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54화 (54/130)

12화

눈꺼풀이 무거웠다. 누군가가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한참을 혼자 씨름하다가 겨우 눈을 떴다. 손을 들어 습관적으로 눈을 비비려는데 덜컹 소리가 났다. 살짝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보인 것은 링거였다.

“형 깨셨어요?”

떨어지는 수액을 멍하니 바라보며 상황 파악을 위해 눈을 깜빡이는데 옆에 앉아있던 지구가 벌떡 일어났다. 사람이 보이니까 주변 배경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병실이었고 침대 위에 링거를 꽂은 채로 누워 있었다. 그제야 촬영 중에 음식을 잘못 먹었던 게 떠올랐다.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곳은 없고요?”

“괜찮아.”

마른기침을 몇 번 하고 나니 몸이 훨씬 괜찮아진 것 같았다. 링거를 맞아서 그런가. 이대로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숨이 막혀왔던 건 언제냐는 듯 호흡도 편안했다.

“며칠이야?”

“12일이요.”

아, 하루를 또 넘겼다. 언젠가 한 번 겪어봤던 익숙한 상황에 절로 입시 시험날이 떠올랐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기본적인 몸 관리도 제대로 못하다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느라 또다시 링거가 몇 번 덜컹거렸다. 갑자기 확 일어나니까 눈앞이 핑 돌아서 인상을 찡그리는데 지구가 팔을 잡았다.

“갑자기 막 일어나시면 안 돼요.”

“오늘 사인회 있었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뒤로 미뤘어요.”

뒤로 미뤘으니까 걱정이 되지. 그 사인회 하나 오겠다고 수십 장의 앨범을 산 팬들에게 엄청난 민폐였다. 뜬금없이 하루 전날에 날짜가 밀렸다고 통보를 하는데 얼마나 짜증 날까. 절로 무거워지는 내 마음의 소리를 읽지 못한 듯 지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살짝 눌렀다. 서서히 뒤로 넘어가던 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와 맞닿았다.

“더 쉬세요. 괜찮으니까.”

“스케줄이 안 괜찮을 텐데.”

“스케줄도 중요한데 형 몸 상태가 어땠는지 아세요? 수면 부족에, 영양부족에……!”

잠깐 목소리를 높이던 지구가 진정하려는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평소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보니까 왠지 모를 미안함이 넘실넘실 밀려왔다.

“소리 높여서 죄송해요.”

“어? 아니야. 왜.”

당연히 평소처럼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잔소리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죄송하다는 말이 툭 떨어졌다. 미안해하고 있는 건 나였는데 애꿎은 사람이 사과하니 당혹스러움에 절로 말이 멍청하게 나왔다.

지구는 한참 말이 없었다. 가만히 침대 옆에 서서 까진 손등을 만지작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발갛게 벗겨져 있었다.

“제가 형 쓰러졌을 때 어땠는지 아세요?”

오고 가는 대화도 없고, 어색한 분위기에 천장만 바라보며 눈을 굴리고 있을 때 지구가 입을 열었다. 얼굴을 쳐다보기 좀 그래서 그냥 계속 천장만 보면서 물었다.

“어땠는데?”

“귀는 먹먹하고, 눈앞은 캄캄하고. 보이는 건 숨 못 쉬고 컥컥대는 형이고. 손은 벌벌 떨리는데 형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워서.”

그제야 쳐다본 지구는 눈을 살짝 감고 있었다. 그 순간을 생각하는 건지 지금도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얼굴을 쳐다보는데 온갖 만감이 교차해서 주삿바늘이 꽂힌 손으로 지구의 왼쪽 손을 잡았다.

“형?”

“그래도…….”

한참 고른 말을 해 주려고 입을 열자마자 병실 문이 열렸다. 1인실이라 나와 지구뿐이던 병실에 예준이 혼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가느다란 눈이 조금 커졌다.

“깼네? 괜찮아?”

“네.”

“식겁했잖아. 우리 다 차에서 자다가 놀라가지고. 준이는 병실 들어오자마자 엎드려서 울었어.”

네 이름 부르면서 숨넘어가게 울더라. 예준의 입으로 전해 듣는 말에 마음이 쓰였다. 이게 대체 무슨 민폐냐. 주변 사람들 다 놀라게 하고, 촬영도 망치고, 스케줄도 다 밀리고.

“저 무슨 알레르기래요?”

“굴 알레르기. 근데 몸이 워낙 안 좋아서 반응이 심하게 왔다더라.”

“아…….”

“요즘 밥도 깨작깨작 먹는 것 같더니. 온지구한테 들어보니까 너 잠도 안 잤다며.”

예준의 타박 아닌 타박은 나머지 멤버들이 들어오면서 세 배로 증가했다.

잔뜩 놀란 얼굴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한 휘영과 준은 한참을 나를 붙잡고 그 당시의 긴박함 대해 설명했다. 그나마 119가 빨리 와서 멀쩡하게 일어난 거라고. 하늘에 감사하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너 건강 관리 좀 해야겠더라.”

“그러니까요! 형 무슨 블랙홀인 줄 알았어요. 안 좋은 것만 싹 빨아들여가지고!“

의사쌤이 아주 기함을 하시던데요. 사실인지 과장인지 모를 말을 하며 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형은 누워서 푹 쉬세요. 절대 안정이요.”

“스케줄은 어쩌고.”

“아……, 일단 회사에서 다 미루긴 했는데. 내일까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말인즉슨 내일모레부터는 다시 스케줄이 있다는 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준이 울상을 지으며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형 한 일주일 정도 푹 입원하면 좋은데.”

“꼬박 하루 잤더니 괜찮아.”

“호흡곤란 왔다면서요……. 형 지금 완전 종합병원 그 자체라는데, 그게 이틀 만에 어떻게 다 나아요.”

준은 회복 기간을 더 줘야 한다고 화를 냈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데뷔하고 약 일주일 밖에 안 지났는데 지금 누워서 일주일을 쉴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빡세게 굴러도 모자랄 시간에 무려 팬사인회까지 미뤄가면서 이틀을 뺐는데…… 어.

“팬사인회 뭐라고 말하고 미뤘어? 이미 다 공지 나갔잖아.”

“어…….“

휘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끌었다. 그리고 대답은 예준이 해줬다.

“방송국 앞에 구급차가 서는데 다 소문났지. 이미 기사 쫙 났어.”

“……아, 진짜요?”

“팬분들이 미뤄도 되니까 너 푹 쉬라더라. 대신 회사는 좀 얻어터지고 있지만.”

예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회사가 왜 얻어터지고 있지. 의아한 마음에 부스스한 앞머리를 살짝 정리하며 물었다.

“알레르기는 그냥 제가 몰랐던 건데.”

“그 프로그램 들어가기 전에 다른 연예인들은 다 알레르기 검사받고 들어갔다더라. 프로그램 측에서 해명하느라 회사랑 입이 안 맞아서. 얼마나 굴렸냐고 팬분들이 화 많이 나셨더라. 일단 내가 글 올려놨거든. 글?”

묻기도 전에 예준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넘겼다.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글의 정체는 공식 카페에 올린 예준의 글이었다. 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팬들에게 큰 걱정하지 말라고 소식을 알리는 글이었는데, 평소 예준의 문자 말투와 전혀 다른 느낌이라 흐린 눈으로 읽다가 휴대폰을 침대 위에 내려놨다. 그리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예준에게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돌려줬다.

“웬 한숨이야.”

“상황 많이 키운 것 같아서요.”

걱정했을 팬들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불편했다. 예준은 어깨를 두드리며 많이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회복하라고 응원해줬다.

“어제 형 오셨어.”

“형이요?”

“놀라서 뛰어오셨더라. 매니저 형 멱살 잡힐 뻔했다니까. 계속 계시다가 지구가 설득해서 출근하러 가셨는데 저녁에 오실 거야.”

입시 날 쓰러진 게 얼마나 됐다고 또. 하나뿐인 동생 때문에 형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안함이 밀려왔다. 형 얼굴 어떻게 보지.

“그럼 저희 일단 갈게요.”

한참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멤버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1인실이긴 했지만, 구석에 놓인 소파 하나 빼고는 딱히 있을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앉아있는 걸 보고 내가 숙소에 가라고 성화를 부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쓰러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펑크가 난거지만, 어쨌거나 쉬는 시간이 주어진 건데 다들 좀 쉬었으면 했다.

“온지구 안 가?”

“전 여기 있을래요.”

“그래.”

어? 남는다는 말에 당황스러운 내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병실 문이 닫혔다. 보조 침대에 얌전히 앉아있는 지구를 쳐다보다가 입을 벌려 큰소리로 예준을 불렀다.

“예준이 형, 얘 데려가요!”

하지만 셋은 이미 떠난 듯 돌아오는 대꾸는 없었다. 굳게 닫힌 문은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

“야, 빨리 따라 내려가. 아직 엘리베이터 안 탔을 거야.”

“전 여기서 잘게요.”

“무슨 여기서 자. 불편하게.”

키도 큰 애가 보조 침대에서 어떻게 자려고. 대충 봐도 좁아 보였다. 게다가 지구도 쭉 스케줄을 같이 했는데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손으로 등까지 꾹꾹 밀어가며 집에 보내려고 용을 쓰는데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얼굴을 찌를 뻔했다.

“걱정돼서 숙소 가면 더 못 잘 것 같아요. 저 피곤한데, 그냥 자면 안 될까요?”

뭐라 반박할 말이 없게 하는 부탁이었다. 아니. 사실 반박할 말은 많은데 저 웃는 얼굴 때문에 한마디도 안 나오고 다시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들어갔다. 대체 얘 웃는 거 보고 삼킨 말이 얼마지. 나름 웃는 얼굴에도 침 잘 뱉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럼.”

더 보고 있다가는 진짜 말문이 막혀서 멍청한 표정이 될까 봐 급하게 수락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왜 이러냐, 진짜.

“어디 안 좋으시면 바로 말씀하세요. 저 여기 앉아있으니까.”

“됐으니까 잠이나 자. 피곤하다며.”

누가 들어도 재수 없는 말투였는데 지구는 웃었다. 전부터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웃는다. 문득 차오르는 이상한 기분에 결국 이불을 들춰내고 한마디 했다.

“그만 웃어.”

“네?”

눈으로 웃지 말고, 입꼬리도 올리지 말고, 웃음소리도 좀 내지 말아봐. 물론 이 소리까지 하면 진짜 이상한 놈 취급받을 것 같아서 참았다. 웃는 게 뭐가 나쁘다고 웃지 말라고 하냐고 스스로를 타박해봤지만 이미 튀어 나간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요?”

묻는 목소리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대놓고 웃은 게 아니라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냥 눈을 감았다. 피로가 많이 가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따뜻한 이불 속에 있으니까 잠이 밀려왔다.

“형, 주무세요?”

눈 감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머리에 커다란 손이 닿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인사하면서 손을 위아래로 살살 움직이는데 또 기분이 묘해졌다. 머리가 조금 뜨끈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지구 손이 뜨거워서 그런 것 같았다.

“나 네 동생 아니고 형이거든. 손 떼라.”

“네.”

말은 또 잘 들어요. 되지도 않는 형부심까지 부려가며 지구의 손을 떼어 내고 베개에 편하게 머리를 파묻었다.

이런 저질 체력으로는 그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었다. 졸업하고 춤만 안 끊었어도, 하다못해 생활 패턴만 안 망했어도.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들여온 식습관이 문제다. 아무래도 편식을 고쳐야겠다. 운동도 조금 하고.

혼자서 한참 이불 속에 파묻혀서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데, 바로 옆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뜨고 옆을 바라보는데 지구가 고개를 살짝 들더니 한숨을 쉬었다.

“왜 아플까요.”

혼잣말이 틀림없어 보이는 말을 듣고 순간 멈칫했다. 그냥 들린 것뿐인데 왠지 모르게 훔쳐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황급히 눈을 감았다. 일부러 몸을 조금 뒤척이며 메소드 연기를 펼치다가 침대에 조용히 얼굴을 처박는데 말은 멈추지 않았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이거 내가 안 자는 걸 알고 이러는 것 같았다.

“편식 안 하고 잘 먹었으면 좋겠다. 형이.”

확실해졌다.

“몸에 좋은 거 먹고 건강하면 좋을 텐데.”

“알았어.”

“형 안 주무셨어요?”

몰랐다는 듯이 뒤돌아보는 표정이 자연스러웠다. 너 나 깨어 있는 거 알고 있었잖아. 쏘아붙이려다가 또 웃길래 못했다. 고백할 때 곤란하게 안 하겠다더니 지금 쟤가 웃는 것만으로 곤란했다. 차라리 지구가 성품이 글러 먹었거나 억지로 밀어붙이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지나치게 배려심이 깊은 데다가 적당히 선을 긋고 거리를 지킬 줄 알아서 더 곤란했다. 흠잡을 곳이 없어서 도무지 미워할 구석을 만들 수가 없었다.

고백받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일방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이미 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얘를 엄청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면 결심한 김에 고치면 되겠네요.”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조금도 모르는 지구는 그냥 잘 됐다며 웃었다.

2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