고 서 있는 뒷모습을 보는 게 이상하게 벅찼다.

“형?”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로 지구가 뒤를 돌아봤다. 교칙 때문에 염색해본 적이 없다는 까만 머리카락, 날이 추워 꽁꽁 언 볼,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버릴 거라던 교복. 하늘색 넥타이가 아직 쌀쌀한 겨울바람에 휘날렸다. 아직 앳된 얼굴이, 오늘 학교를 졸업하는 스무 살의 온지구가 서 있었다.

“다들 갔는데 저희도 가야죠.”

그 자리에 가만 멈춰 서서 잡으라는 듯 손을 살짝 앞으로 뺀다.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는 지구 손잡고 걷는 것도 거의 버릇이었다. 그렇게까지 의지하고 있었으면서 좋아한다는 것도 멀쩡하게 확인해놓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똑같이 시원하게 고백할 자신이 없어서.

“지구야.”

“네?”

“거기 가만히 서봐.”

주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어떤 소리를 해도 온전히 지구에게만 들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목이 타 죽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미뤘으면서 왜인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예준이 말한 타이밍이라는 게 지금인가 보다.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발을 움직이게 했다. 천천히 다섯 걸음 걸으니 사이 간격이 1m 정도로 줄어들었다. 더 갈까 하다가 너무 가까우면 말 못 할 것 같아서 그냥 멈춰 섰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니까. 그럼 뭐 어쩌겠어. 지금 놓치고 평생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형이 지금 많이 횡설수설할 수도 있는데 그러려니 해줘.”

“중요한 말이에요?”

“응, 너랑 나 사이에 굉장히.”

중요하지.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하는 말인데. 벌써 머릿속에서 말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지구처럼 말을 예쁘게 하는 재주도 없어서 더 문제였다. 글은 어떻게 쓰고 살았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안 들으면 안 될까요?”

신중하게 첫 번째 말을 고르고 있는데 지구의 입이 열리더니 하지 말라는 소리가 떨어졌다. 웃는 얼굴이 묘하게 쓰게 보여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제가 요즘 너무 티 낸 거 알아요. 앞으로 더 조심해볼 테니까…….”

살짝 찡그려진 눈이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와, 어떡하지. 이렇게 날이 추운데 얼굴이 빨개졌을까 봐 겁이 났다. 내가 지금까지 얘를 대체 어떻게. 절로 벌어지려는 입을 꾹 다물고 차가워진 볼을 손등으로 쓸었다. 그리고 못 들은 척 말을 시작했다.

“그, 네가 그랬잖아. 다시는 곤란하게 안 하겠다고, 고백 안 하겠다고.”

“아. 그게.”

천천히 시작하려고 꺼낸 소리인데 지구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아, 망했다. 이게 아닌데. 언뜻 들으면 진짜로 타박하는 것처럼 들리기 충분한 말이었다. 준비한 말들이 훨씬 길었는데 결국 당황스러움에 앞뒤 다 잘라먹고 덜컥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그러면 내가 하는 건 괜찮은 거야?”

가만히 서 있는데 왠지 모르게 찬 바람이 스치는 것만으로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차마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손에 들려있는 꽃다발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저 앞쪽에서 밀려오는 소란스러움이 여기까지 닿아있는데도 왠지 나한테는 더없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

서서히 커지는 눈을, 들고 있는 꽃다발과 졸업장을 전부 떨어뜨리는 손을 느리게 담았다. 푸른색의 여린 꽃들이 운동장 흙바닥에 떨어지고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가 그 위를 덮었다. 졸업장은 바람을 타고 살짝 뒤쪽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뒤로 두 걸음만 가면 밟을 수 있는 위치였다.

“말 안 하고 계속 모르는 척 있어서 미안해.”

“…….”

“내가 너무 늦게 알아서 그랬어.”

여기서 그만 말할까 싶었는데 적어도 지구가 솔직하게 해줬던 고백만큼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또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안 되니까. 여러 갈래로 해석이 나뉠 수 있는 말은 안 된다. 그래서 주먹을 최대한 꽉 쥐고 심호흡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너 좋아해.”

아주 정확하게 말했다.

2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