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30화 (30/130)

#30

“데려다줄까?”

“아니요.”

슬슬 감기가 찾아올 시즌이 된 것 같았다. 조만간 눈이 내릴 것도 같은 싸늘한 온도에 팔을 몇 번 쓸어내리며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칼같이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선배가 아까 말씀하셨던 아이디어 좋은 것 같아요. 어떤 컵으로 할지 생각해보려고요.”

다들 툭툭 막 던지길래 한 번 해본 소리였는데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항상 일정한 크기를 유지하던 부드러운 눈이 순하게 휘었다. 지구는 생각보다 굉장히 잘 웃었다. 그것도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질 만큼 환하게.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세요.”

가볍게 웃어 보이며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지구가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확실히 집 앞까지 데려다주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굉장히 듬직했다.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가로등 밑에서 멈춰 섰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이 떠오른 탓이었다.

정인철과는 사소한 취향조차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다. 하다못해 성격까지 상극인 게 친해지지 못한 이유였다. 춤을 제외하고는 통하는 부분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그 하나의 공통 주제조차 함께 나누고 싶지 않아 했다.

“하아…….”

아직 입 밖으로 내뱉은 숨에 입김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완전한 겨울은 아닌 것 같았다. 집에나 갈 것이지 쓸데없이 전봇대를 검지로 쓱 훑어 내리며 시간을 보냈다.

곧 수능이었다. 한참 앓던 그 시기였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걸음을 옮겼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유 없이 바로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노트북을 켜서 마땅한 촬영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너무 멀고, 차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한참 페이지를 넘기는데 휴대폰이 제발 자신 좀 봐달라며 진동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진동이 오래가는 거로 봐서는 전화 같았다.

프로그램으로 만난 사람들과는 보통 카톡을 나눴으므로 전화를 할 사람은 딱 두 사람이었다. 형이거나, 삼촌이거나. 전자는 지금 회사에서 일하는 중일 게 뻔했기 때문에 후자일 확률이 90% 이상이었다.

[어머니]

별생각 없이 받으려 했던 휴대폰의 액정에는 예상치 못한 이름이 떠 있었다. 대체 언제 한국에 들어오신 건지 국제 전화가 아니었다.

“네.”

-너 아이돌 준비하니?

여보세요, 도 아니고 잘 지냈니, 도 아닌 본론부터 튀어나왔다. 정말 어머니다운 화법이라 안부 인사는 내가 대신하기로 했다.

“잘 지내셨어요?”

-잘 못 지낼 건 뭐니. 아니, 그런데 어떤 놈이 배양하던 걸 홀랑 날려 먹어서.

전혀 잘 지내지 못하신 것 같은데. 그렇게 어머니는 배양 실험을 망친 익명의 사람 욕을 5분 넘게 하셨다. 통화 시간이 5분 30초가 찍히면서부터 더는 듣고 있기 피곤할 정도로 지쳐버려서 결국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일상 토크를 원하긴 했지만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저 아이돌 준비하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아, 맞아. 넌 그런 걸 왜 나한테 말을 안 해?

어머니는 전화해도 안 받으시잖아요……. 나한테 연락이 잘 안 된다고 타박을 주기에 어머니는 거의 휴대폰이 없는 사람급으로 통화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연구에 방해된다며 매일 전원을 꺼놓으시는 분이 화를 내시기에 뭐라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 공항에 도착해서 카페를 갔는데 TV에서 네 얼굴이 나오길래 잘못 본 줄 알았어. 알바생한테 쟤 누구냐고 이름도 물어봤다.

“아무리 안 믿겨도 자기 아들인데 이름을 물어본 건 너무하시잖아요.”

-그러게 누가 연락 한 통도 없이 그런데 나가래? 미쳤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격하게 한 톤 올라갔다. 깜짝 놀라서 휴대폰에서 귀를 조금 떨어뜨려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저도 제가 이런 프로그램에 나갈 줄은 몰랐어요.”

갑작스럽게 나가게 된 프로그램이라 누구랑 상담할 생각도 없었다. 빠르게 탈락하려고 했던 계획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부모님께 짧게 말씀이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짧은 반성을 끝내고 심호흡을 크게 하다가 문득 다시 생각이 들었다. 아니, 말씀드릴 틈을 안 준 건 어머니인데. 쌍방 과실 아닌가?

-너 끊었니? 왜 말이 없어?

“그, 이게 조금 갑작스럽긴 한데……. 열심히 할 거거든요.”

그 잠깐 사이에 춤이 익숙해져서 다시 노트북을 두드리기는 힘들 것 같았다. 절대 데뷔는 못 한다며 버둥거리던 때가 멀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은 제법 열심히 하고 있었다. 사람 마음이 갈대라더니 그 말이 딱이다.

-너 정말 이럴 거니?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절로 말문이 막혔다. 이제 춤 그만두고 조용히 살겠다고 선언했을 때 두 분 다 해외에 있으셨고, 평생을 여기에 바쳐놓고 단 한 번의 좌절로 다 때려치우겠다는 약해빠진 아들의 의견을 전화 너머에서조차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래놓고 갑자기 아이돌이라니, 얼마나 황당하실까 싶어 혼자 고개가 자꾸 쳐졌다.

-그런 경사가 있으면 당연히 가족끼리 한 번 모여야지. 너희 아버지랑 상현이한테 연락할 테니까 이따 저녁 하자.

“네? 잠, 잠시만.”

-네 인스턴트 입맛 잘 아니까 걱정하지 말고 몸만 나와.

할 말을 빠르게 마친 어머니가 전화를 끊었다. 통화 종료 창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헛웃음이 터졌다. 우리 가족은 왜 이렇게 다들 쿨한 거야.

저녁 시간에 맞춰 어머니가 보내온 문자에는 딱 주소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집에서 꽤 먼 곳이라 넉넉히 시간을 잡아서 나왔는데 얼마나 외진 골목에 있는지 가게를 찾는 데만 10분이 걸렸다.

“왔니?”

겨우 룸을 찾아 들어왔을 때는 이미 나머지 가족들이 다 앉아 있는 상태였다. 수수하고 분위기 있는 가게에서 파는 건 햄버거였고, 나는 이런 룸 딸린 햄버거 가게를 찾아낸 어머니가 아주 신기했다.

“왔으면 빨리 앉아서 얘기를 해봐. 그 프로그램은 언제부터 한 거니?”

어머니가 옆자리를 팡팡 내리치시며 앉을 것을 권했다.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아 건너편을 바라봤을 때는 누가 봐도 삭막해 보이는 부자가 딱딱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특히 형은 영혼을 집에 두고 온 사람 같았다.

“첫 촬영은 가을부터요.”

“프로그램 이름은 뭔데?”

“서바이벌 ID요.”

착실히 어머니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을 해드리려는데 형이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요즘 진짜 유명한 프로그램이래요. 시청률도 높고.”

영혼이 잠시 가출해있던 형이 말문을 트기 시작하면서 점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근엄하게 헛기침을 한 번 하신 아버지까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고, 대체 누구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 됐다.

“하나씩 하면 어떨까요?”

“그래.”

겨우겨우 진정을 시키자마자 아버지가 가장 먼저 질문을 했다.

“그 프로그램은 왜 나간 거냐?”

“삼촌이 부탁해서요…….”

“박석호 이놈이.”

“물론 시작은 그랬는데 지금은 제대로 목표 잡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짧게 혀를 찼고, 혹시 삼촌이 욕을 먹을까 싶어 급히 실드를 쳤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렇게 하지 않으면 억지로 하는 일이냐며 멱살 잡고 흔드실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서, 저 프로그램에서 열심히 하면 데뷔시켜주는 거야?”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시청자분들 투표를 받으면.”

“무슨 투표까지 해. 생방송 문자투표 그런 거?”

TV를 잘 보지 않으시는 부모님께 프로그램 진행 방식에 관해 설명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형까지 옆에서 거들어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애썼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그러니까 인기투표 같은 거예요. 많이 받은 사람이 데뷔하고요.”

“아. 그런 거야? 매력 있는 애들 뽑는 거?”

“대충 그렇죠. 시청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뽑는 거니까. 말을 잘하는 게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애교가 많은 게 마음에 들 수도 있고.”

형은 드디어 부모님이 이해하셨다는 점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 와중에 햄버거가 담긴 접시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어머니가 예쁘게 잘려있는 햄버거를 찍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 하현이는 안 되겠네. 할 줄 아는 거 춤밖에 없잖아.”

“아이돌은 데뷔하고 싶다고 무조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먼.”

어머니와 아버지가 번갈아 가며 팩트 폭력을 날렸다. 반박할 수 없는 말이라 뻘쭘하게 입안에 햄버거만 욱여넣고 있을 때 형이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왜, 쟤 인기 많아요. 내 동기도 좋아해.”

그렇게 말하며 형은 속이 타는 사람처럼 콜라를 원샷 했다. 방송 시청자인 형이 잔뜩 아는 척을 하는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자꾸 나에게 보냈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하긴 하현이가 춤은 잘 춰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참 대화를 나누더니 내 인기의 이유를 춤으로 결론짓고 나서야 말을 멈추셨다. 그제야 다들 말없이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대화가 끊겼다.

“그런데 하현아. 연예인이 어떤 건지는 알지? 그냥 춤추는 것보다 힘들 거야.”

접시를 다 비운 어머니가 고요함 속에서 꺼내든 말이었다. 걱정스러워 보이는 눈과 마주치자마자 포크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대답 없이 입안의 햄버거를 마저 씹었다.

사실 지금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크게 꿈꿔본 적이 없으니 어떤 일들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노블을 좋아하던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도 알았다. 온갖 루머와 사건에 시달릴 테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주목받게 될 것이었다.

“그래도 노력할 생각이에요.”

인생이 꼭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니까. 한 번 쉽게 포기했던 춤을 다시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 뭐가 됐든 노력해봐야 하지 않을까. 조금 힘들다고 때려치우면 세상에 직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게 분명했다.

“네가 그렇다면 됐지.”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집어 드셨다. 그러더니 아까 형이 말했던 프로그램 제목을 검색하시며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이게 너니? 메이크업한 얼굴에 보정까지 먹인 움짤을 가리키며 이게 진짜 너냐고 물으시는 통에 자연스럽게 다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티저 촬영해야 해요.”

“생각은 했어?”

“네. 지금 약간 들판 같은 곳 찾고 있거든요.”

제주도까지 갈 수도 없고. 어서 집에 가서 장소를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콜라를 마시던 중에 어머니가 손바닥을 쳤다.

“거기 있잖아. 할아버지 갖고 계신 땅.”

“아.”

어릴 때 갔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집에 가자마자 할아버지께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렇게 멀지도 않고. 내가 주소록을 뒤져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찾는 동안 가족들은 갈 준비를 했다.

“잘 전화드려봐. 엄마는 너희 아버지랑 내일모레 다시 출국해야 해.”

“또요?”

“한국 공기 마시려고 잠깐 온 거야. 여보, 경복궁 들렀다 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눈앞에서 하하 호호 내일 일정을 잡으셨다. 그놈의 경복궁 사랑은 참 여전한 듯싶었다. 형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길래 나도 살짝 따라 했다.

“열심히 해라. 형 간다.”

형은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은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가족 모임에서 혼자 먼저 나가겠다는데도 부모님은 그러든지 말든지 관심 없어 보였다.

“나도 갈 거야.”

“근데 너 진짜 괜찮은 거지? 충동적인 거 아니고?”

데뷔하면 앨범 몇 장 사주겠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해놓고는 갑자기 걱정해주는 게 웃겨서 순간 입 밖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낼뻔했다. 그래서 그냥 앞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고 말해줬다.

“각오했어.”

“오냐.”

튼튼하게 뿌리 내린 갈대가 되기로 했다. 형은 조금 전까지 걱정해준 사람이 맞는지 순식간에 심드렁한 표정이 돼서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조금 기다렸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계산서를 들고 나도 밖으로 나갔다.

* * *

“준비됐어요? 촬영 기회 몇 번 없어요.”

“네.”

카메라가 이쪽을 향했다. 진짜 데뷔 티저를 촬영하는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장비들이 전문적이라서 절로 긴장이 됐다. 나만 찍는 것도 아닌데 괜히 떨리네. 목을 꺾으며 무심코 바라본 하늘이 맑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여름 느낌이 물씬 날 정도로 들판은 푸르렀고, 그 위에 나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서늘함만 아니면 여름으로 착각할 정도로.

“자, 갑니다.”

달리기 시작한 몸이 웬일로 가벼웠다. 분명히 규칙적으로 땅에 발을 딛고 있는데도 날고 있는 것 같았다. 기분은 좋았는데 좀 추워서 컷 소리가 나자마자 바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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