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16화 (16/130)

#16

자정에 공식 홈페이지에 개인 직캠이 업로드됐다. 별로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는 살펴봐야 할 것 같아서 대충 비회원으로 영상을 보러 들어갔다.

나름 착실히 표정 연기를 하긴 했는데 막상 직접 봤다가 현타오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해서 이미 올라간 영상을 확인도 안 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항상 찍은 영상을 돌려보면서 부족한 부분이나 미세한 실수를 잡아내는 건 일종의 강박 같은 습관이었다.

“…….”

왜 접속이 안 돼. 한참 새로 고침도 해보고, 몇 번이나 재접속을 해봤지만, 여전히 먹통이었다. 3분쯤 지났을 때 드디어 정상적으로 화면이 눌리기 시작했고, 거기서 2분 정도를 더 기다리고 나서야 영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번에는 5페이지에 밀어 넣어주더니, 이번에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름순으로 놓여 있는 영상 중 내 얼굴을 찾아내 재생을 눌렀다.

안무에 조금도 실수가 없다는 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노래는 솔직히 다른 애들 파트에 묻힌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미숙해서 소리를 조금 줄이고 봤지만, 줄을 맞추는 속도나 안무 디테일은 괜찮았다.

영상을 시청하고 나서 계속 생각나는 것은 내내 등장하는 익숙한 뒤통수였다. 종내에는 내 하반신을 전부 가릴 정도로 방방 뛰던 그 머리의 주인은 입고 있던 줄무늬 셔츠와 든든한 등을 봐서 틀림없이 삼촌이었다.

무대가 끝나고 왜 엄지를 들어 올렸나 했더니 잘해서가 아니라 이거 때문이었나 봐. 왠지 허망하기도 하고 웃겨서 휴대폰을 저 멀리 밀어놓고 이불에 얼굴을 처박고 한참을 웃었다.

저게 뭐야, 직캠은 편집하기 힘드니까 몸으로 뛰어서 발캠을 만들어 놨네. 이번이 마지막 통편집이니 혼을 갈아서 해주겠다던 삼촌의 말은 정말인 모양이었다. 운동을 싫어해서 잘 걷지도 않는 삼촌이 무대 내내 저러고 열심히 어슬렁거렸을 생각을 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직캠 보고 걸었니?

“아, 삼촌. 진짜…… 잠깐만요. 저 좀 웃고.”

-다 웃고 걸지 그랬니. 내 머리 퀄리티 어떠니?

“뛸 때마다 계속 뚜껑 열리던데요.”

-나도 보고 좀 놀랐다, 그렇게 심할 줄은 몰랐어.

“무대 끝나고 엄지 척 했던 것도 저거 때문이에요?”

-그건 진짜 감탄해서 한 건데. 내가 1열에서 봤잖아. 당장 데뷔시켜도 손색이 없었다니까. 너도 방금 보고 왔잖아. 잘 나오지 않았냐?

방송국 카메라와 메이크업의 조화가 그렇게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춤출 때마다 영상 녹화는 자주 했었는데 저렇게 얼굴이 가깝게 찍힌 영상은 처음이라 적응이 안 됐다.

표정이 정확히 보이는 고화질 화면에 눈앞에서 방방 거리는 삼촌의 머리까지 없었다면 부끄러워서 조심스럽게 화면을 껐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부끄럽긴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스스로도 이상할 정도로 신나긴 했다.

“솔직히 만족은 했어요.”

-그렇지? 데뷔하면 저런 레전드 무대를 매일 만들 수 있다니까?

“한 번 해보고 좋은 경험이었다, 하는 거랑 직업으로 삼는 건 다르다니까요.”

나쁘지 않은 내 반응에 희망이 생긴 건지 삼촌의 목소리가 들떠 보이길래 가볍게 눌러줬다.

춤을 출 때 그 느낌은 이루 말하기 힘들었지만, 만약 이쪽으로 다시 직업을 잡는다고 해도 아이돌보다는 백댄서가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덕분에 무대 위에서의 즐거움을 다시 깨닫게 됐으니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서보니까 확실히 이쪽이 더 좋긴 해요. 아무래도 저랑 글이 많이 안 맞았나 봐요.”

-내가 보기에는 진짜 좋았다니까. 사실 안 그래도 지금 몰린 표수가…….

카톡. 그때 휴대폰에서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잠깐만요.”

보낼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발신자를 궁금해하다가 곧 심심한 준이가 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와는 안녕, 네. 를 끝으로 주고받은 연락이 없는 것에 비해 준과는 꽤 활발하게 소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은 평소에 말이 많은 것처럼 타자도 빠르고 글자 수도 많았다. 저 지금 편의점 왔는데 뭐 먹을까요? 처럼 영양가 없고 쓸모없는, 나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잘 답변해줄 수 있는 질문도 자주 보내곤 했고.

“어?”

[www.surviberID.com/movie2/51319842]

발신인은 놀랍게도 연락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지구였다. 게다가 카톡 내용은 정말 간단했다. 아니, 내용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영상 하나만 달랑 도착해 있었다. 조금 전에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삼촌 머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내 직캠 영상.

“……뭐지?”

-뭐가? 뭐 하는데?

“아니요.”

이걸 왜 보내줬지, 올라왔다고 알림이라도 해준 건가? 기특해하며 고맙다고 답장하기에는 지구와 제대로 된 카톡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냥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이모티콘을 골랐다.

[(웃음)]

근데 이모티콘 선정을 잘못했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냈는데 얘가 갑자기 재수 없게 풉,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쭉 뻗는다.

아, 시발. 얄미운 이모티콘의 표정을 보며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진심 가득한 욕설이 휴대폰 너머까지 전달된 건지 삼촌이 움찔하며 물어왔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아. 삼촌 끊어봐요.”

-아직 나 할 말 다 안 끝났는데? 너 지금 20분 만에.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삼촌의 말을 끊어먹고 통화 종료를 눌렀다. 얼마나 확인이 빠른지 벌써 1이 사라진 상태였다. 최대한 쿨한 척 넘어가기 위해 덧붙일 말을 찾아보다가 급하게 오해부터 풀기로 했다.

[미안 이모티콘 잘못 보냈어]

[근데 영상은 왜 보낸 거야?]

답장을 확인하지 않으려고 일단 휴대폰을 침대 구석으로 던져뒀다.

[아]

[죄송해요 실수로 눌렸나 봐요]

[죄송합니다..]

30분쯤 지나서 슬슬 자려고 마음먹었을 때쯤 답장이 도착했다. 당황한 듯한 세 줄짜리 카톡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애초에 홈페이지에서 내 영상 공유하기를 눌렀으니까 실수로 보내든 말든 했을 텐데. 네 영상이나 친구들한테 돌리지 내건 어디다 공유하려고 했냐, 하고 물어보려다가 죄송합니다 뒤에 붙어있는 점 두 개가 조금 귀여워서 관뒀다.

백스페이스를 누르며 최대한 온화한 답장을 다시 쳤다.

[아냐 그럴 수도 있지 뭐ㅎㅎ]

1이 없어진 거로 봐서 답장은 확인했는데 카톡이 더는 날아오지 않았다. 자나보다 싶어 그냥 휴대폰 화면을 끄고 침대에 똑바로 누웠다.

일어나서 삼촌에게 온 문자를 확인해보니 결국 음악방송 출연은 확정됐다고 했다. 삼촌이 얘기해준 내용과 달라진 것은 본 방송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무대가 사전녹화로 바뀌었다는 정도였다.

우리가 워낙 수가 많기도 하고, 정식 데뷔한 사람들이 아니라 배려 차원이라고 했다. 시청자분들이 폼 제출 후 추첨 방식으로 꽤 많은 분이 초대되신다고 하던데, 삼촌은 네 팬도 꽤 많을 테니 눈여겨보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 말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제가 뭐라고 보러 와요, 누가. 인터넷에서 본 팬들은 많았지만 실제로 온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상상이 안 갔다.

5화 방송이 나가고, 순위 발표가 있을 때까지는 연습만 하면 된다고 전체공지가 날아왔다. 연습실을 24시간 개방해놓으니 자율 연습하라는 말만 보고 무작정 도착한 세트장은 참가자들로 한가득이었다.

공지를 받자마자 다들 바로 와서 연습할 줄은 몰랐는데, 확실히 처음으로 팬들 앞에서 진행되는 무대라 긴장감이 대단한 모양이다.

“조장님 왔네요! 저희 방금 다 같이 직캠 하나씩 모니터링 중이었는데.”

게다가 우리 조원들도 이미 다 도착한 상태였다. 나름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각생이었네. 스태프 측에서 제공한 듯한 노트북 앞에 옹기종기 모인 조원들이 자정에 올라온 직캠을 구경하다가 손짓했다.

모니터링을 다 같이 모여서 하고 있다니, 안 부끄러운가. 별로 보고 싶지 않았으나 내 자리랍시고 비워 둔 건지 중간에 한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그 왼쪽에는 지구가 애꿎은 물병을 이리저리 괴롭히며 앉아있었다.

물이 절반쯤 들어있는 플라스틱 몸체를 두 손으로 구기다가, 이제는 아예 바닥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짓누르는 모습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으니 시선이 이쪽으로 슬그머니 돌아온다.

“어젯밤에 죄송했어요, 정말 실수로 보낸 건데.”

가온을 중심으로 나머지 조원들은 직캠 영상을 누구부터 볼 건지 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틈에 지구가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더 물어볼 생각이 조금도 없는데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물병을 누르는 압력이 더 강해지는 게 눈으로 보였다. 안에 담긴 물들이 파도처럼 출렁대며 손바닥 아래서 흔들리는 걸 보며 웃을 뻔했다. 분명 괜찮다고 답장도 했는데. 진짜 별것도 아닌 일에 필사적으로 해명하려는 게 좀 귀엽고 웃겼다.

“어제 괜찮다고 했잖아.”

눈앞의 노트북에 잠시 시선을 꽂았다. 순서를 다 정했는지 가온의 직캠이 제일 먼저 나오고 있었다. 꽤 프로 같은 표정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그거 나 말고 어디로 보내려고 한 거야?”

“네?”

“잘못 보냈다며. 원래 보내려고 한 데가 있을 거 아니야. 네 영상도 아니고 내 영상을 어디에 보내려고 했는데?”

구체적인 질문을 덧붙이면서도 시선은 꾸준히 화면 속 가온의 얼굴에 꽂았다. 얼굴 쳐다보면서 물어보면 또 죄 없는 물병을 괴롭힐까 봐 일부러 배려한 건데 옆에서 플라스틱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이렇게 영상에 신경도 안 쓰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나머지 조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신경을 안 쓴다기보다는 다들 직캠 감상에 푹 빠져 있다.

“그, 다른 데다 보내려던 건 아니고요.”

“아니고?”

“나에게 공유하기 하려고 했는데 손가락이 삐끗했어요.”

푹 숙인 고개가 그럴듯한 변명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근데 이게 더 이상해서 변명의 효과는 조금도 볼 수 없었다. 나에게 공유하기는 또 웬 말이야. 항상 담담하고 똑 부러지게 잘만 말하던 지구가 눈치를 보는 걸 처음 봤다.

“그걸 왜 했는데?”

별생각 없이 물어보는 동안 어느새 가온의 직캠 영상은 마지막을 달리고 있었다. 다음 영상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는데, 구석에서 얌전히 노트북을 보고 있던 휘영이 내 팔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들며 “다음 영상 조장님이에요.”하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 잠깐 사이를 틈타서 지구가 내 물음에 대답했다.

“백업용이에요.”

뭔 백업을 해? 이해를 못 해서 다시 물어보려고 했는데, 빨리 영상 좀 보라며 가온이 두 어깨를 잡는 바람에 결국 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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