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를 피하는 방법-7화 (7/130)

#7

“미안하다, 하현아.”

상쾌한 아침부터 삼촌의 사과를 들으려니 기분이 좀 그랬다. 사실 메이크업부터 환한 조명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늘이 순위 발표 촬영을 하는 당일이었으니까.

“계속 들으려니까 좀 물려요.”

“그래. 미안하다.”

“물린다니까요.”

“메인 PD님이 순위 발표 나는 그 순간까지 편집하는 건 안 된다고 하셔서 거긴 나와야 할 것 같아.”

“그 정도는 괜찮다니까요.”

이미 털릴 대로 다 털린 상태라 TV에 나오는 것 자체는 딱히 상관없었다. 동창들에게 온 수많은 카톡과 페이스북 탈퇴를 통해 이미 모든 걸 다 잃었다.

걔네가 비웃을까? 연락까지 끊어놨는데 갑자기 TV에 버젓이 나오니 웃길 만도 했다. 순간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순위 불리자마자 얼굴 잡힐 테니까 표정 관리 조금만…… 알지?”

“네.”

“기쁜 척이라도 해줘. 아니면 너 욕 먹을지도 몰라. 그리고 소감도 말해야 하는데 힘들면 한 줄만이라도 부탁한다.”

삼촌은 그래도 최대한 편집 잘하겠다며 잘생긴 조카님을 연발하다가 헐레벌떡 떠나버렸다. 그러자 혼자가 되었다. 주변 참가자들 사이에서 준과 지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최대한 구석 자리에 처박혀있다가 촬영 시작되면 기어 나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쉴 만한 곳을 찾아 걸음을 옮기다가 거울을 발견했다. 벽에 걸려있는 거울에는 소품이라고 적혀있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이게 무슨 시상식도 아니고 소감까지 해야 돼. 말은 아무 말이나 지어내면 된다고 쳐도 대체 표정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예전부터 표정 관리를 못하기로 유명했다. 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얼굴에 다 쓰여 있다는 말을 살면서 여든아홉 번 정도 들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얼굴에 바로 전달돼서 입으로 뭔 소리를 하든 거짓말이라는 게 바로 보인다고, 춤출 때는 표정 연기 잘하는 게 신기하다고. 정말 나중에라도 연예인이 되면 배우는 죽어도 못할 거라고.

“와, 진짜 이런 높은 등수를…… 받게 될…… 줄은…….”

최대한 놀란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김이 확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관뒀다. 춤추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지 연기하는 거라고는 안 했잖아. 게다가 촬영장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남이 보면 무슨 미친 짓이냐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순위도 안 나왔는데.

“안녕하세요, 선배.”

……아까 잠깐 찾긴 했지만 이런 순간까지 같이 있고 싶지는 않은데.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무겁게 입는 걸 싫어하는 건지 날이 꽤 추워졌는데도 가벼운 셔츠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고개를 조금 더 옆으로 꺾으니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는 지구보다 더 큰 장신의 남자.

“소감 연습하세요?”

가늘게 찢어진 무쌍의 눈이 무섭게 휘었다. 그 짙은 아이라인에서 그 순간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아뇨. 안 했는데요.”

“얼굴에 했다고 써있는데요.”

이제 아흔 번째 들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대꾸했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확인사살을 날렸다. 처음 보는 얼굴에 지구를 향해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을 날리자, 지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소감 연습하신 거 아니래요.”

“그래? 믿어드릴게요.”

진짜 죽고 싶다. 그냥 표정이 어떻든 말든 삼촌이 피의 편집으로 잘 해줬을 텐데. 괜히 연습하겠다고 나서서 얼떨결에 이미 높은 순위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감 덩어리가 됐다. 해명을 해봤자 더 이상하게만 보일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제 블라인드 처리되기 직전에 추천 수 보니까 절대 떨어지지 않으실 것 같긴 하더라고요.”

“아, 예…… 근데 누구세요?”

“저 참가자요.”

저 사람도 내가 잘 때 무대를 했었나 보다, 기억에 전혀 없는 걸 보니까. 날카로운 눈매는 한 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사나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악수를 하고 싶은 듯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길래 떨떠름하게 살짝 손을 내밀어 잡아줬다. 손도 크다.

“지구 선배님이시라면서요. 춤을 그렇게……”

“형.”

“예, 예. 잘 추시더라고요. 저도 영상 보고 팬 될 뻔했어요.”

세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은 쾌활해 보였다. 어차피 오해도 못 풀 텐데 계속 같이 있어 봐야 뭐하나 싶어서 자리를 옮기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어딜 가냐며 그 사람이 나를 붙잡았다.

“촬영 곧 시작하는데요.”

“그전에 어디 들어가서 좀 쉬려고요.”

“또 주무시려고요?”

의도하는 건지 계속 팩트를 툭툭 던지는데 반박할 말이 없어서 더 속이 터진다.

“네, 촬영하다가 안 자려고요.”

대충 대꾸하고 뒤를 돌았다. 혼자 있길래 아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더니 저렇게 친해 보이는 형이 있었구나. 지구 혼자 있으면 모를까,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있으니까 계속 여기 있기 좀 불편했다. 대답까지 했으니 이제 안 잡겠지 싶어서 진짜 구석으로 가려니까 또 잡아 온다.

“주무시러 간다니까요.”

“선배 페이스북 탈퇴하셨어요?”

왜 또 잡나 싶어 약간 성질을 내볼까 했더니 지구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는 팔짱을 끼고 조명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가 상냥하게 안부를 묻고 있었다. 나 말고 페이스북 안부.

“탈퇴한 건 어떻게 알아?”

“인터넷 보니까요.”

“어, 응. 유출돼서 친구 신청 엄청 왔길래 그냥 날렸어.”

“잘하셨어요. 그래도 선배 글 대부분 친구 공개로 해놓으셔서 다행이죠. 하마터면 사생활 알려질 뻔했잖아요.”

이번에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말을 똑바로 들었다. 잘못 들었다기에는 너무 정확하고 길다.

“글 친구 공개로 해놓는 건 어떻게 알아?”

“들어가 봤는데 글 별로 안 보이길래요. 친구 공개하셨구나 생각했죠.“

당황한 티를 전혀 내지 않은 채 침착하게 대꾸하니까 할 말이 없어져서 그냥 그렇구나, 대답하고 말았다.

얘는 이상하게 대화를 할 때마다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고등학교 후배긴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혹시 아는 사이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음과 후배들과 단 한 번도 친목을 다진 적이 없었다.

“슬슬 촬영 들어갈 텐데 준비하러 가요.”

“그래.”

스스로가 생각해도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물음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삼켜내고 촬영을 위해 세트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1, 2화 촬영을 했던, 큰 무대가 있던 그 세트보다 스케일이 더 컸다. 의자에 이름표가 붙어 있길래 잽싸게 이름이 적힌 의자로 가서 앉았다. 통편집을 쉽게 하기 위해서인지 맨 뒷줄 제일 오른쪽 자리였다. 외지기 그지없다.

“떨어지면 어떡하냐. 나 이거 마지막인데.”

“그런 생각하지 마. 블라인드 처리되고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

“솔직히 나 방송 못 나가서 존나 불리했잖아. 누가 영상을 일일이 다 찾아보냐고. 방송 보고 괜찮았던 것만 추천 누르지. 여기서 떨어지면 엄마가 연예인이고 뭐고 때려치래. 시발…….”

게다가 왼쪽에 앉은 사람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한창 절망 중이었다. 딱히 듣고 싶지 않은 얘기인데도 욕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귀에 딱 박혀 들어온다. 딕션이 래퍼급이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는 솔직히 좀 짠했다. 설마 27등으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 때문에 떨어지는 것 같아서.

“카운트다운 갈게요.”

풀정장을 갖춰 입은 MC가 환하게 웃으며 ”긴장 풀어요!” 하고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순위가 적혀있는 Q카드를 들고 저렇게 말하는데 긴장이 풀릴 수 있을까 싶었다.

“33명의 참가자의 모습이 담긴 무대는 잘 보셨나요?”

카메라를 바라보며 대본의 내용을 읽어나가는 MC의 표정은 태연했다. 저번 방송 때는 조금 버벅거리시더니 연습 많이 하셨나 보네. 쓸데없이 MC의 진행력이나 평가하며 앉아있기를 10분, 드디어 순위가 불리기 시작했다. 맨 처음으로 26위가 불리자 저 앞쪽에서 굉장히 흥분한 듯한 사람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진짜, 정말 감사합니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려주셔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막 들어요.”

약간 울먹이면서 얘기하는데도 할 말은 꽉꽉 채워서 한다. 내가 시청자였으면 추천 하나 누르고 가주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다는 말을 연속해서 뱉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순위가 불리고, 생존 스티커를 붙이고 자리로 돌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숨 돌렸다는 듯이 안심한 얼굴이었다. 중간중간 잠깐씩 딜레이가 있긴 했지만 빠른 속도로 순위가 발표됐고 금방 10위대로 진입했다.

계속해서 불려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안면근육이 점점 굳어갔다. 높은 순위로 불리는 사람일수록 소감이 고퀄리티로 변해가고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대여섯 번 하는 건 기본이었고 표정도 점점 더 격해졌다.

벌써 절반 정도 되는 사람들이 생존 스티커를 달았다. 한 자릿수로 진입하자마자 가장 먼저 불린 것은 준이었다. 이상하게 촬영 직전까지 안 보인다 싶었는데 다행히 오긴 했었나 보다.

귀엽게 웃으며 밑으로 뛰어 내려간 준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대고 인사를 했다. 어린 나이다 보니 참가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1화 방송에 나와서 반응이 꽤 좋았다고 들었는데 정말 순위가 높았다.

준의 소감을 다 듣고 박수를 쳐주고 다니 바로 다음으로는 아까 지구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름이 예준이구나. 모델 워킹을 하면서 내려오더니 쿨하게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가는 게 따라 하고 싶을 정도로 심플했다. 이따 소감할 때 저렇게 해야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의문이 들었다. 삼촌이 말한 거로 봤을 때 이번에 생존하는 건 확실한데 아직도 이름이 안 불렸다. 그 뒤로 불린 7등, 6등도 다른 참가자였다. 높은 순위로 불린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소감을 하고 들어갔다.

“이제 4위 발표하겠습니다. 추천 수가 점점 더 어마어마해지네요. 아, 이 영상 정말 레전드였죠. 춤에 한 획을 그을.”

MC의 소개 멘트를 들으면서 나갈 차례인가 살짝 생각했는데 이 멘트가 4위 멘트라는 게 심각했다. 높은 전투력을 뽐내며 ”영업하자!”고 단합했던 팬들의 모습과 MC의 얼굴이 마구 겹쳤다.

“박하현 군!”

정말 내 차례가 맞았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옆자리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사방에서 꽂히는 시선에 부담스러워서 증발하고 싶었다.

“하현 군 4위 축하드려요. 저도 집에 가서도 생각나서 영상 몇 번 봤는데 못 나가겠더라고요. 무의식중에 추천도 눌렀어요.”

털털하게 웃는 MC를 보며 같이 억지로 웃었다. 이 자리에 멱살 잡고 올려놓으신 분 중 한 명이었다.

“33명 중에 4위면 굉장히 높은 등수인데, 지금 기분이 어때요?”

한때 누나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는 MC의 미소가 눈에 바로 박혀 들어왔다. 따뜻한 눈웃음에도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최대한 끌어당겼는데 눈은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감을 찍으려는지 눈앞에 커다란 카메라가 얼굴을 정면으로 클로즈업했다.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삼촌이 입을 한껏 벙긋거리고 있었다.

웃어! 왠지 입 모양이 다 읽히는 것 같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눈도 한껏 접었다.

“어, 정말 너무 높은 등수를 받게 돼서 조금 과분하다는 생각이 되지만.”

뭔가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뒤늦게 후회해봤자 입 밖으로 한 번 내뱉은 외계어는 되돌릴 수 없었다. 속으로 대성통곡을 하며 카메라 렌즈와 똑바로 눈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방금 전의 말은 안 뱉은 거라고 최면을 걸며 간단하고 심플한 새 소감을 준비했다.

“이렇게 높은 등수 선물해주셨으니까. 더 노력하겠습니다.”

하차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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